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 일곱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일곱 번째 인터뷰이는 자신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맞이한 음대생 유학생이다. 더블린에서는 어떤 도전을 맞이하여 마주했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5개월 차 신애를 더블린의 악기점 Musicmaker.에서 만나보았다.








신애의 음악 sleeping at last - turning page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신애 : 안녕하세요. 학생비자로 어학연수를 온 신애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신애 : 17년 10월 중순쯤에 들어와서 5개월 정도 됐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신애 : 네덜란드 음대에서 재즈피아노를 전공해서, 네덜란드에서 2년 정도 살았어요. 첫 외국 생활이어서 영어를 못했어요. 무식이 용감이어서 처음에는 겁 없이 갔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로 수업을 받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네덜란드가 다른 언어를 쓰는 유럽 친구들에 비해서 영어를 잘하긴 하지만, 더치들의 악센트가 강하거든요. 제가 완전하게 영어를 잘하는 상태가 아닌데, 그 악센트가 흡수가 되다 보니까 이상한 영어가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한 번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아일랜드로 오게됐어요.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인지?


신애 : 네덜란드랑 가까워서 선택했어요. 사실 영국도 생각을 했었는데, 네덜란드의 여유로움이 좋았거든요. 영국은 더 대도시잖아요. 조용하고 여유로운 아일랜드를 선택했죠. 그런데 영국을 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웃음) 이렇게까지 조용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조용해서.







Q. 네덜란드 오기 전에는 무슨 생활을 하셨나요?


신애 : 원래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을 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일을 했어요. 전혀 관련 없는 은행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아무래도 다시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숫자에 그렇게 능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감으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수를 다루는 일을 했는지 싶어요. 솔직하게 저는 음악적 감각을 타고 났거든요. 음악도 어떤 이론보다는 감으로 했어요. 아버지가 음악을 하시고 큰댁도 클래식 성악, 클래식 피아노 같이 다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라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Q. 네덜란드 학교는 한국과 비교해서 어떤가요?


신애 : 한국이랑 달라요. 엄청 다른데. 음대라서 토론을 많이 안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거의 백퍼센트 토론이에요. 정해진 답이 없는 거죠. 그리고 한국식 겸손은 바보 취급을 받아요. 예를 들면 겸손하게 말하면 원래 못하는 애가 되어버리고. “잘 못해” 했는데 잘하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고 해볼 사람? 이라고 질문하면 정말 다 손을 들어요. 제가 할게요! 하고요. 엄청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죠. 처음엔 많이 놀랐어요. 그리고 본인이 하는 것에 대해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영어도 잘해서 놀랐죠.




Q. 더치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우나요?


신애 : 더치 친구에게 왜 영어를 잘하냐고 물어봤어요. 배운 적이 없대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다고 하더라고요. TV에 미드 같은 게 많이 나와요. 자막이 아예 없는 것도 있고 영어 자막만 나오는 것도 있고. 그래서 문법은 약하지만, 회화는 기본적으로 다들 잘하더라고요.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할 수 있고 독일어 이탈리아어도 잘하고. 이 나라 문화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네덜란드가 자원이 없잖아요. 그래서 교육에 투자를 되게 많이 해요. 대학교 학비도 되게 싸고. 물론 저는 유러피안이 아니어서 비싸게 다녔지만(웃음) ‘네덜란드 학생들은 정부에서 용돈 받는다’ 그런 말도 있을 만큼 자국민에게는 잘해주더라고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만큼 본인도 잘해야 한대요.

그리고 기회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예술에 관하여 비판하는 걸 많이 못 봤어요. 어디에서든 항상 작은 공연을 하는데,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그러잖아요. “아 쟤 틀렸네. 다른 사람이 연주한 거 좋던데”라고 하면서. 그런데 더치들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라면서. 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해 주는 거죠. 존중을 해줘서 예술 할 맛 나죠.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엄청난 것을 이루다니" 이런 식으로요.

