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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Apr 05. 2018

개연성 없는 새해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혼영일년 1月 : 시집이 아닌 시로 출발하기 2

1월은 역경을 딛고 새 출발하는 힐링 영화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다. 작년에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 새해에 이뤄지길 바라는 탓일까. <버킷리스트>, <쇼생크 탈출>, <트루먼 쇼> 같이 소위 새해 전문 영화들이 위세를 떨친다. 그런데 오래된 명작들로 굳건히 구성된 새해 영화에 최근 새롭게 합류한 신입생이 있다. 바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벤 스틸러가 연출과 주연까지 맡은 작품이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포토 에디터로 근무 중인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뉴욕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라이프 잡지가 경영 위기로 폐간을 맞게 되고, 하필 마지막 호에 실릴 표지 사진이 사라진다. 담당자 월터는 사진을 되찾기 위해 사진작가 숀(숀 펜)을 찾아 특별한 모험을 떠난다. 온라인 프로필에 마땅한 경험 하나 적을 것 없었던 월터는 여행을 통해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 결국 히말라야 등정 끝에 숀을 만나고, 마지막 사진에 담긴 비밀을 깨닫게 된다.

  

사실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실망했다. 개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상상만 하던 소심한 직장인이 갑자기 거대 어드벤처의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펼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었다. 월터가 어떻게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화산 폭발 속에서 보드를 탈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월터의 상상은...>는 변변찮은 영화로 기억되었고 시간이 흘러갔다.

   

영화 편성이 잘 되지 않아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어느 날이었다. 산책하다가 들른 서울시청에서 고민상담 자판기를 발견했다. 증상 버튼을 누르면 처방전을 발급하는 신기한 자판기였다. 때마침 ‘자존감 바닥 증후군’이 눈에 들어왔고 버튼을 클릭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처방상자를 열었는데, 처방 레시피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추천이 있었다. 영화 편성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는데, 영화 처방전을 받다니...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처방전을 받았으니 모범적인 환자의 자세로 일단 영화 처방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서 본 탓일까. 어느새 주인공을 응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어설펐던 주인공이 끝내 해내는 모습에 감화되었다. 개연성으로 판단하여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변변찮은 영화가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힐링 영화로 다가왔다. 사기 같았던 처방전이 왜 효과가 있었을까 생각해봤다.

  

개연성은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되는 성질”이란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즉, 개연성은 기존 현실에 기반하여 일상을 말이 되도록 이어간다. 평생 뉴욕에서 멍만 때리던 월터에게 부여된 개연성은 어쩌면 뉴욕 토박이로 평생을 보내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연성은 현실적인 제약이기도 하다. 현실에 기반한 개연성 때문에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면, 결국 새로운 이야기는 펼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개연성을 파괴할 때 새로운 모험이 펼쳐지는 듯하다. 혼자서 익숙했던 일상의 개연성을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월터처럼 말이다.    


이번 1월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편성했다. 월터가 아이슬란드 세이디스피오르드 도로를 스케이드 보드로 질주한다. 쭉 뻗은 도로를 내달리며 바람을 거스르는 월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월터를 보며 작년에 생각만 했던 것들을 올해 꼭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작년의 개연성은 작년으로 끝내야겠다.

이제 새롭게 출발할 시간,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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