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열네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_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유학생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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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네 번째 인터뷰이는 막연한 상상을 몽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늘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룬다는 분이다. 아일랜드에는 어떤 상상을 가지고 왔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5개월 차 민준(24)을 더블린에서 개성있고 트랜디함으로 주목받고 있는 레스토랑 Brother hubbard 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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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동의를 구하고 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민준의 노래 Toto - Africa














Q.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민준 안녕하세요. 한국 나이로 24, 현지에서는 22살 학생비자로 온 민준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민준 18년 1월 10일 밤 11시쯤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했어요. 5개월정도 됐네요. 오기 전엔 군대에서 12월 13일에 전역을 하고, 그 바로 다음날부터 일주일 정도 일본 여행을 하고, 집에서 좀 쉬다가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더블린에 오게 됐습니다. 겨울에 도착했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민준 부산 해운대 출신이에요. 계속 부산에만 살았고요. 부산에 있다 보니까 항상 서울에 대한 호기심이 컸어요. 친척 형이 들려주는 강남은 어떤 나라일까 궁금한 마음이 있었죠. (웃음) 그래서 대학 가기 전에 서울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학교는 충청도 태안에 있어요. 완전 깡시골 어촌마을에요. 20살에 태안에 왔는데, 서울이 아니다 보니까 제가 꿈꾸던 20살 대학생활과 너무 달라서 약간의 좌절을 했죠. 처음 3월 한 달을 참아 봤는데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매주 목요일에 수업이 딱 끝나면 서울로 올라가서 목요일-일요일까지 서울에 있었어요.





Q. 서울에 집이 있었는지?


민준 서울에 집은 없었는데, 무모하게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올라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고등학교 친구 중에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자고,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계속했어요. 7월까지 그러다가,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거예요. 저랑 상황이 비슷했던 대학교 동기 형이 있는데, 그 형이랑 같이 서울에서 가장 방값이 싼 신림동에 방 하나를 빌려서 본격적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죠. 학교는 기숙사에서 월 화 수만 자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서울에 있었고요.





Q.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민준 항공운항학과요. 정말 가고 싶었던 학과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조종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간절함을 가지고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대학생활을 떠올려보면, 간절했던 마음에 비해 대학에서 생각보다 공부를 열심히 안 했던 것 같아요.20대 초반을 날렸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조금 더 발전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그 당시의 생활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대학 가기 전에는 모범적인 학생에 속 했거든요. 그 당시에도 조금 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수험생활이 그런 삶과 멀다 보니까 참고 살아왔었죠. 그런데 그런 생활을 비로소 하게 된 때가 그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학업적으로 열심히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면에서 재미는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이 변했죠.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그대신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Q. 항공운항학과는 어떤 과인지?


민준 항공사의 조종사가 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공군 조종사가 돼서 의무복무를 하고 전역을 하는 방법이에요. 그 후에 항공사에 취업을 하는 거죠. 두 번째는 저 같은 경우인데, 학교를 제 나이 때 졸업해서 항공사로 들어가서 인턴십 과정으로으로 6개월 정도 조종훈련을 받고 수료를 해서 본격적으로 조종사로 투입되는 거예요.



ㅡ 항공운항과를 졸업하면 모두가 조종사가 되나요?



모두 다 될 수는 없지만, 정말 본인이 의지가 있고 건강하다면, 또 저희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비교적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있는 게 많고 취업률도 다른 학교보다는 굉장히 높아서 가능하다고 봐요. 그래도 사실 되게 힘들죠. 저 같은 경우도 이제 아일랜드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학하면 본격적인 조종훈련을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공부량도 많고, 그리고 머리에는 있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그런 문제들이 많죠. 지상도 아니고 하늘이어서 더 무서워요. 교관님은 옆에서 계속 뭐라고 하시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안 움직여지고. 그게 큰 스트레스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아직 겪어보진 않았는데, 정말 힘들다고 다들 하더라고요. 못 견디고 자퇴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도피성으로 휴학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경우는 정말 몸이 안따라주는사람들도 있어요. 갑자기 모르던 지병이 나오는 사람도 있고요. 어쩔 수 없이 과를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니면 나는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비행기를 타면 공포가 느껴진다던가, 몸이 비행을 못 받아들여서 구토가 나온다던가. 그러면 정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요.

처음에 운전면허 따실 때 생각을 해보면 복잡하잖아요. 막 기어도 바꿔야 하고 핸들도 모르겠고. 그걸 지상에서 2차원도 아니고 하늘에서 3차원으로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너무 많은 것들을 신경 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얼마나 힘든 건지 가늠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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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왜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오셨는지?


