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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09. 2015

#10 취업 전쟁

일 구하기 대작전

오페라 하우스 근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돌리다가

일을 구하자!


호주 정착에 필요한 일들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무의식에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일자리 구하기다. 한국에서는 취업 원서 몇 번 넣어보고 탈락한 것이 전부여서 자신감과 경험이 부족했었다. 한국처럼 정규 사무직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청소, 서빙, 설거지, 물건 판매에 지원하는데도 부담감은 컸다. 아마 언어문제가 컸으리라 생각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워홀에 정답은 없다. 덧붙여 실패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의 목표에 부합하는 워홀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나는 영어회화를 정복하겠어!’라고 마음먹고 왔다면 생활비만 벌 수 있는 정도의 파트타임 잡을 구하고, 자신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많은 워홀러들이 자신의 목적과 목표가 없거나 혹은 흐릿해서 그 다짐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영어가 목표인 워홀러 곁에 돈을 많이 버는 워홀러가 있으면 자꾸 그 워홀러에게 눈이 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워홀러들은 영어, 경험이 목표였다가 워홀을 하면서 돈을 벌어보니 돈으로 목표가 바뀌는 경우도 생긴다.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면 20불 정도의 시급을 받으며 주에 38시간 일할 수 있다. 그러면 세금 떼고 600~700불 사이의 돈을 1주일에 벌 수 있고, 오버타임(정규 38시간 이상 일할 때를 지칭하는 말)인 경우 시급의 1.5배, 2배씩 주기 때문에 돈 버는 재미를 경험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버브릿지를 걷다가

텍스잡 vs 캐시잡


호주에서 워홀러들이 일을 구할 때 보게 되는 ‘텍스잡’과 ‘캐시잡’이 있다. 쉽게 생각하면 텍스잡은 고용주와 워홀러 둘 다 호주 정부에 세금을 내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캐시잡은 고용주는 워커에게 대부분 최저임금 이하의 돈을 지불하고 워커는 따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여기서 텍스잡은 산업재해에 입었을 때 모든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캐시잡은 고용주가 따로 치료해주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는  보상받지 못한다.


2015년 현재 텍스잡 풀타임은 16.88이 최저임금이고, 텍스잡에서 캐주얼이라 불리는 비정규직(법적으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지만 주 38시간은 보장받지 못하며 캐시잡과 다르다.) 최저임금은 21불이다. 텍스잡 풀타임은 주에 38시간 근무를  보장받는 반면 캐주얼은 주 38시간 근무를 보장받지 못하지만 대신 시급이 높은 것이다. 캐시잡은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1시간을 할 수도 있고 50시간을 할 수도 있다. 캐시잡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경우가 있다면 시급이 낮은 대신 근무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대도시에 있는 유학생들이 캐시잡을 많이 한다. 유학생들은 법적으로 주 20시간 밖에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상 일을 원하는 유학생들의 공급이 있고, 그에 따른 캐시잡 워커의 수요가 아시아 식당 위주로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텍스잡을 구하다 지치고 돈이 떨어져 나가는 한국 워홀러들이 한국 식당으로 캐시잡을 하러 들어가게 된다. 일단 캐시잡 자체는 불법이다. 한국이라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한국에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돈을 주는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캐시잡은 일에 따라 다르지만 시급이 10~13불 사이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보다는 많이 받는 것이지만 생활을 호주에서 하는 것이다. 방값, 생활비 내면 남는 것이 없다. 나는 캐시잡을 알아보다가 도무지 이것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 경력과 군 경력을 적은 영어 레주메 

좌절의 시작


나는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 따라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려면 파트타임 캐시잡을 2~3개 하는 방법 또는 시급이 높은 안정적인 일을 구해야 했다. 우선 한국에서 만들어 온 레주메(영문 이력서)를 보았다. 나의 레주메에는 내가 구하는 직업군에 필요한 스킬이 전혀 없었다. 호주는  설거지하는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설거지 경력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다양하지 못했던 나는 암담했다.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문의해보니 일단 부딪혀보라는 것이다. 레주메를 들고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을 돌면서 뿌리라는 것이었다.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현실이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은 있었지만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우선 usb에 레주메를 넣고 복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대도시에는 'Office work'라는 사무 일을 볼 수 있는 가게가 있다. 사무용품 판매, 사진 인화, 복사, 스캔 등 다양한 사무 업무를 볼 수 있다. 일단 레주메 20부를 뽑았다. 어떤 사람들은 100부 이상 돌린 사람도 있다고 했지만 일단 20부 먼저 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했다. 20부의 이력서를 넣은 파일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물 한 병을 들고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으로 걸어갔다. 밖에서 보았을 때 바쁜 곳보다는 한산한 곳을 찾다가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Hello, I‘m looking for a  job"이라고 말하니 점원은 손님이 아님을 확인하고 미소가 있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곤 "Just leave it there"이라는 말 한 마디하고 자신의 일을 하러 갔다. 나는 나의 이름을 말할 여유도 없었고, 마냥 내 용무를 보기에 급했던 것이다.


좌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한 번 시도로 포기할 한국인이 아니었다. 한 번 차이니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어느 곳이든 반응은 똑같았다. 그렇게 20개의 레주메를 다 뿌리고 나는 시드니 명물인 하버 브릿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인 걸까? 경력이 없는 것? 짧은 영어실력?’ 아마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을 구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유학원들이 왜 어학연수와 일자리를 패키지로 구성해서 판매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시드니 떠나기 전, 시드니 전망대에서 찍은 시드니 야경

결단을 내리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완전히 절박한 상태도 아니었고, 간절함도 없었던 것 같다. 인터넷, 책,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고생을 하며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case by case‘였다. 어떤 사람은 호주 오자마자 자신이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바로와 그곳에 바로 눌러 앉고 워홀 생활을 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시티에서 직업을 못 구해서 일단 ’세컨드 비자라도 따놓자‘라는 생각으로 농장에 갔다가 노동착취만 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 등 다양한 경험들이 있었다. 이렇게 100이면 100의 워홀러 에피소드가 생기는 이유는 호주 경기 상황, 자신의 노력, 직업 운 이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 일자리 구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시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농장이나 공장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티에서도 풀타임 직업을  하나하면서 캐시잡을 하거나, 캐시잡 여러 개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들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받기로 생각하고 타즈매니아에 있던 재익이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익이형은 대학교 동아리 연합에서 만난 1살 선배였다. 대학교 시절 많이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호주오기 전에 호주에 관련해 물어보면서 정보를 얻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형은 평일에 닭공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체리농장에서 체리를 딴다고 했다. 그 닭공장이 시급은 20불 내외였지만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돈이 많이 벌린다고 했고, 체리농장도 하루에 100불 이상은 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가서 바로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형은 잘 생각해보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일단 떠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홀에 정답은 없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만이 나의 워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형은 호주 온지 1년이 넘은 상태였기 때문에 형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형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재익이형 나  갈래!”라고 말했다. 형은 반가운 눈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부담도 됐을 것이다. 자기 자신도 보살피기 힘든 것이 워홀인데 아는 동생이라지만 챙기는 일도 여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타즈매니아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도 못한 채. 왠지 가면 다 잘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 기대감에 대한 확신이라도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나는 형과 통화를 마치고 타즈매니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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