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 아일랜드 더블린 한국인 청년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여섯 번째 인터뷰이는 영화와 걷는 것을 좋아하는 유학생이다. 더블린에서는 어떤 걸음을 했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8개월 차 현석(24)을 영화 싱스트리트 촬영지 그리고 아일랜드의 개성넘치는 골목길이 있는 더블린8에서 만나보았다.
현석의 음악 P!nk - What About Us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현석 : 안녕하세요. 학생비자로 온 25살 현석입니다.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요.(웃음)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현석 : 17년 7월 19일에 왔고 8개월 정도 됐습니다.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현석 : 작년 2월에 육군 전역하고 바로 복학해서 학교생활을 했어요. 밤을 많이 새는 타입이 아닌데 과제를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새벽 3-4시까지 학교에서 찌들어 살았죠. 전공이 건축이거든요. 그래서 더 탈출하고 싶었어요.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갈망도 있었고요. 군대 전역하고 첫 학기였는데, 아일랜드에 오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버텼어요. 학기 중에 어학연수를 준비를 했거든요.
Q. 왜 아일랜드 인지?
현석 : 군대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제게 어학연수를 넌지시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원래도 영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직접 해외 생활을 경험한 친구들이 그렇게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니까 더 알아보게 된 거죠. 전역이 가까워지면서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고, 인생을 리마인드 해보게 되더라고요. 밖에 나가면 뭐 하지라는 생각도.
캐나다와 호주는 여행하기에는 불편할 것 같고, 아일랜드가 유럽여행 하기에도 좋을 것 같고, 물가도 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그렇게 싼지 모르겠어요. 환율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어떻게 보면 지금 캐나다 환율이 많이 떨어졌던데요? (웃음) 결정적인 이유는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알아보기 전에 영화
싱스트리트를 봤거든요. 인상 깊었었어요. 그래서 싱스트리트 배경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요. 어떻게 보면 싱스트리트 덕분에 오게 된 거죠.
그래서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싱스트리트 촬영지였던 학교를 갔었어요. 처음엔 학교에 들어가기에 엄두가 안 났어요.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딱히 그런 것도 없고.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요.(웃음) 주인공들이 여기서 촬영을 했다는 것을 느꼈죠.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그리고 호스에서 뮤직비디오를 찍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영화를 봤을 때는 사실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호스를 가서 보니까 여기에서 찍은 게 맞더라고요. 감회가 새로웠어요.
영화 러브로지 아세요? 한국에서 봤었는데,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보게 됐는데, 보다 보니까 아는 장소들이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것도 아일랜드에서 찍었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제가 외국 영화에 나오는 배경지들을 알아본다는 게.
Q.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
현석 : 네. 그래서 아일랜드에서도 영화 자주 봤거든요. 라스 마인에 살아서 주로 라스 마인 영화관에서 봤어요. 시설이 되게 좋기도 하고, 화요일마다 행사를 해서 6유로에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오코널 스트릿에 있는 Savoy 영화관은 가지 마세요. 옛날에 음악회나 연극을 하는 곳이었어서, 건물 자체가 울림이 심한 것 같더라고요. 근처에 있는 사람이 떠들면 그 떠드는 소리까지 울림이 퍼지니까 심지어 과자 소리도 울리더라고요.
