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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12. 2015

#13 브로콜리 너마저

브로콜리밭으로 첫 출근하는 날

아침용 햄, 치즈, 달걀 토스트

드디어 첫 출근을 하다


출근 날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첫 출근을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는지 알람이 울리기 전에도 10분 간격으로 눈이 떠졌다. 날이 추워 이불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타즈매니아는 상대적으로 남극이랑 가까워 호주 대륙보다 겨울이 빨리 온다고 한다. 보통 4월은 호주의 가을이지만 타즈매니아의 4월을 아침은 차가웠다. 낮에 해가 들면 덥지만 체온 유지를 위해 몇 겹을 입었다. 쉐어 메이트들도 다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약간씩 출근 시간이 달라 혼잡하진 않았다,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었다. 잘 먹히지도 않지만 먹어야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일단 먹었다. 어제 싸놓은 도시락과 간식을 울월스 봉지에 담고 집 앞에 나가 기다렸다.


바람이 부니 영락없는 초 겨울 날씨였다. 3분 기다렸을까? 엔진 소리는 크지만 겉은 깨끗한 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운전석에서 내려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나는 내심 걱정을 했는데 한국인이 있어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간혹 인터넷 글이나 사람들 이야기를 읽거나 들어보면 호주에서 한국인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다. 믿음에 배신을 당했다거나 악덕 고용주에게 노동 착취를 당했다거나 등의 내용이었다. 그런 일들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유독 워홀에서 일어나면 더 힘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떨어져 가는데 돈은 안 벌리고 상황이 나빠지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워홀에 정이 떨어져 호주를 자신의 계획보다 일찍 떠나는 사람들에 비하면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나를 픽업해주는 사람도 브로콜리 농장까지 가는 30분 동안 자신의 워홀 이야기를 해주면서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팁도 알려주었다. 이야기 덕분에 초조함에 얼어있던 내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브로콜리 꽃이 핀 브로콜리 밭, 일명 '브평선'

'브평선'을 아시나요?


농장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 되었다. 일은 7시에 시작하는데 7시가 되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작업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차에서 내려 브로콜리 밭을 보았다. 끝이 없는 브로콜리 밭을 보며 바다에 수평선이 있듯 이곳엔 ‘브평선’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픽업 해준 사람에게 저 끝까지 브로콜리를 따는 거냐고 물어보니 왕복 몇 번을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멍했다. 끝이 보일까 말까 하는 저 곳까지 왔다 갔다를 몇 번이나 해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선 에이전시에서 대여 해준 작업복을 입었다. 작업복은 형광 주황색이었는데 호주에서는 작업복이 형광 주황색 아니면 초록색으로 통일이었다.(나중에 슈퍼바이저에게 물어보니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눈에 잘 띄는 색을 입는 것이라고 했다.)


위, 아래로 방수가 되는 비닐 작업복을 입으며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작업복을 입냐고 물었다. 브로콜리는 잎사귀가 360도로 켜켜이 브로콜리를 감싸있고 높이가 성인 남자 무릎 정도까지 온다. 정작 브로콜리는 정 가운데 있는데 브로콜리 잎사귀를 제치고 브로콜리의 밑동을 칼로 자르는 것이 브로콜리 수확 방법이다. 이 때 밤새 내린 이슬 때문에 잎사귀들과 브로콜리에 물기가 가득하기 때문에 방수 작업복을 입지 않으면 옷이 다 젖어 춥고, 활동성이 떨어져 일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방수가 되는 형광 작업복

작업 시작, 고생도 시작


작업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으니 슈퍼바이저(이하 슈바)라고 불리는 현장 관리자가 왔다. 어느 곳이나 슈바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현장에서 일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관리, 감독만 하는 경우도 있다. 브로콜리 농장 슈바는 트랙터를 몰며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브로콜리 작업은 빈(bin)이라고 불리는 큰 플라스틱 상자(가로, 세로, 높이 각 1m 정도 되는)를 앞에 3개 뒤에 왼쪽 4개, 오른쪽 4개 총 11개를 싣는 트랙터를 중심으로 한다. 트랙터는 뒤 쪽으로 양 날개를 펴서 위에서 트랙터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면 왼쪽부터 오른쪽 까지 브로콜리 두 줄에 한 빈씩 작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워커들은 자신이 맡은 두 줄의 브로콜리를 따면서 빈에 싣고,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것이다.


