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 번째 인터뷰이는 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육학도 유학생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아이들과 책을 마주했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6개월 차 윤실(22)를 하페니 다리 앞 더블린의 작은 책방 THE WINDING STAIR BOOKSHOOP에서 만나보았다.
윤실의 음악 CITIZENS - True Romance (뷰티인사이드 OST)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윤실 : 안녕하세요. 학생 비자로 온 22살. 윤실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윤실 : 17년 10월 13일에 왔습니다. 6개월 쯤 됐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윤실 : 대학교를 가게 되면서 친구들보다 부모님으로부터 좀 이른 ‘독립’ 을 하게 되었어요.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면서 제 모든 생활에 책임을 갖고 살았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무작정 해보기도 했어요. 전공이 초등교육인지라 현장으로 교육실습도 많이 나갔어요. 교양이나 대외활동을 통해서 다른 분야를 접해 볼 기회가 많은 일반 대학들과는 다르게 저희는 특수 목적 대학교라 4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교과지식과 지도법만을 배워요. 학교생활에 지루해 질 때 쯤, 다른 분야도 접해보고 싶었고 자연스레 세계여행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대학교 1학년을 마칠 때 쯤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됐죠.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단 돈을 많이 모았어요. 확실하게 준비를 끝낸 후에 알리고 싶었거든요.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천만 원 정도나 되는 돈을 모았어요.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강의가 끝나면 과외, 학원, 영화관, 맥주집, 치킨집, 예식장,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2년이 걸리더라고요. 그렇게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고 오게 된 거죠.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윤실 : 장기간으로 세계여행을 하면 확실한 목표가 없으니까 제 자신이 지칠 것 같더라고요. 나라를 유럽 쪽으로 좁혀가다가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됐어요. 유럽 국가에서 영어를 쓰는 곳이 영국과 더불어서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영국도 희망했었으나, 비교적 생활비나 월세를 적게 부담하며 생활할 수 있는 아일랜드를 택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일랜드를 선택한 게 잘한 것 같아요. 지내면서 느낀 게 저는 런던 같은 대도시보다 더블린 같은 작은 도시들과 잘 맞더라고요. 영국에 갔어도 유럽여행을 쉽게 갈 수 있는 환경과 비가 자주 오는 날씨는 비슷했을 것 같은데 물가나 집세 걱정 때문에 생활하면서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윤실 : 주변에 아일랜드에 먼저 다녀오신 분이나 잘 알고 계신 분이 아무도 안 계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였는걸요. 한국인들에게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생소하잖아요. 그래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인터넷이나 SNS에 검색해서 사진을 보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생각보다 우중충해보이는 느낌이 들었고, 또 유학원에서 각 나라의 장단점을 비교해 놓은 표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루하다’ 고 적혀 있어서 사실 오기 전 까지 별 기대가 높지 않았어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윤실 : 우울하다. 무섭다. 작년 10월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느즈음에 제가 도착하자마자 아일랜드에 허리케인왔어요. 학교도 다 휴교를 하고, 작고 큰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었죠. 또 한국에서 약속을 잡고 온 단기방에 문제가 생겨서 길거리에서 잘 뻔도 했었어요. 그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마냥 무섭기만 했어요. 아침형 인간인 저에게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겨울의 유럽은 참 우울하기도 했고요. 첫 시작부터 꼬이니 내가 이 나라에 잘못 온 건가 부정적으로 의미부여를 했어요. 첫인상은 그렇게 마냥 좋지 않았었죠.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윤실 : 아일랜드에 도착한지 한 달 만에 S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한국에서도 한 달 정도 일을 해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았죠. 외국 친구들과 같이 일을 하고, 외국 손님을 받고, 이런 게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밌어요. 그렇게 하면서 어학원을 정말 열심히 다녔어요. 또 원래 목표가 세계여행이었으니, 한 달에 한 번씩 여행가는 것을 목표로 정해 실천을 했고, 여행가기 전까지 일도 학교도 열심히 다녔죠. 운동을 취미 생활로 만들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며 여행으로 보상을 받았더니 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갔네요. (웃음) 원래는 걷기만 하다가 헬스장을 등록했어요. 져비스 쇼핑센터 옆에 밴덤짐이라고 한 달에 23유로에요. 사실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습관성형을 하고 싶었어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기 자신을 가꾸고 싶었달까요. 한국에서는 학교에 치이고 일에도 치이면서 하도 바쁘니까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 별로 없었거든요. 덕분에 여유롭게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기도 하면서 저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아요.
