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불안, 그러나 나는 계속 걸어갔다
모든 것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선배들이 쓰는 회사 용어는 어려웠고, 지시받은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인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고민이 더 많았었다.
'나는 이 일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이 회사는 나랑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회사에서 약해보이는 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 불안과 혼란이 '나만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회사 생활 초기에 내가 속한 팀의 프로젝트는 핸드폰용 부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핸드폰의 발전은 2G에서 3G로 넘어가고 있었고, 화면도 흑백에서 컬러로, 벨소리도 단음에서 화음 및 음악재생으로 눈부시게 발전을 하고 있던 때였고, 핸드폰은 전자기학 기술이 실생활에 구현된 첨단 제품이었다. 작은 핸드폰 안에 점점 많은 기능을 넣기 위해서는 그 내부의 부품의 크기도 작아져야 하고, 집적도도 늘어나야 했다. 그러한 부품중 우리팀은 전자기파를 주로 다루는 영역의 부품을 담당하였다. 팀에는 전자기학, 전파공학을 전공으로 한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나는 전자기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기에 해당 용어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회의에 들어가면 다른 팀원들은 회의 내용을 금세 이해하고 바로바로 일에 착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제품의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때문에 회의 도중에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표정 관리를 하고 메모만 하는 날들도 있었다. 회의가 끝나면 화장실에서 휴~ 한숨을 쉬고, 자리로 돌아와 혼자 책을 뒤지며 개념부터 정리하며 공부하곤 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프로답게 행동해."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더 철저히 혼자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빠르게 인정받고, 누군가는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열심히 하는데 왜 티가 안 날까?",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자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나보다 조금 먼저 입사한 선배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술기운에 조금 솔직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는 전공이 그쪽이시니 처음부터 잘했죠? 저도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그 선배는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도 그래... 오늘 아침에도 '내가 이걸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내가 보는 그 선배는 항상 당당해보였었다. 그래서일까? 그 선배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듣는데, 나는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았을 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불안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회의실에서 건너편에서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과 눈빛을 교환하고, 복도에서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동병상련의 느낌을 통해 불안을 조금 누그러뜨리려 노력했다. 또한, 같은 메일을 보고 있던 옆자리 동료의 짧은 한숨에서 그가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난다. 회사 안에서, 그리고 회사 밖의 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고, 그러한 고민의 세월을 지나온 선배 여성들을 통해 내 마음속에 쌓인 긴장을 녹였다.
"그때 나도 그랬어."
"그런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어."
서로의 시행착오와 감정을 나누는 시간은 내 안의 자책을 덜어내고 내가 계속 이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제는 가끔, 후배들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팀장님, 저만 이런 생각하는 건가요?"
그럴때면 나도 내 선배들이 내게 해준 것처럼 솔직히 말한다.
"아니야, 나두 그랬어. 힘들구나?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 짧은 말 안에는, 내가 겪었던 수많은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그것을 녹여주었던 공감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나만?!"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 감옥은 나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서로 말하지 않아서 서로 모르기에 더 견고해졌던 것 같다.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 낯선 역할, 예측할 수 없는 관계 앞에서는 여전히 긴장하고 망설인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그리고 불안을 이겨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간다. 누군가와 나의 불안을 나누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의 용기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