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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14. 2015

#15 뽑고 또 뽑고

팔이 저리도록 파를 뽑다

파농장의 모습, 직접찍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다.

파농장에 출근하다


브로콜리 농장과 같이 파 농장으로 가는 픽업차량은 아침 6시쯤 집 앞으로 왔다. 나를 픽업하러 오신 분은 새로운 분이었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역시 한국분이셨고, 파 농장에는 자신을 포함한 한국인이 3명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를 픽업한 차량은 다른 집으로 가서 나머지 2명의 한국인을 태웠다. 그 두 분은 워홀 막차라고 불리는 분들이었는데 워홀 막차란 워홀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나이의 경계선에 있는 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궁금한 점이 많았던 나는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픽업해주시는 분은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었을 정도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미 브로콜리 농장에서 확실한 수확을 얻지 못한 상태여서 그런지 더욱 확실한 것을 찾게 되었다. 나는 파 농장을 가는 30분 내내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파 농장은 얼마나 힘들고, 파 농장에서 얼마나 일하셨고,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고, 이 에이전시는 어떻고 끊임없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들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낌으로서 금방 알게 되는 것들이었고, 상대방의 계획도 계속 바뀔 수 있는 부분인데 자꾸 듣고 싶었다. 워홀 온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브로콜리 밭이 그랬듯이 파 밭도 역시 끝이 없었다. 파들은 2줄씩 촘촘히 밭을 매우고 있었다. 이른 아침 산 중턱에 있는 밭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었다. 여기가 호주 타즈매니아인지 지리산인지 헷갈릴 정도의 풍경은 나를 압도했다. 경치 감상에 빠져있는 내 귀에 들리는 소리들은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작업복을 갈아입는 사람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하는 얼굴에는 생동감이나 즐거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각자 목표에 따라 높은 시급을 보고 견디는 사람들 같았다. 나 역시 생계가 해결되지 않고서야 워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기에 그들처럼 작업복으로 갈아 입었다. 


파밭에서는 종종 감자가 나온다. 하트모양 감자

만만치 않은 파농장


워커는 총 6명이었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 4명, 대만인 2명이었다. 슈바의 지시를 들은 대만워커는 우리에게 쉬운 영어로 오늘의 작업량과 범위를 알려주었고,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양 손에 파를 하나씩 움켜잡고 당기면 파가 뽑힌다. 뽑힌 파의 뿌리를 서로 문지르거나 치면 흙들이 떨어져 나간다. 흙을 턴 파는 10~14개 씩 바닥에 모아 놓는다. 이렇게 1명이 2줄씩 총 12줄의 파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뽑으면 그것을 나무 빈(가로, 세로, 높이가 1m 정도 되는 큰 상자)에다가 바닥에 모아놓은 파들을 옮긴다. 이 작업을 반복해서 그 날의 물량을 맞출 때까지 한다.


호주는 땅이 큰만큼 다른 것들도  무지막지하게 큰 경우가 많다. 특히 농산물들은 생산량이나 수확물의 크기 또한 만만치 않다. 파 역시 굵고 단단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대파라고 해봤자 생수병 뚜껑 정도의 크기? 조금 더 크면 치약 뚜껑 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여기 파는 보통 굵기가 250ml 캔의 둘레 정도 된다. 그러니 파를 한 손으로 쥐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양 손에 하나씩 쥐고 팔과 허리의 힘으로 파를 뽑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힘들다는 아르바이트를 겪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은 없고, 체력도 달렸지만 현실이라는 채찍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양 손에 파 하나씩을 움켜쥐고 뽑았다.


파 농장 작업도 브로콜리처럼 옷이 더러워지는 작업인데 그 정도가 심하다. 파는 단단한 흙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에서 자라고 이슬 때문에 파 전체가 촉촉할 정도로 젖어 있다. 파를 뽑고, 두 개의 파 뿌리를 서로 치거나 문지르면서 흙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때 흙이 물과 함께 묻어 진흙처럼 바지와 장화에 묻는다. 이렇게 1시간만 작업해도 바지와 장화에 흙이 가득 묻어 무겁게 느껴질 정도다.


나만 그렇게 힘들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파를 뽑다 보면 허리와 팔이 아파서 종종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허리가 아파서 쉬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브로콜리 농장은 반복적으로 허리를 굽혀서 브로콜리를 따고, 펴면서 빈에다가 브로콜리를 넣고, 트랙터를 따라가는 일이 힘들어도 물리적으로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워커들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파 농장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만큼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할 때에 여자가 있느냐, 없냐는 그 일의 강도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농장으로 가는 길에 쉽게 볼 수 있는 양목장

모든 농장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르다


모든 농장은 비슷한 일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침에 1시간 30분 하고 담배 필 정도의 시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 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고 1시간 30분 한 타임 하고 담배 필 정도의 시간 쉬고, 그리고 마지막 타임을 하면 끝난다.


파 농장은 남자들끼리만 있어서 다들 힘내서 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올수록 해는 뜨거워지고, 아무리 모자와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가린다고 해도 더워지는 것은 힘들었다.


첫 번째 타임이 끝나고 담배 피우는 시간이 왔다. 나는 담배는 안 피지만 담배 피우는 곳으로 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2~3달 정도 된 워커들이었고, 세컨비자를 딸 겸 타즈매니아로 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에 자신들도 당황했지만 하다 보니 되더란다. 잘 해보자라는 말과 함께 짧은 쉬는 시간은 끝났다.


