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열한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editIMG_7928.png?type=w966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한 번째 인터뷰이는 미용을 사랑하는 아일랜드 DIT 대학교 학생이다. 아일랜드의 대학교는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4년차 용연(26)을 바다를 바라보고 향긋한 카페라떼를 마실 수 있는 바버샵 THE barbershop at 56에서 만나보았다.





editIMG_7904.png?type=w966







용연의 음악 Liam Payne & Rita Ora - For you (50shades 'freed' ost)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용연 :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온 26살 용연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용연 : 14년 10월 31일에 입국했어요. 학생비자이고 이제 곧 4년 차가 돼요. 처음엔 어학연수 6개월만 있으려고 했어요.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활하다 보니 좋아져서 지금까지 있게 됐네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용연 :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미용을 시작했어요. 직업전문학교는 아니었고, 인문계 학교를 다녔어요. 정규 교육 시간이 끝나면 야자시간이나 보충수업시간에 나가서 일을 했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대구 한의대에 있는 화장품약리학과를 갔어요. 미용에 관련된 과여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갔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부분이 많았어요. 좀 더 활동적인 걸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20살에 자퇴를 하고 군대를 갔죠. 빨리 간 편 이였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 엄마는 어떤 일을 할 거냐고 자주 여쭤보셨어요.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도 없고 목표도 없었죠. 다시 미용을 해야 하나, 다른 걸 알아봐야 하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엄마께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전역하고 바로 어학연수를 가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혀오라고 하셨어요.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한 1-2개월 있다가 바로 왔어요.




오기 전에 다양한 알바를 했어요. 중학생 때는 치킨집에서 일하기도 했고 카페에서 청소도 하고요. 물론 미용실에서 알바도 했죠. 동시에 두세 군데에서 같이 일을 한 적도 있고요. 아일랜드 오기 직전에는 2개월만 일을 하고 싶은데 기간이 짧아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단란 주점 주방에서 과일 깎았어요.(웃음) 더블린 오기 전에 뭐 하셨냐고 물어보시면 그런 것들을 했네요.




editIMG_7894.png?type=w966
editIMG_7895.png?type=w966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용연 :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포즈데이(Leap year,2010)라는 영화를 봤어요. 아일랜드 딩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 미국에 사는 여자 주인공이 자기 남자친구한테 청혼을 하려고 아일랜드에 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거든요. 아일랜드는 2월 29일 4년에 한 번씩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하는 날이 있대요. 그런 이야기에요. 영화에서 아일랜드는 바다와 산, 숲 그런 자연만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까 더블린에도 있을게 다 있더라고요.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용연 : 16살 때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그때 인종차별도 많이 받았어요. 한국 버스랑 달리 버스를 타면 마주 보고 앉는 좌석이 있어요.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저를 쳐다보면서 친구들한테 귓속말을 하는 거예요. 한 번은 뒤에서 누가 제 머리에 껌을 뱉어서 머리를 밀었어요. 물론 어느 나라를 가던 인종차별이 있는 건 맞는데, 유독 그 나라에서 겪은 게 많아서 다시 호주를 가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미국, 캐나다, 영국을 알아봤어요. 사실 처음엔 아일랜드는 생각도 못했어요. 캐나다랑 미국은 비자 받는데만 1년이 걸리더라고요. 심지어는 부모님 직업, 수익도 조사하더라고요. 다음엔 영국을 알아봤어요. 학비랑 생활비가 만만치가 않은 거예요. 마지막으로 차선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아일랜드가 나오더라고요. 앞서 말했다시피 영화 덕분에 아는 나라라서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오게 된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용연 : 6개월만 끝내고 가려고 했는데, 더 있으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6개월 더 연장을 했고요. 일 년 정도 있다 보니까, 좀 더 있으면 영어를 남겨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한국에 가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해서 한 번 더 연장했어요. 어학연수를 총 세 번 한 셈이죠. 어학원은 최대 세 번까지만 다닐 수가 있는데, 더 있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던 와중에, 대학교를 다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엘츠 시험을 치고 DIT(Dublin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교 입학을 하게 됐죠. 지금은 1학년 마친 상태에요. 처음 아일랜드에 와서는 일을 할 만큼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소부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시티에 있는 코리아나라는 한인 미용실에서 일을 하다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일을 한동안 그만두었어요. 처음 가는 외국 대학이었고, 언어장벽도 있었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1년이 지났고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집 근처 바버 숍에서 일을 다시 하고 있어요.





