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2018, 열여섯 번째 이야기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by 장채영

더블린 사람들 2018 :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어학연수 유학생

_ 아일랜드 더블린 거주 한국인 청년 유학생 인터뷰 프로젝트




아일랜드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출처 _ 김경욱 작가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지금 여기 더블린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당신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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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2018>의 열여섯 번째 인터뷰이는 영화 <꾸베씨의 행복여행>의 꾸베씨가 생각나는 세계여행자이다. 아일랜드에서는 매일 어떤 꿈으로 행복을 여행했는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5개월 희동(29)을 펍에서 여행을 꿈꿀 수 있는 Luggage Room에서 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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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동의 음악 Shawn Mendes -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






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희동 안녕하세요. 국제 나이 27살 한국 나이로 29살 학생비자 희동입니다.





Q. 언제 아일랜드에 오셨나요? 온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희동 18년 1월 26일에 왔습니다. 겨울에 가장 추울 때 왔어요. 더블린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소문대로 비가 왔었고, 5개월 정도 됐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희동 프로야구단 마케팅팀에서 일을 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짧은 일정이지만 여행 계획을 짜고, 비행기 표를 누구보다 싸게 사서 여행을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퇴사 두 달 전부터 여행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퇴사 후 계획을 했죠. 퇴사 직후 동남아 배낭여행의 성지인 라오스를 갔고, 대학생 때 미국 중부에서의 인턴십, 미국 서부여행을 하고 난 후 미국 동부인 뉴욕에 대한 열망이 있었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고, 유행의 선두주자이니까. 그래서 6월 중순부터 미국 동부와 인생의 목표였던 남미를 여행하고 8월 중순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남미 여행을 하면서 매일매일 여행을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고충을 겪었던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퇴사자들의 모임이랄까. 모든 걸 내려놓고 오는 부부들도 많았고요. 세계 일주를 한다던가. 나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친구기도 하고. 그런 세계여행자들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취업을 대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해서 그런지, 같이 여행을 했던 선배 여행자들은 “너 되게 빠르다.”라는 소리를 많이 하셨어요. 퇴사를 하고 남미 여행을 하면서 저를 많이 되돌아봤거든요. 취업도 빨리하고, 좋은 직장에 참 잘 된 케이스기도 하지만, 제 안에 무언가는 텅 빈 느낌이었죠. 한국의 사회에 갇혀 사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남미 여행을 하면서 만난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텅 빈 무언가를 채우는 것을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작년이니까 27살이었거든요.





ㅡ 취업은 어떻게 일찍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운이 좋았죠. 경영정보를 전공했는데, 군대에 있으면서, 제가 다녔던 대학이 부실대학으로 선정이 돼서 너무 속상한 거예요.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편입 준비를 했어요. 조금 더 좋은 국립대로 갔고, 인생이 바뀌었죠. 대외활동에 눈을 뜨게 돼서 3학년 때부터 미친 듯이 했어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실 제가 남자들끼리는 잘 지내는데, 여자들 앞에 가면 말도 못 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성격도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중독이 됐어요. 이렇게 쌓은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에 취업에 쉽게 할 수 있었어요.




ㅡ 어떤 대외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국토대장정, 해외봉사, 교육봉사도 하고, 은행 홍보대사 활동, 관광 관련 홍보대사 등등 거기에 마라톤도 뛰어보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했죠. 1년에 10개 정도 했어요. 이렇게 3학년을 보내고, 4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에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고 있었는데, 학교의 과선배님께서 야구단에서 인턴을 뽑는데 지원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분의 추천으로 야구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결과는 좋았죠. 훗날 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냐고 물어보니 제가 대외활동을 하면서 페이스북, 블로그에 열심히 기록한 것을 좋게 봐주신 거죠. ‘난 이렇게 산다’하고 많이 표현을 했죠.

SNS가 시간 낭비 서비스라고들 하지만, 순기능을 활용하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편입생인대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 들어갔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인턴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거고, 야구를 좋아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때는 대외활동 붐도 없었고, 운이 좋았죠.