Q. 여행은 어디 어디 다녀오셨나요?
윤실 :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북아일랜드, 프랑스, 독일에 다녀왔고요. 곧 포르투갈에 갔다가 5월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스페인,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보통 혼자서 여행을 많이 해서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행을 가서 오히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일을 하면서 손님들한테 말을 많이 거는 편이거든요. 한번은 한국에 관심이 많으셨던 손님이 계셨는데 독일분이셨어요. 그때 독일을 여행 갈 계획이었거든요. 연락처를 주고받고 계속 연락을 하다 보니까 운 좋게 독일에서 만나게 된 거죠. 현지인과 여행을 하니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내가 내 힘으로 인연을 만들고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도 참 새롭던데요. 또, 벨기에 브뤼허를 갔는데, 아침에 조식을 먹다가 앞에 계신 분이 한국인 같아서 말을 걸었는데, 일본인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도 저처럼 더블린에서 공부를 하는데, 벨기에로 여행을 왔던 거였죠. 신기했어요. 친해져서 더블린에서도 만났었어요. 스스로 친화력이 좋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말을 안 걸면 후회할 것 같다는 순간이 참 많더라고요. 말을 걸면 술술 풀리잖아요. 말을 걸기까지 걸리는 내적인 고민은 참 많지만 말을 걸었을 때 일어날 일들과 안 걸었으면 안 일어날 일들의 차이는 참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 없이 말을 많이 거는 편인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특별히 관심 있었던 일이 있나요?
윤실 : 일을 하면서 악명 높은 아이리쉬 십대들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어요. 가게 물건을 훔치는 건 물론이고 술에 취해서 오거나 가게 안으로 눈뭉치를 던지는 등 인종 차별을 심하게 하는 친구들도 종종 봤죠. 아이리쉬 어른들이 제대로 나서서 그만해라고 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나중에는 모든 아이리쉬 십대들이 이런걸까 하면서 어린 친구들을 볼 때 한심하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던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 혼자 생각하다가 전공이 초등교육이어서 그랬는지 아일랜드 교육방식 쪽으로 관심이 자연스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리쉬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아이리쉬 학교나 가정적 분위기를 많이 물어봤어요. 한 번은 아일랜드 초등학교에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을 하려고 하니 외국인에게는 참가 기회가 없더라고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같이 사는 하우스 메이트 분이 알고 보니 primary school (초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계신 분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죠. 들어보니 초등학교에 유치원 과정이 포함돼 8년 인 것 뿐이지 6학년 체계인건 똑같더라고요. 한국이랑 비교했을 때, 유치원 과정을 초등학교 포함을 시키면 연계성이 높아질 테니까 그게 참 좋은 점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국처럼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들이 많아서,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돌볼 수 없는 환경이 같았고요. 한국에서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 휩싸여서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이나 사교육 기관에 많이 보내잖아요. 아일랜드 초등학생들은 방과 후에 악기나 운동을 배우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아이리쉬 십대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시티에 종종 나타나는 친구들만 보고 아이리쉬 십대 전체를 안 좋게 생각했던 제 자신도 반성했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부는 고등학교 2-3학년 때가 되어서야 대학 입시를 위해서 열심히 하기 시작하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대학 입시 시험에 떨어져도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많아서 우리나라처럼 수능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또 시티를 다니다 보면 교복을 입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이잖아요. 아일랜드에서는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교복을 입는다고 하더군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참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Q.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계기는요?
