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열다섯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_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유학생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이름처럼 선하고, 차분하지만 그 안에 강한 빛이 있는 유학생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빛으로 선하고 밝게 물들였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5개월 차 (22)을 더블린에서 파리를 느낄 수 있는 한국인 사장님이 7년 째 운영하시는 LOVE IS ART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선의 음악 소향 - 바람의 노래





Q. 본인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22살이고 학생비자로 온 강선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 얼마나 되셨는지?

17년 12월 27일 겨울 크리스마스 연휴 때 왔고, 새해를 아일랜드에서 맞이했어요. 5개월 정도 됐어요. 처음 온 날부터 홈스테이를 하려고 했었는데, 연휴라 어학원이 쉬는 기간이더라고요. 그래서 홈스테이를 못하게 돼서 어학원에 있는 기숙사에서 10일 정도 묵었다가 홈스테이로 갔어요. 기숙사가 엄청 비쌌는데 1주에 215유로 이 정도? 그리고 그때가 정말 외로웠던 것 같아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지냈거든요. 같이 지내는 사람이 있긴 했는데, 다 남자라 조금 무서웠어요. 맨날 문 잠그고 그랬죠.(웃음) 그런데 매일 문 잠그고 방에 있으니까 연말에 펍에서 같이 놀자고 해줬어요. 새해같이 맞이하자고. 알고 보니 정말 착한 친구들이었지만, 그때는 무서웠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생이고 휴학을 했어요. 전공은 영어영문입니다. 나중에도 해외에서 살 예정이고, 일도 할 예정이라 선택했죠.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했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깊게 배운 건 아니고 교과서 정도의 수준이었죠. 새로우니까 발음도 재밌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영어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웃음) 근데 불문과를 떨어져서, 영문과로 온 거죠.

휴학을 하고 유학을 가기 위한 돈을 모은다고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모은 걸 쓰다 보니 (웃음) 딱 비행기 값만 모았죠. 커피와 카페를 좋아해서 방학마다 2-3개월 대형 체인 카페에 직원으로 주 6일에 9시간을 일했거든요. 두 달 일하고, 손목에 염증 생기고, 응급실 가고 너무 고생했어요. 일을 많이 하니까 돈을 많이 받긴 했는데, 야간수당 이런 것도 안 주고. 트러블이 있었죠. 1시간씩 쉬고 9시간 일하고. 바쁜 날에는 10시간씩 일하고 안 바쁜 날에는 8시간 일하고 그래서 두 달하고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나왔죠. 그리고 개인 카페에서 일을 했죠.

어렸을 때부터 외항사 승무원이 꿈이었어요. 사실 어렸을 적엔 꿈이 많아서(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조금 더 확실히 꾼 꿈인 것 같아요. 해외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었기도 하고, 처음부터 국내 항공사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 꿈을 꾸다가 아일랜드로 오게 된 거죠.





Q.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인가요?

아일랜드 오기 전에는 아시아를 벗어나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 나중에 해외에서 살면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준비를 하기 위해서 유학을 온 거죠. 원래는 영국을 가려고 했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살거든요. 그런데 영국이 생각보다 많이 비싸더라고요.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있었는데 결정을 못 하고 있다가, 아일랜드가 영어권인 유럽이고, 친구도 근처에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웃음) 아일랜드 어학원이 가격 대비 괜찮다고 하고, 그리고 지금 캠브리지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아이엘츠를 공부했어서 아이엘츠 시험을 봐야겠다 하고 여기 와서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요즘 외항사에서 캠브리지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캠브리지로 결정했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 어떤가요?

일단은 한 학기 휴학을 했으니까, 준비를 천천히 했거든요. 천천히 알아보면서 혼자 유학원도 알아보고, 인터넷을 찾아보고 그랬죠. 유학원 설명회를 갔었거든요. 아일랜드에 갔다 왔다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아이리쉬 정서는 우리나라랑 비슷하고, 착하고, 우리나라의 도시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자연적이고 평화롭다. 그런 이미지였어요.