그렇게 휴학을 하고 인턴생활을 하는데, 저를 좋게 봐주셔서 인턴 포함 계약직을 1년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한참 취업난이 불때라, 친구들은 공무원이다, 경찰이다, 은행이다, 준비를 열심히 하던 때라 제겐 정말 좋은 기회였죠. 그런데 졸업이 걸렸어요. 편입생에게는 취업계를 내줄 수 없다고 하길래, 회사에 거절을 하고 인생 첫 사직서를 써보고 학교로 다시 돌아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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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회사 생활을 하다가 대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공부가 안됐죠. 돈도 벌어도 봤고, 대외활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병에 걸린 거죠. 마지막 학기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인턴하던 회사에서 기다려준다는 보장도 없고, 어디에 취업을 할지도 몰랐고요. 그렇게 발견하게 된 게 학교에서 미국으로 단기 인턴십을 보내주는 게 있었어요. 그때도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야구는 미국이 최고니까 사실 야구를 보기 위해 간 거였죠. 한 달 동안 미국 문화도 보고, 지역 사람들도 잘 안 가는 중부지방으로 가서 친구들이 순박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지금도 연락하고 지낼 정도입니다.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고. 재밌었어요. 그리고 제가 여행했던 곳과 야구장 등을 콘텐츠화 해서 페이스북에 꾸준히 포스팅을 했어요.

귀국을 했는데 야구단에서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온 거죠. 야구단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젊어서 SNS 활용도가 높아서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일을 하고 싶긴 한데, 사회 초년생이고 솔직하게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사람은 적응을 하는 동물이고 일단 해보라고 하셔서,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보다 선진야구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 일본을 여행하며 가본 야구장과 그들의 문화를 직접 부딪히며 느껴보니 배경지식도 많아지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해줬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서 순탄하게 잘 했어요. 제가 여행에 중독되지 않았더라면, 회사를 계속 다녔을 정도로요.




ㅡ 여행에 중독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요?


해외여행은 늦은 나이에 시작했어요. 스무 살 초반에는 혼자 자유여행을 할 용기도 없어서, 생애 첫 여행을 패키지로 가고 그랬죠. 14년부터 18년까지 23개국을 다녀왔는데, 여행에 완전 중독이 된 거죠. 처음 배낭여행 일본에 갔을 때 혼자 일정을 짜고 다녀오니, 그 이후에는 너무 쉽더라고요. 아니 내가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웃음) 틈만 나면 여행 계획을 짜고 있고, 심심하면 비행기 표 찾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제일 먼저 찾는 게 휴일이 어디에 붙어있나 확인해서 이 날 무조건 여행 가지 이러면서 많이 다녔죠.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한국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간이 나면 무조건 집에서 나가요. 더블린 근교 여행이라도, 근처 가까운 공원에 가는 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펍에서 맥주 한 잔,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여행이죠. ‘인생은 도전이고, 남는 건 사람이다.’ 제 좌우명이에요.

남미에서 만난 속칭 프로여행러 분들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여행자 명함을 만들어서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아일랜드 워홀 준비한다고 서울에 왔을 때, 시간을 내서 명함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배웠었어요. 지방 사람들은 그런 게 있어요. 내만 그런건진 몰라도. 한 번 서울에 올라가면 뽕을 뽑고 와야 한다고. (웃음) 서울 사람은 집값이 안 들지만, 저는 의식주 비용이 드니까.

그런데 그렇게 배우고 만들지는 못했는데, 마침 더블린에서 만난 동생이 디자인을 좀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캐리커처를 저처럼 조금 귀엽게 넣고 싶어서 밑그림을 그리고 친구가 완성해줬어요. 사람들 주긴 줘야 하는데, 민망하네요.(웃음) 외국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니까. 선물용으로 To라고 썼어요. 앞으로도 여행을 할 곳이 무궁무진하거든요. 9월 말부터 아프리카를 여행합니다.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인도도 가고 싶어져서, 아프리카를 여행 후 11월 아니면 12월에 인도에 가서 한 달을 살 예정이에요.





Q. 아일랜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희동 남미까지 여행을 하다 보니 세계 일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일도 하면서 유럽여행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고, 지방 사람이라 너무 복잡한 도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소박하면서 적당히 조용한 아일랜드가 최적의 조건이더라고요.