Q. DIT(Dubli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나요?



용연 : 마케팅을 전공하고 있어요. 디지털 마케팅과 마케팅 학과가 분리돼있기 긴 한데, 요즘은 마케팅이 거의 미디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전 마케팅이건 디지털이든 상관없이 배우고 있어요.

입시 과정은 아일랜드는 Secondary school을 마치면, 대학을 가기 위해 한국의 수능 같은 개념인 Leaving Certificate라는 시험을 봐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그 시험을 안 보고, 한국 고등학교에서 받은 성적을 학교에 의뢰해서 영어로 번역해서 자기소개서와 성적표, 졸업 증명서를 제출했어요. 아이엘츠 점수도 필요해서 준비해서 제출했죠.

DIT보다는 DCU(Dublin City University)를 더 가고 싶었지만, DIT가 집이랑도 더 가깝고, 시티에 있기도 하고 해서 DIT를 선택했어요. 사실 DCU에 지원을 했는데 성적이 모자라서 떨어졌어요. 모든 과목이 2등급 이상이었는데 수학이 7등급이었거든요(웃음). Trinity college와 DCU는 아일랜드에서 명성 있는 대학교에요. 그래서인지 입학하기 힘들더라고요. 고등학교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닌데도요. DCU를 떨어지고 나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어요. 이미 어학원을 3번이나 다닌 상태였기 때문에 이민국에서도 어학원으로는 비자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제게 알려준 상태였고요. 심지어 돌아가는 비행기 표도 끊었었어요. 사람들한테 물건도 팔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귀국 이틀 전에 DIT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라왔어요. 그래서 티켓을 왕복으로 끊고 한국 가서 부모님 뵙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한국에 안 다녀온 상태였어요.





Q. DIT 소개를 하자면?



용연 : Dublin Institute of Technology의 약칭이고요. 다른 학교에 비해서 학비는 저렴한 편이에요. 일 년에 10,000유로. Trinity는 3만 유로 정도 되고요, DCU는 13,000유로니까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한 것 같아요. 그리고 DIT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많이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 같아요. DCU에 다니는 친구가 수업방식을 말해준 적이 있는데, 책을 통한 수업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Trinity 도 그렇고요. 교수님들이 고전적인 학문 방식으로 많이들 수업을 하신대요. 클래식이죠. 그런데 DIT는 활동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수업을 할 때가 많아요. 굳이 컴퓨터가 필요 없는 과목인데도 수업할 때 교수님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직접 같이 찾아보면서 공부할 때도 많았고요. 책으로 이론만 배우는 수업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과제가 무지 많고요, 프로젝트하면서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을 적용하는 활동들이 많았어요.





Q. 외국 대학 생활 한국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요?



용연 : 많이 다를 것 같잖아요. 그런데, 한국생활이랑 진짜 똑같아요. (웃음) 전날 과음에 숙취로 비몽사몽 수업을 듣고요. 수업 마친 뒤에는 대충 때우고 집에 가기 바빠요. 그룹 과제는 항상 제출 일주일 전 심지어는 제출 3시간 전까지 모여서 벼락치기 하고요, 매주 목요일마다 늘 스튜던트 나이트를 해요. 이곳 문화가 그렇게 정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주 목요일에 학생들이 제일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나이트클럽에서 주류 할인 행사도 많이 하고요.