그런데 라스마인 영화관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영화관이고 의자도 좋고요. 추천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스미스필드 쪽에 라이트하우스라고 있거든요.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해요. 최근에 Shape of Water도 봤고, Call me by your name도 봤어요. Call me by your name는 이탈리아에서 촬영했다고 하더라고요. 색감도 이탈리아 특유의 노란색이고, 퀴어 내용이에요. 사실 한국인들은 게이나 레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잖아요. 아일랜드는 동성애가 합법화인 나라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도 정말 많이 볼 수 있고, 펍만 가도 보고. 보다 보니까 신경도 안 쓰이고. 사실 제가 신경 쓰는 게 더 이상한 거죠. 그분들이 서로 좋다는데 뭐.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현석 : 더블린은 수도잖아요. 서울만 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적어도 서울 반은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고요. 유럽이니까 복지가 잘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 가장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하더라고요. 더블린에 대한 책을 찾아봤는데, 대형서점에 가도 워홀러를 위한 책 한 권정도? 심지어 그 책도 오래된 책이어서 정보를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유튜브에 검색을 했는데 어떤 분이 다큐멘터리를 만드셨더라고요. 그분이 희망을 갖고 오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처음에는 외국이고, 유럽이고 그러니까 기대가 높았다가 그 동영상을 계기로 많이 낮아졌죠.(웃음)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현석 :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살았고. 본 집은 통영이에요. 친구들이 저보고 통영 자부심 있다고 할 정도로 제가 맨날 통영 자랑하거든요. 그런데 통영이랑 아일랜드랑 비슷한 것 같아요. 통영도 바람은 많이 부는데 온도는 별로 낮지 않거든요. 추워봤자 영상이고 그러니까 비 빼고는 아일랜드가 낯설지 않았어요. 통영이 -1, -2도 밖에 안될 때도 서울보다 춥다고 느꼈거든요. 온도는 낮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부니까 껴입는다는 점에 통영이랑 많이 비슷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시티에 왔을 때, 건물을 제일 먼저 봤어요. 더블린 4에 흰색 다리가 있는데, 지난 학기에 조사했던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라는 건축가가 지은 다리더라고요. 놀랐죠. “이게 여기에 있구나”하면서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아일랜드에 온 게 운명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홈스테이는 블랙락에서 했거든요. 작고 영국 소도시 같은 주택가예요. 그래서 외국에 왔다는 실감을 했죠. 집에서 바닷가까지 걸어서 20분 정도라 자주 갔어요. 홈스테이에 있으면 눈치도 보이고, 집에만 있으니까 우울해지더라고요. 안 그래도 됐는데 처음엔 그랬죠.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블랙락에 마켓이 있거든요. 아기자기하고 예뻐요. 빈티지 마켓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스타벅스 3위로 뽑힌 곳도 있어요. 옛날에 우체국이었는데 개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세계 3위까진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리피강 앞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가 더 예쁜 것 같아요. 아니 사실 강릉 카페거리의 카페들이 더 예뻐요. 동네다 보니까 자주 갔는데 갈 때마다 날씨도 우중충했고 아쉬워요.(웃음) 그리고 유럽여행도 갔었고요.
Q. 유럽여행은 어디 다녀오셨나요?
현석 : 더블린 오기 전에 친구들이랑 3주 정도 바르셀로나, 니스, 런던 갔었고요. 혼자 런던, 마드리드 갔고. 부모님이랑 친누나가 오셔서 파리, 로마, 이탈리아 남부 갔다 왔어요.
Q. 부모님이랑 유럽 여행하는 건 어떠셨나요?
현석 : 이번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옛날에는 부모님은 부모님이니까 저보다 강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여행 계획 세우시고, 부모님이 운전하시고, 사실 그냥 따라간 거죠. 이제는 그게 반대가 되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누나가 운전하고 제가 조수석에 탔거든요. 부모님은 뒤에서 주무시고, 그래서 그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거니까.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고 부모님도 나이를 드셨구나를 확실하게 느낀 것 같아요.
- 슬픈 기분인가요?
교차하는 것 같아요. 아직 슬플 만큼 부모님이 늙으신 건 아니라(웃음) 새로운 감정이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친구들한테 감정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소위 말하면 정 없는 새끼라고. 외로움도 잘 안 타고요. 대학교 입학하고서는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다 보니까. 연락도 자주 안 드리기도 하고요. 학교 다닐 때도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씩 드렸거든요. 게다가 가족끼리 나온 해외여행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요. 사실 혼자 유럽에 와있으니까 혼자 좋은 거 누리는 거 같아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이번 여행을 계기로 미안함이 줄기도 했죠.