아일랜드가 특히 더 끌린 이유는 펍이었어요. 맥주, 술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살이 쪘어요.(웃음) 지금도 이 꿈은 이루려고 노력해요, 그 꿈은 전 세계의 맥주를 먹는 거예요. 호불호가 강한 사람은 더블린에 와도 기네스를 먹는 게 아니라 하이네켄을 먹는다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것만 먹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매번 안 먹어본 거 시키고, 여행 가서 무조건 그 나라의 맥주를 먹어요. 맥주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더블린이 펍 문화가 엄청 발달되어 있잖아요. 바(bar)에 앉아서 먹는 것도 좋아하고, 워홀을 준비한다고 칵테일을 배웠는데, 학원에서 알게 된 게 가장 싸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바(bar)래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바(bar)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잖아요. 안타깝죠. 그런 인식이 잘 못 된건데. 더블린에 온 첫날 바로 템플 바를 갔죠. 아이리시 노래를 들으니까 너무 좋은 거죠. 아일랜드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을 했고, 술을 좋아하는 알코올 홀릭들에겐 천국이죠.





Q. 아일랜드에 오기 전 상상했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희동 아일랜드는 그렇게 크게 조명이 되지 않은 도시니까, 잘 몰라서 오기 전에는 영국 같은 느낌일 거라 생각했죠. 엄청 큰 줄 알았고, 고속철도도 있고 트램도 다닐 거다. 상상했던 것은 그 정도였죠. 그런데 막상 오니 생각보다 소박했어요. 그리고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좋았어요. 영국보다 소박하지만 스파이어와 오코넬 동상 앞에선 좋았어요.






Q.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첫인상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희동 겨울이었고, 저녁 7-8시였는데 회색이었고, 황량해서 집에 바로 들어갔어요. 택시를 타고 막상 홈스테이를 들어가니까 되게 좋았어요. 큰 비글 한 마리가 있었고 백발의 아이리시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티를 줄까 커피를 줄까 여쭤보셨어요. 꼭 물어보시잖아요. 외국에 왔구나 느꼈죠. 우리나라는 물 한잔 줄까 하는데. 여기서는 티에 우유가 필요하니, 우유도 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방이 공주님 방 같은 럭셔리함과 시설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언제 그런 방에 살아보겠어요.(웃음) 홈스테이에서 한 달 살면서 아이리시 음식도 많이 먹고 특히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미술을 하셔서 집 전체가 그림 액자로 전시되어 있고, 화장실에 소라껍데기도 놓아두시고 것도 시설뿐 아니라 인테리어도 좋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추천해주신 게 아일랜드는 뮤지엄과 갤러리가 다 무료라고, 역사 책도 주시고, 아일랜드 갤러리 안내문을 주셨어요.

처음 왔던 겨울은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많이 와서 감정 변동도 심했었는데 요즘엔 날씨가 좋아지고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최근에 코크랑 위클로우를 다녀오고 느낀 게, 아일랜드는 보면 볼수록 괜찮은 나라구나 생각했어요. 대자연을 느낄 수 있고, 생각보다 정말 볼게 많았어요. 워홀러들도 그렇고 학생비자분들도 그렇고. 살다 보면 근처에 있는 것들을 소홀히 하는 거 같아요. 더블린 성도 지나가기만 해봤지, 그렇게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집에 강 북쪽이다 보니 강 남쪽은 별로 안 가봤거든요. 여행자들은 바로 관광지를 찍는데 살다 보니 어차피 언젠가 갈 것 같다는 느낌으로 안 가게 되니까. 이제는 가보려고요.






