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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4. 2020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Shee~t, 길게 발음해야지.

    준비 안된 영어로 갑작스레 오게 된 미국. 눈을 뜨고 집 밖을 나가는 일부터가 도전이었다. Stop 싸인에서 멈췄다가 순서대로 운전하는 것 하며 쇼핑을 가서 계산할 때도 짤막한 영어 외에 친한 척 말을 많이 하는 계산원들이 있을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던 일들, 못 알아듣고도 대충 미소 지으며 아는 척하며 넘어간 일들, 자동응답기의 상투적인 영어도 못 알아들어 여러 번 반복해서 전화를 걸던 일 등 적응이라는 단어 이면에는 참 많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도전은 앞집 미국 친구의 권유로 따라나선 미국 성경공부 모임에서이다. 회화에는 약했지만, 은근 독해는 자신이 있었고 아주 친절한 한영 영어성경이 있다는 사실이 용기를 주었다.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하고 이렇게라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선뜻 따라나섰다. 300여 명의 미국 아줌마들 틈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고, 평소 백인 울렁증이 있는 나는 갑자기 공포를 느꼈다. 다행히 간단한 예배 후에 소그룹으로 모여 교재를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되었다. 집에서 열심히 내용을 예습하고 와서 안도하고 있었지만, 미국 아줌마들의 열띤 토론과 농담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으~흥, 으~흥, 적절한 추임새도 넣으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성경공부가 끝나자 다들 각자의 이름이 적힌 아랫부분 여백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고, 그게 그 한 주간 서로 기도해 줄 기도제목이라고 했다. 나도 비슷하게 내 이름 아래에 가족을 위한 몇 가지 기도 내용을 적었다. 그룹 리더가 나중에 기도 용지 카피본을 받았냐고 나에게 묻길래 "응, 기도 용지 받았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잘 알아들었다고 안도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서 보니 사람들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기도 용지(Prayer Sheet) 이것 말하는 것 아니야?"라고. 그러자 갑자기 다들 소리 내어 웃었다.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나의 영어 발음이 문제였다. Sheet을 장모음 e로 길게 발음해야 하는 것을 마치 Shit처럼 발음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것도 기도라는 성스러운 단어 바로 옆에서 말이다. 다행히 그룹 사람들이 놀라다가 나의 구린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웃으며 귀엽게 넘어가 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다들 Prayer Sheet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Prayer Paper라고 편하게 가는 길을 택해 말하기로 했다. 


    나의 시작은 거절을 잘 못 하는 용기에서 출발했고 내가 저지른 실수로 지금도 기억되지만, 그 일로 나는 깊게 그룹 사람들에게 각인되었고 더 친해질 수 있었고 무려 3년 간 그 모임에서 큰 사랑과 지지, 나의 성장과 성숙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사람들과만 어울리기보다는 미국 사람들과의 신앙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미국 생활에서 했던 여러 가지 시작과 도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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