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열두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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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두 번째 인터뷰이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흥으로 가득찬 워홀러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흥을 가득 채웠는지,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9개월 차 은지(26)를 분홍빛 겹벚꽃이 코끝마저 가득 채우는 Dublin4 Herbert Park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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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의 음악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은지 : 안녕하세요. 한국 나이로 26살이지만 이곳에선 국제나이 만 24살로 살아가는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은지라고 합니다(웃음)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은지 : 17년 8월 1일에 왔고, 인터뷰를 하는 지금 딱 9개월 됐어요. 이런 시기에 영광스럽게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1년을 지낸 후 7월 31일에 이곳을 떠날 예정이에요. 8월에 아프리카로 갔다가 산티아고 갔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집에 갈 것 같아요. 한국에는 한 11월에 도착할 것 같은데, 아직 몰라요(웃음).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 되었던 간 사계절에 묻어 나오는 특색을 느껴보아야 더 잘 알 수 있다는 저만의 믿음이랄까요?(웃음)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은지 :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대학을 졸업해서 곧바로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렇게 쉼 없이 약 16년을 사회가 만든 구조에 살았고, 곧바로 선택한 직장인이라는 틀 속에서 저는 저게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생겼던 거 같아요. ‘과연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내 삶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나?’, ‘하고 싶은 것을 묻어 둔 건 없는가?’ 등등 여러 생각 끝에 또다시 구조화된 틀에서 배우기 보다 ‘한 번쯤은 나대로 살아보자, 세상에서 더 배워 오자’라 생각했고 아일랜드로 오게 된 거죠. 결정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동안 인생을 속도로 살았다면 이제는 방향을 잡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에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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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은지 : 사회복지를 전공해서 NGO에서 일을 했었어요.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요. 아이들의 권리를 기반으로 한 교육 및 옹호 활동, 모금 펀딩 등 일도 재밌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회사의 이익 추구가 아닌 타인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라 보람을 느끼며 일을 했었고요. 그럼에도 지금 아일랜드에 있는 이유는 제 권리 또한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에요. 사회복지사로 타인의 권리가 잘 지켜지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일을하면서 제 권리 또한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듯, 내 권리를 지켜내지 못하면서 누군가의 권리도 지켜내는 것이 어렵단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지금 당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제 권리를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도 그럴게 휴학 한 번 안 했잖아요. 아쉬웠던 점도 컸고 오롯이 일 년을 나답게 살아보고 싶단 마음도 컸죠. 또 많은 사람들이 외국 삶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다른점도 경험해보고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자리를 잡고 연차가 쌓였을 때는 해외로 나간다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직장동료들을 보며 느꼈어요. 그것 또한 더 늦기 전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보탬이 된 거 같아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일했던 1년 남짓 기간을 참 소중하게 느껴요. 지금은 더 많이 느끼고 배우고 쌓아서 그런 경험들이 일에 잘 녹아들 수 도록 하는 단계라 생각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 일들을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은지 : 사실 나라에 크게 기준을 두진 않았어요. 일단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일을 하고 또 그 중심에는 어떤 문화와 역사가 그 사람을 만들었는지 궁금했죠.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를 알아가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무조건 아일랜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범위를 넓게 뒀어요. 영어를 알면 세상의 반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첫 번째, 영어공부를 위한 영어를 쓰는 나라를 두 번째, 스스로 생활비 충당을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할 수 있는 나라. 이렇게 범주를 두고 선정하다가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 호주가 선택지가 된 거죠. 사실 인턴십 제도가 잘 되어있는 캐나다를 제일 가고 싶었지만 떨어졌어요. 뉴질랜드는 유학원 대행까지 맡겼는데도 떨어졌고요. 학생비자로 돌려야 하나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가 대기번호 80번 대가 된 거예요. 거의 문 닫고 온 케이스였죠. 합격하자마자 일주일 뒤에 왔어요. 이왕 마음먹고 가기로 한거 합격 발표 후 약 일주일 뒤편의 항공권을 끊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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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은지 : 솔직히 오기 전에 조사를 했을 때도 아일랜드에 대해서 딱히 엄청 큰 생각은 없었어요. 위치를 확인했을 때도 영국 옆에만 있다고 생각을 했었고요. 그런데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 서적을 찾아봤을 때, 자연이 숨 쉬는 나라, 맥주의 나라, 음악의 나라라는 게 끌렸던 것 같아요. 복잡한 도시보다 자연을 선호하거든요. 또 제가 흥이 많은 편이에요(웃음). 흥을 좀 더 잘 돋우는 나라이지 않을까 했어요. 친구들 만나서 가볍게 먹는 술을 좋아하는데, 과연 흥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과 어울려져 먹는 생맥주는 얼마나 맛이 다를까를 상상했었죠.




