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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07. 2015

#8 시드니 그리고 백팩커

호주행 비행기를 타다

숙소로 가는 길

백팩커 찾아가기!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그 친구는 다시 일터로, 나는 백팩커로 걸었다. ‘백팩커’라는 개념이 낯선 분들도 많겠다. 나도 호주에 오기 전까지 몰랐고, 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요즘 한국에도 많이 퍼져있는 ‘게스트하우스’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배낭여행객, 초기에 집을 구하기 전 잠시 머무는 워홀러, 여행할 때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를 찾는 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숙소다.


20kg 넘는 캐리어를 끌고 시드니 한복판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간혹 나처럼 보이는 세계 각국의 젊은 워홀러들도 보였고, 자신의 몸 만한 크기의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초행길이지만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다. 그 비법은 바로 스마트폰 지도 덕분이다. 생각보다 스마트폰 지도가 정확하고, 상세한 덕분에 초행길이든, 길치든 상관없이 웬만하면 목적지까지 안전히 도착할 수 있다.


보통 백팩커 예약은 한국에서 하고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행기 예약할 때 백팩커 예약도 같이 한다. 물론 와서 예약할 수도 있겠지만 빈방이 없으면  이리저리 다른 백팩커들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짐을 들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일이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백팩커 가격은 몇 인실이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난다. 보통은 1인실부터 2인실, 4인실, 6인실, 8인실, 16인실 이렇게 되어있다. 물론 사람이 많이 있는 방이 더 싸지만 그만큼 쾌적하다고 볼 수는 없다. 보통 6인실, 8인실 정도면 단기로 지내기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한다.


캐리어를 끌고 15분쯤 걸었을까 내가 예약한 백팩커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는 안내 데스크 로비는 호텔처럼 웅장하진 않았지만 자유로움과 깔끔함이 돋보였다. 드디어 내가 처음으로 외국인과 나의 용무 때문에 대화하는 시간이 왔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예약번호를 보여주며  체크인할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에게 나는 많은 여행객들 중에 하나이기에 특별한 반응 없이 웃으며 나를 응대했다. 그 이후에 속사포처럼 쏟아진 영어의 뜻을 100% 듣지는 못했지만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6인실 방에 있던 2층 침대, 1층이 독일 소녀가 쓰는 침대다.

문화충격


키를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눈 앞에는 2층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2층 침대 난간에 여자 속옷이 널려있었다. 그렇다. 내가 예약한 방은 남녀 혼숙 방이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문화충격을 받았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일을 실제로 겪으니까 당황스러웠지만 당황스러운 척을 하면 동양인을 무시할 것 같다는 이상한 자격지심이 들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짧은 영어로 그녀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독일에서 온 19살 소녀들이었고, 곧 있을 록 페스티벌에 가기 전에 잠깐 머문다고 했다. 다른 4개의 침대 중 2개는 짐이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고, 둘 중 한 침대에서 내가 지낼 수 있었다. 나는 2층 침대의 2층에 자리를 잡았다. 3월의 시드니는 생각보다 더웠고,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방안은 쾌적했다. 숙소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잠에서 깨서 시간을 확인하니 4시간 정도 지났다. 해는 저물어 가고, 방안은 조용했다. 나는 낮에 만난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었기에 나갈 준비를 했다. 백팩커는 샤워실이 방 안에 있는 경우도 있고, 방 밖에 공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방 안에 샤워실이 있는 경우 가격이 조금 더 비싸지만 편리하다. 내가 예약했던 방은 샤워실이 있었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평소처럼 물을 틀고 몸을 적시며 이를 닦았다. 나는 평소처럼 이를 다 닦고 혓바닥을 닦다가 무심코 헛구역질을 2~3번 했다. 흔히 있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갑자기 문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Don't do that!!!"이라는 목소리였다. 너무 놀랐다. 나는 연신 ”I'm sorry"를 연발했다. 내 헛구역질 소리가 방음이 잘 안 되는 백팩커의 문을 뚫고 나간 것이었고, 그 소리가 그녀들을 불쾌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방에 들어와 그녀들과 대화 나누고, 긴장이 풀린 것이 무색하게 다시 긴장하게 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그녀들의 눈빛은 따가웠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녀들의 냉랭함은 내가 백팩커를 나오기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


오페라 하우스 야경

스테이크와 오페라 하우스


준비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과 큰 빌딩들이 다시 한 번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데 그때는 그렇게 위축되었다. 호주의 큰 도시들은 대부분 계획도시라 시티라 불리는 곳이 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시드니도 시티의 끝에서 끝이 1시간이 채 안 걸리기 때문에 시티 외각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차가 굳이 필요하진 않는다. 다만 많은 워홀러들이 비싼 시티의 방값 때문에 시티 외각에 사는 경우가 더러 있고, 이럴 경우 대중교통인 버스나 지하철이 있으니 불편함은 없다.

 

약속 장소에서 5분 정도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기다리니 친구가 왔다. 퇴근한 친구의 표정은 밝았다. 우리는 가까운 펍(pub)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의 호프집처럼 호주에는 펍이 있다. 선술집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호주 사람들은 술을 집에서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고, 펍에서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곳인 것 같다.


호주에 왔으니 스테이크는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에 말에 주눅 들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싱글 벙글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싼 나라가 호주기에 스테이크도 부담 없는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라면 펍에서 스테이크에 칩이라 불리는 웨지감자튀김이 같이 나오는 것이 10~15불 정도 한다. 스테이크에 맥주 까지 한 잔하니 진정으로 호주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친구와 호주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니 설렘은 더욱 커져만 갔다. 훗날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 날 나는 호주의 밤을 만끽했다. 배도 채우고, 맥주도 한 잔하니 시드니의 명소인 오페라 하우스가 보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오페라 하우스를 보러 가자고 말하니 흔쾌히 안내해주겠다며 따라 오란다.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오페라 하우스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걷기 시작했다. 


호주의 밤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워홀러 상대로 안 좋은 일들이 몇 건 일어나기도 했다. 전부 밤 늦은 시각 또는 이른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당하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어디를 가든 너무 늦은 시각이나 이른 시간은 범죄자들이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시간이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오페라 하우스 쪽에서 바라 본 하버브릿지 야경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내 눈 앞에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꿈만 같았다. TV에서 보던, 블로그에서 보던 그 오페라 하우스가 내 눈에 담기니 다시 한 번 내가 호주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 있는 펍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친구는 나에게 여러 조언들을 해주었지만 막상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직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분위기와 낭만에 취해 그 순간을 즐겼다. 친구는 다음 날도 일을 나가야 했기에 우리는 자리를 일어났다. 나도 호주 생활에 필요한 일들, 은행계좌 만들기, 핸드폰 유심칩 사기, TFN(텍스 파일 넘버) 신청하기 등 할 일들이 많았다.


호주에서의 첫 날 밤은 긴장과 낭만이 뒤섞이며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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