DIT 학생들이 많이 가는 장소가 있다면, 데임 스트리트에 있는 Carma요. 그리고 생각보다 Diceys 클럽은 많이 안 가는 편이고요. 밥은 학식 먹거나 브리또 많이 먹어요. Boojum이랑 Tolteca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웃긴 게 한국인들은 밥 먹자고 하면, 무조건 맛집 찾아서 가잖아요. 근데 이 친구들이랑은 그런 거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먹는 것을 되게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먹는 것도 되게 조금 먹고요.




editIMG_7900.png?type=w966





Q. 바버 숍 일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용연 : 16년 5월에 한국에 다녀왔을 때, 미용실에서 파마하고 있는데, 다시 미용일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쉬는 동안에도 집에서 친구들 머리 잘라 주긴 했지만 정식적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할 줄 알면 됐지’하고 손을 놓고 있었죠. 그러다 16년 6월 말에 아일랜드 한인 미용실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직장에서는 인간관 계면에서 많이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친절하게 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서로한테 익숙해지다 보니까 양보도 덜하게 되고, 불필요한 말도 하잖아요. 점점 서로 감정 표현하는데 솔직해지니까 본의 아니게 사람들과의 다툼이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그 가게에 있는 분들은 거의 5-12년씩 일하셨던 분들이라, 제가 숙였어야 했는데 어린 마음에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없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불화가 계속해서 생기니까 일단은 아쉽지만 떠나는 게 맞겠다 싶어서 떠나게 됐죠. 그 뒤에는 집에서 한국인들 머리를 잘라주는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파마 같은 건 못하지만, 염색이나 커트는 할 수 있잖아요.




1학년 첫 학기 때 언어장벽 때문에 수업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한 학기에 10과목을 공부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그중에도 제가 제일 힘들어했던 과목이 정치 관련 수업이었어요. 한국 역사, 정치도 공부하려면 어려운데 그걸 영어로 하려니 이게 뭔가 싶었죠. 그렇게 중간고사를 치는데, 시험 일정이 하필이면 마케팅 전공 시험이랑 정치학이 겹치는 거예요. 같은 날에 두 개 과목 시험을 쳐야 하는 거죠. 다른 날은 하루에 하나씩이었는데 하필 그날만요. 그래서 둘 다 공부를 해서 그냥 중간 성적으로 갈까 아니면 마케팅에다가 다 쏟아부을까 했는데, 마케팅이 내 전공이니까 마케팅 위주로 공부하기로 했어요. 정치학은 그냥 훑고 가는 정도로만 공부했죠. 그런데 항상 시험문제는 본인이 원했던 식으로 안 나오죠(웃음). 결론적으로 그 시험은 말아먹었어요. 결국은 그 과목을 Pass 하지 못하고 1학년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아일랜드 대학은 정규과목이 아닌 교양 과목도 한 과목이라도 떨어지면 다음 학년에 진급할 수가 없어요.




답답한 마음에 어느 날은 그냥 막 걸었어요. 센티멘털한 음악 배경으로 깔아놓고 내가 세상에서 곧 죽을 것처럼 걷고 있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이 가게 주변에 오게 됐죠. 일단 브레이나 호스를 가지 않고도 바다가 보이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바버 숍이 보이더라고요. 안에 슬쩍 들여다봤어요. 누군가 한 명이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 후에 이력서를 낼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가 다니는 GYM에 친한 아이리시 친구가 여기로 머리 자르러 오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이 바버 숍에 이력서 내볼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니까, 본인이 거기 사장님 아는데 사람도 되게 좋고,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친구가 먼저 사장님한테 가서, 내 한국인 친구가 이력서 들고 여기 올 거야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후에 여기에 아무 연락 없이 이력서만 들고 왔거든요. 사장님이 절 보자마자 하시는 말이 “너 기다리고 있었어”. 놀라지도 않으면서요. 다음날 바로 일을 시작했죠. (웃음)




운명론을 믿어요. 항상 힘들 때면 그 상황에 빠져있기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무조건 그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그 한인 미용실에서 사람들과 잘 지냈다면, 시험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 않을까요.






