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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Sep 18. 2015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청춘예찬



2011년 1월 4일 갓 전역한 24살 나용민. 패기도 꿈도 넘쳤던 사내는 2년의 시간이 무색한 듯 마치 입대할 때의 나이 22살인 것처럼, 목줄 풀어준 비글마냥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한다.

2년간의 의무는 나의 욕망과 자유를 압축시킨 알집이었고, 전역과 함께 압축이 풀려버린 나는 두 번  다시없을 황홀한 1년을 보낸다.

정신 차려보니 25살, 반 오십이라는 호칭이 아직까지 와 닿지 않는다. 복학생으로써 적정한 나이, 성적표에 찍힌 4.5라는 숫자는 나의 저력을 확인한 계기였지만 사회인이 되라는 주변의 고요한 압박은 나를 옥죄지 못했고, 영어유치원에서 일하며 만 6세 아동보다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25살을 보냈다.

스물여섯, 돈을 벌어보자며 학업과 3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 그 좋아하는 술자리에 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알바를 갈 때의 심정이란, 밤새 햄버거를 배달하며 자본주의는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정신없이 1학기를 마치니 여름방학, 늦었지만 남들 하는 자격증이라도 따자며 두 달 동안 왕복 3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자격증 공부를 했지만, 시험 전 날 자취방으로 놀러 오는 귀염둥이 후배들은 막을 수 없었다. 결과는 부분합격, 이도 저도 아닌 시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2학기를 맞이했다.


개강 후 2주쯤 다녔을까 이렇게 내 대학생활을 끝내기엔 자소서에 소주, 맥주, 소맥밖에 쓸게 없을 것 같아서, 부모님도 모르게 필리핀행을 준비하여 모든 욕과 기대를 뒤로 한 채 비행기를 탔다.

필리핀의 4개월은 용현동 자취방에서 술 상 차리는 나용민을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호주에 있다.

필리핀과 호주 두 나라 모두 한국한생들 탈선의 온상지라 불려 주변인들이 걱정을 한 몸에 받지만 실상 나와보면 생각보다 건강하고, 알찬 삶을 사는 것 같아 그대들의 걱정은 고이 접어두어 나빌레도 될 것 같다.


이제 내 나이 스물여덟 하고도 반이다. 동기는 물론이거니와 후배들도 생활전선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가운데 나는 농장과 공장 등에서 일하며 호주 1차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혹자들은 그렇게 고생할 바에 한국에 들어오라며 다그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나의 생활을 응원해주며 부럽다고도 한다.

끊임없이, 때로는 처절하게 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거쳐 스물 여덟 반 정도가 되니 이제야 나 혼자 스스로 설 수 있는 정신상태가 된 것 같다. 아직까지도 이기적인 외동아들의 모습은 남아있지만 이제나마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민 30년 차 정도 되지 않으면 이민생활이 아니라는 이민 10년 차 여행 가이드님의 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아직도 한국에 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생활이 정말 좋다.


호주에 온지도 언 1년 반 내가 머릿속에 짰던 계획은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헌데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 순간마다 다른 방법이 생겼고, 차선의 방법을 선택하고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몸 쓰는 일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여기에 와서 꿈이라기보단 목표가 생겼다. 돈을 벌어 세계일주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미숙하겠지만 여행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다. 훗날 서점에서 '184cm의 좌충우돌 세계여행' 저자 '나용민'을 발견한다면 여러권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를 기원한다.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난 그대들이 이룬 취직이라는 지상과제도 이뤄보지 못했고, 흔하다는 토익 800점도 넘지 못했다. 다만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 삶을 그려보긴 하나 계획하진 않는다. 어느 날 기차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나 일출 전까지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지도 모르고,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에서 미녀와 눈이 맞아 결혼해 Lassine라는 커피집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금요일이다. 이제 다 왔다. 힘내자!

부디 오늘 밤에는 그대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다 잠이 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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