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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n 02. 2018

아이와 부모는 함께 동행한다
<사도>

혼영일년 3月 : 혼자서 바라보는 세상 2 

3월 초 개학시즌이면 <사도>가 생각난다.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출근할 때면 아이들의 등교 행차를 목격한다. 무장했던 겨울을 해제하고 봄기운을 불어넣는 아이들의 파릇한 발걸음이 흐뭇하다. 특히나 엄마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는 저학년 새싹들의 뒷모습을 보면 <사도>가 떠오른다. 엄마와 아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에 떠오르는 영화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아들 사도세자(유아인)의 부자 관계를 다룬다. 이전 사극들은 27살 나이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자극적인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도>는 자식에게 실망한 아버지, 기대에 맞추지 못해 절망한 아들을 조명한다. 바로 두 부자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비극이다.


  

아들 사도세자는 요즘 말로 이과형 인재였다고 한다.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무기신식>이란 무예 책을 써서 장수들의 훈련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식견도 탁월했다.

  

문제는 아버지 영조가 문과를 숭상했다는 점이다.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에게 태어나 적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영조가 궁궐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공부였다. 방대한 독서와 경연을 통해 학문 수양에 힘썼던 영조는 지식으로 신하들을 제압하기에 이른다. 영조에게 학문적 입지만이 당파와 외척의 견제에서 살아남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영조에게 칼싸움을 좋아하는 아들 사도세자가 태어났다.

    

2남 12녀를 둔 영조는 첫째 아들 효장세자가 요절하자 남은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더욱 집착한다.  아들에게 고전 읽기를 강요하며 사도세자의 게으른 독서 행태를 꾸짖었다. 엄한 아버지의 존재는 사도세자 마음에 커다란 압박감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급기야 무고한 내관의 목을 벤 사도세자는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사도>를 볼 때면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부모님은 내 인생의 가이드를 정하지 않으셨다. 도시 생활 속에서 자주 농촌을 접하게 해주셨고, 없는 살림에도 음악, 미술에 관심을 갖게끔 돕고는 멀리서 지켜보셨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루소는 <에밀>에서 자연을 양육의 최적 장소로 꼽는데, 자연에서는 아이가 시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스스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부모는 교육의 방관자가 되어 아이 스스로 체험하도록 돕는데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야만 아이가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이 루소의 자유방임 계승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강요하는 방식은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었소. 공부가 그리 중한 것이오?"  

- <사도> 사도세자의 대사 中에서 -   


정조와 사도세자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무예에 출중하고 기예에 능한 재주 많은 아이는 정작 아버지 영조 앞에서는 칼 장난이나 하고 개 그림이나 그리는 망나니였을 뿐이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아버지를 만났더라면 사도세자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강압적인 아버지를 둔 그에게 궁궐은 이미 뒤주나 다름없었으리라.  


봄기운이 진해질수록 아버지와 아이가 나란히 산책하는 풍경을 자주 본다.  

혈연으로 맺어진 부자의 끈끈한 동행을 보며 부모와 자식은 함께 걸어가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누굴 이끌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란히 동행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관계 말이다.   


내게 아이가 생기면 과연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지 실없는 상상도 한다.  

아이 스스로 체험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돕는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아이와 친근한 아버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그전에 결혼부터 할 일이다. 역시 실없는 상상이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아빠는 꽤 멋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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