ㅡ 맥주 잘 즐기고 계세요? 어떤 맥주 좋아하세요?




은지 : 네. 거짓 조금 보태서 1일 1맥주 하고 있어요. 그만큼 자주 마시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살쪘어요 맥주 마시느라(웃음). 일단 기네스요. 여기 와서 기네스를 처음 마셔봤거든요. 처음 목 넘길 때 크리미함이 너무 좋아요. 지난번에 체코 여행 갔을 때, 또 다른 흑맥주의 고장인 만큼 코젤을 마셨는데, 기네스가 더 맛있는 거 같아요. 제가 맥주를 막 잘 아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라거도 하이네켄을 참 좋아해요. 이 맥주들을 생으로 먹다 한국 가면 캔으로 먹을 텐데 아쉬워서 어쩌죠.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은지 : 여름에 왔고 도착한 날,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홈스테이 주인아저씨, 즉 홈 대디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계셨고, 차를 타러 가려고 주차장에 걸어갔는데, 공기를 한숨 들이마셨을 때 정말 상쾌한 거예요. 그 공기를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어요. 한국의 8월은 너무 습하고 더웠는데 아일랜드는 한국과 다르게 햇살도 뜨겁지 않게 좋았고, 시원하고 폐를 정화시켜주는듯한 그 맑은 공기도 좋았어요. 홈스테이 집으로 차 타고 가면서 보는 나무가 많은 풍경도 좋았고요. 홈 대디와 홈 맘, 그리고 이웃들까지 정겹고 너무 잘 어울리는 분위기여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 서툰 영어에도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어요. 그런 모습들이 정겹고 따뜻하고 또 너무 대도시스럽지도 않고 해서 좋았어요. 첫인상이 오래가는 편이긴 한데 첫날의 모습 때문에 어쩌면 비 오는 날도 잘 버텼는지도 몰라요. 또 다시 올 그런 날을 기다리면서요(웃음)





Q. 아일랜드 여름은 어떤 것 같아요?



은지 : 5-7월이 좋다고 하잖아요. 8월도 나쁘지 않지만 비도 약간 오기 시작하는 날씨예요. 아일랜드는 여름에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아요.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도 말해요. 아일랜드는 처음 도착한 시기의 날씨에 따라서 있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달라진대요. 워홀러들은 1년 동안 있으니까 사계절을 다 볼 수 있지만, 학생비자인 사람은 8개월밖에 못 있으니 못 보잖아요. 겨울에 오셨던 분들은 더 빨리 한국에 돌아가는 경향이 있고 여름에 있었던 사람은 더 있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여름이 아일랜드에서 좋은 날씨인 것 같고 좋은 기후인 것 같아요. 또 최근 날 좋을 때 사람들만 봐도 길거리 너도나도 어디든 앉아 햇빛 즐기고 그러잖아요. 겨울에 워낙 비 오고 바람 불고 매일 흐린 날씨니, 햇살 한 줌에 참 감사해지고, 또 이 여름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지 느껴 본 사람은 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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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은지 : 공부하며 일하다 한 달에 한 번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하지만 마냥 또 그렇지만은 않고 복잡 다양한 삶을 살고 있어요. 처음 세웠던 목표가 한 달에 한 번 여행하기였어요. 지금 잘 지켜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행은 지금까지 영국, 아이슬란드, 체코,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모로코에 다녀왔어요. 프랑스와 스위스는 이번 달에 가고요. 사실 매달 휴무를 내기 위해 매번 매니저랑 홀리데이를 타협하죠. 협상의 달인이 됐어요.(웃음)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휴가를 쓴다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렇지만 외국에 온 만큼 그걸 좀 탈피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요.


