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1/2)

실타래를 풀어보자

by 나작가

스물여섯 때의 나는 중산층 가정의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대학교에서 그럭저럭 무난한 대학교 성적표와 큰 스펙은 없지만 남들 다 있는 자격증과 어학 점수를 가진 청년이었다.


막연히 취업준비를 했다. 나보다 먼저 간 사람도, 같이 가는 사람도, 따라오는 사람도 다 같은 ‘취업’이라는 결승점 아닌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나 역시 그 레이스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으며 조언을 구했다. 나 역시 취업을 하고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자꾸 내 심장은 다른 길을 가라고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 길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어학점수를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닐 때도, 스펙에 한 줄 더 넣기 위해 봉사활동을 할 때에도 전혀 내키지 않았다. 옆에서 뛰니 덩달아 뛸 뿐이었다.


나는 스물여섯까지 흘러왔다. 살지 못했다. 흐르다 보니 스물여섯이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물여섯의 모습, 부모님이 원하는 스물여섯의 모습은 아니었다. 난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청춘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기울어진 집 형편도 나를 옥죄었다. 부족함 없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를 입학해 나는 집에서 돈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자취방비와 용돈까지 한 달에 70~80만 원을 집에서 받았다. 또래 친구들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다. 집에서 돈을 받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의욕도 없었다. 내가 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없으니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집은 점점 힘들어졌고, 집에선 나에게 용돈을 주는 것을 버거워했다.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자취방 월세를 내는 날이나 용돈을 받는 날이 지나서 돈이 입금되는 것이 잦아졌고, 나는 집 상황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인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좋은 질문 없이는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살지를 생각했다. 남들이 많이 하는 것, 앞으로 유망하다는 직장 등 나의 관심사와는 별개로 먹고 살기 위한 것에 관심이 갔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 속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이상 꾸준히 계속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 희미한 목소리를 낼 줄 알았고, 나는 그 목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쓰러져가는 건물과 같았다. 아예 부수고 다시 짓지 않는 이상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새로 지을 수 없었다. 결국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생각해야만 했다. 시간은 많았지만 나의 많은 시간을 흘러가버린 우정과 한 잔의 소주에 털어 넘기기에 바빴다. 이것이 청춘이고, 이것이 삶이라 외치며 내 청춘의 조각들을 낭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