Q.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희동 항상 바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생각에 남지 않는 생활을 하면 잠이 안 와서(웃음) 친구를 만나거나, 공원을 간다거나. 하루하루 무조건 계획을 하고 있어요. 내일 하루를 무언가를 할까 생각하면서 잠을 자요. 로망이 영화처럼 유럽 공원 잔디에 누워서 책도 읽고, 샌드위치 싸서 도시락도 먹는 거였든요. 요즘엔 여름이라 날씨도 좋아서 Stephen’s Green 공원도 좋고 그 외에 공원을 찾아가고 있어요. 매일 이런 날씨면 평생 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놀이터에 가면 아기들이 놀고 있고, 부모님들도 말도 걸어주시고, 아일랜드는 여름이 정말 평화로운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평소에 그렇게 관심이 많이 없었는데, 문화활동을 많이 하려고 해요. 뮤지컬이나 공연도 많이 보고, 진정 이 나라의 문화를 느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학원 선생님한테도 물어보고, 그리고 아이리시 스포츠도 즐기고 있고요. 제가 야구단에서 일했다고 하면, 아이리시들은 야구를 잘 모르니까 아쉽더라고요. 게일릭 풋볼, 헐링, 럭비 경기를 꼭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특히 럭비 경기는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리쉬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게 특히 좋은 것 같아요. 정말 추천하는 종목입니다. 룰을 잘 몰라도 되고, 그 분위기에 취할 수 있고요. 더블린 할 거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많이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찾아보는 만큼 할게 나오거든요. 이번 주 주말에는 던니어리에서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일인데, 플라잉 대회를 해요. 사람이 날고 싶은 욕망을 표출하는 거잖아요. 보러 갈 예정이에요. 심지어 레드불에서 스폰도 하더라고요.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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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스포츠 문화 관련 일을 하셨는데, 아이리시 스포츠 문화와 한국의 스포츠 문화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희동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는 항상 뭐든지 이익을 생각하는데, 아일랜드는 이익적인 부분도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그 문화를 즐기는 것에 대하여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야구단에서 일할 때, 프로젝트성으로 스포츠 펍을 기획했었거든요. 원정경기가 있을 때, 그 펍에서 응원전도 하고, 지역 사람들끼리 모여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했었는데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없어졌어요.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는 돈이 안되면 없애야 되는 게 태반이니까.


그런데 아일랜드에 와서 놀랐던 것은, 제가 손흥민 선수 때문에 토트넘을 좋아하거든요. 찾아보니까 팀마다 서포터들이 있는 펍이 있더라고요. 더블린 로튼 다 병원 쪽에 Mayes Pub이라고 토트넘 경기 때마다 더블린의 팬들이 모여 유니폼을 입고 단체로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봐요 물론 가족들끼리도 오고 스포츠 팀 아래에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좋은 역할을 하는 거 같았어요. 분명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가게는 아니었어요. 입장료를 받지도 않고, 그냥 자율적으로 와서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하고, 즐기는 모습 그 자체였던 거죠. 그 안에 펍에는 토트넘에 관련된 있었던 일들이나, 굿즈로 장식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구단에서 나서서 물건을 지원해주는 형식인데, 아이리시들은 진짜 이 팀을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성숙하다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희일비를 하는 경향이 많거든요. 이 팀이 성적이 안 좋다, 무슨 일이 있거나, 좋아하는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기면 따라서 옮기고 그런 게 있는데, 여기는 대대로 물려주듯이 전통처럼 우리 엄마 아빠가 아기 때 데려고 와서 응원했으니까 본인도 이 팀을 응원하는 그런 역사 있는 문화가 있는 게 부러운 거죠.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토트넘 펍을 갈 때마다 손흥민이 골을 넣어서 다 같이 안고 괜히 뿌듯해하고 그랬죠. 해외 와서 애국심을 특히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저번 주에 영국을 갔었는데 손흥민이 뛰는 마지막 경기를 보러 갔었어요. 손흥민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들 7명 뭉쳐서 갔는데, 손흥민 응원가 불러주고, 북돋아주며 우리랑 사진 찍고 싶다고 연예인 된 줄 알았어요. 두 시간이나 찍었어요. 스포츠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구나 몸소 느낀 거죠. 특히 올해 월드컵을 해외에서 외국인 친구들이랑 보내서 뜻 깊어요.





ㅡ 다음 월드컵엔 어디에 계실지 상상해보셨는지?

다음 월드컵에 어디 있을지 모르겠지만, 호주나 한국의 직장에서 돈도 벌고 결혼을 한 후 따뜻한 게스트 하우스를 하고 있으면 좋겠네요. 여행할 때 항상 외국인 친구를 만나면, 내 여행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하는 게 많은데 막상 영어로는 표현이 안되니까, 영어 스킬을 늘려서 경험의 모두를 전달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공유를 하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영어도 배운 거고요. 듣는 건 잘해줄 수 있는데, 말을 다 표현을 못 하니까 아쉬웠죠. 제가 차린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에게도 저의 세계 일주의 경험담과 정보들을 주고 싶어요.

