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없이 성장하기

시행 착오의 연속

by 승연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멘토가 곁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가 조언을 구할 수 있고, 결정의 순간마다 방향을 짚어주는 선배나 상사를 만난다는 건- 특히 여성 직장인에게는- 복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나와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이는 드물었기에, 나에겐 그런 멘토는 없었다.

누군가가 내게 길을 열어주거나, 한발 앞서 내가 가진 고민을 먼저 말해주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나혼자 판단하고, 부딪히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며 버텨야 했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그 실수를 곱씹으며 성장하는 방식이었다.


혼자 판단하고, 책임지고,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

처음부터 내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막연히 기대했던 시기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를 챙겨주는 누군가가 생기겠지', '이쯤이면 누군가가 방향을 알려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배워야지', '그건 네가 알아서 판단해야 해'라는 말이었다. 사회는 결국 각자가 각자의 몫을 책임져야 하는 공간이니까. 하지만 매번 시행착오로만 배워야 하는 현실은 꽤 외로웠다.

업무에 있어 실수란 곧 '성과에 대한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내가 컴퓨터로 긋는 잘못된 선 하나 때문에 프로젝트 일정이 늦어진 경험, 타부서와 협업을 조율하지 못해 혼자 고객사에 대응을 하느라 진땀을 뺐던 순간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미룬 끝에 기회를 놓쳤던 경험들.

당연한 성장의 일부였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실수 하나하나에 스스로를 자책했고,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하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 "다들 그런 과정을 거쳐"라고 말해줬더라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위로조차 들을 수 없는 조직 안에서 나는 더 조용히,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성장해야 했다. 멘토가 그리웠다.


시행착오가 내 방식이 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시행착오'라는 방식은 분명 비효율적이고 힘들었지만, 나만의 일 근육을 키워주는 훈련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유연한 판단력'과 '위기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당당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업무 역량을 넘어, 나 자신을 지탱하는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멘토가 없었던 대신, 나는 나 스스로의 멘토가 되어야 했다. 실패했던 일에 대해서는 쓰리지만 그 순간을 복기하며 다음에는 같은 실패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한 감정은 일기에 쏟으며 정리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만나면 '내 방식대로' 길을 만들며 걸어왔다.

물론 멘토가 있었다면 더 빠르고, 더 부드럽게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가 얻은 것은, 그 누구에게서도 빌려올 수 없는 "내 안의 단단함"이었다.


여성으로서 멘토없이 자라는 마음의 복잡함

여성 직장인으로서 멘토가 없다는 건 단지 업무적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 같은 고민을 나눌 선배가 없다는 것은 경력 단절, 승진 불안, 육아와 커리어의 충돌 같은 민감한 문제 앞에서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이 장소에서 공론화 시키는 것이 맞을까?', '그렇게 행동하면 너무 예민해 보이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지금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검색으로도, 책으로도 정답을 얻기 어렵다.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가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말해주는 한마디가 간절한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나는 다시 혼자 판단한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래도 나는 나답게 결정했다'라는 마음 하나로 버텨야 했다. 지금도 그 반복 속에 있다.


하지만, 멘토는 어디에나 있다

나는 외롭지만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회사 밖으로 눈을 돌렸다. 자기계발, 자기성장, 리더쉽 등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 직군, 여러 회사의 여성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녀들 중 지금도 함께 하는 모임이 있다. 내가 그녀들과 사회 생활의 경험, 회사 내 인간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리고 이제는 후배들이 생겼다. 나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고민을 나누는 후배들에게서 나는 종종 예전의 내 모습을 본다. 나는 그들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결정을 하고 싶어?"

"그 결정이 네 마음에 들어?"

"괜찮아. 그리 급히 가지 않아도 넌 해낼 수 있어."

과거에 나에게 필요했었던 말들을 그 시간을 지나와서 이제 내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멘토가 필요했기에, 나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나만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매순간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이제는 그 혼란과 혼자만의 성장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인정하며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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