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여덟 번째 인터뷰이는, 술과 사람을 사랑하는 자타 공인 아마추어 여행가이자 프로 퇴사자 유학생이다. 더블린에서는 어떻게 음주문화를 즐겼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1년 4개월 차 정재(30)를 더블린의 로컬 펍 beerhouse에서 만나보았다.
정재의 음악 Marketa Irglova & Glen Hansard - If You Want Me (Once ost)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정재 : 안녕하세요. 아마추어 여행가이자 프로 퇴사자. 어학연수를 온 30살 정재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정재 : 16년10월 4일에 학생비자로 왔고요. 비자 연장을 한 번 더 해서 1년 4개월 정도 됐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정재 : 군대를 다녀오고 바로 취업을 해서 한 회사에서 5년 동안 일을 했어요. 전문대를 나와서 사이버대학교 2년을 더 하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병행했거든요.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잠깐 쉬자는 생각으로 퇴사를 하고 아일랜드로 오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정재 : 원스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존 카니 감독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Vicar street이라는 공연장에서 원스 남자 주인공 글렌헨사드의 공연을 보러 갔었어요.
Q. 공연은 어떠셨나요?
정재 :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한 번 들으면 잘 까먹거든요. 그런데 원스에 나오는 음악은 인상 깊더라고요. 특히 글렌헨사드의 목소리 가요. 아는 분의 친구가 아일랜드 내에서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세요. 글렌헨사드랑 같이 공연도 하셨고 TV 출연도 하시고 하셨던 분인데, 그분이 티켓을 주셔서 친구랑 같이 다녀왔죠. 글렌헨사드가 가끔 더블린 길거리에서 공연을 해요. 평소에는 미리 공지를 하고 공연을 하는데, 가끔 말 안 하고 게릴라로 가끔 공연을 할 때도 있대요. 한 번도 못 봤지만요. 심지어 저는 공지를 한 날짜에 갔었는데, 갑자기 자기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연을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일랜드 생활 막바지에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이 공연이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간 공연이었어요. 일찍 일을 시작해서, 그런 문화생활 즐길 시간도 많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경상남도 창원 출신인데, 물론 충분히 발전했지만, 아무래도 공연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큰 도시를 가야 했죠. 부산이나 서울로요. 그래서 여러모로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어요. 제 주변 친구들만 봐도 공연에 관심 있는 친구들도 많이 없었고요. 이 공연을 계기로 제 자신도 많이 바뀌었어요.
Q. 어떤 점이요?
정재 : 한국에 돌아가도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많이 보러 가고 싶어요. 공연을 처음 간 거다 보니까, 사람이 얼마나 오는지 감도 안 오고 그랬었는데요. 생각하기에 1-2천 명 정도 온 것 같아요. 그 큰 공연장에 사람들이 꽉 차있었어요. 정말 멋있었던 점은, 연주자들 포함해서 10명 정도밖에 되는 분들이 2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멋있었어요. 음악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리니까 웅장했어요. 그 소리에 본의 아니게 움직여지는 그런 느낌이 있었죠. 원스 덕분에 아일랜드에 와서 글렌헨사드 공연까지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관객들 중에서는 백발노인들도 많이 보이셨어요. 아이리쉬들이 흥도 많고, 공연도 정말 잘 즐기더라고요. 아일랜드와 한국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일랜드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 때문 이였어요.
