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 아홉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아홉 번째 인터뷰이는, 아일랜드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유학생이다. 아일랜드의 고등교육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아일랜드 5년예은(21)을 더블린에서는 이례적인 폭설이 왔던 날, 알렉산드라 컬리지 더블린에서 만나보았다.







예은의 음악 Honne - Warm on a cold night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예은 : 안녕하세요. 아일랜드에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21살 수험생 예은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예은 : 14년 6월, 17살 여름에 왔어요. 햇수로는 4년째고, 이제 곧 5년 차가 되네요. 오게 된 계기는, 유학을 바로 가려고 하다가, EF 코리아라는 재단에서 중3부터 고2까지 해당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어요.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사전에 미리 알아보고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오게 된 거였죠.




Q. 어린 나이에 어떻게 유학을 결정하게 됐는지?


예은 :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남겨줄 것이 없지만 아버지께서는 영어, 어머니는 신앙을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종교적 선교 활동이라기보다는, 캠프 활동으로 필리핀을 가게 됐어요. 그때 영어의 장벽을 처음 느꼈죠. 현지 친구들이 다가오는데 너무 무서운 거 있잖아요. 한 일주일 정도를 현지 친구들과 초밀착해서 활동을 했었어요. 당시에는 정말 한 마디도 못했어요. 그런데 정말 재밌었어요. 손짓 발짓하면서 소통하는 게요. 그 뒤에는 방학마다 동생이랑 같이 영어캠프에 가게 됐어요. 저는 다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많은 타입이고, 동생은 즐기는 타입이에요. 마지막에 레벨테스트로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봤는데, 동생이랑 똑같은 점수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났어요. (웃음) 제가 누나이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한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말이에요. 자극을 받아서 겨울방학 때 중학교 졸업식도 포기하고 필리핀에 남아서 영어공부를 더 했어요.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면 놀기밖에 안 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고, 필리핀에서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1-2개월 더 남아서 영어공부를 했죠. 동생은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부모님한테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영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왜냐면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 것도 처음이고 걱정되는 게 많으셨을거예요.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 나가면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딱히 없거든요.








Q. 기회가 없다고 함은요?

예은 :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나오고, 대학에 가면 언제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잖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 해외에 나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정착하기에 굉장히 힘든 거죠.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 걱정이 되셨나 봐요. 처음에는 포기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부모님 말씀대로 입학했어요.

그래도 입학 후에는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다녔어요.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도 했고요. 똑같은 학교생활이 반복되었어요. 하루는 윤리와 사상 시간이었어요. ‘사랑이란?’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는데, 도가가 뭐라고 말씀을 했대요. 그런데 저는 이해가 안 되고 머리가 백지인 거예요. 이걸 시험을 어떻게 보나 싶을 정도로요. 또 화학 선생님들은 침까지 튀어 가면서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저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거죠. 나름대로 학교생활 열심히 하겠다고, 아침 일찍 등교하고 야자까지 하면 10시 11시. 그리고 집에 가서 과외까지 끝나면 12시였어요.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저희 반에서 저만 졸고 있더라고요.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있던 거죠. “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남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생각이 든 게 영어였어요.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갈망이 컸던 거 같아요. 적어도 영어로 이것들을 배우면, 마지막에 내용은 다 사라져도 ‘영어’는 남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가서 부모님께 다시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부모님도 제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걸 확신하셨고, 그 후에 함께 유학에 대해 알아보게 됐어요. 여러 가지를 따져본 후에 아일랜드로 오게 된 거죠.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예은 : 오기 전에 아일랜드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사서 봤어요. 거기서 본 아일랜드는 초록색으로 한 장 한 장이 채워져 있었고 편안하고 고요한 나라 같았고 사람들은 되게 밝은 표정이었어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예은 : 차분했지만, 처음 왔을 때 비가 왔죠. (웃음) 그리고 바로 EF교환학생 OT캠프를 했거든요.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친구들이랑 밥도 해 먹고 그랬어요. 그때 아마 제가 평생 볼 유러피안들을 다 본 것 같아요.전체 참가 학생이 100명 정도 였다고 들었는데 아시안이 저를 포함해서 10명 정도가 전부였어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유럽 나라에서 온 애들밖에 없는 거예요. 가장 특이했던 건 덴마크 애들이었어요. 2주 내내 그 아이들이랑 붙어있었는데, 다 같은 제 나이 또래여서 좋았어요. 소위 중2병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고, 조용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일단 전반적으로 너무 개성이 세다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문화충격인 거죠. 수업시간에 다리 꼬는 것은 기본이고요. 잠깐 해 떴다고 몸이 다 드러나는 민소매 입고 그랬어요. 남자 여자같이 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진짜 문화충격이 컸어요.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두발 검사를 하기도 하고 교복도 단정하게 입어야 하기도 해서 그런 생활을 하다가 이 친구들을 봐서 더 신선했던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있는것 같아요.