민준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솔직하게 경제적인 게 가장 컸고요. 제가 돈을 벌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도와주신다고는 하셨는데 저희 과가 학비가 너무 비싸거든요. 4년 동안 1억 이상이 드는 학교인데, 그걸 부담을 드리는 것도 죄송한데, 어학연수가 어떻게 보면은 노는 시간이고 또 여행하는 시간이고 순전히 저를 위한 시간인데 부모님한테 전액 도와달라고 하기가 부끄럽더라고요. 지금 나이에 다 부모님한테 의지한다는 게, 그래서 일단 일을 할 수있은 곳을 가고싶었어요. 그렇다고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어요. 제대 직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지원 기간을 다 놓치더라고요. 그러다가 남은 게 언제나 갈 수 있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호주 학생비자, 아일랜드 학생비자 이렇게였어요.

호주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호주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호주 여행도 세 번이나 다녀왔을 만큼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호주는 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에 있어서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생이 일을 할 수 있고 새로운 나라이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 아일랜드가 남더라고요. 부가적으로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정말 즐겨보던 티비 프로그램이 비긴어게인이었어요. 저도 버스킹을 하거든요. 그 프로그램 속 더블린에서 버스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혹시 아일랜드에서 버스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이 들더라고요. 영화 원스도 너무 재미있게 봤고요. 그런 생각들을 품고 더블린에 오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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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외에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대에서 였나요?



민준 일단은 반강제적인 게 있어요. 복학을 일단 9월까지 못하거든요. 반학기 휴학이 안돼서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어차피 남았고요. 군대 휴학 신청할 때, 의도한 것도 있어요. 복학을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전부터 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냥 가면 되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갈 때가 되니 조금 무섭더라고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게 해놓고 “너 이제 어떡할래”식이 되는 거죠. 가고 싶었을 때의 제가 나중에 마음이 약해질 저를 위해서 극한의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을 제가 만들어 놨던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민준 첫인상은 정말 안 좋았어요. 공항에 딱 내렸는데, 겨울이니까 너무 추웠고 비행기는 연착이 돼서 내렸는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정말 조용하고 조명도 어둡고. 영국 히드로에서 7시간 대기를 하다가, 더블린 공항에 내리니까 상대적으로 너무 어둡고 음침하고. 홈스테이로 가는 길에, 밖은 다 어둡고 가로등은 없고. 집은 더블린 라스 마인 쪽처럼 예쁜 집들도 아니고. 약간 걱정이 됐죠.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민준 최근에는 조금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데, 그 전까지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갔다가 1시에 끝나면, 케냐라는 브라질리언 친구와 밥을 항상 같이 먹고 집에서 조금 쉬다가 친구들 혹은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냈어요. 공연도 가고 공원도 가고 하면서 함께 시간 보냈죠. 평일에 일할 때도 있었어요. 급하게 부르면 일도 했죠. 또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저녁때쯤 되면 장 봐서 요리해 먹고요. 나름 친구들 사이에선 인정받는 요리사에요. 외국 친구들에게 한식 전파도 하고있구요.


처음에는 외국인이랑만 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요리하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외국인이랑 살면 현실적으로 음식 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냄새도 조금 미안하고, 1인분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조금 힘들고요. 그런 것들 때문에 한국인들이랑 살게 됐죠. 여기 와서 요리가 엄청 많이 늘었어요. 저녁 먹고 숙제 좀 하다가 여자친구 집 쪽 가서 산책도 하고요. 집에 와서 영어 공부 겸해서 미드 좀 보고 그랬어요.




Q. 여자친구는 한국인 이신가요?



민준 여자친구는 일본인이에요. 같은 학원에 같은 반에서 만났어요. 어느 날 학원에 갔는데, 처음 보는 예쁜 여자애가 있어서 ‘예쁘다’ 생각했죠.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았어요. 또 성격이 또 너무 좋아가지고 더 친해지고 싶었죠. 친구로 지내다 한두 달 정도 사귀기까지 걸렸던 것 같아요. 매일 친구인데도 이상하게 자꾸 전화가 하게 되고, 전화도 자꾸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뭐지 왜 얘랑 전화하고 있지’ 싶었죠. 자기 전에 하루에 두 시간씩 전화를 하고 했어요. 물론 둘 다 영어공부라는 핑계는 있었지만요. 근데 일본 사람 특징이 연락이 많이 없고 표현을 거의 안 하거든요. 저는 약간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너무 안 오니까, 표도 안나서 ‘뭐 하자는 거지. 나를 되게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나’싶고 저 혼자 갈팡질팡했죠. 이런 애매한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차일 각오하고 고백을 했는데, 자기도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귀게 됐는데, 사귀고 나서도 연락을 안 하는 것 때문에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여자친구는 일본인 중에서도 연락을 안 해서 욕먹는 일본인이래요. 저는 한국인 중에서도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고(웃음). 정말 극과 극이었죠. 처음에는 ‘얘가 나를 안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죠. 저는 연락의 빈도 = 애정의 정도라고 생각했었어요. 벨파스트 한국 축구 경기가 있었잖아요. 그날 벨파스트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3시간을 자지도 않고 계속 생각을 했어요. ‘이거는 정리를 해야겠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니까 좋지만 더 좋아지기 전에 헤어져야겠다’ 싶어서요. 그러고 바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보니까 또 헤어지진 못하겠더라고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죠. 힘들다고 연락 너무 안되고 표현도 너무 안 하는 것 같고, 네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후에 여자친구가 많이 노력해줬어요. 물론 절대 한국인 여자친구랑은 비교가 안되는데, 그전에는 12시간 간격이었다면, 그래도 지금은 3-4시간까지는. 저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분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올라간 거고. 여자친구는 10시간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내려온 거고요(웃음).