Q. 가족이라 함은요?
정재 : 친누나가 아일랜드에 살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엄마랑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이에요. 어머니께서 재혼을 하셨거든요. 전 남편 사이에서 쌍둥이 형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누나가 있다는 사실은 20살이 넘어서도 몰랐었어요. 어머니도 말씀을 안 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어머니가 사람 찾는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되게 슬프게 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형들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못 찾았던 누나가 있었던 거였어요. 게다가 누나는 한국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주 어렸을 때 입양을 미국으로 가셨던 거죠. 지금도 누나는 국적이 미국인이시고 한국말을 전혀 못하세요. 그리고 현재 아이리쉬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진짜 예쁜 조카들 둘을 낳아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중이에요. 결론적으로 그래서 아일랜드를 택하게 된 거였어요.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누나를 알게 된 건 6년 정도 밖에 안됐어요. 누나가 한 번 한국으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전에 누나 양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종이 한 장을 주셨대요. 그 종이에 적혀있었던 게 저희 어머니의 주소, 전화번호 등등 신상이었어요. 누나도 엄마를 찾고 싶어 했고,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됐고, 그때 처음 만나고 누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의 감정은 너무 신기했어요. 드라마 속 주인공인가 싶기도 했고요. 또 보니까 엄마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제 누나가 맞구나 싶고 신기했어요.
Q. 아일랜드에 오셔서 누나 분과 함께 사셨던 건가요?
정재 : 네 그렇죠. 그런데 생활했던 문화가 다르잖아요. 누나는 미국 문화에서 살았던 미국인고, 저는 한국인으로 평생을 살았잖아요. 아일랜드에서 두 달 가량을 누나 집에 살았었는데, 누나한테 잔소리도 호되게 먹었어요. 이 나이 먹고요(웃음) 다른 문화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았어요. 그리고 친누나이지만, 알게 된 건 고작 몇 년이고, 실제로 본 건 몇 달이 채 안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도 저한테 항상 잘해주세요. 항상 잘 챙겨주려고 하고요. 그리고 누나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지난번에 언제든지 오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고마운 말이었죠. 비자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오라고 했어요. 저에게는 기회가 더 생긴 거니까 너무 좋죠.
사실 타인에게 이런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게 조금 조심스러워요. 저는 상관없지만 특히 저희 어머니에겐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친구들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굳이 숨길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일랜드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도 이 글을 읽고 공감을 하며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정재 : 처음 유학원이나 인터넷 통해 알아봤을 때, 날씨가 안 좋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사람마다 날씨가 영향을 주는 정도는 다르지만, 저는 많이 영향을 받는 편이라 더 힘들었어요. 일단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또 인종차별도 많다고 해서 오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걱정을 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이리쉬 사람들이 너무 착해요 친절하고. 사람들 자체가 순수해요. 친해지면 자기 간이랑 쓸개도 빼 줄만큼. 특히 더블린 외곽 지역의 로컬 팝을 가면 어르신들이 말을 정말 많이 걸어줘요. 물론 그분들의 더블린 엑센트가 너무 세서 100퍼센트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요. 이게 정말 신기해서 또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러시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오는 거라서 같이 이야기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그리고 할아버지들 중에 한국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아요. 한국 전쟁이나 북한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굉장히 많죠.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정재 : 날씨가 맑아서 정말 좋았어요.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3주가량 비가 안 왔거든요. 아이리쉬 친구들이 말하길 그때가 이례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하늘이 한국과 다르게 색깔이 예쁘고, 해도 잘 보이고, 건물이 낮으니까 너무 좋았죠. 하지만 그 이후로 비가 정말 많이 오고 하루에 4계절 5계절까지 볼 수 있었죠(웃음)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정재 : 정말 놀고먹었어요. 한국에서 5년 동안 일만 하다가 온 거니까 술, 클럽, 파티 놀러 다니고 여행 다니고 정말 많이 썼는데 아깝지가 않았어요. 초기에는 어학원 끝나면 오후에 액티비티 수업을 갔다가 4시 반부터 D클럽을 가서 새벽 3시까지 놀고, 그 다음날 학원을 가고 반복을 했죠. 주말에는 외국인 친구들이랑 근교로 놀러 가고 사진동아리도 하고, 요즘엔 일을 하고 있어요.
