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힘든 이유는 마음이 울렁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잘 지내는 시기도 있고,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지만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우리의 기분은 수시로 변합니다.
연휴 동안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시다.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쌓인 일이 많아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도 여행이 참 즐거웠다고, 행복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갑자기친구가 던진 농담이 별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걔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라며 기분이 나빠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일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일을하나씩 끝내다 보면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밀린 일이 하나하나 끝나가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잠깐입니다. 풀리지 않은 여독에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머릿속엔 오로지 퇴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렇게 기분은 몸의 상태나 주변 환경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합니다. 감정의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은 멈추지 않고흐릅니다. 하루에 하나의 생각만 하고 감정도 하나만느끼면 좋을 텐데 우리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사전에서는 양가감정을이렇게 설명합니다.
양가감정이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생각에 대해 상반된 감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족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합니다. 노력하던 프로젝트가 끝나면 마음이 후련하기도 하지만섭섭하기도 합니다. 첫 출근 때는 걱정이 반, 설렘이 반입니다.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국어 시간에는 모순이라고 배웁니다. 역설적인 일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사실 양가적인 감정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을 느끼는 건 보편적인 일입니다. 원래가 그런, 보통의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복잡합니다. 생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그 안에서도 사람의 마음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집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온전히 알기도 어려운 게 사람이고, 그만큼 복잡한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리고 양가적인 속성은 사람 마음뿐이 아닙니다. 뻔한 표현이지만,세상에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습니다.동전에앞면이 있으면 뒷면도 있습니다.그건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고, 희망이 있으면 좌절도 있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때때로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나쁜 일도 생길 수 있으니그것에 대해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인생의 고난을예감할 수 있는 하나의 감정이 있습니다. 불행을 걱정하는 마음의 준비 운동이자 좌절을 맞이하는 마음의 예방 주사, 바로불안감입니다. 오늘은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불안을 정의하는 데 가장 익숙한 인물은 알랭 드 보통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 등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불안’에서 불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불안이란 사회적 사다리에서 지금 보다 낮은 위치로 내려갈 거라는 생각에서 나타나는 감정이다,라고 말이죠.
지금보다 돈을 못 벌게 되거나, 지금보다 지위가 낮아지거나, 지금보다 사회적인 명성이 낮아질 거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고합니다.
사실 현대사회에는 고대나 중세시대처럼 사회가 규정한 계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회적 사다리에 올라가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의 크기나 사회적 명성에 따라 그 위치가 정해집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걸 사다리라고 표현했고,우리는 자신이 위치한 사다리에서 보다 낮은 위치로 내려갈까두려워 불안해한다고했습니다.
불안은 특별한 순간에만 느끼는 감정일까요? 대학 입시에 실패하거나 취업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거나사업에 실패했을 때, 그런 때와 같이그런 특별한 순간에만 불안을 느낄까요?
아닙니다. 불안은 그런 특별한 순간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일상을 보내면서 우리는 흔하게 불안을 느낍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래가 희망차게 느껴질 때도 있고, 괜히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때로 불안은 찾아옵니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 때 문득, 퇴근길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문득, 산책하며 한강 물결을 볼 때도 문득, 불안을 느끼곤 합니다.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을지,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때로는그런 불안함에정확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지 안 나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매달월급을 받는 탄탄한 기업이나 잘릴 걱정이 없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사람, 그 외에도 일반적으로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불안을 느낍니다.
친구네 가게는 대박이 났다는데 나는 월급만 받아서 언제 집을 사고 언제 노후를 준비하지?
회사 동기는 1년 일찍 진급했는데 나는 올해 진급할 수 있을까?
회사 대리님은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는 데 적금만 넣는 나는 손해를 보고 있나?
임원을 달 수 있을까? 그전에 해고당하지는 않을까?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회사 생활만 하면 내가 바라던 삶을 살 수 있을까?
...
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더 불안하기쉽습니다.
당장 이번 달에 수입이 있을까?
회사에 다니면 정년도 보장되고 퇴직금도 받을 텐데 나는 언제 안정적인 수입을 가질 수 있을까?
경쟁자들이 자꾸 치고 올라오는 데 내 자리를 뺏기지는 않을까?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지?
또 코로나 같은 게 터지면 어떻게 하지?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일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
...