Q.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한 달 전에 엄청 떨렸다가, 괜찮아졌다가(웃음) 할 만하겠다 이 생각을 하고 있다가 당일에 너무 떨리는 거죠. 인천공항을 가는데 말을 한 마디도 못했어요. 그때 몸 상태도 안 좋아서, 새벽 비행기였는데 낮에 몸이 안 좋아져서, 누워서 약 먹고 자고 아빠 차 타고 조용히 왔죠. 장시간 비행이 처음이라 더 떨렸던 것 같아요.

혼자 비행을 하면서 열몇 시간을 걸려 네덜란드에서 경유를 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부모님, 남자친구가 써준 편지를 보고 싶은데 울컥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못 읽겠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리니까 별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그리고 더블린에 아침 8시에 도착했는데, 전화로 픽업해주시는 분이 위치를 설명해 주셨는데, 아이리쉬 악센트가 강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작은 더블린 공항을 캐리어 3개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만났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학원에 내려주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숙사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10분 동안 멘탈이 나갔어요. 버려진 것 같고, 그러다가 관계자분이 오셔서 문을 열어주셨어요.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고, 짐을 같이 옮기는 거 들어주시고, 싱글룸에 도착을 했는데, 책상이랑 옷장, 침대만 있고 하얀 방이였는데, 너무 휑해서. 딱 정신병원에 갇힌 느낌?

짐을 내려놓고 2시간을 엉엉 울었어요. 외로워서요. 첫인상은 너무 안 좋았어요. 비가 오진 않았는데, 흐리고 두꺼운 패딩을 입었는데도 추웠어요. 도착한 일주일 정도는 4시 이후에 안 나갔어요. 틴에이저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무서워서 안 나갔죠. 집에서 노트북으로 한국 티비 보고 라면 끓여 먹고, 한식 해먹고. 딱 일주일은 그랬죠.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할 정도로 안 나갔죠.(웃음) 다 똑같은 사람 다 사는 곳인데.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그렇게 보내고, 입맛도 없고, 그 이후에 이제 밖을 나가보자 결심했죠. 시차 적응이 안 되니까 일찍 씻고 나가서, 근처 돌아보고 자비스도 가보고, 그라프튼도 가보고 혼자 그렇게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막상 돌아보니 처음 온 유럽이니까 너무 예쁜 거예요. 스테판 그린 공원 갔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유럽 같고. 유럽인데 (웃음)

어학원을 다니는데 반은 처음에 레벨 테스트를 했는데 말을 잘 못해서 프리인터로 가게 됐어요.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쉬운 거죠.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수능을 봤는데(웃음) 선생님께서도 왜 여기 있냐고 그러셔서 일주일 정도 프리 인터에 있다가 인터로 갔다가 지금은 어퍼 인터에요. 사실 처음엔 이 반이 무슨 반인지 모르잖아요. A1이 뭔지 B1이 뭔지.


학원 오전 반을 다녔는데 12시 반 정도면 끝나니까 시간이 많더라고요. 제가 술도 진짜 좋아하는데, 학원 끝나고 처음 들어갔을 때는 같이 마실 친구가 없으니까 아쉬웠어요. 학원 끝나고 좀 구경하다 집. 반복했죠. 처음 어학원 다닐 때쯤 던드럼에 있는 홈스테이로 이사를 갔는데, 홈맘이 정말 좋으신 분이었어요. 아이리쉬였는데, 루아스 타는 지역도 알려주시고, 쇼핑센터도 알려주시고, 외로운 게 다 없어진 느낌이었죠. 3주 정도 살았고, 홈맘이 딸이랑 아들이 있었는데, 30대였던 거 같아요. 맨날 개를 보려고 집에 온대요. 자주 오더라고요.


