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 vs 에디톨로지
20대 때 읽었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은 내 인생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친구의 추천으로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읽었다. 대부분 사람은 조금만 '일하고 돈을 버는 법'에 중점을 둔 것 같다. 나는 다른 포인트가 들어왔다.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해도 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여가는 배움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춤을 배우는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일 또는 공부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일이 더 중요해보였다.
요즘 부와 관련된 책이나 가르침은 내 지향점과 많이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 말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 부자가 되기 쉽다. 일을 그만두고 빠른 은퇴를 준비하는 파이어족? 다 좋지만, 미래만 있고 오늘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난 이런 이야기들, 그리고 특히 '노력' 이런 단어를 들으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도 안 그러고 싶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초등학교 이름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수행평가'라는 것이 생겼다. 어린 나이에도 숙제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숙제는 대부분 뭔가를 빽빽이 쓰는 것이다. 하기 싫어서 안 했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내 성격은 중학교를 넘어서도 이어졌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이쁜 과학 선생님이었지만 숙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실 복도 끝에서 끝까지 뺨을 무빙샷으로 날렸다. 무빙샷은 드래곤이나 시즈탱크처럼 원거리 공격 캐릭터만 가능한지 알았는데, 근거리도 가능했다. 딱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는 않다. 나는 그냥 숙제하는 것보다 맞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 성적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수행평가는 30% 비중이다. 내기만 해도 기본 점수는 주지만 아예 내지 않으면 0점이다. 필기시험을 100점 맞아도 전체는 70점이다. 제일 잘 나오는 것이 수. 우. 미. 양. 가 중에서 '미'다.
30대 후반이 되어서 돌아보면 초등학생 때 숙제를 안 한 것은 빠른 사춘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숙제하지 않았던 것도 사춘기 때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는 그나마 나았다. 말 같지도 않은 숙제는 적었다. 대학생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이런 문제가 없었다. 이 고질병은 취업할 때 다시 생겼다. 그 벽은 '자기소개서'다. 왜 내가 '이딴 걸 써야 하지?' 그냥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쓴 적이 없다. 그냥 되는 대로 취업했다. 물론 자랑할 만한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항상 더 나은 조건으로 2번의 이직을 했었다. 중간중간 다른 곳의 오퍼도 있었다. 간단한 이력서를 쓴 적은 있지만, 진지하게 자기소개서 써본 적이 없다. 그냥 난 이런 인간이다. 아니면, 그저 이 정도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 지금 생각하니 내 영혼을 다해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친놈인가…?
난 그냥 오늘을 즐겁게 살고 싶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을 하거나,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박한 꿈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최소한의 경제력을 갖추는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는 것이나 관심 있는 것을 콘텐츠화하는 것이 쉬운 세상이다. 앞으로 AI 발전은 지식을 상품으로 만드는데 드는 저항을 상당히 줄여 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업데이트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 청년 시기는 방황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 아이디어를 집적화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연히 제텔카스텐이라는 방법을 알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멈춘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죽을 때가 되어봐야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은 나의 이 개똥철학을 버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물론, 나는 이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정과 기분만 남아있다. 그때는 메모하는 인간이 아니었으니.
난 이런 개똥철학을 마음에 두고 살아왔다. 사실 개똥철학은 없고 귀차니즘 가득한 게으른 인간이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 하고 싶은 대로 산다. 라는 것에 가능성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이 메모 시스템 '제텔카스텐'이었다. 난 그래서 이렇게 집착한다. 지금까지 내가 시도하면서 실패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작년에 '제텔카스텐'이라는 것을 알고 좀 더 참고 자료가 필요했다. 메모, 창의력, 연결, 편집 이런 키워드를 잘 설명하는 책 '에디톨로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이 책을 사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책의 목차 때문이다.
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보았다. 무의식에 남아 지금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유튜브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김정운 박사의 동영상은 거의 다 보았다. 그것도 재미있게.
하지만 이 책은 선뜻 살 수가 없었다.
김정운 박사에 대한 팬심이 있음에도 의아하게도 이 책은 결재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는 무정한 남자였다.
나는 리디북스에서 리디셀렉트를 이용하고 있다. 리디셀렉트는 리디북스에서 선정된 책들을 구독료만 내고 무한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리디셀렉트에 '에디톨로지 SE(Special Edition)'이 새로 등록되었다. 한숨에 읽어보았다. 아, 나란 남자 무정한 남자여.
서론이 너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책을 다 읽고 '그의 2018년 <에디톨로지 SE>는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2가지 관점이 있다. 그냥 내 생각이다.
1. 작업방식 : 그는 네트워크적 지식을 강조했지만,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계층적 분류를 사용한다.
2. 결과물 : 데이터베이스는 계층적이고, 책은 네트워크 지식처럼 만들었다. 반대로 돼야 했다고 생각한다. 기승전결 확실한 마동석 영화가 재미있다.