여자친구가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서, 지난주에 작별 여행으로 리스본 다녀왔거든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같이 찍은 사진들 보고, 지금까지 했던 문자들을 한 번 다 읽어봤어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사귀기 전에 연락을 정말 자주 한 거예요. 당시에는 연락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사람의 성격을 알고 보니까 연락을 너무 많이 해줬던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때 나를 많이 생각해주고 좋아해 줬다는 걸 이제야 알았던 거죠. 지금은 당연하게 저를 좋아하는 걸 알지만요.





Q. 일반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은 연락 빈도수가 적다고 하던데.



민준 우선순위 때문인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저랑 싸우고 무슨 말을 했었냐면, 나한테는 남자친구는 나 자신, 일, 가족, 친구, 쉬는 시간 그런 모든 걸 하고 additional 한 부가적인 존재라고 말을 했거든요. 처음에는 충격을 먹었죠. 어떻게 나한테…(웃음) 사실 한국인은 연애를 하면 갑자기 상대방이 본인의 인생에 큰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게 본인이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본인한테 남자친구는 그 모든 걸 제외하고 추가적으로 있는 거기 때문에. 그전에 자기 커리어, 가족, 시간, 친구를 빼앗길 수는 없는 거예요. 아무리 제가 좋아도 그건 어떻게 타협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 시간들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연락이 잘 안돼요. 또 다른 친구들이랑 있을땐 핸드폰을 보는 걸 큰 실례라고 생각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한번 설명을 했어요. 연락을 기대하는 이유는 너랑 어떤 할 말이 있어서 연락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게 내가 너를 생각한다는 거고 의미 없는 내용이지만 뭐라도 보내는 거다. 그게 제가 생각했던 연락의 이유였거든요. 여자친구는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너를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 없는 카톡을 보내는 게 이해가 안 하고 시간 낭비로 여겨진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뒤로 결심을 했어요. 내 잣대로 이 아이를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이 친구는 지금까지 24년 동안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고 나는 나니까. 이걸 받아들이고, 중요한 건 얘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몇 분 단위로 연락을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 뒤로는 연락 때문에 싸우진 않아요. 다름을 받아드리니 화내고 싸울 이유가 없더라구요.


최근에 문화 차이로 한 번 싸웠던 게, 여자친구가 저를 정말 많이 배려해요. 일본인 특유의 배려심인데 그런 극도로 배려로 가끔 오해가 생기는 게 있어요. 제가 주말에 일을 하면 10시부터 4-5시까지 정말 쉴 새 없이 바쁘거든요. 그래서 일을 마치면 녹다운이 돼서 정말 피곤해요. 여자친구가 그걸 알아요. 제가 피곤할 걸 아니까, 그걸 배려하려고 자기의 저녁 약속에 저를 부르지 않은 거예요. 저는 피곤해도 너를 만나면 나한테는 더 좋은 시간이고 충전의 시간인데, 나한테 선택권을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나한테 물어보면 좋았을 텐데. 내가 너무 피곤하면 안 가는데 그래도 네가 좋으니까 가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 그런 것도 지금은 알죠. 그런데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런 다름으로 인해서 오해가 조금 있었죠. 지금은 많이 알아요. 성격도 많이 알고 여자친구가 하는 행동이 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이해가 되고요. 혼자 오해하는 일은 확실히 없어졌어요. 일본이랑 한국이랑 문화적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큰 걸 느껴요.



아, 그리고 여자친구가 나중에 화해하고 정정해 줬어요. 일반적으로 내 가치관이 그렇다는 거지. 네가 지금 나한테 부가적인 사람이라는 건 아니라고요(웃음). 그래서 좀 마음이 풀렸어요(웃음). 아쉽게 일본으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당분간 3개월은 못 보게 됐어요. 그전에는 서로 둘 다 나중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그랬어요. 나중 일로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긴 싫었어요. 또 서로 암묵적으로 우리는 결국 안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 많이 좋아지면서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됬죠. 그래서 희망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또 확실하게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더블린에서 하는 연애의 큰 흠인 것 같아요.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일본인이라는 거죠. 브라질리언이라면 희망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겠죠(웃음). 일본인이라는 거에 감사하고 있어요.




