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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Mar 28. 2018

1월 1일 아침에 홀로 깨어나서 보는
<트루먼쇼>

 혼영일년 1月 : 시집이 아닌 시로 출발하기 1 

새해 첫날이면 혼자 치르는 나만의 연례 행사가 있다. 

모든 존재가 어둠에 묻힌 새벽녘에 일어나 홀로 동네를 거니는 것이다. 

모두 잠들었거나 혹은 바다 일출을 보러 떠난 동네는 한겨울 고요 속에 침전해 있다. 그러면 나는 이 구역의 왕처럼 동네를 유유히 활보하는 것이다. 비록 칼바람이 피부에 스치고 영하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지만, 그래도 모두 잠든 동네에 홀로 깨어 있다는 뿌듯함이 먼저다.  


어제의 1년을 떠나 보내고 오늘의 1년을 시작하는 첫 날 새벽, 그렇게 새로운 공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다른 연례행사로 <트루먼쇼>를 감상하곤 한다.  


<트루먼쇼>는 새벽 바람만큼이나 나를 차갑게 일깨우는 영화다. 

<트루먼쇼>는 방송국 리얼리티쇼에서 만든 가공의 마을에서 조작된 삶을 살아가는 남자 '트루먼(짐 캐리)'의 탈출기를 그린다. 방송국은 출생부터 30살이 넘은 현재까지 트루먼의 사생활을 24시간 시청자에게 생중계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트루먼은 늘 웃는 와이프, 언제든지 달려올 준비가 된 친구, 그리고 안정된 직장까지 비록 방송국이 만든 허상일지라도 행복한 삶을 누리는 최상의 조건 속에서 산다. 


그런데 잘 나가던 트루먼 쇼에 차질이 생긴다. 마른 하늘에서 카메라 조명이 떨어지고 20여년 전에 죽었던 아버지가 나타나는 등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러자 트루먼은 자신이 사는 평온한 세계가 거짓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트루먼은 방송국이 조종하는 거센 파도를 뚫고 리얼리티쇼 무대 끝에 다다른다. 그렇게 그동안 취해 있었던 달콤한 가짜 현실에서 깨어난다. 쇼 연출자는 트루먼에게 편안한 가짜 세상에 머무르기를 설득하지만 트루먼은 진짜 세상에서 진짜 삶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트루먼(Truman)은 진실(True)과 남자(Man)가 합쳐진 이름이다.  


새로운 1년이 시작된 새해 첫날, <트루먼쇼>는 내게 항상 새해 첫 영화였다. 

지난 1년동안 반복된 일상에 취해 있지는 않았는지, 평온했던 일상이 과연 내 진짜 삶이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진짜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데카르트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설사 거짓이라 할지라도 오직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했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가 생각 하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거짓들로 둘러싸여도 트루먼처럼 깨어 있다면, 진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늘 생각하고 깨어 있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끝없이 의심해서 고통스럽게 얻어낸 진실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칼바람이 피부에 스치고 영하의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든다. 

1월 1일 새벽은 언제나 깨어 있기 좋은 날씨다. 깨어 있는 각성에서 의심이 시작된다. 일상에 취해 당연시 했던 부분을 의심하고 숙고한다. 나를 둘러싼 거짓된 외피는 없는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인간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본다. 늘 깨어 있고 의심해야만 온전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새해 첫 날 새벽 공기, 그리고 <트루먼쇼>로 다시금 깨우친다.  


12월 31일 밤보다 1월 1일 새벽이 더 좋다.  

진짜 나 자신으로 시작하기 좋은 날이다. 





We accept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which we are presented.  

우린 눈 앞에 펼쳐진 세상 만을 진짜 세상으로 받아들인다.  

  - <트루먼쇼>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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