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볼 것인가, 나답게 일할 것인가

여성이기에 느끼는 주변의 기대와 나답게 일하고 싶은 욕구 사이

by 승연

직장 생활 초반, 나는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회의 전에 미리 자료를 챙기고, 팀장의 말투가 달라지면 분위기를 살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 담았다. 가끔은 팀장님이 "센스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들이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눈치'는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눈치를 본다는 건 결국 타인의 기분과 반응을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었다. 회의를 하면서도 팀장의 표정을 먼저 읽었고, 동료의 말투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았다. 그렇게 나는 내 일과 더불어 타인의 감정에 따라 눈치를 보는 일까지 덧붙여지게 되었고, 정작 내 감정은 뒤로 밀려났다.

눈치를 보며 일하는 건 마치 매일 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정답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고, 나는 그 정답을 끊임없이 추측해야 한다. 오늘의 옷차림, 메일에 붙이는 말투 하나까지 조심스럽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보낸 메일을 "혹시 기분 나빴을까?"하며 몇 번씩 다시 열어보곤 했다.

회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괜한 말을 했나?"하는 생각에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남는 건 성취감보다는 피로감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해냈는지보다, 누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쌓인 일상의 피로는 점점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지?', '왜 매일 이렇게 긴장하지?'

답은 간단했다. 나는 나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나답게' 일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경우,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영향을 미친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주변과 조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선입견이 많은 시절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뿐 아니라 관리자가 된 이후에도 '나답게 말하는 것', '나서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 신중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있었나?", "너무 나대는 거 아냐?" 등 내 등뒤로 들려오는 타인의 말들이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더러 입을 닫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눈치를 보는 것이 정말 직장에서의 생존에 유리한가? 그렇게 주변에만 맞추며 일하는 것이 진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말하지 못한 내 의견, 끝까지 설명하지 못한 내 의도는 결국 오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오해들은 나를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또는 '일을 대충대충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않았던 내 행동이 나에게 더 많은 불필요한 업무와 역할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내 의견을, 상대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연습.

예를 들어, 회의 시간에는 '그 말씀도 맞습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며 상대방에 대해 호응을 먼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려고 애썼다. 업무 분장을 받을 때는 '제가 기술적인 설명에 대한 부분은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진행은 영업팀에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리고 말이 꼬였다. 하지만 몇번 반복하자 확신이 생겼다.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결국 존중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경계는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내 의견을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 꼭 강하게, 단호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눈치를 본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사람'만이 아니라 '상황'과 '사람'을 함께 살핀다. 조직의 맥락을 읽고, 예민한 분위기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해 눈치를 본다. 움츠러드는 눈치가 아니라, 판단하기 위한 눈치이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게 내가 회사를 다니며 지키고 싶은 '나다움'이다. 때로는 오해받을 수 있고, 미움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답게 일할 수 있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이다. 그 자유는 단단한 자존감에서 오고, 자존감은 결국 내가 스스로를 선택해주는 힘에서 시작된다.

눈치를 볼 것인가, 나답게 일할 것인가.

이 질문은 매순간 나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세운다. 조직 안에서도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붙잡고, 나는 오늘도 나답게 일해보려 한다.

물론, 나답게 일하려는 노력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동료가 있을때, 그 선택은 더욱 단단해진다.

내가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이유. 그 안에는 결국 함께해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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