윤실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제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셨거든요. 특색이 있으셨던 선생님이셨어요. 집중력 독서라고, 하루에 최소 30분 이상 책을 꼭 읽게 하셨어요. 그때 인생 통틀어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아요.(웃음) 그 이후로 책을 좋아하게 됐고,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어떤 모습의 교사가 되고 싶은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모두 좋은 분이 셨지만 어떤 선생님들께서는 경쟁을 너무 심하게 붙이셔서 굳이 그렇게 경쟁을 붙여야 하나 싶은 마음에, 선생님이 되면 적어도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교대로 진학을 하게 된 거죠.
한 학기에 한 번씩 교생실습을 나가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요새 애들이 유행이나 접하는게 정말 빨라요. 쇼미 더 머니가 한창 유행하던 때는 웬만한 어른만큼 랩을 잘 하는 애들도 있더라고요. 걸그룹들 춤을 저보다도 잘 추는 애들도 많고요. 그런데 그만큼 안 좋은 것들도 일찍 배우는 거 같아요. 담배도 진짜 일찍 배우고. 집이 광주광역시라 광주지역 친구들 밖에 못 본 것도 있지만, 광주 분위기가 교육열이 치열해서 제가 경험 했던 경쟁을 부추기는 선생님처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한국 교육 사회가 여유가 없으니까, 변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참 아쉽죠.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중요한 직업이잖아요. 나중에 사회를 이룰 주역들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제 주변 친구들만 봐도 여유가 없어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휴학 없이 공부를 해 임용고시를 보고 선생님이 되는 건데, 휴학을 하는 케이스가 정말 드물어요. 100명 중에 한 명? 저는 1학년 2학기 끝날 때 즈음 회의감이 찾아오더라고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간절함 없이 학교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정해준 것들만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쉼 없이 해서, 교사가 일단 되면 과연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배운게 학교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밖에 없는데, 제가 학생들에게 ‘교사 최윤실’이기 이전에 ‘인간 최윤실’ 로서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저부터 경험 많고 좋은 사람이 되고, 선생님이 되어도 늦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가장 큰 고민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였죠. 휴학을 해야한다고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많이 고민했죠. 부모님이 정말 보수적이시거든요.
Q.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윤실 : 사실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제 꿈도 말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취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등록금도 벌어야 하는데, 거기다가 세계여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2년을 벌어서 충분히 모았을 때 부모님께 말을 했죠. 엄마가 미쳤냐. 빨리 졸업해야지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모은 통장 기록이랑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보여 드리니, 왜 10월에 가냐고 한 달 뒤 인 7월에 가라고 하셨어요. (웃음) 많이 믿어주셨어요. 참 감사하죠. 제가 부모가 된다면, 저희 부모님처럼 키우고 싶어요. 독립을 시키는 거죠. 스스로 선택하게 놔두면서 자기 인생을 책임지게 하고 싶어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요?