홀리데이를 쓸 때 다른 나라 친구들에 비해서 특히 한국인들 분들은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게 느껴져요. 저도 그렇고요. 홀리데이 쓰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서 말을 못하겠는 거죠.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 왔는데, 이 눈치를 안 보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권리 남용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너무 많이 홀리데이를 써서 매니저가 눈치를 준 적이 있지만 그 눈치에서도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기 섬만큼 자유로울 수 없죠. 그런데 사실 용기를 내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그래서 숨 한 번 딱 쉬고 눈도 질근 감았다가 여러 번에 용기 끝에 말하곤 해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느낀 건, 제 권리를 잘 지킬 수 있어야 타인의 권리도 잘 지켜줄 수 있다는거 였어요. 그래서 홀리데이도 어떻게 보면 제 권리이고, 제 권리를 최대한 잘 지켜내려고 힘을 내려는 것 같아요. 당연한 것인데 어렵죠.


처음 왔을 때 학원도 다녔어요. 학원을 다니다가 아이리시의 생활이 궁금해서 3개월 정도 오페어를 했었어요. 아이리시 가정을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집이 안 구해져서 오페어를 계속 한 것도 있었지만요. 그리고 3개월 후 학원으로 돌아가서 학원생활하면서, 지금 하는 일도 구하고 더블린에 적응을 했던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 수다도 떨면서 영어도 많이는 것 같아요.





Q. 오페어 일과는 어땠나요?



은지 : 오전에는 주로 제 생활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2시부터 9시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였어요. 일어나서 운동하고 제 공부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밥이나 간식도 챙겨주고 숙제도 도와줬어요. 안전하게 같이 놀아주고요. 우리나라 놀이도 알려주면서 열심히 놀아줬어요. 아기들은 4살 쌍둥이였는데, 진짜 귀여운데 말도 정말 안 들었어요. 친구들이랑 사람들이 “너무 귀여워 맨날 이런 애들 보면 힐링 되지 않니?”라고들 하는데, 힐링은 무슨. 잠깐 보는 건 귀여운데 오랫동안 보면 너무 지치더라고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만두면 얻고 가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속한 3개월은 채우고 나왔어요. 또 우리 집이 아니다 보니까 저는 그 속에서 제가 눈치를 얼마큼 얼마나 보는지 확인도 할 수 있었고요.


지금은 로켓이라는 버거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어요. 일을 하다 와서 그런지 직원들과의 관계나 분위기 또는 회사의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가 중점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느낀 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의 을이 되잖아요. 상사 눈치를 봐야 하고요. 일에 있어서 행복하지 않은 나라죠. 그런데 아일랜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었어요. 홀리데이를 쓰는 부분이라던지 건의사항이 있다던지 그런 부분에서는 항상 상사와 동등한 입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해서 조율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상사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의견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어요. 이 나라에 오면서 배워올 것 중 하나의 목표가, 요즘 한국의 헬조선이라는 말에 동의하기보다는 외국에서 보고 느껴서 우리나라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거였거든요. 그런 것을 이해하게 될 수 있던 것도 지금 일하는 곳 덕분이에요.


출근 첫날 긴장하면서 갔는데, 손님이 아니라 직원이 갑인 것처럼, 일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받았어요. 동료들한테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한국에서는 일 할 때 가만히 서있어야 하고, 다음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행동해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Funny 하다고 했어요. 실수해도 “100번 이상 실수해야지 잘 할 수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고요. 그렇게 즐겁게 일하는 직원들이 함께 일하니까 매출도 잘 나오고 손님들도 저희를 좋게 봐주시고요. 일하는 곳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또 제가 복받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국적도 정말 다양해요. 스위스, 칠레, 브라질, 아이리시도 있고 콩코, 체코, 루마니아, 폴란드, 크로아티아, 인도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이야기들. 가게에서 비정상회담을 펼치는 느낌?(웃음).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죠.