특히나 한국에서는 예술 하기 힘들잖아요. 정해진 루트도 있고 그래서 유학을 결정한 거죠. 한국에서 학교를 다시 갈까 했다가, 같은 돈 들고 똑같이 힘들 텐데, 그리고 동기들이 저보다 어릴 거고. 더 존중받기도 하고 네임밸류도 있는 네덜란드로 가자 해서 가게 된 거죠.



Q. 왜 네덜란드를 선택하신 건가요?


신애 : 유럽 음대에 가고 싶었는데 영어를 사용하는 곳이 네덜란드 밖에 없었어요.(웃음) 그리고 학교들도 괜찮더라고요. 커리큘럼을 봤을 때.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찾아보고 그랬죠.









Q. 네덜란드 대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신애 : 네덜란드 교육청 같은 홈페이지에 어느 지역, 어느 과 이런 정보가 다 나와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본인이 관심이 있으면 홈페이지 정도는 먼저 살펴보고 질문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이 맞는지 아닌지 봐야 하니까. 그리고 나서 지역을 보시라고 해요. 왜냐하면 제가 다녔던 학교의 지역은 외국인에게 열린 마음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전교생 통틀어 유일한 아시안이었어요. 인종차별을 안 하는데도 외로운 거죠. 이해해 줄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다 유러피안이고. 심지어 중국인도 없었어요. 그래서 엄청 외로웠죠. 이걸 감당할 수 있으면 가라고 하긴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죠. 그렇다고 지방이라고 무조건 그런건 또 아니에요. 어느 지방은 국제학생들이 많아서 열린 마음인곳도 많고요.

유학이라는게 학교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받쳐줘야 학교를 재밌게 다니고 친구들이랑도 친해지고 하거든요. 소통이 안되면 힘들죠. 어떤 느낌이냐면 한국에 분명 국제 학교라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곳인데, 다 한국인이고 일본인이고 중국인이고, 딱 한 명 머리가 노란 서양인 친구가 있는 거예요. 우린 다 우리의 문화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는 친구인데, 서양인 친구는 외국인인 거죠. 이 거리를 좁히기가 많이 힘들어요.




Q. 거기서 오는 장점도 있을 것 같은데?


신애 : 본인 하기 나름인데. 장점은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조금이라도 잘하면 기회가 많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저는 항상 신기한 사람이잖아요. 궁금해하니까. 그 와중에 인종차별하는 애들은 있고요.




Q. 네덜란드 인종차별 많나요?


신애 : 더블린이랑 다른 것 같아요. 네덜란드의 인종차별은 그냥 겉으로는 다 잘해주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는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있죠. 약간 한국 같아요. 예를 들면 로버트 할리도 아직도 외국인이잖아요. 한국에 40년 넘게 살아도 끝까지 외국인인 거죠. 그래서 잘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건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느끼는 인종차별은 그냥 차별인 거죠. 이게 오히려 더 순수한 차별 같아요.(웃음) 네덜란드에서 인종 차별을 한번 잘못 겪으면 트라우마 생길 만큼 더 깊은 차별인 거죠. 사상에서 오는 은근한 거라서 바꿀 수가 없어요.




Q. 네덜란드 문화에 충격 안 받으셨어요?


신애 : 느낀 건데 네덜란드는 일단 다 풀어줘요. 이렇게 풀어줬는데도 조절을 못하면 개인의 책임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책임이 엄청 무거워요. 벌금도 무겁구요. 그리고 정작 로컬들은 성매매를 안 해요. 관광객만 가죠. 이것도 더치들이 돈을 버는 사업 수단인 거예요. 거기 사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죠.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미친 욕구를 갖고 있지 않아요.