남미에서 파라카스 지역의 섬 투어를 했을 때, 그중 한 명이 파리에서 유학 중인 페루 친구였고, 한 명은 아이리시였어요. 아일랜드에 오면 코크에 놀러 오라 했어요. 연락은 했었는데, 그 친구가 스코틀랜드에서 유학을 하고 있어서 아직 못 만났죠. 파리에 가면 다 같이 모일 것 같아요. 그때도 영어로 세부적인 것을 표현하지 못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아쉬웠어요. 그 친구들은 충분하다고 얘기를 해줘서 괜찮았지만, 저 스스로 아쉬웠던 거죠. 여행할 때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지만, 제 감성적인 경험담을 공유하기는 조금 부족하니까요.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 아일랜드에 어학연수를 온 것이기도 하죠.

또 더블린에는 남미 친구들이 많잖아요. 칠레, 멕시코, 파나마 브라질 등등 그때마다 남미를 갔다 왔다 하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하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외국인이 한국어 하면 신기해하잖아요. 여행 경험들이 여러모로 많이 도움이 됐어요. 아이리시 선생님들도 제가 마추픽추, 이구아수 폭포를 갔다 왔다고 하면 대단하게 봐주고, 그런 게 있었죠. 확실히 경험이 많이 있으니까.





Q.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몇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희동 너무 많아요. 최근에 외국인 친구들이랑 같이 과제로 영상을 찍었거든요. 꿈이기도 했었고, 언제 외국인 친구들이랑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기회가 있겠어요. 블로그도 운영을 해봤지만, 유투버들이 부러웠어요. 1인 크리에이터를 하면서, 해외여행 다니면서 고프로 들고 사진 찍고 동영상을 편집하는 것을요.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시 문화에 대해 영어로 콘텐츠 화해서 영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해요. 그렇게 잘 만들진 못했지만.(웃음)

스포츠를 워낙 좋아했지만 직업으로서 일을 하다 보니 좋아했던 감정을 많이 잃었는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북아일랜드와 경기를 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왔을 때, 인사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ㅡ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어떤 분을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것도 운이 좋았죠. 정확한 위치도 몰랐고, 신문기사에 나온 애쉬 타운 근처 훈련장이라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구글맵에 찍고 간 게다였죠. 어학원 같이 다니는 축구 좋아하는 동생이 제안해줘서 같이 갈 수 있었어요. 지금도 너무 고마워요. 버스를 한 50분 타고 내려서 3-40분 걷고, 약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했는데, 아일랜드 축구 협회가 있는 곳에서 한국 선수들이 훈련을 한다더라고요. 그런데 비공개 훈련이라 보지는 못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저희 둘이 백팩 메고 한국 사람이고 서있으니까, 축구 협회 관계자분이 저희가 기잔 줄 알고, 어떻게 오셨냐고 여쭤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더블린에서 공부하는 학생인데, 우리나라 선수들 응원도 해주고 싶고 팬이라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끝날 때쯤에 선수단 나갈 때 버스 앞에서 잠깐 보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흥민, 기성용, 차두리,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 코치분들이 나오면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거짓말 안 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어요. 제가 손흥민보다 나이가 많은데 흥민이 형이라면서 인사하고, 친구랑 선수단 버스가 가고 난 후 안고 울었죠. 더블린에 오길 잘했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타지에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를 본 거니까. 선수분들도 외국에서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구나 하고 감동을 받아서 더 좋아해 주신 거죠. 진심이 통했죠.