Q. 캠프 이후에 아일랜드에서 고등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예은 : 고등학교를 총 두 군데를 다녔어요. 여기는 트랜지션 이어(Transition year)라고, 전환 학년제가 있어요. 본격적인 대학을 위한 수험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선택할 과목을 정할 수 있게 미리 다 들어보는 거죠. 학교마다 프로그램은 다른데, 저희 학교에서는 직업 체험을 시켰어요. 과목 선택지들을 다 주고, 그중에 제가 고를 수 있는 거죠. 처음에 더블린에서 50분 정도 떨어진 드로그헤다란 곳에서 했어요. 한국인은 거의 저밖에 없고 중국인도 심지어 얼마 없었어요. 완전 다 아이리쉬였죠. 처음에 그렇게 아이리쉬들하고만 지내다가 더블린을 네 달만에 처음 갔는데 너무 신나는 거예요. 한식당 가서 한식 먹고 들떴던 기억이 나네요.



Q. 한국과 비교했을 때 아일랜드 고등학교는 어떤가요?



예은 : 우선 교복을 입는다는 점은 같았어요. 치마 무릎 밑까지 오는 초록색이었어요. 그리고 니트 조끼가 아니라 긴팔로 된 니트였어요. 처음에는 그게 싫었는데, 니트인데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날씨가 너무 추워가지고(웃음) 그 외적으로는 다 다른 것 같아요. 처음 다녔던 학교에서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영어를 배웠어요. 왜냐하면, 한국이랑 정말 다른 게, 선생님들이 자유로워요. 예를 들어서 아트 공부하다가 선생님께서 “이걸 보러 가야겠어”라고 하시면서 다음 날 아트 뮤지엄을 가고요. 그런 활동적인 수업들이 좋았어요.

2주 동안 우리나라 수학여행 개념으로 갔던 캠프도 좋았어요. 한국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도 다 같이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수련원 같은 데 풀어놓고 자유롭게 카약킹 할 사람은 카약킹, 클라이밍 할 사람은 클라이밍 하고 그런 식이었는데, 하루는 강제적으로 모든 학생과 선생님이 다 함께 온 종일 어떤 코스를 걷게 시키는 거예요. 처음엔 왜 내가 걷고 있나 싶고 진짜 싫었어요 그때 9시간 넘게 걸었던 것 같아요. 비도 오고 그랬거든요. 근데 다 끝나고 나니까 왜 시켰는지 알겠더라고요. 친구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달까? 거의 학교에 있는 모든 애들이랑 다 말해봤던 것 같아요. 각자 걷는 속도가 다르니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된 거죠.