C슈퍼마켓이라고 하는 아일랜드 안에 있는 최초의 그리고 생각하기에 최후의 코리안 마켓에서 일해요. 한국인 사장님과 한국인 직원들과 일하고 있습니다. 일은 상당히 편한 쪽에 속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사장님이 정말 좋으세요. 싫은 소리를 하시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아일랜드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편한 것 같은 게, 제 스케줄에 편의를 많이 봐주시거든요. 여행 같은 경우에는 한 몇 주 전에만 이야기하면 거의 다 빼주시는 편이고요. 일하는 날에 약속이 잡혔거나 약속이 생길 것 같으면, 직원들끼리 이야기해서 스케줄도 변경할 수 있었고 사장님도 개의치 않으시고요.
Q. 한국의 직장문화와 비교했을 때 아일랜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요?
정재 : 제일 큰 차이점은 한국인들은 좋게 말하면 배려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요. 그런데 아이리시들을 포함해서 본 외국 친구들의 대부분은 일단 본인을 먼저 생각해요. 나쁘게 말하자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예로 한국에서 연차나 휴가를 쓰려면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눈치를 봐야 돼요. 그런데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제 친구 중에 학원 선생님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한 달에 휴가를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가요. 자기가 가고 싶은 여행도 가고 친구랑 파티하고 싶어서 휴가를 쓰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좋은 것 같아요.
또 나쁘게 말하면 좀 게을러요. 하루 만에 통장이 나오는 한국의 은행 스피드를 기대하면 안 돼요. 통장 만들러 가면 길게는 일주일에서 10일도 걸리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특징 때문에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어요.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하니까,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짜증 나는 일이겠지만, 이 기업에서 일한다는 가정하에는 편하고 좋아 보이더라고요.
Q.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정재 : 한국에서는 컴퓨터 보안 관련 제품 판매하는 영업직 일을 했어요. 기술직으로 들어갔었는데 영업직원이 비게 되면서 부서 이동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재미가 있더라고요. 성격상 부지런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잘 못해요. 단순노동 같은 거요. 그런데 사람 만나는 일을 하면,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저한테 잘 맞았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을 하다 보니까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피로를 느끼게 됐고요. 또 아무래도 22살이라는 빠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보니까, 다른 친구들에 비해 놀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외국이라는 곳을 나갔던 경험이 일 시작하기 전 20살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겸 교환학생을 한 달 정도 다녀온 게 다였어요. 이 회사를 계속 다니다 보면 앞으로 외국에 나갈 기회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게 됐죠.
Q. 왜 외국에 나가고 싶었는지?
정재 :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에서는 아버지를 존경하는데, 그 이유가 좋은 말씀, 맞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멀리 가라, 높은 곳을 가라.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넓게 볼 수 있다”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자라다 보니까 마음 한구석에 꼭 외국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회사를 그만두게 돼서였던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대학 졸업하거나 대학 졸업할 때가 다가오는 친구들이 취업에 목숨을 걸고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그 나이 대는 물론 그게 고민인 게 맞고, 힘든 것도 맞지만,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는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아일랜드에서 만난 친구들의 거의 90퍼센트는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었는데요. 그 친구들이 너무 존경스러웠어요. 돈을 벌어서 온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한테 돈을 빌려서 온 친구도 있었는데요. 어쨌든 그 어린 나이에 자기가 어디를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게 너무 멋있었어요. 그런 친구들은 아마 앞으로도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한국 안에서 취업 고민만을 하는 친구들한테는 한 번쯤은 다 놓아두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여행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정재 : 크게 기억이 남는 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매일같이 놀던 파티 생활, 클럽 생활이요. 한국에서의 클럽은 문란하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리고 저도 놀러 가면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는 터치도 없고, 친구들끼리 가면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친구들이랑 저희가 클럽을 빌린 거 마냥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거요.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조금 아쉬운 건 빨리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도 충분히 즐겼고 후회는 없어요.