또,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팝스타들의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았어요. 샘 스미스, 애드 시런 공연을 보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감사하고, 같이 있는 거 자체가 감동적이었어요. 노래 들을 때도 소름 돋고, 확실히 문화생활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에 17명이 사는데, 절반은 브라질리언이고, 나머지 칠레, 남미 쪽 친구들, 크로아티아 친구들도 있고, 유일하게 저 혼자 한국인이에요. 남미도 갔다 왔다고 하니 경험적인 면에서 통하고, 그 친구들이랑 최근에 뮤지컬을 보고 왔어요. 같이 사는 Renan라는 브라질리언 친구가, 뮤지컬, 문화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아서, 브로드 웨이에서 뮤지컬 하는 게 꿈이래요. American College Dublin에 다니는데 더블린 뮤지컬 센터라는 웬만한 영국에 있는 뮤지컬 극장보다 공연장에서 마지막 졸업 공연을 한다고 해서 보러 갔죠. 규모도 크고 완성도도 좋고, 티켓도 25유로 로고, 다 같이 기립하고, 격식을 갖춰서 아이리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죠. 학업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경험적인 것들이 더 남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어 실력을 늘려가겠다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외적인 활동들을 하면서 얻는 영어실력이나, 얻는 경험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일랜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희동 여행하면서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도 많은데, 아팠던 건 더블린이 처음이었어요.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하루에 5계절이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처음 왔을 때, 아침에 해가 뜨다가도 저녁에 일교차가 너무 심하다 보니 그때 감기에 걸렸는데 1-2주 동안 감기가 낫지를 않는 거예요. 어학원도 며칠 빠져먹고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타지에서 서러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유감스럽게도 근교에 동아리 친구들이랑 출사를 갔을 때 그랬어요. 어머니한테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사진동아리 친구들이랑 출사를 간 상황에서 분위기를 망칠 수도 없어서,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가 없어서. 슬펐죠. 한국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 후에 집에 와서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생각하고 시간을 갖긴 했지만요. 부모님께서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생활을 잘하는 게 더 할머니를 위한 길이다’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죠. 슬퍼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고, 열심히 사는 게 더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위하는 길 이더라고요. 아마 하늘에서 지켜보실 거고. 보고 뿌듯해하시기를 기도하면서, 한국에 가서 바로 인사드리려고요.



ㅡ 저도 할아버지를 아일랜드에 있을 때 보내드렸는데, 친구들한테 위로를 많이 받았거든요. 안타까웠던 것은 분명히 슬픈 게 맞는데, 눈에 안 보이니까 안 와닿고, 슬퍼해야 하는 게 맞는 게 안 슬퍼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부모님한테 죄송하고.



맞아요. 저는 더 죄송했던 게, 친구들하고 있는데 내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 슬픈 게 와닿지가 않아서, 그게 좀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누가 돌아가신 거라, 친지나 주변 지인 중에서 처음이다 보니 실감이 나지 않고. 만약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슬픔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친척들도 일을 하고 오셔서 밤새도록 도와주시는 거잖아요. 철없던 동생도 와서 일을 했는데,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제가 별로더라고요. 얼마 전에 사촌 형 결혼식도 있었는데, 가족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아쉬웠죠. 이 외에는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안 좋은 게 없어요. 항상 긍정적으로 사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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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서 "나만의 장소" 가 있다면?



희동 Luggage Room 펍이라고. 가서 노래를 들으면서 맥주 한 잔만 하고 있어도 조만간 여행을 떠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펍에 온 자체가 여행을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여행을 직접 가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 테이블 자체가 여행가방이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성격들이 다 좋아서, 내가 직접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이 사람이 들려주는 스토리를 보면서 저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Stephen’s Green도 좋고 Grafton Street도 좋았어요. Stephen’s Green 공원은 더블린에서 유명한 공원 중 하나이고 중심가에 있어 편하게 가서 쉬기 좋아요. Grafton Street은 지나갈 때마다 버스킹 음악소리가 많이 들려요.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보았듯이 아일랜드 하면 버스킹의 성지라고 생각을 많이 해요. 실제로 제가 악기를 연주할 수도 없고, 노래도 잘 못하지만, 노래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 더블린에서 버스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도 직장인 밴드를 꿈꿨는데, 프로페셔널한 수준은 바라지 않고, 목소리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더블린에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아일랜드 워홀러에 관함 영상을 보는데 Grafton Street에서 버스킹 하시는 한국인분도 계시더라고요. 물론 그분도 더블린 사람들 인터뷰도 하셨고. 생각했던 아일랜드 생활의 표본이셨던 분인 거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뵙고 싶어요. 한 달 전에 빈티지티팟에서 했던 한국인 밴드 공연도 감명 깊었어요. 연습도 엄청 많이 한 거 같고, 음악 스타일도 살짝 자기만에 스타일로 해석하셔서 노래 및 연주를해서 멋있었고. 특히 기타랑 베이스 하시는 분이 너무 좋았어요.






