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들로 Jun 13. 2018

원더우먼 권하는 사회
<히든 피겨스>

혼영일년 3月 : 혼자서 바라보는 세상 3

<히든 피겨스>의 세 흑인 여성은 고달프다.  

1960년대 수학자 캐서린(타라지 P. 헨슨), 프로그래머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엔지니어 메리(자넬 모네)는 백인 남성이 주류인 엘리트 집단 NASA에서 완벽한 비주류다. 심지어 백인 여성과 같은 일을 하고서도 적은 월급을 받고, 왕복 1.6km나 떨어진 흑인용 화장실만 써야 한다. 흑인은 공부할 수 없는 학교 수업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세 흑인 여성이 원더우먼이다.  


이들은 천재적인 능력으로 차별을 극복한다. 

캐서린은 월등한 계산능력으로 우주탐사에 필요한 공식들을 척척 해결하는 인간 컴퓨터다. 도로시는 IBM 컴퓨터 필요성을 미리 알고 공부한 끝에 NASA 내 유일한 IBM 프로그래머가 된다. 메리는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가 된다. 사회적 약자였던 세 흑인들은 당시 ‘백인’ ‘남성’ 주류의 유리천장을 뚫고 결국 자신들의 꿈을 이룬다. 



내 주변에도 원더우먼이 있다. 사내 프로젝트도 척척 진행하면서 두 딸의 육아까지 완벽히 책임지는 회사 동기다. 덕분에 사내 평판도 좋은 그 친구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남자 동기들 사이에서 남자처럼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좋은 엄마가 되느라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얘기였다. 

사실 그녀는 원래 원더우먼이 아니라 원더우먼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원더우먼, 슈퍼맨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히어로를 강요하는 사회다.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히어로다. 차별받았던 히어로들의 놀라운 성공기는 역으로 차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보여준다. 결국 유리천장이 사라져야만 평범한 이들 모두 평등을 누릴 수 있을 테다. <히든 피겨스> 주인공들의 성공에 기쁘면서도 주인공 뒤에 숨어있을 수많은 흑인 여성들의 차별이 더욱 안타까웠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숨겨진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세 여성은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당당하고 명랑하다. 그래서 절로 응원하고픈 마음이 든다. 사실 이들은 흑인 여성으로서 인정받은 것보다는 백인 남성만큼 성과를 냈기에 그들의 사회에 무사히 편입한 듯하다. 문득 다른 여성들의 안녕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영화 제목이 세 주인공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았던 수많은 흑인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불교 용어 중에서 화엄(華嚴)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온갖 꽃들이 조화롭게 만발하여 하나가 된 장엄한 모습을 일컫는다. 저마다 다른 존재들이 일체의 차별 없이 각자 발하여 하나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백인, 흑인, 남성, 여성 등 다양한 구성원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화엄을 상상했다. 

사실 히어로가 필요 없는 세상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 개인에게 초능력 강요하는 사회보다 개인기 권하는 사회가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부모는 함께 동행한다 <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