Q. 얼마나 일하셨는지?



용연 : 지금 현재 바버 숍에선 6개월 정도 됐고요, 전에 일했던 한인 미용실은 규모도 되게 작고, 서로 너무 붙어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여기는 처음엔 위화감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부자동네고 해서 살짝 걱정했는데, 오히려 다들 너무 잘 챙겨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일랜드에 7년 정도 사신 터키 출신 사장님과 둘이서 일해요. 사장님은 친절을 넘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아일랜드에 와서 제 자신이 바뀌게 된 계기는 바로 사장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어떻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은 분이세요. 물론 평소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요.(웃음) 티격태격 맨날 싸우면서도 둘 중 하루라도 누가 쉬는 날이면 세상을 잃은 얼굴로 일해요.


가게가 숍앤 숍앤 숍이에요. 건물 입구에는 gorgeous 한 커피를 파는 ebb&flow 카페가 있고요, 그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오시면 숙녀분들을 위한 hairdresser가 있고, 그 미용실 안쪽으로 또 들어오시면 저희 바버 숍이 있어요. 최근 아일랜드에는 치솟는 가게세와 세금 때문에 이런 숍 앤 숍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전공하고 있는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이건 윈윈 전략이에요. 일단 저희 건물 라인에는 카페가 저희뿐인데다가 이 카페가 더블린 북쪽 베스트 카페로 수상을 해서 많은 손님들이 오구요, 미용실과 바버 숍 같은 경우에는 카페에서 손님이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직접 이 공간을 보고 많이들 오세요. 공짜 광고죠. 또 여기서 머리하시는 분들은 무료로 커피를 제공해드리는데 그때 그 커피 맛에 빠져서 계속 카페 이용해주시는 손님들도 많고요. 3개의 가게가 상부상조하고 있답니다.




editIMG_7993.png?type=w966
editIMG_7955.png?type=w966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용연 :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았어요. 부모님이 주야로 일을 많이 하셔야 했어요. 그래서 외할머니가 저를 18살까지 키워주셨거든요. 아일랜드에 오고 외할머니가 항상 그리웠는데, 작년에 할머니랑 막내 이모, 저희 사촌동생이 아일랜드에 방문했어요. 좋은 곳 다닐 때마다 “할머니 여기 데려 오고 싶다”, “할머니랑 이거 같이 먹고 싶다” 했었는데 같이 보낸 며칠이 꿈만 같았어요. 체코 프라하, 아일랜드 코네마라, 더블린 시내 관광을 했고요, 아직도 많이 생각나요. 할머니 공항에서 보내드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할머니랑 다녔던 거리가 자꾸 생각나서 한동안 그 거리로 못 다녔어요. 감수성이 좀 풍부한 편이라서요(웃음) 그리고 같이 생활하는 이곳 친구들이랑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추억 쌓았을 때, 매 순간들이 참 소중해요.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가 저는 가장 행복하죠.





Q. 할머니랑 여행 다니시는 건 안 힘드셨어요?



용연 : 10박 11일 여행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사실 체코 프라하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셨어요. 왜냐면 그때 할머니께서 거의 반수면 상태로 다니셨거든요. 그때 정말 힘드셨던 거죠. 시차도 적응 안 된 상태에서 외국이니까 항상 긴장하고 돌아다녀야 했고, 멀미 때문에 처방된 수면제까지 드셨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시차가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서 왔던 아일랜드는 그나마 기억난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얼마 전에 JTBC 예능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을 보시고는 “저기 우리 갔었던데 아니니” 하시더라고요.




