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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Apr 13. 2018

반복된 일상에 나만의 운율을 새기다 <패터슨>

혼영일년 1月 : 시집이 아닌 시로 출발하기 3

<패터슨>은 조용한 소도시 패터슨에서 살고 있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다룬다. 패터슨의 일상은 규칙적이다. 매일 6시쯤 일어나 출근하는 패터슨의 직업은 정해진 루트를 순환하는 버스 운전사다. 운전 전에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점심은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퇴근 후 아내와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밤에는 개를 산책시키고 바에 들러 맥주 한 잔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날 6시에 일어나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패터슨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시다.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쓴다. 출근하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점심시간에 시를 쓴다. 버스를 운전하며 듣고 보는 모든 것들이 시상이 된다. 패터슨은 책을 내거나 등단하겠다는 목적이 없다. 그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일상에 만족한다. 그리고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패터슨의 반복된 일상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패터슨은 시를 쓰면서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만든다. 덕분에 일상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운율을 일상에 부여한다. 버스 승객들의 대화들은 날마다 새롭다. 바에서는 한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의 해프닝이 나날이 다르다. 같은 일만 벌어지던 일상이 패터슨의 리듬으로 다른 운율이 되어 일주일이 쌓인다.  


<패터슨>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생각났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했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활동으로서 자연의 순환에 얽매여 있기에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다. 작업은 자연에 대항하여 인간만의 인공 세계를 구축하는 활동이며, 장인이나 예술가의 활동이 해당된다. 행위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 소통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노동'만이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인 양 인간을 고립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 타인과 교감하며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일침이었다.   


혼자 서울에 살면서 어느덧 반복된 일상에 익숙해졌다. 먹고 살기 급급한 하루들은 노동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서울 생활이 자리 잡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범한 일상에 지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참 낯선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거울 밖으로 나가면 매일 마주치면서도 참 낯선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저 노동에 휩쓸려 정작 나와 남을 잃어가는 것만 같다. 


특별한 일상은 결국 나의 운율에서 시작되고, 누군가와 나누면서 완성되는 것 같다. 패터슨이 시를 쓰면서 일상은 하나의 운율이 된다. 또한 퇴근길에서 만난 낯선 소녀와 시로 얘기하고, 일본 시인의 조언으로 새롭게 시를 쓸 용기를 얻는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나만의 운율로 만든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면서 패터슨의 삶은 인간다워진다. 패터슨처럼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은 이미 하루의 시를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시인으로서 인생의 시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리라.  


올해가 대단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만의 시를 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시를 쓰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잘 하고 있다고, 잘 버텼다고, 너 참 열심히 시를 썼다고...


그렇게 나는 계속 시를 쓰고 싶다. 인생은 시집이 아닌 시 그 자체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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