윤실 : 정말 많아요. 우선 저는 날씨가 좋아질 때마다 행복해지거든요. 집 갈 때, 하늘 색깔이 진짜 예쁠 때 있잖아요. 그런 소소한 순간에도 갑자기 정말 좋아져요. 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가장 좋았어요. 크리스마스에 벨기에, 루마니아, 터키,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과 홈 파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일랜드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수 없었을 귀한 인연들인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각자 나라 음식을 가져왔는데 저와 친한 한국 언니는 삼겹살과 비빔면을 준비했어요. 삼겹살 인기가 진짜 좋더라고요. (웃음) 이 외에도 일하면서 파키스탄 친구들과 독일 친구를 만난 것도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최근에 벨파스트로 축구를 보러 갔던 것도 가장 좋은 기억이었죠.(웃음) 제가 평소에 축구를 참 좋아하는데 , 아니 어떻게 내가 아일랜드에 와있을 때 국가대표가 와서, 직접 응원을 할 수 있었지 하면서 정말 행복해했어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윤실 : 날씨에 따라 감정기복이 심한 저에게는 날씨가 참 힘들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해프닝은 가게에서 제가 일을 한지 얼마 안 된 날 100유로가 없어진 날이었어요. CCTV에 애매하게 찍혀서 제가 누명을 쓰게 된 거죠. GARDA 가 오고, 저만 조사를 받았어요. 가뜩이나 온 지 한 달 만에 일을 해서 영어도 안 되고, 너무 답답하고, 그깟 100유로를 훔치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료 직원이 제 말을 안 믿어줬어요. 그때 진짜 너무 서러웠어요. CCTV 분석을 맡겨서 느리게도 보고, 빨리 감기도 보고, 한 시간이 넘게 모든 직원들이 저를 의심하던 그 순간은 내가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에 그치지 않는거구나 싶고 서러웠어요. 조사를 받는 와중에, 새벽 1시에 끝나면 5분 뒤에 찍힌 것을 보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힌 게 나온 거죠. 미안하다고도 안 하더라고요.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죠. 훔치지도 않았는데, 괜히 스스로가 불안한 거예요. 내가 진짜 훔친 건가? 다른 곳에다 놓았나? 이러면서.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라는 것을 느꼈죠. 내가 아이리쉬였으면 이랬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영어에 대한 제 욕심 때문에도 힘들었어요. 20년이나 넘게 한국어를 쓰면서 살아왔으니 영어가 빨리 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일인데, 짧은 기간 안에 영어를 마스터 하고 가겠다는 무모한 도전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컸었죠. 외국친구들과 많이 이야기하며 즐기면서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여겼으면 좋았을텐데, 공부에 불과하다라 의식한 나머지 학문적으로만 접근하고 책에만 머리 박고 공부하곤 했으니까요. 막상 아이리쉬를 만났을 때 주눅 들어 당당하게 한마디 못 뱉는 제가 싫어지기도 했어요. 아일랜드에 와서 얻어가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 때였죠. 무언가를 꼭 얻어가려고 하면 욕심이 생기니까 힘들게 했어요.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요?
윤실 : 하페니 브리지 앞 THE WINDING STAIR BOOKSHOOP. 올 때마다 좋아요. 서점을 정말 좋아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더블린에 있는 북샵을 자주 가려고 했어요. 이 서점에서는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서 모든 가게를 볼 수 있어요. 제 2의 꿈인데, 한국에서 교사를 하다가 작은 독립서점을 열고 싶어요. 친구가 만드는 엽서도 팔고, 좋은 책도 팔고, 좋은 노래도 틀어놓고, 된다면 커피도 팔고. 10년 안에는 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60살까지 똑같은 일만 하잖아요.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 최근에 생긴 꿈이에요.
교사 이외의 꿈을 찾고 싶었거든요. 여행 다니면서 어느 도시를 갈 때마다 식물원 그리고 서점은 꼭 가더라고요. 그렇게 매번 여행 다닐 때마다 가다가, 최근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시립 도서관을 갔을 때 알게 됐죠. '아 내가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구나.' 하고요. 그때 열고 싶다고 생각 들었어요. 한국에서 친구들 생일 때마다 좋아하는 책을 선물해주거든요. 나중에 책방을 하면 제 취향이 담긴 코멘트를 담고 싶어요.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이유가 찾아온 사람들이 약속한 것처럼 조용히 책을 읽다 가고, 사진도 소리 내서 찍지 않고, 그 공간, 그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가는 느낌인 거죠.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한 공간 안에 모아 두고 싶거든요. 푸르른 것도 좋아하고, 커피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독립서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도 자주 가는 편이에요. 현대미술 보다는 회화 작품이 잘 맞더라고요. 일상에 여유가 생겨 작품을 보러 다니니까 좋더라고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윤실 :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는 것 같지만, 첫째는 한국에서는 안 맞는 사람들이 있거나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피하기만 했거든요. 저와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봤죠. 여기 와서도 물론 안 맞는 사람들 있었지만, 모두 좋게 좋게 끝났거든요. 돌아보니 제가 변한 걸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는 하도 다양한 인종, 종교, 취향, 식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니까 나와 다른거지, 틀린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이제야 제가 조금 두루뭉술해진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한국에 있을 때는 제 못난 모습이 보이면 저를 미워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항상 자존감 부족에 쉽게 우울해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믿을게 저밖에 없는 거잖아요. 