성매매 하는 것도 몇 년 전에 조사를 했대요. 어느 국가에서 제일 많이 오는지 조사를 했는데 더치가 딱 3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외국인들이었어요. 근데 그 더치 중 2명이 자살을 했어요. 너무 수치스러워서. 네덜란드가 정말 보수적이에요. 풀어놓는 건 범죄 저지르지 말라고 풀어 놓은거고 정작 로컬들은 마음속으로는 안 좋아해요. 특이한 심리인데, 범죄를 안 저지르게 모든 문은 열어놨어요. 사실은 정말 보수적이에요. 네덜란드 기독교 나라잖아요. 한국의 유교만큼 되게 심해요 “아 너네들은 다른 데서 왔고 하고 싶은 거 해. 그걸 우리가 안 막을 게. 하지만 대신 다 네 책임이야 우리 책임 아니야” 이런 식이죠. 교활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걸로 돈을 벌기도 하니까요. 신기해요.







Q. 아일랜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신애 : 조용한 유럽. 근데 생각보다 더 조용해서 놀랐어요.






Q. 네덜란드 비해서는 더블린은 얼마나 조용한가요?


신애 : 훨씬 작고 조용해요. 제가 학교가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독일 쪽이랑 가까운 외곽 쪽이었어요. 아른헴 이라는 소도시인데, 더블린이 아른헴보다 더 작아요(웃음) 건물도 훨씬 낮고 허름하고 오래됐고. 재개발을 안 하는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신애 : 엄청나게 우울했어요. 10월에 저 오자마자 허리케인이 왔거든요. 도착했는데 바람이 엄청 몰아치는 거예요. 네덜란드만큼 안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여기가 더 안 좋은가? 그랬는데. 허리케인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시작을 좋게 못했어요. 초반에는 좋고 밝은 이야기가 없어요. 특히 집을 구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한국인 분께 뷰잉을 갔는데 너무 무례하게 대하셔서 충격이었어요. 집 상태도 말이 아니었고. 그분도 분명 한국에서 그렇게 안 살았을 텐데. 평범한 사람인데. 와서 얼마나 팍팍했으면, 사람이 저렇게 바뀌었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그냥 안 치우는 게 아니라 집이 폐가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 날 집에 돌아갈 거라고 엄청 울었어요. 그 이후에도 순탄치가 않았어요. 지금 이렇게 안정된 게 신기할 정도로. 제가 뭐만 하려고 하면 태클 거는 게 생기는 거죠. 사실 더블린에 대한 기대도 없었지만, 그 기대 없는 게 아마 기대였겠죠? 나쁠게 없다고 기대를 한 거겠죠. 근데 오자마자 첫인상은 최악이었어요. 어두웠고. 날씨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Q. 이후에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신애 : 영어 공부하고 있고, 사실 음악 작업은 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지금 이 감정들을 곡으로 쓰고 싶어서 개인적인 기록은 하고 있어요. 사실 초반에 너무 심하게 우울했으니까, 시간 낭비, 돈 낭비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마음가짐을 바꿨죠. 제가 선택해서 온 거니까요. 여기에서 있는 시간을 재밌게 보내자에 초점을 맞추고나니 지금은 너무 좋아요.







Q. 아일랜드가 버스킹의 나라라고 하는데, 음악 전공자로서 어떠신가요?


신애 : 버스커들 중에서 잘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멋있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 가끔가다가 연습을 조금만 더 해줬으면 하는 분들도 보이고.(웃음) 전반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네덜란드보다도 훨씬 활발해서 좋아요. 음악들이 조금 더 다양하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또 어딜 가나 음악이 있으니까 좋아요. 자극도 많이 받아서 제 미래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Q. 어떤 고민인가요?


신애 :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의 제가 어떤 성향인지 처음 알게 되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이 진정으로 제가 원했던 것들인가 고민이 되었어요. 이런 생각이 드니까 공허 하더라고요. 전에 해왔던 것들이 부질없어진 느낌이니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생각들이 저를 엄청 압박하는데 안 하면 안 되는 고민인거 잖아요. 저 스스로에 대해 깊게 알게 되는 거니까. 또, 인생의 목표가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되기도 했고.

