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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Jul 20. 2024

속 빈 자동차

이런 환장할!!!

남편의 만행은 상상초월이고 기상천외하면서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고단한 나의 과수원 삶 속에서 더 나를 지치게 했다.

90년대 초 대학원 재학 중에 유명 마담뚜의 소개로 만난 남편, 당시에는 결혼정보 회사들이 생기기 전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압구정동 마담뚜는 꽤나 유명한 분이었는지 아침마당에 출연해 당시 결혼 풍속도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아무리 유명해도 졸작인 내 결혼이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실 남편의 비정상을 진작에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어느 날 지방 대기업에 근무 중인 남편 숙소에서 기다리던 중 책꽂이에서 제법 두툼한 일기장 비슷한 책을 꺼내 보았다. 1번부터 일련번호가 붙여진 인명사전이었는데 맞선을 봤던 여자들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출신 학교, 차, 입은 옷, 등등의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고 나는 100번 언저리가 아닌 87번이었다. 나를 만나고도 여러 사람을 더 만났나 보다. 당시 유명 아나운서도 있었고 다양한 직종의 운 좋은 여자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결국 똥은 내가 밟고 험한 세상을 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남편의 태도에 대해 꼼꼼하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시간강사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쯤, 나와는 상의 없이 과수원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농사일이 어떤지도 모르고 대학강사일은 전혀 지장 없이 하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과수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마솥이 걸려있던 오래된 흙집을 헐고 조립식 주택을 짓는 일부터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어서 지도교수님은 시간강사일을 신경 써서 챙겨 주셨다. 오전 오후 하루 종일 몰아준 수업인데 지방이었다. 

남편에게도 다 얘기했고 개강일에 서둘러 과수원 일도 챙겨 놓고 급하게 차에 타서 시동을 걸어보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번 해 봐도 안 돼서 무슨 일인가 싶어 본넷을 열어보니 축전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게 말이 되는가 나는 울며 따지다가 급한 마음에 택시를 불러 타고 허겁지겁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무사히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논문자격시험도 통과했지만, 남편은 학위 따는 것은 반대라며 박사부인과는 살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십 오육 년 전이지만, 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에게 여쭤봤다. 

엄마는 "남편이 싫어하면 하지 말아야지. 괜찮아." 라며 날 위로해 주셨다.  학위가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이젠 터득했지만, 당시만 해도 나로서의 삶에 대한 미련과 세상 가치에 대한 집착이 나의 꿈이라는 형태로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시간강사는 박봉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강의를 많이 챙겨 준 선배언니 말처럼 너무 농사일에 만 갇혀있지 말고 기분전환 겸 나오라는 그 말이 많이 내 삶에 위로가 되었다. 


엄마의 환갑 때 엄마는 당신의 회고록 같은 작은 책자들을 지인들에게 나눠 주셨다. 6.25 전쟁을 겪으며 5남매의 맏딸로서 전쟁미망인이 되셨던 외할머니의 슬픔을 받아내며 사신 엄마의 아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는 전쟁으로 공부를 못하게 되자 언덕 위에 올라가 울던 대목이 있었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원 없이 공부시키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나의 학업이 엄마의 삶 속 소망과도 맞닿아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이런 얘기를 그전에 내게 한 번도 해 주신 적이 없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채근도, 학위에 대한 욕심도 자녀를 대리만족의 도구로 생각하는 흔한 탐욕도 없었던 엄마의 사랑과 기도. 그 사랑과 기도로 난 건강하게 이 모든 일들을 잘 이겨낸 것 같다.


온갖 일들을 다 겪으며 살아 낸 내 결혼생활 동안 내 앞에선 당신 사위에 대한 섭섭함을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던 엄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야 한다는 그 기도덕에 난 참 오랜 세월 인내해 왔다. 

굳이 자세히 표현 안 했어도 엄마는 이미 다 알고 계신 듯했다. 내 결혼생활의 면면을. 나는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고 지금도 존경과 사랑을 보내주는 사람이 많아 참 감사하지만, 가장 중요한 남편에게서는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를 함부로 대했던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는데,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이셨던 엄마가 분명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을 텐데 그 무수한 새벽기도와 일 년에 성경을 여섯 번씩 통독하셨던 엄마의 기도의 응답으로 이런 남편의 돕는 베필로 나를 택하셨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으로 인해 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느낄 수 없었고 마치 하나님의 시선의 사각에 내 삶이 놓여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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