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나눔에 진상이 더 많은 이유

살면서 느낀 것들1

by LUCY

이사를 앞두고 살림살이를 정리해야 했다.
기존보다 평수가 작아진 집에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놓고 가야 했다.

적은 돈이라도 붙이면 분명 팔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가격 책정하고 연락받고 거래하자니,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무료나눔으로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다.

처음엔 좋은 의도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진상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더 잃고 말았다.


아이매트를 나눔하겠다고 올리자 금세 메세지가 왔다.


tㅓ량

선량한 기부자의 스탠스로 기분좋게 시작된 대화는 이내 스무고개 모드로 진입했다.
"얼룩은 없나요?"

"두께가 몇 cm죠?"

아이 물건이니 그런가보다 싶어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 해드렸으나 곧 이어지는 요청.


"사진 좀 더 찍어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추가 사진들에 영상까지 찍어 보냈다.

결국 약속시간을 1시간이나 넘기고 나타난

0원의 구매자는 왜 이리 무겁냐며 투덜대며 가져갔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적은 돈이라도 받고 물건을 팔면 고마워하고 거래 후기도 잘 남겨 주는데,
오히려 무료 나눔은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고
마치 '당신 짐을 내가 치우러 왔다'는 듯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료나눔 하다 봉변당한 사례들이 종종 게시글로 올라오는 걸 보면서 비단 나만 겪은 일은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무료’라는 이름 앞에서 고자세가 되는 걸까?


저렴한 물건을 파는 재래시장에서는 흥정이 일상이고 재미다.

"이거 얼마에 주시면 안 돼요?" 했을 때 파는 사람이 “까지껏 그렇게 가져가라”고 말하곤 한다.

'까지 것'

이 말은 재래시장에서는 흥정의 맛을 더해주지만

값비싼 제품을 파는 상인들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왜 그럴까? 값이 나가는 상품일수록, 쉽게 깎아주는 순간 오히려 불신이 생기고 고객은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한 여자가 골동품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발견했다고 해보자.
가격표에는 10만 원이 적혀 있다.

그녀는 주인에게 “혹시... 7만 원에 안 될까요?” 넌즈시 물어본다.

그러자 주인이 선뜻 “그러세요, 7만 원에 가져가세요.”하고 여자는 기쁜 마음으로 목걸이를 산다.

하지만 가게를 나서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3만 원이나 깎아서 정말 좋은 가격에 샀다' 할 수도 있지만, 아마 이런 생각이 더 밀려들 거다.


“아, 처음부터 5만 원 부를 걸 그랬나?”
“아니, 목걸이가 좀 촌스러운 거 같은데?”
“광택도 별로 안 돌고, 상태가 나쁜 것 같애...”


반대로, 단호한 주인을 어렵게 설득해 만원을 깍아 9만 원에 샀다면?

그 여자는 하루 종일 득템한 기분에 들떴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사람들은 쉽게 얻는 것, 무료로 주는 것에 가치가 없다고 인식한다.

여기엔 '인지 부조화'라는 심리 개념도 작용한다.인지 부조화란 자신의 믿음이 틀렸더라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심리다.

예를 들어, 비싼 물건을 사고 후회가 되지만, '내 선택은 합리적이야'라고 믿기 위해 제품의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돈을 주고 사야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비쌀수록 더 좋은 상품이라 여기기 쉽다.

나 역시 비싸게 등록한 PT 수업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나갔다.


하지만 무료로 받는 수업은 “어차피 공짜인데” 하며 빠지기 일쑤였고, 결국엔 '딱 공짜용 퀄러티였어' 스스로 합리화하며 아깝게 놓친 수업을 하향평가 했다.

이처럼 무료 배포는 상품성을 떨어뜨리고 받는 이에게 무가치한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회사에서 누군가 도움을 청했을 때 시간과 노동이 공짜인 양 선뜻 해주면, 상대방은 고마운 줄 모르고 다음에도 또 아무렇지 않게 부탁한다.

부탁을 들어주더라도 “나도 바쁘지만 시간을 내서 도와준다”는 식으로 어느 정도는 생색을 내야 상대방도 고마워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사냥본능(?)을 최대한 자극해야 한다.

쉽게 얻으면 귀한 줄 모르기에... ^^;


판매자 입장에서도 무료로 준 제품에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공짜라 해도 상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고객은 다시 그 제품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공짜를 함부로 남발하지 말자.

내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고, 자주 구매하며, 앞으로도 오래 함께할 고객에게만 제공하자.

그들이 결국 충성 고객이자, 판매자의 상품을 홍보해주는 훌륭한 영업사원이 되어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