그리고 해외에 나와 산지 몇 개월 된 게 아니라 나름 거의 2년 반이 넘어가고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한국도 몇번 안 들어 갔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거예요. 한국 친구들이랑 물론 친하긴 하지만 사소한 걸 모두 다 공유할 수는 없잖아요. 굵직한 것만 이야기하고. 분명 처음엔 다 공유했어요. 그런데 점점 서로 공감이 안되고 시간대도 안 맞고 하다 보니까. 그리고 제가 여기 생활에 적응되고, 정착을 하게 돼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영어를 못하니까 길에서 걸어 다닐 때도 혼잣말로 영어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말을 할 때 가끔 생각이 안 나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런 게 빈번해지기도 하고 제가 무슨 사람인지 정체성의 고민까지 가더라고요. 이런 문제를 제가 겪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싫어하는 한국 문화도 생기기도 했고.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대화를 해도 전혀 관심사가 다르니까. 그렇지만 저는 여기 더블린에서 외국인이잖아요. 그럼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어디에 속해있는 건가 하면서 사상도 많이 바뀌기도 했고 정체성 혼란이 생각지도 못하게 오더라고요.



- 동서양이 만났을 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저는 그걸 제 음악에서 느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 정서를 정말 갖고 있는 한국인이잖아요. 그런데 감사한건지 모르겠지만 학구파가 아니어서 한국식 음악교육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제가 여기 와서 여기서 알려주는 걸 흡수하다 보니까 반반이 되는 거예요.원래 가지고 있던 틀 같은 게 없었으니까. 학교에서 발표를 하거나 공연을 하면, 끝나고 저에게 와서 어떻게 만든거냐고 친구들이랑교수님들이 많이 물어봐요. 그런데 제 귀에는 되게 익숙하거든요. 동양 적이고 한국적인 멜로디, 한국적인 소리인데,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새로운 거예요. 동서양이 조화롭게 섞이면 아름답게 되는구나 느끼면서 오히려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된 거죠.



- 한국의 음악이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국 사람들 음악 만들 때 되게 세련됐잖아요. 개인 작업하시는 분들 보면 감각 좋으신 분들 많잖아요. 그런데 그 음악이 우리만 들었을 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되게 세련되게 들리거든요. 자신감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까운 것이, 지금 더블린에서도 그렇고 네덜란드에서도 그랬고, 엄청 재능을 가지고 계신 한국 분들이 많으실 텐데 활동을 안 하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도 사느라 바빠서 안 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한 번이라도 더 했으면 좋겠어요. 한 번이라도 한국인이라는 노출을 많이 시키고. 그런데 한국인들은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모두 다 완벽하지 않거든요. 그 알만 깨고 나면 어마어마해지는 거죠.



- 개인적으로도 한국 문화가 세계화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매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네 정말로요. 학교 오디션을 볼 때, 기본 재즈, 클래식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 외에 알아서 몇 곡을 더 준비해야 했어요. 기본 재즈는 한 곡 밖에 준비를 안 했고, 클래식도 악보를 주실 테니까 그때 치면 되겠지 싶어서 자작곡을 더 많이 준비했거든요. 그리고 자작곡으로 붙었어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기본 재즈를 정말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제가 쓴 자작곡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를 가르쳐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 붙었죠. 한국적인 정서의 조용한 곡이었거든요. 익숙하고 한국인들의 귀에는 절대로 신기한 곡이 아닌데. 그들에게는 새로운 멜로디, 새로운 문화가 되는 거죠.





Q. 노래는 어디서 들을 수 있나요?


신애 : 외국 라이센스로 나와서 한국에서는 발매가 안됐어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유투브에서 들을 수 있어요.

신애's Spotify 주소

https://open.spotify.com/artist/0wHaIKl9sbI9H0wajTVV8D?si=NC11VVY1TMKscZn7ET3GaA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요?