주방에 개가 있어서 요리를 못했거든요. 한식을 못 먹으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몸 상태가 계속 안 좋았는데, 아이리시 감자 먹고, 비프 스튜 먹고, 그래도 홈맘이 요리를 잘하시는 편이고, 스파게티 햄버거 피자 위주로 드시다가 저를 위해서 카레도 해주시고, 밥도 해주셨지만, 한식이 먹고 싶어서 한식당을 갔죠. 가끔 갔는데 유학생 사정에는 비싼 편이니까 자주 가진 못했죠. 그러다가 몸이 탈이 나서 루아스 타는데 식은땀이 나고 앞이 안 보이고, 내리자마자 쓰러질 것 같았어요. 과호흡이 온 거죠. 밥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집에 왔는데, 딸 분이랑 홈맘이랑 홈대디가 약도 주시고, 카레도 해주셨어요. 감사했죠. 음식만 빼면 정말 좋았어요. 음식이 안 맞아서 그렇지. (웃음) 제가 감자를 안 좋아하는 편이라. 고추장이라도 찍어 먹고 싶었죠. 그래도 다 좋아서, 다음에 아파트로 이사 와서 다시 홈스테이로 가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아쉬웠죠.



ㅡ 홈스테이 가족은 몇 명이었나요?


가족 구성원은 홈맘이랑 홈대디분이랑 두 분이서 사시는데 큰 개가 2마리 있었어요. 한 마리는 유기견 아비인데, 사람을 무서워해서 저는 가까이 가지 못했어요. 다른 한 마리는 샘이라고 셰퍼트 같았는데 진짜 커요. 살면서 그렇게 큰 개는 처음 봐서 처음에 되게 무서웠어요. 알고 보니 엄청 순하고 식탐이 많아서 제가 저녁 먹을 때마다 제 앞에 앉아서 저만 쳐다보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어느 날은 아비를 산책시킨다고 공원에 데려갔는데, 매일 저만 보면 짖던 친구가 좋아서 뒹구는 모습을 보는데 정말 귀엽더라고요. 지금은 샘이 젤 보고 싶어요. 아이리시들이 왜 개보러 집에 간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이리쉬 가정집에서 사는 홈스테이 기억도 너무 좋았고. 3주 홈스테이가 끝나고 아파트로 이사 와서 한 달 정도를 지내는데, 한국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가장 외로웠던 시기였고, 향수병이 와서 하루 종일 집에서 울다가 학원을 못 갔어요. 그 다음날 학원에 갔는데 같은 반 스페인 친구가 왜 못 왔냐고 그러길래 향수병이라고 그랬더니. 안아주면서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나도 남자친구나 가족이랑 떨어져 있어서 초반에 힘들었어. 힘들면 말해 같이 다이시스 가줄게’라고 위로를 해주는데 너무 감동인 거죠. 외국인한테 그런 위로를 받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거든요. 같이 다이시스를 간 건 아니지만(웃음) 그런 말 하나로 위로가 됐죠. 고마웠어요. 알리샤라는 친구고 웃긴 친구였어요. 저희 반이 단합도 잘되고, 일한다고 그만뒀거든요. 내일모레 간다고 하더라고요. 너 너무 보고 싶을 거라고. 다음 생에 보자고. 스페인 오라고. 제가 스페인 친구들이 많아서 꼭 한 번은 가고 싶어요. 아일랜드에 온 이유가 영어 그리고 유럽여행이거든요.



ㅡ 여행은 어디 어디 다녀오셨어요?



선 프랑크푸르트, 런던, 프라하, 네덜란드 갔다 왔어요. 한을 풀고 가겠다고 생각했죠. 1월 초쯤에 중학교 친구 2명이 유럽여행을 하던 중이었어요. 저는 적응을 하고 있을 때라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계획엔 없었는데. 마침 비행기 표가 싸더라고요. 원래 2박 3일있으려고 했는데, 비행기 표를 바꿔서 하루 더 있었고 그때 제일 외로울 때라 행복했어요. 그러다가 비행기 표를 다음 주 거로 잘못 바꾼 걸 공항에서 알게 돼서 패닉이 왔었어요. 그때 카드도 잃어버릴까 봐 안 들고 가고 돈도 다 쓴 상태였죠. 친구들한테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공항으로 와주겠다고 그래서 짐도 싸서 와주고. 너무 고마웠어요. 혼자 공항에서 11시간 체류하고 돈도 5배 넘게 썼어요. 제가 매일 덜렁대니까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가 친구들 만나니까 그 긴장이 다 풀린 거죠. 너무 안심이 되니까. 방심을 하니까. 정말 한순간인 거 같아요. 계속 조심하다가 딱하나가 풀리면 그런 거 같아요. 끔찍했죠. 급하니까 영어도 많이 나왔고요. 정말 배운 것도 많았어요. (웃음)


