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나는 종종 스쳐 지나가는 말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고, 아마 그들도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더 세련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1년 8개월의 종지부를 찍는 일터에서의 마지막 날. 나와 함께 일하는 인도 아줌마 '아프릭'은 며칠 전부터 내가 일 끝나는 날을 d-day로 정해놓고 "3 days more", "2 days more"라며 카운트다운을 해주었다.
워홀의 마지막 일터 양 공장에서는 약 4달간 일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에 8시간씩 주 5일을 보니 별 대화를 하지 않고도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연예인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연예인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연예인이 반가운 것처럼 말이다.
카운트를 해주는 날이 줄어갈수록 기분은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일을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떠남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아프릭도 수많은 워홀러들과 이별을 해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뭐했는지를 물었고 나는 "I'm a Writer"라고 대답했다. 사실 호주 오기 전에 나는 대학생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계속 일을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그녀는 할 말이 있는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If you need a episode Just Tell me. My life is very hard. maybe you need a 10 hours to listen to my story."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인도 태어나서 자라면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호주로 와 양 공장에서 4년째 일하면서 시민권도 땄다는 성공의 이야기를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아쉽게도 나는 그녀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지는 못했다. 가끔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에서 그녀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남자가 일하는 파트에서 일하는 모습이나 말할 때의 태도를 보면 그녀가 결코 순탄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터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들떴고, 반어법을 자주 사용하는 아프릭도 옅은 미소와 함께 "I'm happy"라고 말했다. 시간의 길이로 우정을 따질 수 없고, 말로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는 없는 법. 그녀의 눈동자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양갈비를 손질하고 매일 하던 인사 "See you tomorrow" 대신 "BYE"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고, 행운을 빌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찰나 마지막 그녀의 말이 20대 끝자락에선 나에게,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 나에게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었고,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아마 그녀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인도 빈민가에서 호주로 와 정착하는 데까지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교훈을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Don't think too much Tom!"
그녀와의 이별은 잔향이 오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