신애 : 꼭 집어서 언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해 뜨면 좋아요. 하는 것 없어도 일단 나가거든요. 네덜란드에서도 작년 겨울에 해를 너무 못 봐서 더블린이랑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우울해졌었어요. 그때는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지금은 적응도 많이 했고, 해 뜨면 너무 좋아요. 혼자 돌아다녀도 상관없고 무조건 나와요. 그제서야 더블린도 아름다운 유럽이구나 느끼면서 너무 예쁘고 그렇죠.(웃음)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신애 :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인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상한 사람을 만나긴 했어도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끝났어요. 근데 여기에는 오자마자 그런 일들을 겪고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 되더라고요. 원래 안 그랬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혼자 속상한 게 많았어요.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같이 외국 생활하고 있는데 왜 서로 힘들게 해야 하지? 우리가 한국에서 같이 살았어도 이랬을까?

밖에서 만난 한국인 조심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맞아요. 그 사람한테 더 바라지 않아요. 같은 한국인 끼리 더 잘해주겠지라는 기대도 안 하긴 하지만, 기본은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나쁘게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보니까.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혼자 생각해봤어요. 저도 의도치 않게 그런 경우가 있었나?

좋은 점은 분명 있어요. 그런데 좋은 건 자기만 하려고 하고, 공유를 잘 안 하는 느낌. 다들 여기 오기 위해서 목표를 가지고 왔잖아요. 아무 이유 없이 왔어도 유학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온 것도 목적이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더라고요. 저를 돌아보게 되고,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롤모델인 거죠.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의미가 있다면?


신애 : 영화 원스에 나오는 악기점 월튼인데, 얼마 전에 없어졌더라고요. 사실 저만의 장소는 스미스 필드 쪽이에요. 이 동네에서 살게 될지 몰랐는데 피닉스파크도 근처에 있고 가끔 가서 러닝도 하고, 이 동네가 위험한 동네라고 하는데, 저는 너무 좋아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신애 : 확실히 많이 바뀌었죠. 네덜란드에서 2년 동안 살 때보다 더블린에서의 5개월이 오히려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네덜란드에서 제 시야는 학교 안에만 있었는데, 더블린에 오고 나서는 정말 많은 일을 겪고 나니까 성장통이라고 하죠? 덕분에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정말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아요. 힘든 일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웃음) 그리고 분명 아일랜드가 좋아서 여기서 살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 그 당시에 제가 너무 상황에 치여서 여유가 없어서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알게 된 게 좋은 변화이죠.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거죠. 예를 들면 고수들은 펀치가 와도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있잖아요. 근데 초보들은 호들갑 떨면서 피하잖아요. 제가 그때는 그런 여유가 없던 초보였던 거죠.


가끔씩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하거든요. 그래서 이야기 들어보면 어쨌든 다른 나라에서 겪는 변화들이 당시에는 힘들어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위로를 해주더라고요. 친구들도 해외 유학의 경험을 한 친구들이니까. 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안 좋게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는 거죠.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정말 몰랐을 것 같아요. 편하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제 능력 밖에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기다려야 하고, 지켜만 봐야 하고. 그런 경험들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조급하지 않고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신애 :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 현재에 집중을 하려고 해요. 그리고 끝나고 공부를 더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좋았던지 안 좋았던지 가고 나면 분명히 좋게 생각을 할 거예요. 기억이 퇴색되면서 미화되면서 그때 힘들었지만 좋았지라고 기억을 분명할 거니까.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신애 : 초반에 우울해서 음악도 내려놓고 잠깐 까먹고 있었잖아요.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더블린에서 제 주제곡을 여쭤봐주셔서 생각해보다가 갑자기 또 훅 영감이 왔어요. 저는 정말 음악을 하고 싶더라고요. 공부를 안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음악 쪽 일을 하고 싶어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신애 : 마음 편하게 사는 거요. 음악을 감으로 하기 때문에, 슬프면 슬픈 곡을 만들고, 기쁘면 기쁜 곡을 만들거든요. 그래서 사실 돈이 되지는 않아요.(웃음) 돈이 되려면 주문을 받고 기계처럼 뽑아내야 하는데 저는 제 감정이 깊지 않으면 곡을 만들 수가 없거든요. 대신에 이런 깊은 작업을 위주로 하다 보니 대중의 공감을 더 많이 얻는 장점은 있어요. 제 장점을 활용해서 돈이 되는 지점을 찾아야겠죠. 그런 매니저를 만난다던가. 그런 회사를 만난다던가 하면 참 좋겠는데(웃음)