Q. 어디 어디 다녀오신 건가요?
현석 : 정하게 된 건 부모님이 감흥이 생기려면 아는 도시여야 되거든요. 그래서 파리랑 로마를 선택했고요. 차를 렌트해서 이탈리아 로마 남부 투어를 했어요. 나폴리라는 도시가 있어요.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하거든요. 저희 부모님 두 분다 통영 토박이시라 어머니가 먼저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어머니 고등학생 시절에 선생님께서 많이 얘기해주셨다면서요. 꼭 가보고 싶으셨다고.
10일 정도 했는데 사실 힘들었어요.(웃음) 저는 아무래도 보고 싶은 게 많은데 부모님이 체력이 안 따라주시니까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많았고. 아버지가 사진을 정말 많이 찍으시는 거예요. 거의 한 스텝에 한 사진씩(웃음) 아이처럼 먼저 달려가셔서 찍으시고. 지금 생각하니까 부모님이 추억을 남기고 싶으셔서 그런 거 이해하는데 그때는 그만 찍으라고 했죠. 저희가 사진 찍는 거를 너무 싫어하니까, 부모님께서 저희가 다음번에는 같이 여행을 안 가줄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막상 여행이 끝나니까 정말 죄송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아니라고 또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그러면 다음에는 캐나다도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어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족끼리 간 적이 없어서 여행에 대한 장벽도 되게 높고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한 번 나갔다 오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부모님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시고. 또 가려고요.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현석 : 처음에 한 달은 홈스테이 친구들이랑 많이 어울렸어요. 스페인 여자친구 2명 이탈리아 여자친구 2명 이였어요. 스페인 친구들은 확실히 에너지가 좋아서 친근하게 대해주니까 금방 친해졌어요. 다이시스를 가자고 해서 같이 놀았죠. 거기서 한국인 분을 만나서 친해져서, 그분이랑 같이 점심을 먹고 그랬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학원 말고는 영어는 아예 안 쓰고 있는 거 같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아유모에 회화 모임이 올라 왔길래 온 지 3주 만에 가입했어요. 회화 모임 하면서 유튜브로 공부도 하고 그랬죠.
집은 다프트(daft.ie)에서 라스마인에 잘 구했는데, 일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처음에 CV를 20장을 뽑아서 카페에 돌렸어요. 한국에서 카페에서만 일을 해봤거든요.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일식집에서 운이 좋게 일을 하게 됐는데, 시급을 최저도 안 주고 키친포터다 보니까 설거지를 하던 와중에 제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이 고돼서 그렇다기보다는, 일식집이다 보니까 다 한국인, 일본인들이고, 어학연수와서 영어도 안 쓰고 있고. 그래서 첫 날 일하고 그 다음날 바로 그만뒀죠.
샐러드바에서 연락이 와서 첫 주에 3일 일하고, 다음 주에 스케줄 짜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웃음) 유니폼, 앞치마 이런 거 다 받았는데. 황당했죠. 별 수 있나요. 20장을 또 뽑아서 다시 돌렸는데, 한 카페에서 연락이 왔어요. 인터뷰를 갔는데 매니저분이 저를 좋게 생각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델리도 해야 하고, 마감도 제가 해야 하고 집이랑도 멀어서 고민하던 와중에 센트라에서 연락이 왔어요. 편의점이고 집이랑도 가깝고 일도 덜 복잡하겠다 싶어서 6개월 정도 일했죠.
