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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May 19. 2018

혼자서 부지런히 사랑하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혼영일년 1月 : 시집이 아닌 시로 출발하기 4

“인간의 가치는 뭘 받았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뭘 해줬냐는 거겠지.”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中에서 -  


혼자 살다 보면 꽤 외로워질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서 어둠에 쌓인 방에 불을 켜고는 

적막에 쌓인 방안을 뭐라도 채우고 싶어서  

아무도 듣지 않을 한마디 외친다. “다녀왔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아침에 외로움으로 일어나 사람들 속에 잠시 잊었다가 밤에 외로움으로 잠드는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도 혼자다. 

마츠코가 만나는 남자들은 마츠코를 이용하고 심지어 때린다.  

결국 마츠코의 일생은 불륜, 폭력, 살인으로 얼룩진다. 혼자가 된 마츠코는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사람들을 피한다. 집에만 틀어 박혀서는 먹고 자는 일상만 반복한다.    


영화를 보다가 뜨끔했던 장면이 있다. 마츠코가 쓰레기로 뒤덮인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는 혼잣말한다. 

“다녀왔습니다” 

끝내 마츠코도 혼자이기는 싫었던 것 같다.  



괴롭히던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마츠코가 불행할 때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순간이다. 

바로 마츠코가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순간이다. 

사랑했던 남자들이 떠나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마저 세상을 떠난다. 

마츠코는 혼자여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다. 사랑을 멈춘 혼자여서 불행하다.

누군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여자가 마츠코였다. 

사랑을 멈춘 그녀가 벽에 낙서한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혐오스럽다는 말은 마츠코 이웃들이 마츠코의 일생에 덧붙인 단어다. 

단지 마츠코는 사랑하고 싶은 욕망에 솔직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죄송할 일일까.  

마츠코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 뿐인데...


혼자 외로워지면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를 느낀다.  

사랑을 마냥 받고 싶은 줄만 알았는데 사실 사랑을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있어 내가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내가 부쩍 화분과 어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사랑할 대상을 찾는 몸짓일 테다. 혼자서도 사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둠에 쌓인 방안에 들어서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다녀왔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건 혼잣말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줬으면 하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다.    

연인, 가족,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 오늘 하루 잘 보냈다고 알리는 연서다.  


그러고 보면 마츠코가 남자들에게 시달리는 장면들은 비극적인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게 참 밝다.  

꽃은 왜 이리도 많이 나오는지 장미, 벚꽃, 해바라기 등 총천연색 꽃들로 만발한다. 

어쩌면 우리가 불행하다고 했던 마츠코 자신은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을 것 같다. 

마츠코는 그 순간 분명 사랑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내 존재가 따뜻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혼자인 시간들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옅어질 때면 나는 마츠코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할 때 보다 사람답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영화 속 그녀는 사랑할 때마다 꽃길을 걷고 있었다.  

올 한 해는 나도 마츠코처럼 꽃길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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