Q. 오기 전 상상했던 아일랜드 모습이 있다면요?


민준 더블린에 오기 전 제가 꿈꿨던 삶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조사를 막 디테일하게 하진 않았어요. 그런 성격도 아니고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왔거든요. 그 와중에도 막연하게 꿈꿨던 게 있었는데, 일단 제가 지금 일하는 가게 같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이요. 프레시하고 개성 있고 어떻게 보면 로컬들에게 인정받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거요.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같이 밥 먹고 펍 가는 모습. 그리고 연애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누구랑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한국인이랑은 저한테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언어를 배우러 온 만큼, 한국인이랑 있으면 한국어를 쓸 수밖에 없고 그건 좋지 않으니까요. 한국인을 피하지는 않되, 웬만하면 연애까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또 서양인을 사귀려고 하니까, 너무 다르고요. 연애 감정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예요. 가게에 서양 친구들 예쁜 친구들 너무 많거든요. 근데 연애 감정이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오기 전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는, 일본이나 중국인을 만나보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기적처럼 제가 막연히 꿈꿨던 게 다 이뤄졌어요.


일단 여기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고요. 한국인을 포함해서도 제일 친한 친구는 케냐라는 브라질리언이에요. 어떻게 나랑 똑같은 사람이 브라질에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소중한 친구를 여기서 만났죠. 그리고 일본인 여자친구도 만났고요. 저는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평소에 저는 머릿속으로 그리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몽상이 될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러고 보니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 상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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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민준 친한 한국인 형이 지금 여기 와있어요. 형이랑 케냐랑 셋이서 골웨이&모어절벽 투어했던 것도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랑 일 마치고 저기 바로 앞에 있는 펍 가서 수고했다고 맥주 마셨던 것도 너무 좋았고, 친구들이랑 피닉스 파크 가서 걸어 다녔던 것도 너무 좋았죠. 또 최근에 혼자 다트를 타고 달키를 갔어요. 달키에 가서 킬라이니 힐을 올라갔는데, 너무 좋아가지고 거기서 한 시간 동안 누워있고 그랬죠. 더블린에서 혼자 막 쏘다니는 걸 워낙 좋아해요. 막 계획해서 예를 들면 맛 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내 느낌대로 다니다가 새로운 걸 발견했을 때 오는 그런 쾌감이 되게 크거든요. 그냥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혼자 작은 나만 아는 공원에서 음악 듣고, 그런 소소한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더블린에 크게 굵직굵직한 그런 건 없잖아요. 뭐 예를 들면 런던처럼요. 그런데 작게 작게 묘한 그런 매력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걸 발견하는 게 좋아요. 피닉스 파크 옆에 있는 내셔널 뮤지엄에 저녁 6시 이후로 가면 사람이 없어요. 근데 들어가면, 사방으로 건물이 감싸고 있는 광장이 있는데 거기만 가면 저만을 있는 스퀘어가 하나 생긴 기분이 들어요. 거기서 친구랑 누워있다가 노래도 부르다가, 뛰어다니고 그렇게 놀았던 것도 되게 좋았어요. 모던아트 갤러리 쪽에 조그마한 프랑스식으로 예쁘게 가꿔놓은 가든도 좋고 시네라는 펍도 되게 좋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민준 언어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 발음은 다 알아듣겠는데, 유독 뉴질랜드 매니저가 저한테 시키면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렇다고 매니저가 저를 배려해주기 위해서 느리게 말해주진 않아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되죠. 처음에 금방 잘릴 줄 알았어요. 왜냐면 뭘 시키는데 안 하니까, 이해를 못해서 안 하는 건데요. 언어에서 오는 답답한 그런 마음? 그리고 처음에 더블린 왔을 때 인종차별을 당했어요. 아예 처음에는 혼자 이리저리 관광객 모드처럼 싸돌아다녔거든요. 그러고 있는데, 어떤 십 대들이 저한테 갑자기 창문을 내리고 막 뭐라고 하고 갔어요. 그 순간 실감이 딱 났죠. 그전까지는 관광객 모드로 꿈같다, 신난다 이랬는데, 그때 딱 와르르 무너지면서 현실이구나. 이것들이 여기서 내가 겪어야 할 그런 인종적인 차별들이구나. 갑자기 무서워지더라고요. 마음의 준비도 안 하고 왔으니까요. 군대 제대하면 다 할 수 있지 하는 마인드로 왔으니까. 이게 현실이구나 쉽지 않겠구나 싶었죠. 더블린 와서 정말 많이 느꼈던 게, 여자 친구가 드렁큰 피쉬있는 쪽에 살아서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밤에 탈봇스트릿에서 오코넬, 파넬까지 가는데 그러면 정말 스산한 게 있어요. 노숙자도 많고 무서워요. 저도 약간 심장박동 수도 빨라지고. 뒤에서 누가 있는 것 같은 불안해지는 돌아보기도 하고요. 앞에서 틴에이져 두 명이 걸어오면, 길 한 번 건넜다가 그러죠.