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손님들이 없을 때 노래에 맞춰서 다 같이 플래시몹처럼 춤추고 동영상 찍고 그런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각자 자기 나라 음식 가져와서 서로 나누고 그런 것도 되게 좋았고요. 각자의 문화를 교류하며 일 할 수 있단 게 참 좋은 거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은지 : 아일랜드에서는 일을 하면서 외국인과 부대끼고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고 그런 게 좋았어요. 또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요. 한국에서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외국은 다를 거야. 외국 사람은 다르겠지. 하지만 똑같은 것 같아요. 똑같이 어려움을 느끼고 그걸 어떻게 이겨내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좋아요.





Q. 아일랜드 내의 여행은 많이 다니셨는지?



은지 : 솔직히 그동안은 비도 오고 날이 좋지 않아서 아일랜드 여행을 많이 못 했어요. 그래도 휴무날에는 꼬박꼬박 어디론가 떠나려고 해요. 골웨이에 가기도 했고, 코크도 간적 있고요. 주변을 많이 다녔어요. 아일랜드가 공원이 되게 많잖아요. 공원 가서 휴식하고요. 날씨가 좋았던 적이 크게 없었는데, 최근에 날씨가 좋아지면서 이곳저곳 다니고 하고 있어요. 진짜 좋았던 곳은 브레이 헤드였어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킬라니도 좋았고요. 해외여행은 혼자 많이 가는데, 아일랜드 여행은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로 기쁜 것도 힘든 것도 또 정보들도 공유하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은지 : 다들 그렇겠지만 집 문제가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안구 해지는 거예요. 사실 처음에 오페어를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긴 했지만, 집 문제도 더해져서 하고 싶었던 거였거든요. 오페어를 끝내고 시티 쪽에 집을 구하는데 처음 가기로 했던 집이 계약 취소가 되고 또 다른 집도 안되고 해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제가 살고 있는 집을 보러 오게 됐는데, 집주인한테 거의 빌었어요. 진짜 뇌물 아닌 뇌물 초콜릿까지 사 들고 와서 손 붙잡고 살게 해달라고요. 그래도 그중에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설마 바닥에서 자겠어?라는 마음이요.(웃음)


그렇게 들어오게 됐는데, 이 집에서도 문제가 있었어요. 바로 밑에 층에 불이 났던 거예요. 다행히 제 방은 멀쩡했는데, 문제는 그 불나고 나서 제 방을 검은 재가 다 덮었어요. 대청소도 해야 하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죠. 어렵게 집 구해서 들어왔는데, 또 들어오자마자 문제가 생긴 거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죠.




ㅡ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게 정말 큰 일인 것 같아요.




맞아요. 한국에서 기숙사는 살아봤지만 자취를 해본 적은 없어요. 집에 살면서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먹는 거 걱정, 지내는 거 걱정, 고장 나는 것 이런 거 하나도 걱정 안 하고 살았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의식주를 제가 오롯이 해결해야 하잖아요. 그런 걸 스스로 겪어 내다보니까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거 같아요.

그리고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거든요. 날씨도 맨날 비 오고 흐리고, 우울이 우울을 부른다고 하잖아요. 그런 때에 늘 만나던 친구들도, 가족들도 없이 오롯이 힘듦도 혼자 겪어야 했고요. 원래 스스로도 엄청 밝고 긍정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 아닌 것 같고. 지나고 나니까 그때를 계기로 혼자 이겨낼 수 있는 그런 힘이 제 안에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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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은지 : 저희 동네 Dublin4 가 너무 좋아요. 이 주변을 많이 다니기도 해서요. 이웃들끼리 서로 인사하며 지내는 것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 주변에 있는 허벌츠 파크에는 주말마다 장이 열려요. 가끔 아침에 그 공원에서 조깅도 하고 노래 들으며 산책도 해요. 집 주변에 일하는 가게가 있어서 약속이 없으면 시티에 나가지 않고 거의 집 주변에서 장도 보고 생활하며 즐겁게 보내요.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집 앞에 한국 대사관이 있는데 날 좋은 날 보면 태극기가 펄럭거려요. 괜히 보면서 마음 뭉클해지고 그럴 때도 있었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느끼기에 변한 점이 있다면요?


