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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Jul 20. 2024

나는 진화하고 있다

농사는 물론 도배, 타일, 전기, 판넬공사 등등

 내가 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아 내가 헤맬 때

극도의 희열을 느끼는 남편은 자기애적 성격 장애,

특히 내현적 나르시시스트(Covert Narcissist)의 특징을  대부분 갖고 있다.

오로지 내겐 명령과 지시, 노동착취뿐이다. 정서적 대화는 일절 없고

무슨 의견이라도 말하려고 하면

벙어리였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듣기 싫어한다.

그러나, 카톡이나 문자 속에는 증거로 남아서 인지 전혀 다른 외계의 근사한 아저씨가 존재한다.

깍뜻하게 경어를 쓰는 예의 바르고 따뜻한 말투의.

구글 어시스턴트에게는 친절하게 날씨를 물어보면서도,

정작 나한테는 아주 완악한 어투로 지시한다.

인공지능 만도 못한 내 처지가 슬퍼진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나는 대외업무는 물론,

정보검색, 자재구매, 가사 등 대부분의 일을 해 왔다.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에서 상가주택을 건축 중인 남편을 위해

나는 벽돌업체를 섭외해서 벽돌을 고르고 가격네고, 입고는 물론,

시멘트 발주 등등의 일들을 070 전화기로 시차를 극복해 가며 열심히 도왔다.


"전기트럭 필터 교체해."라고 말만 하고 유튜브 보면 다 나와.라는 친절한 멘트를 날리며

필터 하나를 트럭 본넷 위에 올려놓는 남편.

자동차 부품교체, 엔진오일, 냉각수 등 각기 다른 차량 모델별로 알아서 넣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잘못 넣어서 차가 고장 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하며 조심스레 정보를 찾아가며 해결해 나간다.

잘 해내면 인정이라도 받는 줄 알고 로봇처럼 저항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고 산 죠이야,

너 너무 착한 거 아니니? 아니 너무 멍청한 것 같기도 해.

이제 나는 전기 콘센트를 전선 피복 벗기고 전동드릴로 만들고 교체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로 진화하고 있다.

쫓겨나서 허겁지겁 작은 원 룸으로 이사 오고 난 후, 빠듯한 생활비에 제일 저렴한 인터넷을 놓고 보니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한다.

순간 당황했지만, 낼모레 60인 아줌마가 인터넷을 뒤져보고 공유기를 사서 설치하고 와이파이문제를 잘 해결했다.

이렇게 다방면에 능력자로 만들어 준 남편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작업을 직접 해야하는 남편 탓에 이런 저런 공사 도우미,

즉 조공 정도로 일을 시키다 보니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이다.

도배, 타일공사, 페인트작업, 샌드위치 패널 벽체 공사 등을 자재 구입부터 많은 걸 같이 해야 했다.

길들여진다는 것, 가스라이팅, 나르시시스트 등의 다양한 심리학적 용어 속에 내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부가 아닌 강제노역으로 전락해 버린 내 극한 결혼을 이렇게 공개하는 건,

겉으로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둥 예의 바르고 고상하다는 둥,

생활비 잘 주고 딴짓 안 한다는 몇 가지 전제 뒤에 드러나지 않는,

교묘하게 사악한 참모습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다.

나의 투철한 신앙심으로, 내게 주신 십자가이며 사랑으로

온전히 남편의 치유와 회복이 가능할 거라는 전적인 내 기대로

가정과 남편에 대한 나 나름의 합리화를 통해 견뎌오곤 했는데,

이게 정확히 나르시시스트의 스케이프고트들이 착각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목이라는

사실을 책과 영상을 보며 깨달았고, 그 순간 나의 무지와 어리석움이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깨닫게 된 게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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