그러면서 느끼는게 한국에서 사는 여자분들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기분인 걸까 싶은 거죠. 어떻게 보면 내가 한국에서 남자로 당연하게 여겼던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여자들한테는 당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문득 들었어요. 제가 여기 와서 소수가 돼보니 그런 걸 느끼게 된 거죠. 그전에는 소수의 편에 서는 거에 그렇게 관심이 있진 않았어요. 내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으니까. 무관심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바뀌어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소수가 겪는 불편함과 심리적인 압박감들을요.



제 친구 케냐가 그런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예요. 브라질 여자인데 흑인이에요. 기자 생활을 하다가 더블린에 와서, 지식도 많고 목소리를 내는 편이에요. 수업 시간에도 민감한 토픽이 나오면, 보수적인 터키 친구랑 또 굉장히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요. 평소에 카카오톡에 케냐랑 찍은 사진을 많이 올려요. 그러다 보면, 한국 친구들이 장난 식으로 너 흑인이랑 사귀냐고 그런 걸 놀리는 투로 말을 하는 걸 보게 되죠. 그런 반응들이 그런데 처음으로 기분이 나쁜 거예요. 왜냐면 그전에는 흑인 친구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내 친구고, 그런 내 친구가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내가 그들을 바꾸는 건 어렵더라도 나부터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라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거의 다 게이에요. 그 친구들이랑도 많이 친해지다 보니까, 성소수자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게이인 걸 알고 허그를 하러 오면 좀 약간 당황스러웠죠. 한 번은 같이 일하는 친구가 갑자기 볼뽀뽀를 하려고 하길래 너무 놀라서 윽하고 소릴 질렀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너무 당황을 해서 자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런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저도 사과했어요. 이제는 제가 먼저 보면 반갑게 허그 해요. 가끔 자기 남자친구 사진도 보여주고 그러거든요. 이제는 게이커플을 봐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 똑같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게이 친구들이 되게 착하고 기본적으로 섬세하기도 해요.



더블린에서 유학했던 시간들이 앞으로 제 인생에 얼마가 될진 모르겠지만 영향을 줘서 제가 걸어갈 길이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저도 되게 보수적인 한국인으로 평생 살았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여기서 유학했던 생활이 저를 바꿨으니까요.





Q. 그럼 지금 본인의 그런 변화 속에서, 세계적으로 한국의 평화가 주목받는 시점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북정상회담도 개최 되었고.


민준 입대하기 전에는 뉴스에서 무슨 소리를 하던 관심이 없었죠. 와닿지가 않으니까요. 그런데 군대 안에서는 내가 불안해지고. 더 현실적으로 가면, 휴가 못 나가는 거아닌가. 점점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죠. 관심도 많아지고요. 군대에서 몇 번 속보로 나온 것들을 겪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지금을 막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100프로 믿을 수도 없고요. 정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쟁이 나면, 저는 현실이기 때문에요(웃음). 아직 쇼인지 정말인지는 못 믿겠어요. 그런데 그래도 제가 인식이 조금 바뀐 건, 그 사람의 육성을 처음 들어봤어요. 아일랜드 시간으로 아침부터 방송이 됐던 거라서 학원도 안 보고 실시간으로 봤거든요. 그런데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목소리를 들으니까, 사람이더라고요. 약간 이건 위험한테, 귀엽더라고요. 되게 그냥 머리 내리고 옷 티셔츠 입혀놓으면 대한민국에 좀 뚱뚱한 아저씨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언어를 이해를 못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자막 없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막 괴물이고 막 다른 사람이 아니구나. 또 북한이 정말 같은 뿌리고 한민족이구나. 조금 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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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민준 아까 이야기했던 곳이랑 비슷한데, 씨네라는 펍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펍인데 여기 케이플 스트리트에서 조금 강변으로 꺾으면 나오는 곳이에요. 처음 가게 된 계기는 앞에 에딩거 간판이 있어요. 한 번은 지나가다가 에딩거를 먹어보고 싶어서 한 번 들어갔는데, 공연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일단 조명이 빨간색에 록 밴드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런 펑키 한 아이템과 그림들이 붙어있고요. 그리고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는 스테이지와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음향 시스템이 정말 좋아요. 정말 귀에 팍팍 꽂히게 들을 수 있고요 퀄리티도 되게 좋아요. 지난번에 아이리시 챔피언이 와서 비트박스 공연했는데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최근에는 할아버지 재즈밴드 공연을 했는데, 할아버지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에서 간간이 버스킹을 하는데, 제가 늙으면 저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까 싶었죠.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노래를 한 번 해봐야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렇게 또 하나의 미래를 그렸네요(웃음). 그리고 제가 일하는 이 Brother hubbard라는 레스토랑이요. 제가 일해서가 아니라 정말 분위기랑 음식이랑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좋은 곳이에요.



