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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Oct 06. 2015

#2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2/2)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원인으로 찾아 들어가보면 생각보다 큰 이유는 아니다. 아주 작은 실수로부터 큰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비효과’인 것이다. 한 지역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다른 지역에서는 태풍이 된다는 이론으로 작은 것이 큰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환경 탓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조금 더 넉넉한 집안이었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부터 사는 것에 바빴던 부모님이 나를 신경 쓰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등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나는 실타래를 풀려고 애쓸수록 실타래가 꼬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회 탓을 하기도 했다. 매년 늘어만 가는 실업률과 기득권이라 불리는 세대들의 밥그릇 싸움, 세계적으로 안 좋아지는 경제 불황기가 겹쳐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삼포세대란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어려워지는 생활에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일들부터 포기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전체적으로 안 좋아지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만 유독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전 세계 청년들도 모두 힘들지만 유독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아는 것도 없이 그저 패기만 가지고 골방에서 개똥철학을 논하는 대학생에 불과했다.


불현 듯 드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이어진 주입식 입시 교육의 폐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故구본형 씨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에서 더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학교 공부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지능에 기초한다. 기억 지능, 분석 지능, 수리 지능이다. 그러므로 백과사전식으로 기억하고, 인과관계를 추리하고  개념화시키며, 숫자 계산에 밝은 사람들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이 문장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탤런트’ 즉, 재능이 있다. 자신의 재능은 분석과 수리 지능 보다 언어와 감성 지능이 높다면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거나 혹은 한국말을 유려하게 활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공부에서는 이런 지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는다.


기억, 분석, 수리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무작정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을 노력파라고 부르며, 그들이 성공을 축하해준다. 반면에 자신의 지능을 발휘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이들에겐 패배자의 낙인이 찍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도 낙인이 찍힌다.


그렇다. 나야 운 좋게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입학하고 나서도 공부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무얼 하던 대학교는 가야 한다는 논리 앞에 나는 학생 신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낸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이뤄냈고 박수도 받았다. 하지만 대학교에서의 나는 없었다. 대학교만 입학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외동 아들인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수많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를 모르고 내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내 스스로 나를 생각한 시간이 없으니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명절 연휴에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나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가 헝클어 놓은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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