Q. 여행은 어디 어디 다녀오셨나요?
정재 : 처음에 왔을 때는 아프리카 모로코에 갔었어요. 당시 그렇게 친한 친구들은 아니었는데 일본 친구 2명이라 여행을 시작했어요. 다음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랑 퀠른을 갔어요.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에 왔다는 느낌이 다였는데, 퀠른은 대성당이 있어서 예쁘게 도시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네덜란드랑 벨기에도 갔다 왔고, 그리고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잘 안 가게 된다는 런던을 3박 4일 다녀왔어요. 가깝다고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자주 못 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조금 있어요. 그리고 스페인이랑 포르투갈을 다녀왔어요. 건축학도도 아니고 건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도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투어할 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추천드리고 싶어요 (웃음)
그 이후에 잠깐 한국에 다녀왔었어요. 비자 연장을 한 거라서, 귀국행 비행기 표가 있었거든요. 돌아와서는 몇 군데 많이 못 갔어요. 그때부터는 금전적으로 힘들었어가지고 (웃음). 다음에 터키를 다녀왔는데, 터키는 정말 제 인생 최고의 여행지 중에 하나였어요. 제 전 룸메이트가 터키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터키에 놀러 갔을 때 그 친구가 가이드를 다 해줬어요. 제일 아쉬웠던 건 모스크라고 해서 무슬림들의 성당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거기를 한 번도 안 갔어요. 터키 친구는 “여기 클럽이 좋아 여기 카페를 가야 해” 이러면서 로컬들이 가는 데만 데려가더라고요. 그 친구랑 더블린에서 놀던 그대로를 이스탄불에서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좋았죠. (웃음) 그리고 카파도키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터키 여행하면서 느꼈던 건 터키가 한국의 형제 나라다 보니까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되게 많아요.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이러면서 말 걸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여행을 간 곳이 폴란드였어요. 특히 폴란드 같은 경우는 좋아하는 사진 동아리 친구들이랑 가서 더 좋았어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여서 가르침을 많이 받고 해서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었는데,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보니까 그걸 보고 나서 일본한테 우리가 받았던 핍박 같은 게 떠오르다 보니까 가슴 아프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곳도 수용소 안이었고요.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나는 곳 중 하나에요.
Q. 아일랜드 내에서는 어디 다녀오셨나요?
정재 : 근교로는 호스,말라 하이드, 브레이, 킬라이니 ,그레이스톤즈, 달키, 위클로 등 갔다 왔고요. 더 멀리로는 골웨이, 딩글. 킬케니, 워터포드 웩스포드도 갔다 왔어요. 킬케니가 정말 좋았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가서 좋았던 것 같아요. 또 차를 렌트해서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좋았고요. 그리고 운전을 했었는데, 같이 갔던 친구들이 배려를 많이 해줘서 피곤해 보이면 본인들이 가고 싶은 곳에 대한 마음도 줄여주고 해서 고마웠어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정재 : 아무래도 날씨죠. 저는 안 늙을 줄 알았어요(웃음). 항상 몸이 건강하고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일주일 내내 술을 먹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요.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깰 때, 몸에 한 부분이 고장 난 느낌이 들잖아요? 그러면 항상 비가 와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알람을 끄고 다시 자죠. 그러면 학원은 다음날로 미루고 그러는 거죠.(웃음)
정말 힘든 건 날씨랑 생활비. 개인적으로 요리를 안 좋아해요. 잘 하지도 못하고요. 특히 한식의 단점은 만드는데 2시간 먹는데 10분. 그래서 요리하기가 정말 싫었어요. 뒷정리도 오래 걸리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왔다는 생각이 있었다 보니까 매번 밖에서 사 먹었었는데요. 여기서 한 번 외식을 하려면 한국에서 먹는 값에 2-3배는 나가요. 그때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 힘든 이유가 그때 너무 외식으로 돈을 많이 소비해서 그렇지 않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요리를 하진 않아요.(웃음) 대신 라면으로 때울 때가 많아졌죠.