Q. 일하는 분위기는 어때요?


민준 사람이 정말 매력인 것 같아요. 나이도 국적도 스타일도 다 천차만별이에요. 사실 한국에서는 웨이터 하면 좀 틀에 박힌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기는 50대부터 10대. 국적도 베네수엘라, 영국, 아이리시, 브라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정말 각각 개성이 많아요. 가게에 일하는 사람들이 음식 맛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의 외모와 풍기는 분위기가 맛에 영향을 미치는 거요. 개성 있고 자유롭고 친절하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표현하는 걸 보여주니까, 음식이 정말 더 창의적이고 더 내가 겪어보지 못한 더 특별해지는 것 같고 가치가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웨이터의 모습은 깔끔한 셔츠에 남자는 염색을 하면 안 되고 그런 전형적인 상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오는 사람,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포멀한 차림으로 오는 사람, 피카추 티셔츠를 입고 오는 사람 정말 일관성 없어요. 매니저는 금발에 핑크색으로 또 누구는 레인보우 색깔을 하고 있고요. 제가 이 레스토랑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사실 한국에서는 제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했어요. 표현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사람들의 의식이 너무 신경이 많이 쓰여서 못했죠. 그런데 여기서는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어쩔 때는 운동복에 모자를 눌러써도 또 어쩔 땐 실험적으로 이것 저것 꾸며입고 가도 ‘이게 뭐냐’라는 말 들어본 적 없어요. 되려 칭찬 들은 적은 많아요. ‘너 귀걸이 예쁘다. 머리 예쁘다. 옷 어디서 샀냐’ 등등. 제 외모나 옷이나 액세서리로 지적하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막 특이한 걸 좋아해요. 평범한 것, 남들 다 하는 것보다는 해요. 남들이 하면 제겐 매력이 없게 느껴져요. 그런 반대중적이 경향이 조금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또 조금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고 하면, 시선이 느껴지고 지적질이 들어오니까 하기가 어려웠죠. 남자가 귀걸이가 그게 뭐냐. 옷을 뭐 그렇게 입었냐. 이거 아니지 않냐. 그러면 제가 위축이 되는 거죠. 제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지 못하니까.



아일랜드 와서 결심했던 것 중에 가장 큰 하나가 한국에서 벗어나자. 한국을 버리자. 정말 고국을 버리고 양아치가 되라는 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주위시선에 억눌린 모습을 버리자는 거였어요.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얼마 전에 본의 아니게 파격적으로 잘랐는데, 너무 짧게 잘린 거예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었고, 그냥 미용사분한테 알아서 잘라달라고 부탁한 거였는데, 잘리다 잘리다 보니 너무 짧아졌죠(웃음). 저도 이런 머리는 처음 해봐서 거울을 보고 저도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알쏭달쏭 했는데, 케냐가 멋있다고 해줬어요. 제일 친한 친구가 멋있다고 해주니까 기분 좋게 나왔죠. 그런데 친한 한국인 형은 저를 보자마자 웃는 거예요. 머리가 그게 뭐냐고요. 그리고 나서 같이 속해있는 친구들 단톡방에 제 사진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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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있는 만큼, 한국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싶지 않은데. 한국인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굳이 저의 머리가 한국인 시선으로 이상하다는 잣대로 웃음거리가 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외국에서는 진짜 내가 뭘 해도 내가 삭발을 해도 사람들이 정말 100이면 100 직접적으로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한국인이면 100이면 100 다 무슨 일이냐, 입대하냐 여자친구랑 헤어졌냐 물어보잖아요. 정말 케냐랑 형의 극명한 반응의 차이를 보고 재미있었죠. 근데 저는 제 머리 되게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남들 눈에 나지 않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거든요. 정말 모나지 않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했던 학생이었지만, 사실 제 성향이 그러진 않았고요. 특이한 거, 새로운 거, 모험적인 거 좋아하는 성격이죠. 그런데도 제 안에 두려움이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가끔 식당에 한국인이 들어오면 반가움보다는 되게 스스로 작아져요. 갑자기 그 순간부터 여기서 일하던 다니엘에서 한국인 김민준 씨로 돌아오는, 갑자기 작아지는 그런 게 있죠. 그래서 한국인한테 말 잘 못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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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느끼기에 변한 점이 있다면요?