작업 도구는 작고, 잘 드는 칼 하나와 장갑이면 됐다. 나와 픽업해준 사람 빼고는 다 대만 사람들이었는데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쳐있는 표정이었다.(월요일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간단하게 내 이름을 말하고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많은 워커들이 이렇게 스쳐지나 가는 듯 다른 워커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인사를 마치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트랙터는 엄청 천천히 움직이지만 브로콜리는 아주 빽빽이 심어져 있기에 거의 1초에 하나씩 따야만 트랙터 속도를 맞출 수 있다. 나는 요령도 스피드도 없었기에 사람들을 보며 따라 나갔다. 내 옆에 일 잘하는 대만 여자워커를 붙여줬다. 그녀는 자신의 브로콜리 2줄을 하고서 내가 느려서 따지 못하는 브로콜리까지 따주었다.


쉬는 시간을 마치고 일하러가는 동료 워커들

처음 하는 일을 잘하면 좋지만 잘 못한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잘하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나는 대만 워커에게 칼을 잡는 법, 밑동에 어디 부분을 잘라야 하는지,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잎사귀를 제치는 법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팁들을 배울 수 있었다. 


브로콜리 잎사귀는 남자 무릎까지 오지만 브로콜리 자체는 발목 정도에 그러니까 거의 땅에 붙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게 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허리가 아파왔다. 더불어 브로콜리 밑동은 보태서 말하면 대나무처럼 단단한데 칼이 잘 들어도 요령이 없으면 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밑동을 자르게 되어 칼을 잡은 오른손도 아파왔다.


시작점에서 끝이 안보이던 ‘브평선’의 끝까지 오니 모든 빈들이 꽉 채워졌다. 정말 대단했다. 엄청 넓고, 깊어 보이던 빈이 거의 다 차는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당연히 내 빈은 다른 워커들의 빈에 비해 덜 차긴 했지만 이 직업은 능력제가 아니라 시간제 일이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워커들이 하는 것만큼 따야 나도 정상 범주에 들고 그래야 슈바 마음에 들어 계속해서 일을 할 수가 있었기에 열심히 하려고 했다.


꽉 찬 빈을 새 빈으로 가는 5분 정도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비공식 쉬는 시간이었다. 손가락과 허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기다렸다. 어느새 해는 밝아오고 있었다. 추웠던 기운은 온데 간데 없고, 몸에서는 열이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브로콜리로 꽉 찬 빈을 새 빈으로 다 바꾸고 트랙터가 크게 회전하며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자 자신의 줄에 맞춰 브로콜리를 따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저쪽으로 가면 쉬는 시간이라는 다른 워커에 말에 힘을 내서 브로콜리를 땄다.


빈을 가득채운 브로콜리

흙바람이 불어도 희망은 가슴에!


반복적인 일을 하면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는 나와 브로콜리와 하나가 되는 듯한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내가 몸이 힘든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 들지 않고 그저 브로콜리를 빨리, 잘 따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밭의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시간 30분 정도가 편도 거리고, 왕복 한 번 즉, 3시간 정도 하면 쉬는 시간이었다. 배고프진 않았지만 목이 엄청 말랐다. 다행히 물을 싸가라는 재익이형 말에 싸왔던 물이 나를 구했다.