은지 :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에요.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생각했거나 계획했던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서의 삶이,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순탄치만 않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많이 배웠어요. 불안정한 삶에서도 내가 균형을 맞춰 방법들을요.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와 오롯이 스스로 책임지는 삶에서의 갑작스러운 일, 또 여행으로 인한 신체리듬 변화 등등.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다시 새로운 균형을 만들며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에요.


‘나답게 오롯이 나로서 살아보자’라는 목표를 잘 실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정형화된 틀 속에서 교육은 대학교까지, 일은 매뉴얼대로 살아왔잖아요. 그 속에서 저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이 정말 부족했어요. 그런데 아일랜드에 온 뒤로 저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고 해서 좋아요. 한국에서 열심히 큰 바윗돌만 쌓았다면, 지금은 그 바윗돌을 깨부수고 그 사이를 조금 조금씩 채워 넣고 있는 것 같아요.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내가 왜 그렇지?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여유가 주는 또 다른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 여유 속에서 저를 되돌아볼 수 있고 저를 알게 되는 게, 목표를 잘 이뤄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죠.


요새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결국에 조삼모사이고 굳이 그렇게 급할 필요가 있었나. 대학교 때 취업 바로 하려고, 활동이든지 성적이든지 다 열심히 살았는데요. 이제 이런 여유가 주는 새로운 행복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있죠. 한국가더라도 허둥지둥, 허겁지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안되는 일에 대해서도 마음 졸이지 않을 거고요. 이곳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았으니까, 한국 가서 또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네요.





Q. 현재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은지 : 최근에 자연이나 동물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좀 커진 것 같아요. 애완동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고, 자연이 있으면 좋기만 좋지 그런 순리나 소중함에 대해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느껴요. 예를 들어 이 주변 큰 나무들을 보면 되게 찡해요. 이렇게 잘 자라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눠왔구나 싶은 거죠. 그리고 동물들도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요즘 고기를 보면서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모로코 가서도 낙타를 타는데 못 타겠는 거예요. 너무 미안해서요. 괜히 마음 쓰이는 것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것 같아요.




ㅡ 나에 대해 깊이 알게 되니, 타인뿐 아니라 자연에게도 공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네. 정말 그렇네요. 그렇네요. 정말. 나를 잘 알아야 타인을 알 수 있다는 말에 정말 공감해요. 옛날에 한국에 있을 때 그 말은 알고 있으나 깊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여럿 생각하면서 느꼈어요. 저를 사랑하면 그래서 싫은 모습마저도 사랑하게 되면, 아무리 타인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하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나 자신을 잘 알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도 잘 보이고 사랑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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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은지 : 날씨 때문에 한국 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날씨도 좋아지고 있고 아일랜드에 대해서 좋다는 생각도 많이 받고 있고요. 처음에는 아일랜드 떠날 때 쿨하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3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애틋해지는 거예요. 조금 더 사람들이랑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고 아일랜드 더 많이 돌아보고 싶고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이랑 더 많이 소통하고 일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싶어요. 차근차근 한국 돌아갈 준비할 것 같아요. 사실 한국 가기 전에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야생동물 보고 싶어가지고요(웃음). 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고 있어요. 차근차근 정리하는 그런 3개월이 될 것 같아요. 아일랜드와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 전에 아버지와 전화를 했는데, 언제 오냐고 그러세요. 근데 저도 모르겠어요. 이왕 나온 거 다시 올 수는 있으나, 지금을 실컷 즐기고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은지 :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누군가가 힘들 때 제 손을 내밀어 줄 수도 있고, 기쁜 일을 나누며 함께 감사하고 또 다 같이 무엇인가를 힘내서 해나가기도 하고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택했고 그런 사람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좀 더 저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지금 이곳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엔 대학원도 꿈꾸고 있어요.