민준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일단 제가 지금 약자고 소수라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중산층 가정에 부모님이 경제적 형편이 됐고, 남자에 키도 크고 뭐든 곧잘 잘했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어디서든 소수로 살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갑자기 소수가 돼 버리니까. 많이 배우고 역지사지를 느끼게 됐어요. 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뼈저리게 느끼게되고 앞으로도 더 그들을 배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영어도 많이 늘었고요.

또 연애관도 많이 바뀐 게 전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 이유를 잘 몰랐어요. 3년을 사귀었는데,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요. 끝날 때가 돼서 끝났거니. 어떨때는 군대 탓도 조금하고 내 탓, 그 친구 탓도 했는데 정확한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는데요. 최근에 많이 느낀 건, 나의 어린 욕심과 과한 마음이 굉장히 그 친구를 갉아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땐 저와 그 친구를 분리하질 못했어요. 너와 내가 만나 하나가 되는게 사랑이라 믿었어요. 그게 틀렸음을 지금 여자친구가 많이 알려줬죠. 그런 것들로 인해 많이 반성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전 여자친구한테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연애를 하게 되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독립된 인격체가 만나 부딪히고 조화를 이뤄야 되는데, 그 땐 우리가 다르다라는 기본 명제을 받아드리질 못 했어요. 다름을 받아드리질 않아 많이 싸웠고 결국 그 친구가 못이겨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죠.

이제는 많이 바뀔 수 밖에 없었던게 기본적으로 국적 언어부터 기본적인게 다 다르니까요. 모든게 다르다는 걸 피부로 부딪히게 되니까 깨닫게 되더라구요. 또 국적 언어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고방식, 취향, 가치관 이 모든 게 다르다는 걸 알게됬죠. 그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든 인간이면 다를 수 밖에 없는 건데. 이제야 알게 된거죠. 또 언어장벽이 있다보니 말 한마디를 더 조심하게, 한번 더 생각을 해보고 이 말이 과연 내 의미를 잘 전달해 줄지 신중히 말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이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내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변했죠. 그리고 여자친구의 성격이 굉장히 독립적이라 저도 덩달아 독립적인 연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코 남자친구한테 의지하는 법이 없어요. 그전에는 네가 나고 우리는 하나고 서로에 기대 의존하는 연애였다면 이젠 내가 있고 너가 있는 또 비로서 연애가 존재하는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너와 내가 분리되서도 연애가 만들어 진다는 걸 깨달았죠. 1+1이 1인줄로만 믿다 1+1이 3이 될 수도 있단 걸 알려줬어요. 참 고마운 친구에요.




Q. 현재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민준 지금 사랑하는 건 아무래도 아일랜드에서 머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요.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최근에 친구들이 또 많이 돌아갔고요. 케냐도 학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저한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돼서 최대한 압축적으로 그 시간을 뽑아내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스페인어 공부도 하고 싶고, 여자친구 덕분에 시작하게 된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할 거고요. 물론 영어공부도요. 방 책상에 원서가 엄청 많이 쌓여있어요. 열정이 넘쳤을 때의 제가 나중에 귀찮아할 저에게 또 일을 마구 줘 놨죠. 안 가봤던 근교 여행도 열심히 다닐 거예요. 오늘 처음으로 저녁에 같이 일하는 친구들 코리안 파티하자고 집으로 초대했어요. 그래서 이제 좀 정착도 완전히 끝났고. 여자친구도 돌아가서 저만의 시간이 많아졌고. 두 달 반 남은 시간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보내려고요. 다시는 없을 외국에서의 두 달 반 남은 제 짧은 시간이니까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민준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책을 사놨는데, 책을 펼쳐보시지도 않았어요. 제일 친한 친구 케냐가 정말 똑똑한 친구인데, 모국어인 포르투칼어에 스페인어를 모국어랑 똑같이 하고요. 영어를 그냥 들으면 왜 제가 영어를 배우나 싶을 정도로 정말 잘하고 프랑스어를 중급 이상으로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친구가 제 주변에 너무 많은 거예요. 저는 영어 상급자 정도, 그렇다고 네이티브도 아니고, 일본어 정말 유치하게 배고파요 할 수 있는 정도가 다인데요. 그러면서 그런 케냐가 사는 삶이 정말 부러운 거예요. 케냐가 예를 들면, 멕시칸 음식을 먹으러 가면 스페인어로 주문을 하는 모습, 영어로 아이리시와 무난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았죠. 그래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중에 하나를 배워야겠다 싶었는데, 프랑스어 억양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스페인어를 선택했는데, 정말 해보려고요. 일본어는 여자친구랑 계속하다 보니까 많이 늘었어요. 이곳 와서 생긴 꿈은 그렇게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정도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거예요. 제가 저희 아빠 나이가 됐을 때 파일럿이 돼서, 그렇게 50대 조종사로서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해보려고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민준 어머니랑 8월에 같이 유럽여행을 생각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는데요. 저랑 엄마는 한 번도 둘이서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요. 국내 여행도 통영, 제주도 이 정도? 아버지랑은 일본 여행을 둘이서 가 본 적이 있는데, 엄마랑 간적은 없어요. 그래서 또 언제 또 가보겠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제 삶을 살아가면 없을 것 같아서 꼭 어머니랑 8월에 여행을 해보려고요. 지금 생각은 동유럽 2주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제 지금 꿈이에요.