다시 파들 사이로 걸어갔다. 손에 낀 장갑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서 단지 손에 상처 나지 않을 정도의 용도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바지와 장화도 마찬가지였다. 온통 흙 범벅이 된 바지와 장화도 털었다. 다시 더러워짐을 알면서도 털었다. 화장을 지운다는 것을 알면서 화장하듯이 말이다.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별 다른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동력을 이용해 단순, 반복적으로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일을 배우는 데서 오는 기쁨은 적은 것 같다. 그저 내가 뽑는 파들이 작았으면 하는 바람, 잘 뽑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파를 뽑기 시작했다.


타즈매니아에서는 날씨 변화가 심해서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다

반복된 노동은 곧 사색의 시간


마트에서 캔 둘레 만한 크기의 파 1 뿌리가 2~3달러 정도 하는데 내가 1시간에 뽑는 파가 200개가 넘었다. 파의 도매가와 소매가는 차이가 있겠지만 시급 20달러 받으면서 고용주에게 1시간에 400불 이상을 벌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어도 ‘남 돈 벌게 해주고 있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방값과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이었기에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고 싶었다.


파는 끝없이 솟아 있었다. 그런 파를 양 손에 움켜쥐며 나는 계속해서 다짐했다. ‘내 일을 해야겠다.’, ‘붕어빵을 팔더라도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려면 지금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금의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나의 미래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이후에는 호주에서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에선 인정받는 워커가 되어야지 라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점심시간은 금방 왔다. 점심 먹으러 차 쪽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거리가 300m 되는 반대편 까지 파를 뽑으면서 온 상태였다. 뽑은 파들을 빈에다가 담으면서 다시 차 쪽으로 걸어 왔다. 다행히 그 시간은 점심시간에서 제외였다.


농장 일을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해는 머리 위에서 밝게 비추고 아름다운 산수화가 내 눈 앞에 펼쳐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식사하는 일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빨리 식사를 마친 워커들은 차에서 짧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나는 내 차도 아닌데다 옷이 더러워진 상태여서 차에 들어가 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차주의 배려로 트렁크에 앉아 쉴 수 있었다.  점심시간은 30분인데 그 시간이 무척 빠르다. 마치 30분을 다 쉬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지만 실상은 30분 조금 넘게 쉬기도 한다. 그래도 쉬는 시간은 부족하다. 다시 일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겁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고, 체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워커들은  적응돼서 그런지 한 숨 한 번 내 뱉고 다시 파 밭으로 걸어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형도 있었고, 어린 워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꽤 부리지도 않았고, 요령을 피우지도 않았다. 묵묵히 한 걸음씩 나가며 파를 뽑았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발 맞출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을 하며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무척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경험과 자신들 만의 스토리가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뽐내거나 우쭐거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말들은 공허하다. 그 말이 진실일지언정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의 행동은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을 하면서 묵묵히 몸소 보여주는 사람들은 말이 많지 않아도 신뢰가 간다. 그들은 자신의 몸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도와 습관이 중요한 것이다.

체력을 떨어져가고 팔은 저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팔과 허리가 너무 아파 약간 정체되어 있을 때는 경력자 워커들이 오히려 좀 쉬라고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라며 배려해 줄 때는 정말 고마웠다. 


하늘이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석양

결국 끝은 온다


점심 먹은 후 한 타임을 끝나고 마지막 쉬는 시간이 왔다. 이제 마지막 타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다들 이 때가 되니 힘이 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힘들었지만 마지막 타임이라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하루에 정해진 수확량이 있기 때문에 그 양만 뽑으면 일이 더 일찍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일찍 끝나면 그 만큼 돈을 못 벌긴 하지만 하루에 버는 돈으로 치면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간은 아니다. 30분 정도 일찍 끝나면 10달러 정도 덜 버는 것이다. 시급제 농장의 경우 하루 일당 얼마가 아니라 하루에 일한 시간 곱하기 시급으로 하루 일당을 쳐주기 때문이다. 일은 하루에 보통 6시간 30분에서 8시간 정도 한다고 했다. 워커들은 일은 힘들어도 내심 시간을 많이 했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생각보다 20분 일찍 오늘의 작업 할당량을 마쳤다. 기분이 좋았다. 팔이 저려서 더 이상 파를 못 뽑을 것 같았는데 끝나서 다행이었다. 장갑과 작업복을 털어 비닐봉지에 넣었다. 브로콜리 농장처럼 여기도 출, 퇴근폼에 있는 자신의 이름 옆에다가 사인을 하고 퇴근 시간을 적었다. 슈바는 그 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의 사인을 한 뒤 에이전시로 넘긴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시간은 오후 3시 조금 안되었다. 사람들은 행동이 빨랐다. 이제부터 내일 출근할 때까지는 자유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들 속에서 불안했다. 내일 출근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워커들에게 물어보니 아마 고정 멤버일 것이라고 했다. 확답을 듣고 싶었던 나는 슈바에게 물어보았다. 슈바는 자신이  인력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이전시와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퇴근 후 씻고, 밥을 먹으려고 준비하던 찰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도 출근하라는 문자였다. “나이스!”라며 외쳤다. 정말 기뻤다. 드디어 고용불안을 해소하는가 싶었다. 나에게도 운이라는 것이 있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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