그리고 런던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갔었는데, 아무래도 로컬인이다 보니, 로컬 맛 집으로 데려가 주고, 숙소비도 아꼈고요. 3일 안에 속성으로 모든 관광지를 갈 수 있었고, 정말 좋았어요. 아일랜드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정말 달랐고,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상경한 느낌이었죠. 제 성격이 도시가 맞는 성격이고 제 친구는 자연이 맞는 친구라 우리 둘이 바뀌었다고 (웃음) 물론 살면 다르겠지만요.



후에는 프라하. 런던사는 친구랑 같이 갔어요. 야경을 보러 갔는데, 엽서랑 똑같은 거예요. 너무 예뻤는데 아무리 카메라로 찍어도 안 담기는 거죠. 그리고 프라하에 가면 관광지 추천을 해주는데, 페달보트를 타는 게 있는데 이건 아무도 추천을 안 해줬어요. 까를교 다리에 사람들이 카누랑 오리 배를 타고 있길래 친구를 꼬셔서 같이 탔어요. 가격도 한 시간에 만 오천 원 정도. 이게 정말 좋았어요. 타인의 추천에 의한 게 아닌 제가 발견한 건데 심지어 재밌으니까 더 좋더라고요.



저번 주에는 암스테르담을 룸메이트 한국인 언니랑 같이 다녀왔어요. 뱅크홀리데이에 맞춰서 다녀왔어요. 튤립축제할 때라서, 정말 예뻤어요. 숙소 위치를 암스테르담에서 기차 타고 1시간 넘게 가야 하는 곳으로 잡아서 걱정하면서 알크마르를 막상 갔는데 너무 예쁜 거죠. 자전거를 타고 싶었는데 못 타서 아쉽고. 잔스스칸스라는 풍차마을도 좋았고요. 3박 4일이었는데 계속 지역 지역을 돌다 보니 암스테르담에는 잠깐 있었어요. 솔직히 알크마르에만 3-4일 더 있고 싶어요. 동화 같은 마을이었거든요. 종소리 울리고, 운하 보면서, 스테이크 썰고, 하이네켄도 먹고. 심해 공포증이 있는데 물은 좋아해요. 깊고 다크한 바다만 아니면. 물 보면 사람이 차분하잖아요. 탁 트이는 느낌.


아일랜드 여행은 못했어요. 다른 나라만 하다 보니까, 호스도 가보고 싶고, 브레이도 가보고 싶고. 주거지가 되니까 잘 안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반성하고 있어요.(웃음) 이제 남은 두 달 동안 아일랜드 여행을 하려고요.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오기 전부터 걱정했던 것은 외로움인데, 오니까 정말 제일 힘들더라고요. 외로우면 누구한테 말할 사람도 없고. 한국에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각자 살기 바쁘니까 투덜대기도 미안하고. 외동이라서 부모님께서 애지중지하셔서 엄마 아빠랑 함께 있을 때는 더 독립적으로 행동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은 거죠. 20 몇 년 동안 그런 적이 없었는데.(웃음) 남자친구도 보고 싶었고요. 과 CC고, 어학연수를 갈 거라는 것을 알고 만났고 며칠 전에 300일이었어요. 대학에서 인간관계에 지쳐있어서 휴학을 했는데, 그 후에 사귀다 보니까 제대로 CC 같진 않았어요.(웃음)




ㅡ 인간관계라 함은요?

인간관계는 제가 남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여서, 그때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중-고등학교 친구들한테 의지도 많이 했었는데, 대학 와서 적응하면서 저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2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휴학을 했어요. 만난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진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래가서 다행인 거 같아요. 서로 힘들 때 만나서 의지도 많이 하고, 저는 여기 오니까 더 의지하게 되고, 서로 힘든데 남자친구한테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많이는 못 하죠. 사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힘들 테니까. 장난스럽게 말은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삼키게 되는 게 많죠. 그러다 보면 혼자 계속 쌓아 놓다가 한 번씩 터지면 난리가 나는 거죠. 4월이 그랬어요. 초반보다 더 힘들었어요. 프라하를 다녀온 이후로 쌓였던 외로움이 더 터졌죠.