Q. 아일랜드에 오기 전과 후 스스로가 느끼기에 변한 점이 있다면요.


희동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가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더 잘 가질 수 있는 거 같아요. 회사 다닐 때 비즈니스 관계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인간관계를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일로 만나는 거니까. 나는 이 사람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은데, 일적으로 만나니까, 거리도 살짝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고객을 만나는 접점에서 일하니까, 그로 인한 여러 스트레스가 퇴사의 요인 중에 하나기도 했어요. 컴플레인을 많이 받으니까,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이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 와서 모든 게 해소됐고. 회사 다닐 때 보다 훨씬 몸이 건강해진 거 같고.

여기 와서는 해외 사람들의 정서도 알게 된 거죠.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 거처럼. 서로 오고 가는 것도 좋고, 많이 배우는 거 같아요. 아일랜드에 오니까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할 수 있는 게 많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화한 거 같아요. 동기부여가 되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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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희동 여행을 사랑하고 있어요. 잘 때마다 여행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상상도 많이 하고, 파리 에펠탑에 있거나, 포르투의 루이스 다리 앞에 있거나 상상을 하면서 잠을 이루는 거 같아요. 심지어 꿈에서도 여행을 가고, 계획을 하고 그러더라고요. 지금도 당장에 다음 주, 다다음 주 여행을 가고 거기서 최대한 무엇을 보고 느낄 건지 생각해요. 사실 연애에도 관심이 있지만, 지금은 여행이 우선순위예요. 유럽을 정복하고 싶다는 야망과 욕심이 있어요. 유럽을 다 가고 싶어요. 앞으로 모로코, 스위스,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를 갈 예정이고. 다른 계획은 몰라도 돌아가는 9월 14일까지 여행 계획은 다 짜놓은 상태에요. 9월에는 출국하기 전에 북유럽 쪽에 가는 게 꿈이에요. 9월 초부터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스웨덴에 가고 싶어요.




Q. 앞으로 아일랜드 생활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이 있다면요?

희동 약 4개월 남았는데, 얼마나 알차게 지낼지 구성을 하고 있어요. 한 달 정도 동유럽, 서유럽 여행하고 와서, 학업도 물론 다시 시작하겠지만,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요. 워킹으로 오기 위해서 제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바텐더 스쿨도 졸업하고, 그 기술과 역량을 펼치고 가야 제가 향후 호주 워홀을 가던,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질적인 파트타임 잡을 구해서 그 사람들과 부딪혀 보면서 영어를 좀 더 늘리고 싶어요. 그런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PPSN도 준비를 했고, 다녀오면 시작할 수 있게 CV도 만들어 놓았죠.





Q. 현재 꿈꾸고 있는 일이 있는지, 꿈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혹은 계획이 있다면?


희동 계속 여행을 하면서, 정말 여기가 좋다고 느끼는 곳에서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 정착을 하고 싶어요. 자본금이 많지는 않지만, 집을 렌트해서라도 한인 민박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재능을 발휘해서,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는 거니까요. 9월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인도에서 사는 게 꿈인데, 그 이후에는 호주에 들어가서 워홀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행 강연을 하고 싶어요.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사를 하고 나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세계 일주를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서요. 여행을 콘텐츠화 하는 방법이라든지, 아일랜드 어학연수, 퇴사한 포부나 경험도 전파하면서, 물론 처음엔 소박하게 무료로 강연을 하면서 남들 앞에서 제 경험담을 풀어보고 싶어요.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사진전도 하고 싶고. 제 고향인 창원이나, 서울에 카페 하시는 분들과 소통을 하고 있어요. 큰 꿈은 다니던 직장에서 직업 관련해서 자유학기제를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여행에 관련해서 요즘 친구들한테도 강연을 통해 꿈을 심어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훗날에는 해외나 제주도나 한국에 있는 제가 여행하면서 감명받은 도시에 가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면서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강연이라기보다 여담을 통해서 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겠지만. 명확한 직업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꿈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고, 꿈을 찾다가, 정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꿈을 키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추상적이지만요.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여행사 직원을 추천하지만, 야구단에서 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해보니까 개인적으로는 일을 할 잠시 동안에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지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은데, 부가적인 것을 업으로 삼고 싶어요. 여행과 관련된 사진이라거나, 콘텐츠 제작 블로그 운영 같은 거로요. 지금 우리나라는 취업난이라지만 본인 만의 살길을 찾는다면, 충분히 개척하면서 살 수 있더라고요. 사실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 걱정 안 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먹고 살 순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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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일랜드에 곧 올 사람들을 위해 혹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아일랜드 팁이 있다면?