김정운 박사가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체계적인 지식이 아니라 네트워크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왜 중요한가? 네트워크 지식은 편집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언제든 목적에 맞는 맥락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노트하지 않고, 메모 카드를 만들 것을 강조했다. 노트는 하나의 체계로 작성되지만, 메모 카드는 자신의 주장에 따라 얼마든지 조합하고 배치가 가능하다.
복잡한 네트워크는 실제로 생존에 유리하다. 인간의 뇌와 동물의 뇌가 가장 큰 차이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이리 복잡한 뇌를 가져야만 했을까? 간단하다. 동물은 자연에서 살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가상의 공간 사회에서 살아간다. '창의력'이란 단어는 인류 역사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점점 더 복잡한 네트워크 지식을 가진 종이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뇌의 물리적 진화 속도는 인간 문명의 발전 속도보다 느리다. 그래서 이제 도구가 필요하다.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더 복잡한 지식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김정운 박사도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컴퓨터에서 간단한 '복사' '삽입' 명령으로 쉽게 다양한 분류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창의적 사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창조적 사고는 의심 또는 낯설게 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했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를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방법은 일반적인 계층적 분류를 사용한다고 했다. 계층적 분류는 이미 자신의 분류체계대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결정한 사고 체계로 외부 자료를 편입하는 것이다. 미리 만들어진 체계는 의심하는 행동, 낯설게 하는 행동의 방해 요소다. 이 책에서 보여준 작업방식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공간'이 아닌 '단순히 카드를 저장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 한계가 'Database'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했다고 생각해 본다. 'Database'라는 단어에는 유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독일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한 마디로 '공부는 데이터베이스 관리'라고 말했다. 나는 김정운 박사가 스타가 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요한 이유는 '공부가 가장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재미'는 교집합이 없어 보인다. 만약 그의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라면, 그 요소를 소개해 주었어야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에디톨로지의 완성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김정운 박사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와 '에디톨로지' 두 개를 비교해 보겠다.
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한국,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
2.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
3.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4. 놀이는 최고의 의사소통 훈련
5.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6. 밸런스 경영_ 일과 삶의 조화
1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한다. 2장~4장에서 보편적인 편견을 무너뜨린다. 5~6장에서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미있는 전개다. 세부장의 제목을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제목이다.
아래는 에디톨로지 SE의 목차다.
- 에디톨로지 SE
- 1.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 2.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 3.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 21. ‘개인’은 편집된 개념이다
- 22. ‘나’는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다
- 23. 우리는 왜 백인에게는 친절하고, 동남아인에게는 무례할까?
- 24.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편집될 뿐이다
- 25. 미국은 국가國로 편집되는 국가國다
- 26. 심리학의 발상지 독일에서 심리학은 흥행할 수 없었다.
- 27. 프로이트는 순 사기꾼이었다!
- 28. 그런데도, 프로이트는 위대한 편집자였다
- 29. 항문기 고착의 일본인과 구강기 고착의 한국인
- 30.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에디톨로지는 3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각 파트는 10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3개의 파트는 논리적 관계가 없다. 각각의 장 또한 논리적 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각각 개별 파트, 장 위계가 없고 평등하다. 중간 아무 장을 선별적으로 읽어도 아무 지장이 없는 유연한 구조다. 즉, 이 책은 철저히 네트워크 형태 목차 구성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와 비교해서 자신의 목소리 보다 외부의 사실을 다루는 장이 많다. 이 많은 역사적 사실은 김정운 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아쉬운 것은 내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로 소개하는 데 그친 것 같다. (물론, 나의 인문학적 배경이 없어서 깊은 이해를 못 한 것이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사례는 각각의 콘텍스트를 알아야 하는데, 한 장 한 장 다른 텍스트와 본래의 콘텍스트가 다르니 읽기가 힘들었다)김정운 박사가 말하는 독서는 다음과 같다.
저자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읽기 바쁜 사람에겐 목차든 찾아보기든 아무 필요 없다. 그런 식의 독서법이라면 매번 저자의 이론을 따라가는 데 급급한 수준을 죽을 때까지 뛰어넘지 못한다. 창조적인 ‘내 생각’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 책 <에디톨로지 SE> 중에서..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다. 필요한 내용을 선별적으로 책을 읽는 것을 추천했다. 독서란 생각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백번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 자체는 선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조로 작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이유는 정보 탐색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공부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에디톨로지에서 말하는 핵심 중의 하나는 편집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편집은 왜 하는가? 맥락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구성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에디톨로지 책은 자신의 Database를 이용해서 편집하는 데 성공했지만, 재구성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조절되지 않은 이야기는 세부사항을 크든 작든 있는 그대로, 똑같이 중요하게 모두 늘어놓는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 책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중에서..
그의 Database에 지금껏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유의 결과가 저장되어 있었다면 크리에이터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이 자신의 Database를 복기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크리에이터가 꼭 해야 할 일로 서재에 꽂힌 책을 보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용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디톨로지 이후 10년 연구의 완결판이라고 소개하는 '창조적 시선' 김정운 박사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은 무려 천 페이지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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