Q. 할머니랑 연락 자주 하세요?



용연 : 사실 그런 거 있잖아요. 평소에는 생각 엄청 많이 하고, 전화해야지 하는데 막상 잘 안 하게 되는 거요. 또 시차도 많이 나잖아요. 할머니가 카톡이라도 잘 사용하시면, 편하게 연락할 수 있을 텐데 카톡 보내도 안 읽으세요.(웃음) 아무튼, 제일 마음이 아픈 건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머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을 때에요. ‘아 이걸 받았어야 했는데’ 싶죠. 할머니가 휴대폰 문자를 전혀 못 쓰시거든요. 얼마 전에 전화했었는데 할머니가 못 받으신 거예요. 후에 오타투성이로 잘 지내냐고 카톡이 온 거예요. 그거 보고 아침부터 엄청 울었어요. 할머니는 거의 엄마죠. 엄청 깐깐하시고 곧바르시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셨어요. 요새 들어서 좀 감정적으로 많이 여려지신 것 같아서 걱정이 돼요. 우시는 걸 여기 와서 제가 처음 봤어요. 공항에서 한국 가실 때, 우셔가지고요. 몸은 건강하신데 마음이 자꾸 여려지시니까요. 할머니가 저를 마음으로 키웠다고 하시거든요. 전화하실 때마다 우시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용연 : 항상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거요. 친하게 오래 알고 지내는 아이리쉬 친구들도 많고 유럽 친구들도 많은데, 깊은 감정을 교류하게 되는 건 한국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게 한국 사람들은 6개월, 길게는 1년 있다가 가니까요.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든데, 좋은 사람을 어쩌다 알게 되어도 언젠간 보내야 하니까 그런 게 항상 아쉬워요. 친구들은 다들 즐거운 곳으로 돌아가는 입장이지만 저는 항상 보내기만 하는 입장이잖아요.



아일랜드에서 사람을 만나면, 일부로 덜 잘해주고 마음을 닫고 만나려고 해요. 오래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굳이 왜 잘해주나 싶은 거죠. 그런데 사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요. 좋아하는 감정을 못 숨기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오히려 떠나보내는 그런 아쉬움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전에는 어린 마음에 괜히 사람들한테 일부러 까칠한 척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요. 이 사람이 언젠가 떠날 것을 아니까 그만큼만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 어린 마음인 거죠. 아예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한국 땅에 있으면서도 1년에 한 번 못 보는 사람 되게 많거든요. 그렇잖아요? (웃음)





Q. 좋은 사람들과 특별히 좋았던 기억이 있나요?



용연 : 지금은 일을 시작하고 돈의 맛도 알고 사치도 조금씩 부리면서,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다니는데, 한창 어학원 다니면서 돈이 없었을 때 사진을 보면, 이렇게 내가 못났던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요. 그런 때 함께 보냈던 어학연수 동기 형, 누나들이 있어요. 그때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서로 양보하고 아껴가면서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나요. 작년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다들 다른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지내더라고요. 지역마다 찾아가면서 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시간을 더 보내는 게 맞더라고요. 다들 못 보고 가는 게 아쉬웠죠. 그러다가 모든 친척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지리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우리 용연이를 핑계로 만나야 한다고 하면서, 다들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날한시에 휴가를 쓰고 지리산으로 온 거예요. 와… 지리산까지 가서 그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데 그 고맙고 가슴속에서 나오는 그 감정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안 그래도 가족들한테 형, 누나들 다 소개해주고 싶었거든요. 제일 힘들 때같이 있어줬던 사람들이라고요.



아일랜드에 온 후로, 사람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느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스파이어 바로 옆 우체국 앞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머리를 잘라주고 있어요. 그곳에는 옷, 커피, 음식 나눠주는 봉사자들도 있어요. 저희 사장님께서 1년 전 부터 그 일을 시작하셨어요. 사장님은 정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자기 같은데. (웃음) 1년 전에는 자원봉사자도 없고 해서 사장님 혼자 하시고 했거든요. 최근에 2-3개월 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사장님이 뉴스에서 인터뷰를 하셨거든요. 지금은 티켓 분배하는 사람들, 머리 자르는 사람들 해서 9명 10명이서 같이하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노숙자들을 많이 무서워했거든요. 초반에는 안 하겠다고 했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장님의 좋은 의의를 느꼈고, 제가 겪었던 고마움을 베풀기 위해 시작하게 됐죠.




