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f Jun 05. 2021

여백을 견뎌라

추세경 작가님의 '외로움이 체질'을 읽고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가전제품을 고르자면 라디오다. 심플하게, 말이 참 많으니깐 말이다. 수업, 카페, 술자리 등 오디오를 채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어떤 라디오가 그렇듯, 듣지는 않는 편이었다.


제일 조용한 플랫폼, 브런치에서도 난 라디오였다. 남의 글을 읽기보다는 언제나 내 글을 적기 바빴으니 말이다. 글은 벌써 40편이 다 되어가도록 적어가고 있지만, 구독자나 조회수가 적은 까닭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남의 글을 도통 안 읽으니 실력이 늘 턱이 없기도 하고, 온통 관심이 나로 향한 탓에 남들이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글을 읽으면 늘 감동하곤 한다. 돌도 잘 못 봐본 촌놈인지라 진주만 봐도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줄 아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같은 글을 두세 번 읽는 일은 적다. 천상 라디오 체질은 진주가 얼마나 이쁜지 남들에게 말할 생각에 신나, 또 열심히 마음속 우물만 들여다본다.


추세경 작가님의 '외로움이 체질'이라는 글을 읽었다.

https://brunch.co.kr/@chubk90/329

누구나 다 외롭다는 사실에 안심한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글로 보든, 구독자 수로 보든, 대단한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 입학부터 시작된 외로움들이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늘 외로움을 쫓아내려 했었다. 고민도 해보고, 말장난도 해보며 외로움을 다 쫓아냈다 숱하게 착각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외로움이 내 위로 얹어지는, 말하자면 슬픈 비와 같은 것이라 여긴 것이 패착이었단 생각이 든다. 우산이나 우비를 쓰면 금방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언제나 해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었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떤 부정적인 상태가 더해진 것이 아닌, 그저 여백의 한 종류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건 세상의 이치다. 물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다. 여백 역시 나에게 자신을 채우라 독촉한다. 지하철 탈 때 폰 배터리가 없으면 불안한 이유가 모두 이 무언의 압박 때문이다. 여백의 압박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걸으면서도 조용함을 견딜 수 없어 노래를 듣는 일. 지하철 속 무료함을 견딜 수 없어 유튜브를 보는 일. 누워서 잠에 들 때까지 걸리는 그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핸드폰을 켜는 일. 다 들었던 것들, 다 봤던 것들이 주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다른 콘텐츠를 찾는 일. 모두 다 그놈 짓이다. 웃긴 점은 그렇게 정작 찾은 것은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여백으로부터 도망가다 찾은 피난처일 뿐.


진정 삶을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면 우선 이 여백부터 견뎌야 한다. 유혹과 충동을 이겨낸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솔직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뉘앙스여서 별로다. 결국 우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유혹과 충동인지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여백을 견딜 수만 있다면, 텅 빔 한가운데서 여유를 느낄 수만 있다면,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내 시간 속에 놓이게 할 수 있다. 정녕 하고 싶은 것들이 다 나를 채우지 못해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휴가 출영까지 30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