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난 참 인복이 있는 놈이다. 27년을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유년시절은 동네 친구들과 대학시절은 소모임사람들과 방랑자가 된 지금은 ‘친구’라 불리는 사람들과 말이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은 언제나 나를 관통했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유대관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되려 인간관계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20대 중반이 되니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꾸준히 연락하며 잘지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유년시절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야만 나와 친해질 수 있고,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만의 무리 속에서 관계 형성을 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넘어서 만난 친구들과는 그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지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정은 시간의 길이에 비례함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짧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시간의 밀도이자 교감하는 깊이의 정도라 생각한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웃어주고, 들어주는 것이 쌍방으로 소통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난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물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주가 길다고 본 노래가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그 찰나의 감정에 충실했을 때 발현되는 애정은 시간의 길이보단 밀도에서 나오는 깊은 에너지다.
시간의 밀도를 아는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호의적이다. 마치 수문이 개방된 소양강댐과 같다. 마음껏 자신의 감정의 물을 마음의 댐을 통해 내보내고, 또 받아들인다. 그 속에서 교류하고 또 하나의 행복한 관계를 만든다.
새로움은 사람에게 설렘과 두려움을 한 번에 준다. 탄생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새로움에 대한 선택은 내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다. 두려울수록 맞서는, 그래서 다쳐보기도 하고 웃음 짓는 관계를 만들어도 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