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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May 18. 2021

외로움이 체질

여러분은 언제 어른이 되었나요?

 

사람마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를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편의점에서 맥주도 살 수 있고 영화관에서 19세 영화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고, 회사에 입사해서 월급을 받고, 그렇게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갈 때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했을 때, 누군가를 깊게 사랑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아이를 가졌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이 작아 보일 때 등등,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어둠이 무섭지 않아 졌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잠 못 드는 밤 불 꺼진 방안이 별로 무섭지 않았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괜스레 어둠을 무서워하던 소년, 그 소년은 어느새 자라 어둠이 별로 두렵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감정이 찾아들었습니다. 두려움 대신 채워진 마음, 그건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외로움을 느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은 외롭습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아도 외롭고, 돈이 많지 않아도 외롭습니다. 명성이 높아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외롭고, 소수의 지인들과 자기 만의 세계를 꾸려가는 사람도 외롭습니다. 친구들이 많아도 외롭고, 친구들이 없어도 외롭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빈도와 정도,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산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시를 한번 보겠습니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고,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정호승 시인이 외로움을 '견디는 것',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외로운 감정은 우리에게 괴로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눈물 흘릴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울리지 않는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릴 때가 있습니다. 카카오톡 채팅방을 들여다 보고, 괜히 예전 사진첩을 열어 보고, 손가락을 슥슥 거리며 핸드폰을 만집니다. 카카오 톡에 들어가서 저장된 연락처의 프로필을 들여다봅니다. 연락한 지 오래된 누군가의 사진을 괜히 한 번 눌러봅니다. 사진을 눌렀다가 말았다가, 화면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를 반복합니다. 예전에 나눴던 대화를 다시 읽기도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거기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핍니다. 그러다 빨간색으로 알림이라도 뜨면 반갑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눌러보지만 별 내용 없는 메시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아쉽고,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립니다.

 

인간은 왜 외로울까요?

 

인간이 외로운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이해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고, 그런 나와 내 삶의 방식에 대해 공감을 받고 싶어 합니다. 즐거울 땐 즐겁다고, 슬플 땐 슬프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감정을 누군가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즐겁냐고, 그렇게 슬프냐고, 얼마나 힘드냐고 공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욕구고 자연스러운 바람입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잠자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이해받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를 해왔습니다. 500만 년 전 인간은 무리를 이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고 살기 위해선 누군가와 함께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본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 그게 바로 외로움입니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는 혼자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니다. 하지만 유전자에 각인된 외로움이라는 정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사람이 그립습니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체질이 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행복은 결국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생겨난 부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키고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무기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행복이라는 건 인간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만났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쾌감이라고 말입니다. 타인은 인간이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생존의 필수품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여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은 사람과 사람을 붙주는 접착제였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행복에 대한 주장은 외로움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욕구는 우리에게 외로움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진화하는 존재라는 이론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행복을 생존을 위한 부산물로 생각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대체적으로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혹시 틀린 주장 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이라는 것은 때때로 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은 외롭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멍을 때리거나...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과의 뒤섞임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사람들과의 시간이 그 사람의 일상에 많다는 뜻입니다. 일상에서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적으로 이미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두세 명쯤은 자신의 근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인이 있고,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나눌 지인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선후배든, 직장 동료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동료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을 보다 적게 느낍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들과의 시간이 지친다고 느낄 때는 혼자만의 시간, 자기만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그와는 반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인 시간이 별로 없는데도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를 상대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걸 피곤하게 느낍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걸 귀찮아하고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차라리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에서 TV를 보든, 음악을 듣든, 인터넷을 하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이유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끼는 불편함이 혼자 있는 외로움보다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소통하며 받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혼자 있는 외로움보다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런 우리가 서로 소통하다 보면 항상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만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때때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다, 나는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혹은 나는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이 이야기는 그만 들으셔도 괜찮습니다.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는 건 시간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인간은 사람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고 외로움은 생존에 필요한 본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틀릴 수 있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외롭다는 것입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할 수는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직업적인 성공을 꿈꾸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학교에 간다고, 좋은 학교를 가야 의사가 된다고, 열심히 해야 삼성전자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고 배웁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그런 거라고,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은 그런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건 더 많은 자산이나 더 높은 사회적 위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느냐, 이것이 바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보다 중요한 요소일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외로움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우정을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나눠도 좋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일상을 함께 하는 인생의 동료들과 공감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만나 나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너의 하루를 들어보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나를 아껴주고, 내가 사랑하는 소수의 지인들과의 진실된 소통, 그게 바로 행복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혹시 어떤 이유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다면 문학 작품이나 영화, 음악 등 예술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에는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시든, 음악이든 뭐든, 좋은 작품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작품을 접하면 나라는 존재가 외롭지 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라는 걸, 어쩌면 나라는 평범함은 나만의 특별함일 수 있다는 걸, 그렇게 평범하지만 특별하기도 한 존재들이 모여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는 , 나만큼 아픈 사람도 많고 나만큼 슬픈 사람도 많다는 ,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 그런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과의 소통이 힘들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뛰어난 예술 작품, 그 안을 흐르는 아름다운 서사를 통해 외로운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다루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 그것에 대한 나만의 균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감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나 역시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적인 성공도 중요하고 많은 자산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우리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7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70억 개의 고독이 있다고 합니다. 나의 고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로움을 다루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반드시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 헬스케어 어플 <캐시워크>의 '마음챙김' 서비스에 소개될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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