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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Jul 20. 2024

나의 슬픔, 그의 기쁨

내가 혼란스러운 게 너무도 재미있는 당신

늘 친절하지 않은 줄, 표현력이 부족한 줄로만 알고

늘 그렇듯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믿음만으로 32년이란 오랜 세월 무던히도 참았다.

외딴터에서 배과수원을 하던 시절,

기다란 모양의 과수원은 1km 남짓되는 거리여서 20분 이상 한참을 걸어야 했다.

차에 휘발유가 떨어졌다. 학교 수업이 끝났을 아들을 태우러 가야 하는데 휘발유가 부족하다.

불투명한 두 가지 통들 중에 어느 것이 경유이고 휘발유인지 써놓지도 않아서

나는 한 참을 걸어 남편에게 물어보러 갔다.

"창고 문 열면 왼쪽에 있는 통이랑 오른쪽에 있는 통 중에서 어느 게 휘발유예요?"

남편은 뜸 들이다가 ". 냄새를 맡아봐."라고만 말했다.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마음이 타들어 가는 나는 한참을 걸어와서

다시 냄새를 맡아보고, 색도 안 보이고 도저히 모르겠어서

또 빠른 걸음으로 남편에게 다시 갔다.

"냄새로는 모르겠어요. 여보. 알려줘요." 그렇게 까지 얘기해도

남편은 냄새를 맡아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절대로 안 알려줬다.

할 수 없어서 나는 아무 통이나 집어 들고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넣었다.

    급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클락션소리가 정신없이 울린다.

룸미러로 보니 어린 시절 여름철 모기 방역차처럼 안 보일 정도로 하얀 연기가 가득했다.

휘발유인줄 알고 경유를 넣었나 보다. 자칫 폭발사고가 일어나 위험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중간에 차를 세우고 남편이 오긴 했지만, 자신의 악의적인 대처에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늘 일상처럼 내 삶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던 정서적 학대의 흔적들,

슬퍼하고 분노할 틈도 없이 취약하고 바빴던 나를 기억한다.

역기능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학대받던 아이들과 함께 무조건 지키려고만 했던 나의 무지,

그 무지를 잘도 이용하고 즐긴 남편의 사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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