농장은 딱히 쉬는 곳이 없다. 내가 앉은 곳이 휴게실, 식당, 화장실이었다. 해가 비춰 따뜻했지만 바람이 불면 흙이 함께 날라 왔다. 고개를 돌려 먼지바람을 피해 보지만 마음 저 구석에는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다.


호주 오기 전의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처음부터 잘 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었다. 종종 운이 좋아 그렇게 된 적도 있었고, 아니면 내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들에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호주에서 맨 주먹, 맨 바닥에서 시작하는 일이 나에겐 생소하고 어려웠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운이 좋거나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경우 흥미는 생길 수 있지만 잘하기는 드물다. 그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자세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15분의 쉬는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열을 맞추어 트랙터 앞, 뒤로 섰다. 대만 워커들은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일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브로콜리 따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영어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사치였다. 대화를 하다 보면 브로콜리 따는 속도가 느려져 트랙터는 저 멀리 가있고 나만 뒤처지게 되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가져온 브로콜리를 넣어 만든 야채볶음

눈물 젖을뻔한 볶음밥


편도로 3번을 왔다 갔다 한 후 드디어 점심시간이었다. 사실 허리와 손이 아파서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점심시간이라고 하니 허기졌다. 나는 도시락으로 싸온 볶음밥을 먹으려고 수저로 볶음밥을 펐지만 볶음밥은 퍼지지 않았다. 볶음밥이 얼어있는 것이다. 꽝꽝 언 것은 아니었지만 수저로 부셔서 먹을 정도로 밥알이 딱딱해져 있었다.

자칫하면 눈물 젖은 볶음밥을 먹을  뻔했지만 감성은 허기짐을 이기지 못했다. 볶음밥을 수저로 부수고 이로 씹었다. 노동 후에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딱딱한 밥을 억지로 다 먹었다. 혹여나 일하다 배고프면 큰 일 날 것 같았다. 그 만큼 노동 강도가 셌다.


점심시간 30분을 보내는 스타일이 워커마다 달랐다. 어떤 워커들은 일이  적응됐는지 배가 고프지도 않은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탄산음료를 마시고 쪽잠을 자는 워커도 있었고, 어떤 워커들은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기도 했다.


야속하게 점심시간은 끝났다. 일할 때와 쉬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쉬는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해야 하는 나의 질문에 한국인 워커는 왕복 한 번만 하면 끝난다고 답해주었다. 왕복 한 번이면 3시간. 그렇다 3시간만 또 일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은 아파왔다. 물론 허리는 더 아팠다. 한국에서 몸을 많이 쓰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없었던 나는 약 8시간 동안 반복적인 육체노동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작물들에 비해 조금 힘든 것이 브로콜리라 했던 것을 얼핏 들었지만 생활비가 급한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간은 흘렀다. 고3 때도, 군인이었을 때도 그렇듯이 시간은 흐른다. 마지막에 모든 빈을 한 데 모아 빈을 쌓는 작업을 한다. 빈을 쌓는 것은 트랙터로 하는데 쌓기 전에 빈의 윗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작업을 워커들이 한다. 워커들은 이 때 브로콜리를 마음껏 챙겨 갈 수 있기에 다들 열심히 한다. 나도 눈치껏 평평하게 하는 작업을 하며 브로콜리 3개를 챙겼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일이 끝났을 때 오후 3시 정도 됐다. 작업복을 벗고, 작업 명단에 오늘 일한 사람들의 일한 시간과 이름, 사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 일을 경험한 나는 무척 피곤했고, 집으로 가는 차를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집에 도착해 흙과 물로 범벅된 작업복 바지를 털어 널어놓고,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따뜻한 물줄기를 맞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샤워를 마치니 몸은 더욱 노곤해졌다.


브로콜리 농장의 고정 멤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일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야 알 수 있었다. 나름 열심히 일했는데 같이 일한 슈바가 에이전시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는지에 따라 나의 출근 여부가 달려 있었다. 그렇게 걱정하던 찰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출근하라는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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