ㅡ 어머니가 해외여행 처음이세요?


1년에 한 번? 제가 막내라서 제가 대학가고서는 본인이 시간이 많으시니까 친구들이랑 가끔 가세요. 주로 아시아 주변으로 다니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럽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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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민준 날씨가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걸 느낄 만큼 날씨가 안 좋기 때문에, 마음의 대비를 하시고, 여름이 끝나면 햇빛은 당분간 못 보실 거라는 생각은 하시고 오셨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요리를 좀 배워오면 좋을 것 같아요. 간단한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라도요. 제가 만약 요리를 못했으면 스트레스였을 것 같아요. 본인이 엄마 손맛을 좀 따라올 수 있게 한두 가지만 배워오면 좋을 것 같고요. 또 제가 느낀 건 아이리시들이 먼저 다가올 만큼 친절하진 않았어요. 대신에 제가 가면 피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쫄지 말고 먼저 다가올 만큼의 호의는 기대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접근하는 게 조금 더 재미있는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 한국인으로서의 모습을 좀 버렸으면 좋겠어요. 펍을 가도 어딜 가도 게이 커플 진짜 많고 그들도 이성 커플들이 하는 행동들을 다하는데, 한국인들이 처음 오면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여기는 더블린이고,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처럼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좀 하는 걸 연습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민준 가치관 수업. 제 연애관, 인생관 여러 가지 가치관들이 더블린에 와서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민준 부디 다시 전형적인 한국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지금 아마 회사 생활을 할 거고. 결혼했을 수도 있고. 한국인들에 수없이 둘러싸여서 다시 또 남들 눈치를 보고할 말을 못하고 재미없이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내가 되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더블린에서 배우고 느꼈던 걸 잊지 않고 내가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표현하길. 내가 나를 보여줘야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니까, 내가 확신을 안 가지고 남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남들이 더 너를 판단할 거야. 네가 너를 만들어가는 거 잊지 않았으면. 조금 더 네가 되고 조금 더 특성 있는 색깔 있는 사람이 돼 있기를 바라고 부디 재미없는 꼰대 아저씨가 돼 있지 않기를.

또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장 궁극적으로 가진 꿈이 멋진 아빠가 되는 거니까, 조금 더 책임감 있고 멋진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다.




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민준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고요. 조금 정리 안됐던 것도 있었는데 말하다 보니 정리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더블린에서의 저의 변화는 매일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알기보다는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사람이 잘 느끼잖아요. 지금 조금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제 인생 5개월을 돌아보니까,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을 한국에서 할 때보다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제 모습을 보고 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고. 5개월 동안의 변화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좋게 많이 바뀌어있는 제 모습이 만족스럽네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민준 외국에서 일 년 동안 사는 게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빨리 취직을 해서 한국에서의 뭘 만들어 가야 되는데라며 그렇게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1년 동안 내가 보고 배우고 변화하는 것들이 남들보다는 1년 덜 벌어도 그 경험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1년이 된다면,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영어가 됐든 외국인 친구가 됐든 여행이 됐든 저처럼 가치관이 됐든 간에요. 남은 80여 년의 인생을 더 멋있게 더 바람직하게 길을 틀어주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1년 동안 외국에 있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혹시 지금 고민하고 있다면, 꼭 외국에 가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더 있고 싶은데, 더 있지는 못할 것 같고. 6개월이라도 3개월이라도. 여행보다는 그 나라에 살면서, 본인의 변화된 모습을 찾을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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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길에서 만난 우리는 한 없이 크고 넓고 깊은 파도 같은 진심을 전할 줄 알고, 그 진심은 때론 가장 무서운 파도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구름에도 그림자가 있었고, 저 멀리 파도에도 움직임이 있었으니. 어둠이 드리어 올 때, 노을을 볼 수 있었으며. 붉으스름한 우리의 얼굴에도 빛나는 태양이 보였고, 그 태양에도 결은 있었다고. 여행자에게 있어 사랑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 99개가 맞아도 시간이라는 친구가 화가 나버린다면, 너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여행길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수평선 끝 맞닿아 있는 그곳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지만. 결국 우리는 잘 이겨낼거라고. 언젠가는 너에게 닿는 다고 믿어. 같은 시간을 살지 않음에도, 너를 사랑한다는 것보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 있을까.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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