노숙자분들 머리 무료로 잘라준다고 하면, 이런 기회가 언제 있을까 싶어서 막 짧게 잘라달라고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이 노숙자가 되기 전에는 분명 신사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말투도 그렇고 원하시는 스타일도 그렇고 젠틀하다고 해야 하나.





editIMG_7928.png?type=w966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용연 : The barbershop at 56. 제 직장입니다.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집에 혼자 있을 땐 상상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해요. 좋은 상상도 할 수 있는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마음도 시끄럽고 머리도 시끄러워지고, 우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곳에 오게 되면 바쁘고 활기차고 긍정적인 분위기 덕분에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야기하잖아요, 겉모습 보다 사람은 심성이 착해야 한다, 머릿속에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미적인 부분을 아주 배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상형 얘기할 때 얼굴 안 본다고들 이야기해도 사실 외모 안 보는 사람 없잖아요? 심지어는 기업에서도 직원의 능력과 성실함으로 뽑겠다고 하는데, 면접 때 첫인상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했을 땐, 오히려 본인의 심성과 지식이 외모적인 부분과 덧대어지면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어요.



미용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쁘고 아름다워져서 기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미는 이 미용실에서 예뻐져서 나가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가 집에서 본인을 꾸밀 줄 아는 그런 모든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머리 예쁘게 드라이해서 집에 보내면, 오늘은 예쁘게 보낼 수 있어도 집에 가면 산발되고 그러잖아요. 이 사람들이랑 머리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람들에 대한 자신감에 대한 애티튜드도 많이 상담을 하는 거죠.



처음엔 인종차별적 발언을 많이 들었어요. 저보고 트레이닝하는 애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에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했었거든요. 지금은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나한테 한 번 잘라봐. 그러면 그 말이 쑥 들어가게 해줄게.” 이런 마인드요.




editIMG_7903.png?type=w966
editIMG_7904.png?type=w966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용연 :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감정 표현에 좀 더 솔직해졌어요. 한국인들은 매너면 매너라고 생각할 수 있고 문화적인 면으로도 볼 수 있는데, 자기감정을 숨길 수 있어야 하고 남들을 더 많이 생각해줘야 하고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느낀 외국 사람들은 감정 표현에 더 충실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감정 변화가 오락가락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이런 게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 감정을 숨기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이나 상상을 키우게 돼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요. 멀어진 마음이 처음엔 개울물이었는데 나중엔 그랜드 캐니언이 되니까요. 처음에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조금은 오그라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게 이거다, 제가 서운한 게 이거라고 이야기를 해야 서로 오해가 생기는 것을 속으로 끙끙 앓으면 오히려 문제가 더 생기는 거죠. 그리고 기쁠 때도 더 기쁘다고 해야 상대방도 더 뿌듯하잖아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용연 : 아직도 생각 중이에요. 여기에 4년 동안 학생으로 있었잖아요. 3년만 더 있으면 서른이니까 그때까지 공부만 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뒤처진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그래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이 다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가치를 찾아 줄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빨리 사업도 하고 싶고 일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일단은 학교생활을 빨리 마치고, 일하고 싶어요. 학교생활은 2년 대학원 과정을 한다면 3년 남았고요.