Q. 아일랜드에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정재 : 아일랜드 생활하면서 절반은 D클럽 이였고요. 그런데 지금은 잘 안 가게 된 게, 브라질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가면 영어를 쓰는 게 아니라 포르투갈어를 쓰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됐죠. 그리고 아일랜드에 펍이 어딜가나 있으니, 펍을 자주 가게 되더라고요.
자주 가는 펍 두 곳이 있는데, 비어 하우스와 보코라는 펍이에요. 보코는 피자가 정말 맛있어요. 화덕에서 구워서 바로 나오거든요. 비어 하우스는 항상 친구들과 오면 돈도 조금 아낄 겸, 피처를 사 먹는데요. 피처가 두 종류밖에 없어요. 그리고 아일랜드 펍인데 기네스도 없어요. 이유를 따로 물어보진 않아서 모르겠는데, 느낀 건 여기서 취급하는 술들이 다 지방 술이거나 조금 독특한 술들 위주더라고요. 그런데 또 그 술들이 전부다 정말 맛있어요. 아일랜드에서 먹을 수 있는 술은 기네스, 포스터, 페일에일 밖에 없을 것 같잖아요. 여기는 그런 걸 떠나서 독특한 술을 먹을 수 있어요. 약간 중독이 된 것 같아요(웃음). 항상 어디서 술을 먹든 마지막은 여기서 끝내요. 요새는 친구들이 많이 돌아가서 술을 많이 못 먹는데, 한창 많이 왔을 때는 일주일에 네 다섯 번도 왔었어요. 일하는 곳보다 많이 왔어요.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맛도 있고 여기 노래가 시끄럽지 않아서 이야기도 하기에도 좋아요. 또 노래 선곡도 되게 좋아서 노래를 잘 모르는데도 여기 있으면 “아 노래 좋구나” 싶어요.
지금은 집과 C슈퍼마켓 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죠. 일하면서 집에서 쉬고, 요새는 거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술 먹거나, 룸메이트들이랑 술 먹거나 그러니까요. 집에 방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싱글룸이에요. 거기에 남아공에서 온 흑인 친구가 혼자 살아요. 이 친구는 나이가 40살이 넘었는데, 저한테 맨날 40유로만 빌려달라고 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는 급하다고 새벽 6시에 저를 깨우면서 돈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방은 네 명이 같이 살아요. 싱글 베드 두 개에 벙커 베드 한 개가 있어요. 브라질 친구 한 명, 멕시코 한 명, 베트남 여자 친구 한 명 그리고 저까지요. 구성원은 총 5명이고, 모두 다른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네 명이 같이 있다 보니 방이 되게 좁아요. 그래서 정말 잠만 잔다는 느낌인 거죠. 그래도 장점은 거실이 되게 넓어서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시고 떠들고 하는 것 같아요. 누구는 같이 영화도 본다고 하던데, 저희는 영화는 같이 안 봅니다. 서로 지킬 것은 지켜요. (웃음)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변한 점이 있다면요?
정재 : 한국에 있을 때 저는 안정적인 것을 무조건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직장도 공무원들이랑 같이 하는 일이여서 나라가 망하지 않은 이상 망하기 어려운 그런 기업이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었죠. 돈도 많이 받는 건 아니었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와서 보니까,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일에 너무 치이다 보니까 여행 가는 것도 귀찮고 그랬는데, 여기 와서는 여행 갈 때가 제일 행복해요. 막상 여행 가서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사진 찍는 것,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모르는 뭔가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때는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은 실천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어요. 제일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 더 나이를 먹으면 정말 못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아직까지는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해서. 물론 지금도 한국에서 엄마가 잔소리를 하시지만, 저는 마이웨이로(웃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여행 다니면서 살고 싶어요. 또 세상이 넓어졌어요. 특히 외국인 친구가 이전에는 없었는데, 이제는 외국인 친구가 생기다 보니까 외국인을 대하는 게 편해졌어요.
