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똑똑함' = '바보' ± 1

생각의 홀짝성

by Half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주위엔 똑똑한 사람이 정말 많다. 백발의 교수, 티비 속 지식인, 비범한 천재가 아니어도 말이다. 물론 주위에 아무리 천재가 많아도 그들을 찾아내고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천재'와 '바보'. '재능'과 '노력'. 공부곁에 사는 우리에겐 언제나 재밌는 주제다. 나도 여러번 관련 대화를 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여태 내가 만났던 사람 중, 자신이 몇번째로 똑똑한 사람 같냐.


단순히 아이큐로만 계산하자면, 나의 아이큐가 121(상위 10%)니 적게 잡아도 500명 이상이 나보다 높은 아이큐를 가졌다는 계산이 떨어진다. 하지만 곰곰히 고민하다 30~40위 정도로 대답했다.


화려한(?) 커리어(??)에 질문자는 의아해했다. 너무 겸손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다 '그래 뭐 서울대인데 똑똑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겠어.'란 말로 의문을 덮는다. 사실 내 지인 중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500명은 훌쩍 넘길 것이다. 그럼에도 30~40명으로 답했던 이유는 그저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을 굳이 리스트에 넣지 않았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학력과 퍼포먼스로 다른 사람의 똑똑함을 넘겨짚곤 한다. 실제로 나는 '똑똑하다'란 말을 자주 듣는데, 그 칭찬 중 오직 5%만이 나와 같이 공부해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전교 1등이니깐.', '이번 시험 100점이니깐.', '서울대니깐.' 등 여러 요인들이 날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난 그렇게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같이 펜이나 말을 나눠본 후에나만 역량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내 주위에서 많은 똑똑한 사람을 찾았다. 많이 배워 유식한 사람부터 남다른 이해속도를 가진 천재까지 무궁무진하게 만나봤다. 그런 똑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재밌다. 유식한 사람에겐 흥미로운 사실을, 천재들에겐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드물게 비교를 거부하는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


똑똑한 사람과 진짜 똑똑한(이하 '진똑한') 사람은 우선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은 남들이 모를만한 사실도 아는 사람이다. 검증만 해보면 그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진똑한 사람은 틀릴 수 있음에도 결론적으론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그들의 말은 잘 짜여진 가설과 같다. 그럴듯한 설명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한 말들 있지 않은가. 가령 예측 같은 말들 말이다.


진똑한 말의 가장 적절한 예시는 빌 게이츠의 예측이 되겠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1999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 SNS 등을 예측했었고, "바이오는 1년에 33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는 예측 역시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영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소름이 끼친다. 대체적으로 진똑한 사람들의 주장은 터무니없기도, 바보 같기도 들릴 때가 많다. 어찌 저런 말들을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많다. 그들의 말이 가치가 인정될 땐 결과가 나온 후이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소리'와 '현명한 혜안' 사이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비슷한 헛소리지만, 결과가 그들에게 가치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저 운이 좋았던 헛소리가 현명한 혜안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헛소리여도 그럴싸한 것들이 많고, 혜안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논리 위에 지어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융통성 없고 일관성만 있는 물리학도의 눈에는 둘은 사실상 똑같은(isomorphic) 이야기로만 보였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이 진똑한 것을 보면 진똑하다는 특성은 그저 결과주의적 오해로만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인다.


친구나 가족과 수시간을 말싸움을 빙빙 돈 경험이 있는가? 보통 단골 멘트는 '아니 그건 맞는데'이며 기본 스탠스는 '네가 아는 것은 내가 이미 다 알고 있고, 지금 내가 아는 건 네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즉 자신이 더 알고 상대는 모를 거란 스탠스이다. 보통 말싸움 주체 2명 모두 자신이 상대의 말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Controversial 한 주제에서 각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공간이기에 여러 의견이 등장한다. 그중 자신은 충분히 여러 가지 변수와 지식을 고려하고 있다 믿을 것이고, 다른 의견은 적절치 않은 곳에 초점을 맞추거나 고려해야 할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생각할 것이다. 토론과 토의는 답이 없기에 진똑한 의견이 빛을 내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더 많이 생각하고, 고려하고, 사유한다면 우린 진똑한 의견을 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X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려했다면 더 진똑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말은 너무 결과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필요 없는'(정확힌 필요 없었던) 생각 때문에 진똑함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에서 생각처럼 말이다.


상대가 가위를 낸다고 했다.

1) 주먹을 내야지.

2) 주먹을 낼 거라 예상한 상대는 보자기를 낼 거니깐 가위를 내야지.

3) 2)마저 예상한 상대가 주먹을 낼 거니깐, 보자기를 내야지.

4)...

5)...

생각을 1번만 했다면 승리, 2번 했다면 무승부, 3번 했다면 패배, 4번 했다면 승리... 식으로 이어진다.


Controversial 한 주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변수를 1개 도입하기만 하더라도 주장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사유나 지식 참고를 성실히 할수록 양쪽 주장은 모두 그럴싸해 보인다. 결국 진똑한 결론을 위해선 '적당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진부한 말만 남는다.


변수 도입이나 논리처럼 한 단계 더 생각하는 행위를 +1이라고 하자. 우리는 진똑한 생각들은 적어도 50, 100은 되는 것들이라 착각한다. 즉 적어도 50번의 생각들로 이루어졌기에 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50개의 생각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은 똑똑하다는 뜻이지, 그 결과물이 좋을 거란 보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되려, "진짜 똑똑함"은 짝수와 같다. 바보 같은 소리에서 단 1번의 아이디어만 더해도 결과물은 천지차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정말 잘 가다가 마지막에 도입한 변수가 일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결과가 모든 걸 결정짓는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지금 짝수에 있는지 홀수에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더 n의 배수에 있는지 아닌지로 하면 더 세분화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분명 짝수들의 생각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짝수를 훨씬 많이 내놓는 사람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또 연습하면 연습할수록 내 사고의 숫자 자체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커져버린 생각 100이 당신의 삶에서 만족할만한 선택이나 현명한 결론을 도출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진똑해지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의 기우성(홀짝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다음 식을 기억하며, 너무 지식양에 집착하지 말자.

'진짜 똑똑함' = '바보'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