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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13. 2015

#42 마무리를 준비하다(1/3)

끝인상의 중요성

끝까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공장에는 흉흉한 일들이 몇 가지 벌어졌다. 오전 근무는 새벽 4시 45분부터 작업이 시작해 오후 3~4시에 끝난다. 워낙 이른 아침에 시작해 11~12시간 근무하는 오전반은 급여 면에서는 오후반보다 좋을지 모르나 몸이 축난다.


이상하게도 오전반에서는 작고, 큰 사고가 많이 났다. 아마도 피로 누적으로 인한 실수일 가능성도 높다. 어느 날은 공장 출입구에 앰뷸런스가 여러 대 있는 것이었다. 오전반이 끝날 시간이어서 북적였는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오전반에 사고가 두 건이나 난 것이다.


한 건은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일어났는데 나와 같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대만에서 온 워홀러였다. 그 친구는 고기의 지방과 살코기를 분리하는 기계에 고기를 넣다가 그만 손이 빨려 들어가 팔꿈치 전까지 손과 팔이 기계에 낀 것이다. 그 사고로 그 친구는 바로 후송되었고, 치료를 받기 위해 대만으로 갔다고 들었다.


다른 한 사건은 도축하는 킬플로어 룸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축된 양에서 제거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큰 전기톱을 이용하는데 거기에 그만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이다. 바로 후송되긴 했지만 잘린 손가락의 복구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두 사건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워홀을 건강하게 잘  마무리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워킹홀리데이는 밖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실상 매일은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고도 가끔 접하게 된다.


외국인이고 잠시 일하는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곳에서 일하지 않으면 보상을 제대로 받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큰 규모의 공장이고 각종 근무계약서를 쓰는 정식 일자리여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사고를 당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든 것이 워홀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끔 되새긴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9회 말 2 아웃에 역전 만루홈런이 나오기도 하고, 워홀의 끝자락에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해야 한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집 앞에서

첫인상? 끝인상!


반면 국적 상관없이 워홀러들은 자신의 임시 체류 신분을 이용해 일을 쉽게 그만두고 떠나는 경우가 있다. 일을 그만두거나, 집을 옮길 때에는 최소 2주 전에 말해주는 것이 고용자와 집주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하지만 기본적인 예의 없이 워홀에 임하는 워홀러들을 가끔 본다. 그런 워홀러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결국 자신의 나라 사람들 얼굴에 먹칠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일을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일단 처음 공장에 오는 사람들은 세컨드 비자를 획득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들은 초기 정착 비용에 많은 돈을 썼기에 처음엔 대체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슈바나 동료 직원들도 그런 모습에 만족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태해지는 근무태도를 보면 슈바에게 지적을 받거나 동료직원들에게 눈총을 산다.


물론 자신의 몸이 아파서 빠질 수는 있으나 그런 일이 여러 번 누적되어 동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면 그것은 명백히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나는 호주에서 일하면서 일을 빠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한국에서 취직해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일단 아픈 날도 출근을 했고, 약을 먹으며 일을 했다. 그러다 정  안 되겠는 날은 조퇴를 했는데 그런 날도 한, 두 번밖에 되지 않는다.


워홀이 자유의 상징이긴 하지만 의무와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몸이 힘들어서 선택하는 선택지가 지금의 나에게 이로운 것처럼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지 지금보다 더 힘들 일을 경험하게 되면 또 회피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피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또한 자신의 반복된 선택이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 또한 올바른 행동은 아니다.


‘첫인상보다 끝인상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첫인상의 중요성만을 생각하던 나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말이었다. 예전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는 끝인상을 남길만 한 일을 별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3~4개월 했던 알바에서는 동료들과 유대 관계가 깊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끝인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별하고 했다. 하지만 워홀에서는 달랐다.


1년 동안 일했던 소공장에서도 끝날 때쯤 되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끝내기로 했던 동료 워홀러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지막까지 일수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무단으로 결석해서 잘리고 공장을 그만두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돈의 궁핍함에서 벗어났고, 일도 나가기 싫었지만 유종의 미라는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해 1년을 채우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양 공장은 더 했다. 일은 더 쉬웠고, 돈 문제도 없었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더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의미라 생각하고 끝까지 했다. 1~2주 더 해서 돈을 얼마를 더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해진 날까지 다 해내는 것이 도리고, 예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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