Q. 아일랜드 생활 얼마나 남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정재 : 정확히 일주일 남았어요. 약간 행복합니다. 왜냐면 한식을 정말 좋아해요. 특히 치킨, 자장면, 국밥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서 먹을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어느 정도냐면 다른 나라 여행을 갔을 때도 한식당을 항상 갔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한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친구들 볼 수 있다는 점도 물론이고요.
아일랜드 생활이 끝나면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스위스 융프라우 갔다가 로마에서 남부 투어도 하고, 베네치아 가서 곤돌라도 타고 프라하로 넘어가서 싼 술도 많이 먹고 부다페스트 야경 찍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한국에서 길게 잡아서 두 달 정도 있다가 그 이후로는 호주 워홀을 갈 생각이에요. 최소 1년 정도는 있을 것 같아요. 찾아보니까 호주는 최대 2년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거기서는 여행과 돈을 번다는 목적으로 가겠죠. 아마 다음 여행지는 캐나다나 미국 쪽, 그리고 브라질도 가고 싶어요.
Q. 호주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실 건가요?
정재 : 정확한 호주 워홀 계획은 한국에 돌아간 뒤에 짤 예정이에요. 왜냐하면 지금은 당장의 눈앞의 유럽여행이 더 급하니까요.(웃음) 여행을 갔을 때 그냥 즐기자는 스타일이고, 무리해서 하루에 꼭 몇 군데 꼭 들러야 해 이런 스타일은 아니어서 동선을 좀 느긋하게 짜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직까지 호주는 대략 가게 될 위치만 파악해 놓은 상태고, 만약 일을 하게 된다면 현지인들과 부딪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여기서 배운 영어를 안 쓰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을 가게 된다면, 영어를 쓰게 될 테니까 조금 Improve? 하기 위해서(웃음) 로컬들이랑 만나는 쪽으로 일을 구하고 싶어요.
Q. 요즘 사랑하는 게 있다면?
정재 : 카메라요. 좋아하게 된 게 2016년 8월쯤이었던 것 같은 데, 그 당시가 회사를 그만뒀던 시기였어요. 하루는 제 사진첩을 한 번 봤는데, 제20대 때 사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생각을 해보니까, 평소에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굳이 찍자면 그 당시에 만나던 전 여자친구들이랑만 찍었었나 봐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헤어지면서 정리를 아주 깔끔하게 해버린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제 사진이 남은 게 없더라고요. 문득 생각이 든 게, 사진을 찍게 된다면 적어도 언제 어디에 있었다는 기록은 남겠구나 였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기록을 하고 싶어서 시작을 했고, 빨리 질려 하는 스타일인데 아직까지는 질리지 않고 잘 하고 있네요(웃음)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정재 : 나이 서른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기겠지만, 여행 다니는 백수. 잘 노는 백수가 되고 싶어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하긴 해요. 그런데 하고 싶지가 않아요. 특히 한국에서는요. 저는 사람 개개인이 다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근로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장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말해 갑질을 너무 많이 해요.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가 을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너무 싫어요. 그런 사람들 밑에서 일할 바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죠. 어쩔 때는 홈리스들이 부럽다고 생각해요. 물론 안 좋은 거긴 하지만, 자기들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돈 필요하면 동냥하고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꿈은 놀고먹는 백수요. 로또 같은 거 되면 좋을 것 같아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정재 : 정말 열심히 놀고 있는 거요. 그런데 말이 그래도, 놀고먹는 백수를 하려면 고정적이진 않아도 어느 정도 수익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수익을 벌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고, 그런 걸 하기 위해서는 제일 좋은 건 기술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카메라도 인생을 걸고 샀고요. 풀 프레임으로요(웃음). 육두막이라는 제품이요. 물론 아직까지 초보고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하다 보면 늘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게,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그 사람의 행복까지도 같이 찍어주더라고요. 그런 게 멋있는 것 같아요. 마음속 한구석의 꿈이라고 하면 폴란드에 한인 민박을 차리는 게 꿈이에요. 물론 폴란드어를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긴 한데(웃음). 