집을 구하는 것도, 일을 구하는 것도, 여행을 다니면서도 그렇고요. 타국에서 살면서 의지할 사람이 자신 밖에 없잖아요. 힘들긴 하면서도 다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못난 모습이 보여도 저를 참 사랑해줬어요. 네가 제일 똑 부러지고, 최고야. 너라서 다 잘 해냈어. 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아일랜드에 온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아일랜드에 오게 되어서 다른 친구들 보다 제가 조금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고민도 많았는데 확실히 그 고민은 떨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서 어느 누구를 만나도 제가 막내였어요.(웃음) 심지어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왔냐는 소리도 듣기도 했고요. 여기 오니까 30살 언니, 오빠들도 회사를 그만두고 오셨고, 다른 목표, 꿈들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결코 늦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돌아갈수록 더 많은 걸 얻는다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직선으로만 갔으면 못 봤을, 못 느낄 것들을 많이 얻었죠.
또 느낀 게 한국이 정말 편한 나라였구나,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된 것도 있고요. 떠나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소중함을요. 그리고 그 누구도 제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구나, 빠릿빠릿하게 닥쳐올 일을 준비하는 자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오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것들이죠. 그리고 제가 더블린을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유럽들을 가면서 더블린이 좋다는 것 또한 알게 됐죠. 여행 갔을 때 외국분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 더블린은 유명한 게 뭐야? 했을 때 스파이어 앞에 동상 이름을 설명하고 싶은데. 더블린에 반년이나 살았으면서 그 동상 이름 하나 모르는 거예요. 한심스러웠어요. 후회하기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사랑해주고 관심 갖자고 결심했어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윤실 : 일은 이제 그만뒀고, 곧 포르투갈 여행을 갔다가. 한국에서 남자친구가 오면 함께 스페인,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을 하고 귀국할 것 같아요. 아일랜드 여행을 많이 못해서 가까운 더블린 근교로도 여행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더블린에 로컬들이 자주 가는, 좋은 곳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도 가고 싶고 무엇보다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7개월 동안 느꼈던 것을 잘 매듭짓고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안 그래도 정리를 할 참이 었는데, 이번 인터뷰가 제 7개월의 더블린 생활을 매듭짓는 것에 큰 스타트를 끊어 준 것 같아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윤실 : 훗날 제가 맡을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제 생각에 좋은 선생님이라 함은,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나무보다 숲을 보게 해주는, 경쟁을 붙이고 싶지 않고 싶고, 저마다 속도를 기다려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자기 속도로 가는 모든 것은 틀린 게 아니니까. 믿고 기다려주려고요. 그리고 일대일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선생님이요. 이게 초등학교에서만 적용이 되잖아요. 중. 고등학교는 입시 시험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교사로 진로를 선택한 것이 잘 했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다니며 식물을 좋아하고, 책방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작은 독립 서점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교직에 있으면서 함께 도전해보고 계속 설레고 싶어요.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고 싶네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윤실 :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세상이 넓음 알려주기 위해 저부터가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있고. 앞으로는 저라는 교사만이 줄 수 있는 특색을 좀 만들고 싶어요. 또 독립서점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한국에 돌아가면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여행도 시도해 보려고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윤실 : 조급함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뭘 더 많이 해가야지 하잖아요. 어차피 거쳐야 하는 관문은 다 똑같으니, 여유를 가지고 오셔도 충분히 괜찮아요. 물론 타국에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렵고 감도 안 오시겠지만. 어차피 여기 사는 사람 다 했거든요. 온다고 마음먹은 거 자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거니까. 그 자체로 우리는 성공한 것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걱정 말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또 아일랜드를 ‘유럽 여행을 위한 나라’ 라고만 한정짓고 바라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나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으니까요. 아이리쉬들과 많이 만나고 접하는 기회를 늘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윤실 : 제 2의 학교. 확실히 배운 게 많은데,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속성으로 배운 것 같아요. 인생 학교. 진짜 많이 배웠어요. 대학교만 다녔더라면 절대로 못 배웠을 것들이죠. 싫을 땐 싫었고, 좋을 땐 좋았고요. 갈 때가 되니까 아쉽기도 하고. 애증이에요.