Q. 어떤 학교인가요?


예은 : 알렉산드라 컬리지 더블린이라는 학교로 옮기게 됐는데, 여자 고등학교이고 기숙사도 있었어요. 그전 학교에서는 남자애들이랑 더 친했었는데, 여기서 여자애들이랑 만나고 하다 보니까 대화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여자 언어도 배우고 재미있었어요. 외국인 구성은 스페인 애들도 좀 있었고, 동양인은 2-3명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에 다녔던 학교는 시골 사립학교라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친절하시긴 했는데 교육이 체계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자료 같은 것도 부족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아이리쉬 남자 애들이 더블린 엑센트로 “Hi, how are you?”라고 물어오는 것도 잘 못 알아들었어요. (웃음) 그런데 여기 와서는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게 느껴졌죠. 여자들만 모여있다 보니까, 남녀 차별은 당연히 없었고 인종차별도 딱히 없었는데, 언어 차별이 약간 있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Q. 어떤 친구들이었나요?


예은 : 아일랜드 사립학교의 대부분이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저희 학교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다 함께 있는 사립 학교여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되게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 네트워크도 엄청 끈끈하고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친구 사귀는 게 조금 힘들었죠. 5학년 때,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새로운 친구들이랑 조금씩 친해졌고 기숙사 친구들이랑도 점점 친해졌던 것 같아요. 운이 좋게 아이리쉬 아이들이랑 방을 같이 썼어요. 정말 착한 애들이었죠. 그 당시에 저는 영어를 잘 못하는 상태여서 이야기하는 게 좀 무서웠어요. 괜히 동양인이니까 날 판단할 것 같고 하는 그런 자격지심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계속 말을 시켜줬어요. 정말 답답했는데 옆에서 계속 괜찮다고도 해주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제일 힘들었던 건, 그 아이들이 기숙사 소등을 하고도 계속 떠드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기가 빨리는 거 있죠. 제 귀는 쉬고 싶은데 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어를 들어야 하는 거 있잖아요. 미치는 줄 알았죠. 자기들끼리만 떠들면 되는데, 저한테 계속 말을 시키는 거예요.(웃음) 아이들은 제가 영어를 열심히 배우려고 하니까 귀여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또, 같이 방쓰는 애들한테 많이 물어봐서, 저보고 코리안 너드라고 불렀어요 (웃음)

살면서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봤어요. 그도 그럴게, 살면서 처음 배우는 고등과정 물리 화학 이런 내용들을 영어로 들었던 거니까요. 같은 내용을 복습하더라고 그 아이들 30분 걸릴 거, 저는 2시간 3시간 걸리고 그랬어요. 어쨌든 그렇게 10개월을 그 아이들이랑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가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운동도 많이 했고요.







Q. 운동이라 함은요?


예은 : 보통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목요일에는 가끔 축구를 했어요. 룸메이트들 중에 한 명이 축구동아리 골키퍼였거든요. 애들이 제가 아무래도 혼자 동양인이고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고 하니까 많이 챙겨주고 싶고 그랬나 봐요. 그런데 저는 사실 그냥 방에서 쉬고 싶었거든요(웃음) 그런데도 막 저한테 소셜 라이프가 필요하다면서 데리고 나가고 그랬죠. 테니스 선수였던 또 다른 한 친구는 테니스도 알려주고, 아침 안 먹는다고 하면 먹어야 된다고 기어코 데리고 나가고 그랬죠.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사실 그렇게 1년을 생활을 하다 보니까, 지치더라고요. 그때 성적은 잘 나왔어요. 왜냐면 제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딱 고3에 올라가면서, 약간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아요. 영어도 어느 정도 들리기 시작하고, 저 스스로 안정이 됐나 봐요. 그러니까 너무 공부를 하기 싫은 거예요. 그리고 기숙사도 5인실에서 개인실로 옮겼거든요. 약간 억지로라도 했던 것들이 갑자기 다 사라지니까 슬럼프가 온 거죠. 간신히 졸업 시험 보고 막 학기를 마쳤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그 뒤에 후폭풍이 왔죠.