놀러 오는 사람들한테 스냅샷도 찍어주고 싶고 그래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정재 : 젊은 친구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꼭 오라는 거요. 여기서 제일 많이 만났던 연령대가 20살에서 25살 사이, 20대 초반들이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일랜드의 장점은 다른 유럽을 가기 너무 좋아요. 와서 아일랜드를 보라는 이야기는 안 할게요. (웃음) 물론 아일랜드도 좋은 곳 너무 많지만. 그래도 다른 유럽 국가는 꼭 가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보던 작은 세상에서 유럽이라는 큰 세상을 보면 눈이 떠지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와 이런 게 있구나 하면서요.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오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직장을 그만두시고 오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그분들에게 한 번쯤은 한 달 이상을 여기서 살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행을 가면 어디든 다 좋아요. 그런데 살아보면 조금 다르거든요. 저도 처음 여기 와서 2-3주는 너무 좋았는데, 한 달이 지나가면서 약간 지루해지기 시작했어요. 사람은 언제나 심지어 나이가 들어도 마음의 눈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세상은 넓으니까 무조건 돌아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정재 : 터닝포인트요. 한국에서 노예처럼 까지는 아니지만, 여느 한국인과 다름없이 평범한 길을 걸었잖아요. 학교 졸업해서 군대 다녀오고 취업하고요. 그런데 여기에 한 번 오게 되면서 저보다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이 오고, 그 친구들이 저보다 젊지만 아는 게 많고 더 깨어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그렇기에 사람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일랜드를 계기로 제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도전하지 못했던 나에서 도전하고 있는 나로 변화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문을 열어줬죠.
지금의 저는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춘기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주변 친구들도 결혼한 친구들이 많고, 안정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데 저는 또다시 도전을 하려고 하니까. 보통 사춘기 때 도전을 하잖아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 번의 인생을 더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터닝포인트. 지금이 제일 행복 한 것 같아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정재 : 40살이네요(웃음) 정재야 마음 마음 변하지 마라. 변하면 큰일 나(웃음) 아일랜드 왔던 때를 생각하고 놀고먹는 꿈을 다시 상기시켜. 그러면 다시 돌아올 거야! 이 생각과 이 마음이 그리고 제 자신이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10년이면 긴 시간이어서 직장을 안 잡고 계속 여행만 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알거든요. 당장 그만둘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년 안에? 한 달 안에도? 그런데 그러지 말고, 꼭 나중에 방 안에 큰 세계지도를 펼쳐놨을 때 가봤던 나라들 표시로 꽉 채워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정재 : 인터뷰를 하게 해준 인터뷰어 친구에게 고마워요. 이 인터뷰가 되게 좋은 게, 사람들은 매 순간을 바쁘게 살잖아요. 여기 와서는 매일 놀고먹고 하다 보니까 바쁘고, 또 한국에서 일할 때는 일한다고 바빴고, 학생 때 공부할 때는 공부한다고 바빴고요. 그런데 이 인터뷰하는 시간 동안, 저도 모르는 저 자신을 다시 정리하고 뒤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정재 : 인생은 한 번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즐겨보세요. 한국 사람들은 인생을 어린 나이부터 항상 계획을 하고 그 계획에 맞춰 살아간다는 느낌인데, 어느 정도의 계획성 있는 삶에 즐기는 삶도 조금 추가해서 살아가세요. 회사에 치여, 공부에 치여서 살게 된다면 너무 힘든 삶만 있잖아요. 고민은 내려놓고 한 번쯤은 그냥 즐기면서 지내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의 양이 나이를 말해주는 것일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깊이가 아닐까. 얼마나 깊은 순간들을 보냈는지에 따라, 22살의 나보다 30살의 내가 더 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하고, 마음의 눈을 닫아버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그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갈 것이다. 이제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보거든, 내 마음의 깊이를 말하겠다.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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