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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Oct 18. 2021

밥을 말하다.

밥에 담긴 진지함에 대하여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먹고, 누군가는 먹기 위해서 살듯이 밥 한 끼가 지닌 의미는 삶 속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때우듯이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한 끼를 급히 먹는 소소한 식사에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를 몰라 몇 접시를 그득그득 채우며 연실 화려한 뷔페 음식 사이를 돌거나 무한리필이라는 말처럼 더 먹지 못해 남기기까지 하는 호사스러운 한 끼도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항상 식사를 통해 이야기를 한술 한술 담는다. 학창 시절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빈 도시락 가득 추억을 웃음을 채웠던 그리운 식사도 떠오른다.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집밥을 먹어본 지도 꽤 된 것 같다. 집안의 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따라서 식사를 시작하고 골고루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밥상머리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예절교육의 시작이었다.

바쁜 시절, 아침밥은 간단함을 추구하기에 바빠 등굣길 제대로 눈뜨지 못하는 아이에게 흰떡에 김을 싸서 먹이거나 쑥 인절미를 구워 주는 등 늘 쌀을 주식으로 하던 식단만큼은 지키려 애썼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다 큰 자식에게도 뭐 먹고 지내냐고 묻는 나를 보면 밥은 그저 따끈따끈한 사랑과 관심, 정서적 교감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혼밥의 시대'

한국은 31.7%, 미국은 28.7%의 가구가 1인 가구의 시대가 되다 보니 식사는 영양과 맛이 고루 갖추어진 제대로 된 밥상문화보다는 편리한 일품요리나 배달음식, 외식 등으로 변모해 가고 있고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서 커피 향과 함께 다양한 빵들이 밥이 지닌 독보적인 자리를 조금씩 빼앗는 느낌도 든다. 정서적인 교감과 웃음과 대화가 밥상에 담기는 일이 드물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어린 시절 윤기 좔좔 흐르고 달달하기까지 한 흰쌀밥은 부유함의 상징이었고 경제가 그리 호황이지 않던 시절 잡곡밥 검사까지 하던 어릴 적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은 백미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다양한 곡물을 넣은 잡곡밥이 고급 식사가 되어가고 있으니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 듯하다.

누군가는 한 끼를 걱정하며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의 저렴한 식사로 허기를 겨우겨우 채우는가 하면 과식이나 영양 과다로 병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남아서 썩히거나 버리기까지 하는 우리의 먹거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와 상처를 점검해 봐야 한다. 어느 사람은 자식처럼 여기는 애완동물에게 유산상속까지 하는 이 세상에서 삶이 녹록지 않은 다른 사람은 길고양이처럼 쓰레기 수거장소에서 남은 음식들을 뒤지고 있기도 한다. 부의 선순환이 불가능한 시대라면 적어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우리의 먹거리, 한 끼 밥에 대해서는 모두 십시일반의 정신을 십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실수를 하거나 때론 큰 불운을 당해 삶이 버거워진 어느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지닌 의미는 큰 격려이고 위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 갖고 내 주위로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정말 세상살이가 페어플레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편법을 적절히 눈치껏 해가며 융통성 있게 살아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잘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그저 제대로 올곧게 아주 바르게 원칙대로만 살아서는 여유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이젠 우리 집 울타리 너머의 다른 이들에게도 공감을 담은 한 끼를 나누는 일이 작지만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그리고 살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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