또 한가지 고민은 학교생활 충실하게 하면서, 아일랜드에 어떻게 하면 오래 있을 수 있을 가죠. 사랑하는 가족들 보고 싶은 친구들 생각하면 돌아가는 게 맞는데, 21살 때 여기 와서 학교를 마치면 29살. 사실상 20대를 여기에 쏟아부었잖아요. 그런 나라인 만큼 돌아가려고 하면 돌아가기 싫을 것 같아요. 사업 하나를 운영해서 한국하고 아일랜드를 오고 가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바버 숍은 거의 더블린에 과부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거든요. 그래서 바버 숍보다는 좀 더 새로운 분야를 찾아보고 싶어요. 그래서 마케팅도 공부하고 있는 거고요. 거기에 더해서 대학원을 하게 되면, 경영 쪽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용연 :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거요. 훌륭한 미용사가 되자는 꿈도 있지만 그거는 제가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용연 :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영감을 얻어가지고, 아이디어를 내고 싶어요. 손님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이 와요.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정보도 많이 얻게 되고, 기회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건 이 사람들이랑 이야기해서 도움을 받게 되겠다, 이건 같이 가면 되겠다 싶은 거죠. 항상 제가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해답을 찾아주는 느낌이에요. 더블린은 나쁘게 말하면 학연 지연이 심한 것 같거든요. 멀고 어색하고 답답했던 부분들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죠. 역시 이런 건 무시 못하는구나 싶어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용연 :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워낙 인스타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기 쉽잖아요. 비록 오랫동안 연락 안 했던 친구들이라도 아일랜드에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뻘쭘함을 무릅쓰고 연락해서 도움을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날씨 대비 열심히 하시고요.(웃음) 한마디로 아일랜드를 잘 아는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행도 많이하시구. 사실 제가 아일랜드 여행을 많이 안 갔어요. 아일랜드에 오래 있을 거 아니까 오히려 안 가게 되는 거예요(웃음). 나중에 가면 되니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빨리 부지런하게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용연 : 세 글자로 해주시면 안 돼요? 며칠을 고민했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웃음) 사춘기요. 사춘기에는 감정 기복도 심하고 되게 많은 걸 경험해보게 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제 사춘기 때 너무 일만 해가지고 그때 뭐 했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와서 많은 것을 많이 해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늦은 사춘기? 오! 늦은 사춘기 할까요?(웃음)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용연 : 36살 용연아 그동안 고생 많았지? 어쩌면 한창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되게 궁금하구나. 지금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들 잘 간직하고 있니? 그때도 네가 지금과 같은 것들에서 가치를 느끼는지 궁금하구나. 후회하지 말고 네가 그 사람들, 그 꿈들에게 기쁘고 행복할 때 더 노력하기를 바랄게. 집에 들어가면 귀찮고 피곤해서 바로 누워 유투브나 보고 싶겠지만, 그러지 말고 (웃음) 더 열심히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파이팅! 솔직히 36살이면 아직 많이 젊죠.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용연 :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저에게 스스로 많은 신경을 안 쓴 것 같아요. 아일랜드에서 뭘 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을 안 남겼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이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게 되면 뭔가 굉장히 뿌듯할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는 그런 기억이랄까요. 엄청난 기록을 남긴 것 같아요. 인터뷰하는 중에 기억도 안 나던 게 문득문득 떠오르고요. 많이 반성도 하게 되는 것 같고요. 학교 떨어진 거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싶은 생각도 들고요. 할머니 이야기하면서 더 할머니 그립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 친구들도 더 고맙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요. 많은 것에 대해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용연 : 아일랜드에 오시는 많은 분들께 아일랜드는 너무 작아서 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그런 소소한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시지만요. 하지만 동네가 작아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도 더 많이 들고요. 모두가 작은 것에서부터 가치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오늘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이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도요. 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ditIMG_7986.png?type=w966
editIMG_7990.png?type=w96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사람 인가보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살았다는 것보다 더 질긴 인연이 있을까. 모든 것은 타이밍이고, 돌아봤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오늘을 이겨내며 앞으로를 살아 갈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한날 한시에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사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가장 소중함을 잊지말자.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 처럼.









* 더블린 사람들 2018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좋아요와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페이스북에서 더 빠르게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페이스북에 <더블린사람들 2018> 검색!

https://www.facebook.com/Dubliners2018/







Project Manager : 채영(Lucky)
instagram.com/icanreadthelightinyourmind
Assistant Editor : 영현
blog.naver.com/cyh1928

초상권 및 저작권은 모두 <더블린 사람들2018> 프로젝트에 귀속되어 있으며, 허가 없는 2차 가공시 법적 제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Luck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