한국에 있었으면 한국 대학원을 가거나 했겠지만, 여기 있으면서 외국 대학원도 가볼 만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외국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사회적인 불공평함에 대해 전에는 화내고 불평을 내놓았다면, 외국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게 되면서 ‘왜 불공평한가?’를 이해하게 된 부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인식하고 그것을 바꿔가고자 노력은 하되, 그 불공평함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도 하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있어요. 물론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지만요. 어떻게 되든 제 인생이니까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은지 :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냥 걱정되는 것도 이해가거든요. 그 걱정이 저도 똑같았어요. 그렇지만 오면 상황도 바뀌는 거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요. 그냥 와서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팁이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오겠다는 결심을 하신 분들은 그런 부딪히며 배우고 이겨낼 용기를 가지고 계시다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엔 어떻게든 잘 살아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하시고 오세요.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실 수 있다면 어딜 가더라도 누군가와 대화하더라도 더 깊게 이해하면서 더 자신을 알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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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은지 : 박은지다운. 그냥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저 다운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짧든 길든 가족, 친구, 남자친구, 애완동물 모든 것과 떨어져서 모든 것을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러면서 저만의 힘이 생기고 다가올 무엇인가를 위해 단련해 나가고 있는 지금. 바로 저 다운 게 시간을 보낸 게 아닐까 싶어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은지 : 여전히 잘 사랑하고 있니? 너도, 다른 누구도, 어떤 것들도 말이야. 항상 어떤 일이든 때가 있는 거고 지금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도 해결될 때가 있으니 만약 지금 가진 어려움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껏 잘 지내왔 듯 네가 가진 엄청난 용기로 꿋꿋이 너답게 잘 사랑했으면 좋겠어. 너 자신을 아끼는 만큼 다른 것들도 아끼고 나누며 살아가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계속 지내줘. 항상 고마워 견뎌주고 사랑해줘서. 36살이지만 오늘이 가장 나의 젊은 순간이란 걸 잊지 말고, 하고 싶을 일을 맘껏 해나가길 바라. 늘 응원해!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은지 : 사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저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느낌이랄까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동안의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스럽고요. 너무 좋은 프로젝트에 저의 지금의 생각들과, 이때의 추억들을 잘 기록할 수 있어서 나중에 살아가며 기록을 볼 때 지금의 마음을 더 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요. 이런 것들이 더 잘 기록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고. 인터뷰를 통해서 채영씨 이야기를 듣고 저도 생각이 들고, 저도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너무 의미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은지 : 좋은 기회였다는 건 결과론적인 말이라고 해요. 제가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이 좋은 기회라 말할 수 있단 건 참 행복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함께 나누며 나의 주변에 있어준 아일랜드 한국 사람들과 외국인 친구들 또 이 낯선 땅에서 힘내며 살 수 있도록 응원해준 우리 가족, 나의 눈물 콧물 다 받아준 나의 한국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렵고 힘든 순간도 아름다운 것임을 알고 견디며 다시 힘내준 나에게도 진짜 진짜 고맙고요. 길 위에서 느끼며 배운 이 아름다운 추억들과 기억들을 잊지 않고 늘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저의 인생을 산다는 건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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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떨림으로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내 마음의 외침의 길을 따라가는 모든 순간들은, 사실 발 끝에서부터 끌어모은 용기가 필요 했고. 바람의 흔들림과 그림자 사이에 그 작은 빛을 따라 가는 길에는, 햇빛으로도 만져질 수 없는, 이 마음으로부터.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고 칠흙 같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우리다. 나의 깊은 마음을 보며, 나의 사랑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는 이 마음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고요한 떨림만이 내게 주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우리.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웃고, 춤추고, 여름하자.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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