Q. 후폭풍이라 함은요?


예은 : 고3, 1년 동안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느낌이었거든요. 하루하루가 너무 숨 막히는 거 있잖아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요. 사실 그때는 제가 힘든지도 몰랐어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죠. 그래서 그런 생활을 하다가 졸업하고 한국에 온 뒤, 일주일 만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어요. 평소에 태권도를 좋아해서, 태권도 도장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힘든 거예요. 화장실을 갔는데 눈 떠보니 응급실이었어요. 그리고 나서도 두 번 더 쓰러졌어요. 근데 문제는 그게 다 스트레스성이라는 거였죠.

3일 동안 탈진으로 8킬로가 빠졌어요. 긴장이 다 풀렸나 봐요. 그래서 그때 ‘아 내가 정말 힘들긴 힘들었나 보구나’라고 느꼈죠. 아일랜드에서는 잘 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 심했어서요. 물론 슬럼프도 오고 해서 막판에는 공부를 꾸준히 하지 못하고, 원하는 전공에는 떨어졌지만요. 사실 저도 떨어질 걸 알고 있었어요. 원래 본인은 그걸 알잖아요(웃음) 단순히 짐작으로 아는 거랑 실제로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는 거는 천지차이였어요. 웃긴 건 그때 다시 아일랜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였어요. 재수를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아쉬움이 컸던 것 같아요.

한 2주 동안을 폐인처럼 지내면서 생각을 정리했던 것 같아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거죠. 그러니까 정말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론을 내린 건, ‘다시 아일랜드에 가야겠다’였어요. 그래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서,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고민했어요. 차마 부모님 얼굴을 보고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새벽에 길게 편지를 써서 엄마 아빠 각자 지갑에 넣어놨어요. 두 분 다 출근을 하셔서 회사에서 그 편지를 보셨죠. 두 분이서 먼저 이야기를 하신 후에, 저한테 나중에 비행기 표 티케팅 하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때 정말 감사했죠. 믿어주신 거죠. 그 덕분에 지금 다시 아일랜드로 와서 재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편지를 읽으신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하네요.



예은 : 사실 편지 쓸 때는 되게 담담했어요. 그전에 이미 울 만큼 많이 울었거든요. 한 편으로는 할 만큼 했어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여기 있을 때,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가셨어요. 그전에 할아버지랑 그렇게 친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딱 제가 아일랜드 오기 전에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뵀을 때, 평소에 그러시는 분이 아닌데 저한테 엄청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제가 할아버지 손위에 손을 포개니까, 원래면 빼셨을 분인데 안 빼시는 거 있죠. 응원이 되는 말도 많이 해주셨고, 그래서 제가 그때 충격이 컸나 봐요.

그리고 나서 아일랜드에 온 후에, 하루는 제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셨어요. 돌아가시기 2주 전쯤에, 같이 산책하자고요. 그리고 나서 일주일 뒤에, 또 한 번 나오셨는데 그때는 밥 먹자고 아일랜드에 오셨어요. 너무 놀라서 벌떡 꿈에서 깼어요. 그날 또 시험이 있는 날이어서, 공부도 할 겸 카페에 앉아있었는데 사촌 오빠가 연락이 온 거예요. 할아버지가 위독하신 것 같다고요. 그래서 바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할아버지랑 많이 친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제가 여기에 안 왔다면, 할아버지랑 마지막 시간을 같이 좀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 거예요. 가족이 가장 중요한데, 제가 여기 와서 그냥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함께 드는 생각은 분명히 제가 원해서 온 건데 스스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다른 것 안 바라고 그냥 스스로 행복하고 싶은 건데, 왜 저는 한국에서 만족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여기에 왔는데 왜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할까. 저는 왜 저 자신한테 만족을 못할까. 그런 고민들 있잖아요. 그래서 한창 헤맬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자리 지키는 게 정말 힘들지만, 제가 있는 자리는 제가 지켜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Q. 그 이후에는 한국에 가셨나요?