장거리 커플들은 보통 만나면 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잔걱정이 되게 많아서, 정말 힘든 거 같아요. 괜히 불안해하고, 쓸데없는 걱정 하고. 불안해하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조급해지고. 좋아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ㅡ 힘들면 어떻게 푸시는지?

힘들면 슬픈 드라마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왜냐하면 슬픈 영화나 드라마라도 봐야지 우니까. 워낙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해서 봤던 거 또 보고, 드라마 고백 부부라고, 또 오해영도 인생 드라마에요. 너무 공감이 돼서, 대학 다닐 때 자존감 정말 떨어질 때 그거 보면서 많이 풀었죠. 그러면서 풀고. 혼자 맥주 마시면서 그러거나, 딱히 푸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닌데, 매일 다이어리를 쓰거든요. 그러면서 혼자 삭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나중에 보면 좋기도 하고. 4월 끝날 때쯤에 한 달을 마무리하면서 길게 쓰면서 마음 정리를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다시 괜찮아졌죠. 열심히 살려고 하고.





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선 카페요. 워낙 카페를 좋아해서, 커피도 좋아하고. 매일 마시기 때문에 커피가 활력소거든요. 공부하거나 책 읽거나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개인 카페 정말 좋아합니다.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느끼기에 변한 점이 있다면요?

내면적으로 많이 변화했죠. 한국에서는 주관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쉽게 흔들리고 왔다 갔다 한 거 같은데. 여기 오니까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한국에 있었을 때 했던 행동도 되돌아보게 되고, 내 주관도 생겼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오니까 제가 되게 어린 나이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거든요. (웃음)

그리고 여기 오면 한국인분들은 처음엔 한국인을 안 만나려고 하잖아요. 물론 영어가 도움이 되려면 외국인 친구들만 만나야겠지만. 사실 그건 하기 나름인 거 같고 자기가 하는 만큼 영어도 느는 거니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랑 얘기를 많이 한 덕분에, 사회생활 경험담을 많이 들었고, 조언도 많이 들었고. 제 주관도 생기고, 힘들 때 언니들이 위로도 해주시고 좋았어요. 인생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죠. 마음 정리도 그렇고, 주변 정리도 그렇고, 가계부도 쓰면서 한 달에 얼마 썼는지도 보고, 일기도 맨날 쓰면서 마음 정리도 하고. 성숙해진 거 같기도 하고. 오기 전에는 철이 없어서(웃음)






Q. 현재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 한국에 있을 때는 제 편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정말 제 편이시고 친구들도 많긴 했지만, 여기 오면 애들이랑 멀어질까 봐 걱정했던 것도 있고. 제 인생의 반이 친구였거든요. 그렇게 도피하듯이 왔는데,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많고, 후배들도 많고 선배들도 많고, 연락도 계속하고. 내 편이 많구나 느꼈어요. 안정도 얻고 한국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구나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 내가 인간관계를 나쁘게 생각했던걸 반성도 하게 되고요. 외국인 친구들도 다 금방 떠나니까, 다행히 오래 남는 친구들도 있지만. 스페인, 브라질, 칠레, 프랑스. 친했던 친구들이 금방금방 가니까 더 외로웠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정을 안 줘야지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서로에게 위로니까.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궁금합니다.

선 두 달 정도 남았어요. 캠브리지 시험도 두 달 정도 남아서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이고, 아일랜드 주변을 많이 여행할 거고. 4월을 부정적으로 살았는데, 며칠 전에 학원에서 액티비티를 했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인 언니가 자기는 내려놔서 모든 게 좋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 말이 되게 와닿았어요. 4월에 향수병, 외로움 모든 게 안 좋게 보였는데. 틴에이저까지. 아일랜드 진짜 나랑 안 맞는다 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반성을 하게 된 거죠. 남은 두 달은 긍정적으로 살면서 좋은 거 많이 보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열심히 살 거예요. 바쁘게. 4월을 너무 집에만 있었으니까. 먼저 호스 가서 피시 앤칩스 부터 먹을게요.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외항사 승무원이 꿈이에요. 불어를 하려고 해서 프랑스 항공사로 가고 싶었는데, 스페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체계적인 건 아니더라도, 조금씩 회화를 배웠는데 재밌더라고요. 4개국어 5개국어 로망이 있어요. 일본, 브라질만 봐도 이중국적 가진 친구들도 많잖아요. 부러웠어요. 저희 학교가 이중 전공을 해야 해서, 그리고 스페인 워홀도 생겼던데 괜찮은 거 같아요.