사실 욕심이 참 많았어요. 여기를 오려고 많이 준비를 했으니까, 얻어 가는 게 분명히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영어 공부, 인간관계, 여행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 부모님 뭐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얻어가야지’란 생각이 지배할 때 쯤 한국에서도 바쁘게 살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래야 하나 하면서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 지만 알고 가면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참 좋았었다 라 말할 추억들만 담아가도 충분할 것 같고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윤실 : 32살 윤실아. 10년 전에는 네가 무려 유럽에서 한동안 지내던 날들도 있었다는 거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때도 반복된 일상에 설렘을 잃기 쉬울 테지만 익숙해지면 소중한 것도, 무시하기 쉬우니까. 혹시 그럴지라도. 일상을 여행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지내고 있지? 넌 분명 좋은 교사가 되어 있을거야. 제2의 꿈으로 원했던 책방도 잘 열었으면 좋겠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기를 바라. 하고 있는 일에 만나는 사람마다 늘 진심을 다하고. 사랑해.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윤실 : 사실 너무 감사한 게, 인터뷰어님 덕분에 오늘 또 좋은 점 하나를 배웠어요. 아침에 비가 와서 인터뷰를 안 하고 싶다는 어리숙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날 하면 안 되냐고 여쭤본 거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자신만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하는 인터뷰어님 모습을 보면서, 날씨나 주변상황에 관여 받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어른스러워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인터뷰를 통해서 제 더블린 생활을 매듭지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끝나가는 시점에 한번 쯤 더블린 생활을 정리하고 되짚어 보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스스로를 표현하는 소중함을 알았달까. 자신감도 얻은 것 같고요. 제 이야기를 1시간 동안이나 들어주신 분도 계시고 신청 하기를 참 잘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윤실 : 아일랜드 생활의 큰 버팀목에게 너무 감사해요. 어떤 분들은 이곳에서 겪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부모님, 친구들에게 쉽게 못 털어 놓을 수 있잖아요. 괜히 잘 지내고 있는 분들에게 걱정 끼치는 것만 같고 그래서. 그런데 저는 운이 좋게도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가 뭐든 다 들어주고 진심 담아 응원해주시니까 지금까지 잘 버틴 것 같아요. 한국에서 3개월 밖에 못 만나고, 정말 좋을 때 여기를 여기 와서 미안한 마음도 컸는데 이제 한국에 가면 그 믿음이 더 단단해질 것 같네요.
또 정착과 여행은 많이 다르잖아요. 앞으로 우리 인생에서 많은 여행은 분명 있을 테지만, 지금처럼의 정착은 아마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인생에 한번 밖에 없을 타국에서의 삶을 하루하루 소중히 생각하고 후회 없이 누리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좋은 일, 좋은 일 나중에 지나고 보면, 다 그리울 더블린이잖아요. 한국 가고 싶다고 외쳐도, 막상 한국에 가면 분명 더블린이 그리울 날이 올테니, 있을 때 후회 없이 열심히 놀고, 먹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여행하고 좋은 추억들 만들고 갔으면 싶어요 !
여유가 있는 삶. 그러니까, 내 인생의 쉼표를 내가 찍을 수 있는 삶보다 더 사랑스러운 인생이 있을까. 쉼표를 찍는 다는 것은, 타인과 경쟁하지 않으며, 오직 나와의 싸움에서, 온전한 나의 승리로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허나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지쳐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 그때도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것 또한 나의 의지였다.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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