Q. 센트라에서 같이 일하는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요?
현석 : 틸이랑 델리로 나뉘어요. 틸은 계산도 하고 창고 정리를 주로 해서 남자만 뽑고, 델리는 주로 여자가 하죠. 한국인, 크로아티아, 헝가리, 이탈리아, 체코 이렇게 다양해요. 델리에서 일하시는 한국인 분은 2년 정도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도 한국인이 몇 명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더라고요.특히 욕 같은 거.(웃음) 출근하면 좋은 아침이라고 한국어로 말해주고, 집 갈 때는 안녕이라고 해주고 재밌어요. 어떤 친구 한 명이라는 일하는 게 잘 안 맞아서 트러블이 있었긴 했지만, 그 친구 말고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사이가 좋아서 크리스마스 때 파티도 했어요. 사장님이 작은 후원금도 주셔서 좋았죠. 지금은 한국인 분들이 많아졌어요. 저 포함해서 6명? 틸을 남자만 뽑는데 뽑을 때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군대 갔다 왔냐고. 이 친구들이 아무래도 군대를 갔다 오면 확실히 일을 잘 하는 걸 아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한국에서 군대는 누구나 다 가야 하지만 외국에 나오니까 군대를 다녀온 걸 신기하게 생각하고, 엄청난 메리트 아닌 메리트더라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현석 : 더블린 사람들 두 번째 주인공이었던 성찬이 형이 버스킹을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옆에 앉으라길래 같이 버스킹을 했거든요. 그때 혁오 노래를 불렀는데 앞에 어떤 아이리쉬 여자 친구가 따라 부르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친구가 서울대에서 교환학생을 했대요. 인스타그램을 주고받고 3주 정도 뒤에 제가 코리안 밋업을 갔어요. 드렁큰 피쉬 한식당에서 하는 건데 거기에 그 친구가 밥을 먹고 있는 거예요. Nini라는 친구예요. 니니가 엄청 활발해서 다음에 집에 오라고 초대해줬어요. 그때 니니네서 다른 친구들이랑 영화 보고 파자마 파티하고 그랬어요. 밤새 놀다가 아침에 집에 가는데 기쁘고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날씨도 되게 좋았거든요. 그때 진짜 외국 생활을 하는 걸 느꼈어요. 전까지는 진짜 혼자서 전전긍긍하면서 이것 저것 알아보고 혼자 휴대폰 보고 영어공부했는데. 영어를 떠나서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Q. 그 이후로도 계속 만나셨나요?
현석 : 네. 자주 봤어요. 많이 볼 때는 일주일에 4번도 보고 니니 동생이랑도 친해지고, 어머니랑도 친해졌죠. 영어도 눈에 띄게 많이 늘었죠. 한국으로 가서 기쁘기도 하지만, 곧 아일랜드를 떠난 다고 생각하니까 시원섭섭해요. 여기서 사귄 외국인 친구들을 남기고 간다는 것도 슬프고. 그때 친해진 친구들 중 한 명이 곧 결혼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결혼식에 못 가니까 친구들도 많이 섭섭해하더라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현석 : 인간관계. 오기전에는 어학연수를 가면 한국인들이랑 안 만나겠다고 다짐한 게 있어서, 회화 모임 말고는 친구가 정말 없었거든요.외국인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모르니까 주눅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니니랑 친해지고 나니, 저 혼자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오해를 했더라고요. 저만 마음을 열면 됐던거였죠.
또 하나는 일할 때 힘들었어요. 일하는 곳에 시큐리티가 없었어요. (대부분의 아일랜드 가게들은 경호원이 상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홈리스들이랑 많이 부딪쳤어요. 틴에이저 애들이랑도요. 훔치는 건 다반사고, 음료수 2개를 꺼내더니 저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흔들고 나가더라고요. 황당했죠. 보통 훔칠 것 같으면 옆에서 물건 정리하는 척을 해요. 한 번은 강도 들었거든요. 가위 들고 들어와서 돈을 달라고 안 주면 찌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물건 정리를 하느라 뒤에 있었는데, 계산대에 있던 친구가 럭비를 하던 키 193의 베네수엘라 친구였어요. 잘못 걸린 거죠. 그 친구가 제압을 하는 중에 저는 엄청 당황하고 황당해서, 뭘 해야 하나 멍 때리다가 경찰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999에 전화를 했는데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고, 경찰관인지 소방관인지 앰뷸런스인지 물어보더라고요. 몰랐죠. 그래서 여기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서 빨리 와달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운이 좋게 근처에 GARDA(아일랜드 경찰)가 있어서 2분 만에 왔어요. 그땐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바닥에 피가 있더라고요. 직원이 다친 건 아니고 다행인지 강도가 다쳤더라고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손이 덜덜 떨리고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로요. 밤 8시 정도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일단 돈은 벌어야 하니까 계속 하긴 했죠. 그래서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죠.