Q.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언어를 마스터하고 싶고, 현지인만큼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니까. 영문과라서 영어공부를 더 해야 하거든요. 승무원이라는 꿈을 위해 더 알아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ㅡ 요즘 가장 큰 이슈인 국내 항공사의 갑질에 대하여, 항공사 입사를 꿈꾸시는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제가 더 외항사로 가고 싶었어요. 주위에 항공사에 취업한 분들, 준비한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국내항공사 텃세가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 땅콩 같은 큰 사건 터졌을 때도, 불합리한 거를 잘 못 보는 성격이라, 저라면 바로 사표 쓰고 나올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외항사를 선호했던 것도 있고. 처음엔 단순히 외국이 더 복지가 잘 되어있고,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더 비교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외항사가 최고야 이런 건 아니지만, 국내 항공사의 갑질은 일단 우리나라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좋은 사람이 아닌 돈이 최고인 상류층들이 정착을 해버리니. 그게 제일 심한 거 같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위에 있으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따라야만 하는 이 시스템이 너무 불합리한 거 같아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외면하면 바뀌는 건 없으니까,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하는지는 꾸준한 관심을 많이 갖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관심이 있어야 사람들도 보고 고치려고 노력이라도 할 테니까.













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목적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유학원과 상담할 때 ‘한국생활에 지쳐서 힐링도 하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욕을 엄청 먹었어요.(웃음) 그렇게 말해서 어학연수 성공하기 정말 힘들다고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여행이나 다니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영어라는 목적을 분명히 세우고 왔죠. 그리고 한국인을 너무 배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고 그래도 젤 의지되는 건 같은 나라 사람이거든요. 물론 영어 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밋업을 다닐 수도 있는 거고, 미드를 볼 수 있는 거고, 선생님들이랑 상담을 할 수 있는 거고 방법은 많으니까.

밋업은 커피숍에서 하는 2시간 동안 대화하는 밋업을 했는데 괜찮았어요. IT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영어도 잘하고 아이리시도 많아서 얘기하다 보면 영어를 하게 되고, 아이리시가 오면 집중해서 해야 하니까 영어도 많이 늘고. 밋업이 혼자 가면 처음엔 조금 무서운데 막상 가면 너무 좋잖아요. 굳이 친구를 사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얘기하고,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밋업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잘 이용하면 정말 좋은 팁인 것 같아요.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말씀해주세요.

너무 어려워요.(웃음) 새로운 도전. 한국 이외에 벗어난 적도 처음이고, 독립적으로 생활한 게 처음이고, 깨달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어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웃음) 32살 선아.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좋겠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고, 행복하게 긍정적으로 베풀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안녕.





Q. 인터뷰 소감 및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제 얘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 항상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여기 와서도 채영 님 얘기 듣고(웃음)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고. 5개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시간인데 정리하는 시간이라 좋았던 것 같아요. 전에 하셨던 분들을 봤는데 너무 다 열심히 사시는 거예요. 나는 너무 놀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름 알차게 산 거 같아요. 더 알차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섬에 산다는 것. 갈라지는 진흙 사이로 물길이 있었는데. 그 물길 따라가보니 바다더라-하게 되는 것. 너의 공기가 느껴지는 그곳을 따라가보니, 나를 마주하고 있더라. 그 언젠가의 갈림길 사이로 빈 차 하나가 지나가더라. 아무리 손 짓 해도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더라. 허무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바다가 너무나 멀게 느껴지더라. 그렇게 도착한 곳은 섬이었다. 나는 섬에 살고 있었다. 너의 섬의 안부를 묻는다.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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