예은 :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집에 안 갔어요. 원래 매년 여름 방학 때랑 크리스마스 때 한 번 씩 한국에 갔거든요. 이번에 한국에 가면, 돌아오기 싫어질 것 같아서 안 갔어요.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왔어요. 다들 그렇잖아요. 그런데 2년 차 3년 차 될수록 오는 발걸음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아일랜드에 가면 어떤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에는 안 갔었는데, 이번 중간고사 방학 때 어쩔 수 없이 집에 갔어요.


유독 부모님한테 힘들다는 소리를 잘 안 하고 지냈어요.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엄마랑 통화하다가 더 이상 혼자 버티는 게 힘들어서 솔직하게 말씀 드렸죠. 부모님은 제가 행복하고 건강한 게 제일 우선이라며 잠깐이라도 들어오라고 하셔서 이번에 한국에 잠깐 갔다 왔었어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도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스트레스에 유독 몸이 약해서 가끔 목이 잘 안 움직이거든요. 이번에 한국 갔을 때 그게 더 심각해진 거예요. 목에서 타고 내려와서 어깨, 척추, 다리까지 다 아팠어요. 그래서 잠깐 한국에 있는 동안 매일 병원 가서 치료받고 왔죠.


그리고 나서 다시 아일랜드에 오게 됐는데, 돌아오는 공항에서 엄청 울었어요. 공항 가기 전 날도 엄마를 붙들고 엄청 울었죠. 아일랜드 가기 너무 싫다고요. 사실 부모님은 강요한 적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부모님은 가지 말라고 하시긴 했어요.



- 발걸음을 떼기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예은 : 타지 생활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비단 아일랜드뿐 아니라, 유학생활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매일 저녁 가족과 대화하는 게 제일 즐거웠던 저한테는 유독 더 외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기억도 있지만 여기 와서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지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는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도 아닌 만큼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예은 : 처음에 와서 친했던 친구들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처음에 왔을 때, 친했던 친구랑 아직도 연락을 해요.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인데, 그 친구가 그때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그 코스를 하고 있거든요. 그 친구가 제 영어를 많이 알려줬거든요. 아직도 안부를 주고받고 저한테 너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너무 고마운 것 같아요. 거리상으로 멀기도 하고, 둘 다 수험생이었기 때문에 많이 못 봤거든요. 요새도 한 번 통화하면 2-3시간씩 통화하고 그래요. 정말 한국어로 통화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도 나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정말 이 외로운 곳에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기숙사 살던 친구가 제가 슬럼프로 힘들어할 때 편지랑 선물을 저한테 주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그 내용 중에는 ‘네가 있어서 기쁘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아시안에게 편견이 있었는데, 너를 통해서 아시아가 유럽이랑 다를 게 없구나를 느꼈다’는 내용도 있었고. ‘한국이 궁금해졌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정말 고마웠죠.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의미가 있다면?