- 정말 무서웠을 거 같아요.
그거 아세요? 맨체스터에서 한국인 남성이 지나가던 행인에게 와인병으로 가격 당한거. 그 이후로 누가 와서 와인을 훔치려고 하면 다가가서 제지하는게 무서운 거예요. 그 사건 생각도 나고. 그때마다 손 떨리고 그랬죠. 여기 10대 애들은 정말 한국의 10대와는 차원이 다른 거 같아요. 한국 10대 애들은 숨어서 나쁜 짓을 한다고 치면, 여기 애들은 대놓고 하니까. 그리고 인종차별을 당할 때 처음엔 무시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말을 하면서 비꼬았어요. 어떤 손님이 또 훔치려고 하는데 제가 제지하니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더라고요. 나가면서 물건 던지길래 제가 Thank you라고 했거든요. 열받았는지 또 들어와서 뭐라고 해서 제가 Lovely라고 하고 God bless you라고 하고 더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제 입도 안 더러워지고. 사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였죠. 하도 당하니까 못참겠더라고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변한 점이 있다면요
현석 : 눈에 띄는 변화는 옷을 입는 느낌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너드(Nerd)처럼 입고 다녔거든요. 어떻게 보면 어려 보이는 느낌이었죠. 이제는 여기 와서 뭔가 완전 무톤, 검은색을 입어요. 가끔씩 빨간색을 입긴 하는데 많이 단정해진 것 같아요.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남의 시선을 덜 쓰게 된 점. 머리를 어떻게 하던지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싶은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또, 영어 공부를 해서 나중에 써먹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그렇기 하기에는 이 1년도 안되는 시간은 정말 짧더라고요. 한국에서 영어를 잘못 배웠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국에 대한 애정도 더 커진 거 같아요. 특히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을 했잖아요. 개막식 보면서 한국기술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도 들고. 아일랜드가 아이티 강국이라고 하긴 하는데도 인터넷 속도가 한국 90년대 같으니까. 스타벅스 와이파이도 결코 빠르지 않으니까. 특히 버스 같은 경우에는 걷는 것보다 느린데 엄청 비싸니까. 많이 걸어 다녔어요. 더블린 바이크도 자주 탔어요.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의미가 있다면?
현석 : Liverty ln 스트릿이요.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학원 가는길을 매일 걸어다녔거든요. 매번 가던 길로 가면 재미없잖아요. 예를 들면 어제는 일자로 걸었으면 오늘은 ㄷ자로 걷는다거나 반대로 간다던가 하다가 이 길을 찾았어요. 매주는 아닌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그래피티가 바뀌더라고요. 건축학과이다 보니까 이런 건물에 작품을 표현하는게 재밌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벽화 보는 맛에 계속 다녔죠.