라는 불안입니다. 혼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가 있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나 기관 같은 조직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반대로는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혼자 일하는 사람은 그런 안정감이 없습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고 업이 가진 불안정성은 그들의 생계로 직결됩니다.당장에 뒤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느낌,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이 안정적이든 불안정적이든 불안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상 불안이라는 감정은 삶의 그림자로서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합니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더 희망찬 내일을 꿈꿀수록 그렇습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듯, 더 많은 걸 바랄수록 더 많이 불안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이런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문득문득 느껴지는 불안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불안을 마주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희망찬 내일이 무엇인지, 에 대한 자기만의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됩니다.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 남들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런 것들을 쫓으며 살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게 아닌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욕구는 나에게 불필요한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그걸 가지지 못하는 상태를 불안해합니다. 주관을 가지고 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주입시키는 욕망, 그에 대한불안까지안고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대에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배웁니다. 학교에 가서 말도 잘 듣고 국어, 영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배웁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 칭찬을 듣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20대가 됩니다. 20대에는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 배웁니다.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삼성전자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에 가라고 배웁니다. 그래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그게 바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합니다. 3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으면 입장이 반대가 됩니다. 이제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아이를 가르칩니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그래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합니다. 그게 바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가르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나이마다 성공적이라고 정의해 놓은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배웁니다. 알랭 드 보통이 표현한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학교 성적에 따라 우리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성적이라는 사다리입니다. 그 안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대학의 서열이 곧 성적이라는 사다리의 최종 위치가 됩니다. 그리고는 사다리의 이름이 바뀝니다. 직업의 사다리입니다. 안정적인 직업인지, 연봉이 얼마인지, 전문직인지가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30대가 넘어서는 결혼을 했는지 아닌지,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은 얼마인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얼마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40대 50대가 되어서는 자녀와 함께 사다리에 올라갑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지 아닌지, 좋은 대학에 다니는지 아닌지, 가 중요합니다. 평생 우리는 이렇게 사다리에 매달려 삽니다.
우리는 이런 욕망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느냐, 좋은 직업을 가져야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느냐, 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앞서 이야기한 가치들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유망한 직업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좋고, 결혼을 잘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만이 행복한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들이 과연 나에게 행복한 인생을 보장해줄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회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쳇바퀴에 올라타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르고 각자의 성향도 다릅니다.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도 다르고 무슨 일을 할 때 가치를 느끼는 지도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사회는 하나의 삶만이 최고라고 가르칩니다.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삶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그 안에 줄 세우려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남들과 경쟁하며삽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누가 있는지, 나보다 못난 사람은 누가 있는지를 의식하고평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내 적성은 무엇인지, 나는 진실로 무엇을 욕망하는지에 대해서 모르고 삽니다. 음악이나 미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꼭 국영수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조직 생활이 죽어도 싫은 사람이 꼭 회사에 다녀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결혼보다는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비싼 집에 사는 것보다는 세계 곳곳 배낭여행을 즐기는 게 더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타고난 우리의 모습은 모두가 다른데 꼭 정해진 모습대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몸에 맞지 않는 욕망을 쫓는 것은 비극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살아가라고 합니다. 하루에 3시간씩 자라고, 그래야 서울대에 갈 수 있다고,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근데 만약에 우리가,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하루에 7시간을 자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루에 7시간을 자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사람에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라’, ‘하루에 3시간씩 자라’,라고 이야기하는 건 말 그대로 불행을 강요하는 일입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채식을 하면 몸이 건강해지니 평생 야채만 먹고살아라, 라는 것과 같습니다. 삼겹살도 먹고 목살도 먹고 소고기도 먹어야 행복한 사람에게,너는 야채만 먹어라, 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불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불안은 내가 만들어 낸 불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불안이라는 것이죠. 너는 아직까지 돈이 그것밖에 없니, 너는 아직도 그 정도의 커리어 밖에 쌓지 못했니, 너는 아직도 그런 집에 사니, 너는 아직도 그런 차를 타니,라고 누군가는 속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꿈꾸는 삶에 대한 뚜렷한 이상이 없다면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허상에 목 매이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왜 아직 돈이 이것밖에 없지, 나는 왜 아직도 외제차를 타지 못하지, 나는 왜 아직도 명품 가방이 없지, 라며 말입니다.
불안을 마주할 때 필요한 건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이해입니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은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열심히 사는 게 좋은 지, 아니면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게 좋은 지, 에 대한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욕구를 정확히 깨닫고 그에 맞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자신의 에너지를 배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불필요한 욕망에서 오는 불안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남과의 비교에서 느껴지는 불안을 조금 덜어낼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은 사실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희망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안을 마주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불안한 마음이 들면 오늘의 내 삶을 돌아보자, 라는 것입니다. 불안한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내일의 나는 행복할지, 내일의 내 모습은 어떨지,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부정적인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내일은 옵니다. 내일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지금 나는 내가 희망하는 미래를 가지기 위해 그에 맞는 오늘을 보내고 있는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보완하면 됩니다.
물론 그런다고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해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고 하지만 사실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왕 불안을 느끼는 이상 그 불안의 에너지를긍정적인 방향으로이용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내 삶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느끼는 불안은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통해 돌아보았을 때 오늘나의하루가 내가 희망하는 미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방향키를 조금 돌려야 합니다.불안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불안을 이용해서 나의 오늘을 돌아보고 부족한 하루를 채우는 것, 불안을 마주하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불안은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불안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선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나의 희망이 반영된 불안인지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오늘을 계획해야 합니다. 희망하는 미래를 위해 충만한 현재를 보내는 힘, 그런 에너지로 불안함을 이용해야 합니다.
당신의 불안은 어떤 것인가요?당신에게 불안은 어떤 의미인가요?불안을 통해 희망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에 맞는 충만한 오늘을 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불안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