예은 : 헬스장이요. 학교 근처에 헬스장이 있는데,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움직여야 에너지가 생기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오히려 운동을 아예 쉬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을 수도 있고요.(웃음) 여기서 수영도 배우고 했어요. 학교 끝나면 4시고, 5시 반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야자 하기 전까지 밥도 포기하고 헬스장에 가고 했죠. 그래서 남은 샐러드 먹고 강제 다이어트가 됐어요.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땀 빼고 운동하고 그런 게 너무 행복했어요. 주말에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오기도 했어요. 운동을 하면서 정말 느낀 건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였어요. 그 밸런스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헬스장을 다니진 않지만, 꾸준히 운동은 하고 있어요. 자기 전에 간단하게 맨몸 운동을 하기도 하고 이 주변을 뛰기도 하고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예은 : 제일 큰 건 독립심, 자립심이 많이 커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지고요. 이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 같아요. 무던해지는 게 사실 속으로 느끼지만, 표현을 안 할 뿐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표현이 점점 주는 건 안 좋은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점점 나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해요. 좀 많이 차분해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문제가 생겨도 막 호들갑 떨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 같아요. 정말 이런 건 어디 가서 배우지 못하는 거잖아요. 좋은 점이죠.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예은 : 일단을 대학교 진학을 해야 하고요.(웃음) must. 아일랜드에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여기서 대학을 갈 것 같거든요. 수험 생활 하면서 친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제가 마음의 문을 닫은 적이 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리쉬 친구들이랑 더 가깝게 지내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지 간호대학 진학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UN 보건부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알아보면 알수록 제가 생각했던 거랑은 조금 멀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하건 영어를 해야 뭔가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서, 영어를 배웠던 거였죠.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영어를 하게 되니까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그러면 뭐를 해야 하지?’였어요. 어느 나라를 가든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간호사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 꿈을 향해서 공부를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졸업을 하면, 호주나 캐나다로 일을 하러 가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미정이지만요. 이러다 어떠한 변화가 생겨서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고요. 열린 결말인 거죠.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예은 :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가끔은 사진도 찍고 책도 보고 여행하고 싶을 때 여행하면서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예은 : 너무 많이 준비를 하고 오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실 계획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그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 실망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 틀을 스스로 만드는 거죠. 그걸 벗어나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처음부터 그 똑같은 시작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 다 똑같거든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근데 사실 이건 겪기 전엔 모르는 거긴 하지만요.(웃음)



Q. 지금의 관심사가 있다면?


예은 : 건강. 건강에 적신호가 딱 오니까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모든 게 건강해야만 가능한 것들이니까요.(웃음)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예은 : 배움과 성장. 매년 배우고 성장하는 게 눈에 보여서요. 사실 지금까지 힘든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갈 것 같아요. 솔직히 여기로 오라고 쉽게 이야기 하진 못하지만, 여기서 얻는 게 너무 크고 확실히 다른 것 같아서요.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이제 20대 시작이잖아요. 이 시기에 제 길을 제대로 찾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큰 영향을 준거죠.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예은 : 31살 예은아.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 그리고 너의 중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걸 놓는 순간 끊임없이 놓잖아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음껏 사랑하면 좋겠어.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랑과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니까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사랑하고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사람이길 바라.(웃음)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예은 : 힐링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하면서도 좀 정리되는 것도 있잖아요. 지금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요. 작년 이 시점에는 정말 바들바들 떨었던 것 같거든요. 긴장해서요. 근데 지금은 좀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에너지 얻은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예은 : 마음껏 사랑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사랑하면서 하면 행복이 함께 하니까 !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 우리네 삶이 그렇다. 타인의 삶은 마냥 커 보이고, 내 삶은 마냥 작아 보이고. 그러나 우리가 늘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것. 네 삶 그리고 내 삶도 알고 보면 다 같은 삶이라는 것. 단지 차이가 있다면 내 삶을 내가 만드느냐, 네가 만드느냐. 언제나 그렇듯 내 삶을 진정한 나의 삶으로 만들 때, 사랑으로 가득 찬 로맨스가 시작될 것이다. 사랑만 해도 모자랄 시간들이니, 크고 작은 고난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라도, 강물에 흘러가는 것을 막는다고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흘러가는대로, 두기로 했다. 그것이 운명이였거니, 하고 말이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나도 언젠가 하나둘씩 변해간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나. 혹은 그 반대인가.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나는 그 에너지를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쏟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 내 마음이 가는 그 길을 같이 걸으며 응원하기로 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나의 삶을 살겠다.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 더블린 사람들 2018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좋아요와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페이스북에서 더 빠르게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페이스북에 <더블린사람들 2018> 검색!

https://www.facebook.com/Dubliners2018/







Project Manager : 채영(Lucky)
instagram.com/icanreadthelightinyourmind
Assistant Editor : 영현
blog.naver.com/cyh1928

초상권 및 저작권은 모두 <더블린 사람들2018> 프로젝트에 귀속되어 있으며, 허가 없는 2차 가공시 법적 제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Luck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