또, 저만 알고 싶은 카페가 있는데 이제 아일랜드를 떠나니까 말씀드릴게요.(웃음) 포토벨로 쪽에 Wall&keogh라는 티와 커피를 파는 곳인데, 하우스 블랜더라고 직접 블랜드 하는 커피가 있는데 단맛이나요. 쿠폰이 있는데 자주 가다 보니 제가 몇 번이나 무료 커피도 받았고요. 일하는 친구들이랑 친해졌어요. 제가 뭐 먹는지도 알정도로요.(웃음) 또 하나는 캠든 스트릿에 시크릿 카페라고 있는데, 서점 안에 카페가 있어요. 분위기도 좋고 건물 자체도 남미 느낌도 나더라고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현석 : 곧 아일랜드를 떠나서 이번 주부터 아일랜드 여행을 해요. 역사적으로 깊은 장소인 뉴그레인를 가요. 그리고 골웨이, 코크 마지막 투어를 하고 그리고 북아일랜드를 가고요. 북유럽 갔다가 아프리카 모로코로 가요. 가방 하나 들고 갑니다. 이번에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보통 스카이 스캐너로 비행기를 찾잖아요. 그런데 저는 항공사 사이트에 한 번 더 들어가서 확인을 하는데, 노르웨이 항공인데 Youth 가격이 있더라고요. 스카이 스캐너에서 본 가격보다 반값이더라고요. 여행을 많이 하니까 이런 소소한 노하우가 많이 생긴 거 같아 좋아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현석 : 졸업하고 나서 서른 살 전에 기회가 된다면 영어권 국가에서 취직을 하고 싶고요. 나중에 성공을 한다면(웃음) 건축을 계속하면서 통영에서 살고 싶어요. 스페인에 건축팀이 있는데 엄청 소도시에 살면서 그 도시를 위한 건축을 하면서 유명해졌거든요. 한국은 너무 서울 중심이잖아요. 그 팀처럼 저도 제 도시인 통영에서 작업을 하고 싶어요.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현석 : 짐을 많이 안 들고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방 하나만 들고 왔거든요. 와서 택배를 받긴 했는데 딱히 필요 없었던거 같아요. 돈 아낀다고 다 가져와도, 어차피 페니스가서 새로 사게 돼있거든요. 입던 옷 입어야지라고 생각해도, 무조건 질려서 다시 사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이제 와서 후회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아일랜드를 돌아봤어야 했더라고요.
그리고 나만의 장소를 찾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군대 있을 때 목표 중 하나가 단골가게를 만드는 거였어요. 제가 어떤 가게에 단골이 돼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 개념처럼 아일랜드에서도 자기만의 장소를 만들어서, 직원들이랑 친해지기도 하고 재밌는 일중에 하나 같아요. 외국에서 살면서 그런 경험 한 번쯤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현석 : 애증의 도시. 싫을 땐 싫었는데, 떠나려니 섭섭해요. 싫은 건 그런 거 같아요. 놓여있던 상황이 싫은 거지 아일랜드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현석 : 35살 현석아, 너무 사회에 안 찌들어 있길 바라고. 멍게가 되진 말아라. 멍게가 어렸을 때는 뇌가 있는데, 커가면서 자기 뇌를 자기가 갉아먹는대요. 보통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다가 회사만 들어가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요.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현석 : 처음에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국인의 정서 있잖아요. 얘가 뭔대 이런걸 하나.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더블린에서 남기고 가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없더라고요. 물론 사람을 남기긴 했지만. 보이는게 아니니까. 제가 그렇다고 혼자 기록을 하는 편도 아니고, 기억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최근에 친구들이랑 여행 갔다 온 얘기를 했는데 다 기억이 다른 거예요. 그런 거 보면서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기억은 지워지고 왜곡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생생할 때 기록해 놓고 싶어서 인터뷰를 신청한 건데,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 하다 보니까 제가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고,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 정리도 되고요.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거 같아 너무 좋았어요.
이 인터뷰가 책으로 나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저 뿐 아니라 아일랜드를 경험한 사람들의 깊은 감정들이니까, 아일랜드를 경험하고 싶은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깊게 와닿으실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현석 : 너무 환상을 갖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삶이 힘들어서 도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시려면 돈을 많이 가져오시는게 좋을 것 같고요. (웃음) 한국에서 처럼 치여살진 않지만, 여기서도 바쁘게 살긴 해야 된다는 거. 그래도 제시간이 많다는 건 좋은 거 같아요. 또 많이 걸어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걸어 다니다 보면, 평소에는 지나쳤던, 못 보던 것들도 많이 볼 수 있어요. 위로도 많이 받았고요. 특히 더블린에서는요.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우리는 모두 곤경에 빠져있지만, 우리 중 몇 명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내 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 편이 없다는 것의 차이는 어느 정도 인걸까. 혹은 내 편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 모든 화살이 모두 나를 향해 있는 것. 기꺼이 그 화살들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하는 것. 아주 뾰족한 화살 끝을 마주 해야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인간과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길을 걸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더블린이 말을 걸었다. 더블린은 늘 이렇게 우리에게 뜻밖의 위로를 해주었다. 걷자.그리고 고개를 들자.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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