Q. 그러면 재즈를 하고 싶은 건가요?


신애 : 정통재즈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전공도 재즈가 아니라 재즈 앤 팝 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재즈를 기본으로 조금 더 현대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생각하는 재즈는 정통 재즈여야만 하잖아요. 클래식도 그렇고.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놀랐던 부분 중에 하나인데, 네덜란드는 재즈 앤 팝이더라도 오디션 할 때 클래식을 요구해요. 당연하게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재즈 면 재즈, 클래식이면 클래식만 해야 하는데. 사실 다 같은 음악인 거잖아요. 클래식을 한다고 재즈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걸 굳이 나누는 거죠. 그래서 재즈 페스티벌에 정통 재즈팀이 아니면 왜 오냐고 반발도 많기도 하고. 사실 다 같은 거 거든요. 재즈를 기반으로 해서 각자의 매력을 살려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 건데.


열심히 파고들어서 한 적이 없었어요. 항상 감으로 하고 느낌으로만 해서, 하지만 한국에서는 학구파나 노력파들이 인정을 받잖아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는 물 흐리는 애, 딴 거만 하는 애, 연습 안 하고 딴 거 만 하는 애였죠. 그래서 저는 여기 와서 너무 잘 맞았는데, 한국에서 유학 오시는 분들 중에서 룰대로만 하시던 분들은 슬럼프를 많이 겪으시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분들이 훨씬 인정을 받죠. 기본기가 탄탄하니까. 그런데 저 같이 기복이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힘들죠. 그래서 그게 다른 것 같아요. 둘 다 틀린 게아니라 이게 반반이 되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도 정형화된 정답보다는 다양한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신애 : 준비를 더 했으면 좋겠어요. 준비라는 게, 금전적인 여유를 조금 가졌으면 좋겠고. 온다면은 유학원 말고 스스로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저도 네덜란드 갔을 때도 겪었었고, 지금도 유학원 통해서 오신 분들 중에 불만이 너무 많으시더라고요. 사실 아일랜드는 혼자서 해도 아무 문제없는 곳이거든요. 여기는 영어만 하면 되잖아요. 여기 오려고 결정하신 분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읽을 줄은 알고 발음할 줄은 아시는 분들이잖아요. 말이 안 나올 뿐이지. 그거라도 안되면 아예 올 생각을 못하니까. 그냥 자기를 믿고 조금 더 능동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외국에서 사는 게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니잖아요. 한국처럼 그렇게 다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온다면 힘든 거 없이 잘 적응해서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이 해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런 마음이 준비가 안되고 유학원을 통해서 왔는데 기대만큼 오는 서포트가 없고, 정해준 홈스테이를 갔는데 또 기대만큼 안될 때,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있잖아요. 이러려고 왔나 싶고. 그래서 유학원을 통해서 오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이니까.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신애 : 인생오춘기. 질풍노도를 여기서 다 겪고 이제 즐거운 것만 남았기를.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신애: 욕봤다.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신애 : 재밌었어요. 의미 있는 시간. 아일랜드에 오시거나, 아일랜드가 아니더라도 해외 생활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길 바라요!







어디에 있냐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는 것과.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이와 함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공간이 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우리는 정말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찬바람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디찬 강추위의 맞서 웃음으로 따뜻했다. 문득, 사람들 사이에서 멈춰 있다고 느낄 때, 언제나 그렇듯 우리 발 밑에 행복이 있었다.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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