희동 아일랜드에 대한 선입견을 안 가져왔으면 좋겠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특히 얘기하는 게 커뮤니티에만 봐도, 더블린 할 거 없다고 지루하다, 날씨가 안 좋으면 사람이 우울하고 그렇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니까. 막상 오니까 할 것도 많고, 너무 하고 싶은 게 많고, 심지어 시간이 모자랄 거 같아요. 근교뿐 아니라 딩글, 골웨이, 킬케니 갈대 엄청 많잖아요. 선입견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일랜드 와서도 문화 깊숙하게 관심을 기울이면, 유명 가수들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스포츠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면 좋을 것 같아요. 기회는 자기가 찾아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걸 어느 나라를 가든 어떤 정보를 어떻게 찾느냐에 따라 생활하는 질이 달라진다고 해야 하나, 폭이 넓어지고, 얻는 게 많아요. 더블린도 가치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도시입니다.





Q. 본인에게 아일랜드란? 5글자로

희동 어려운 질문이에요.(웃음) 볼매 같은 너. 알면 알수록 빠져들고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나라에요. 근처나 근교로 나와 아이리시들을 만나다 보면 볼매적인 기회가 오지 않을까. 골웨이, 딩글 등등 얼마나 관심 있느냐에 따라 아일랜드도 사랑하는 사람처럼 애정을 가지고 본다면 누구든 꿈꾸는 아일랜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10년 뒤 이 글을 볼 당신에게 한 마디 하자면?

희동 39살 희동아,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지금의 아일랜드 경험을 그리고 향후에 겪을 멋진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 멋진 사람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 내가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하고 있을지... 아마 그때가 되면, 세계 일주를 했을 상태고, 내가 쓴 책도 발간이 돼서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때 나이에도 후회 없이 열정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확실해 동구야. 그때는 아마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도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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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터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희동 인터뷰를 통해서 나를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좋아요. 더블린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했으면 좋겠지만. 한정적이라 아쉽고. 다이어리를 쓰는 편이 아니라 저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덕분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살릴 수 있음이 좋아요. 앞으로 미래를 포부를 다질 수 있는 것도.

사실 저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저도 이렇게 질문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이나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큰 꿈이기도 하고 그렇게는 못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 채영 님한테 고맙고. 아이디어 적으로 감명을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신청서 쓸 때도 멘트가 있었지만, 당신의 찬란의 순간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너무 좋았어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는 거 자체가 영광이었고 이로 인해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칭찬도 하고요. 최근 영어도 잘 안 늘고, 여행을 기획하면서도 잘 안됐었던 것도 있고 살짝의 슬럼프가 오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걸 잊게 해주는 정말 뜻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희동 ‘인생은 도전이고 남는 건 사람이다’ 제 좌우명이기도 한데요. 본인이 좋은 사람이 되면 주변에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 올테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세요. 저도 앞으로 세계 일주를 하며 더욱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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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내 안의 우주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여기의 우주에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제의 내가 있었다. 내일의 나는 또 어느 별로 갈지 모르겠다만. 확실 한 것은, 늘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꿈에서도 꿈을 꿨다. 그곳엔 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우리가 있었다.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이루어진 나의 여행 길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나를 찾아가는,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처럼.









* 더블린 사람들 공식 계정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Dubliners2018/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ubliners2018_official/










Project Manager : 채영(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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