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지나도 컴퓨터를 끄지 못했다. 보고서를 한 줄씩 고치며, 이메일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의식했다. 혹시라도 상사가 내 빈자리를 둘러보며, '이 사람은 일찍 간다'는 인상을 갖게 될까 신경이 쓰였다.
한때는 '지금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내가, 결국 회사에서 인정받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묵묵히 참고 일하며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야근을 자주 하면서 나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였다.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남아서 한 일이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보고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기획안이 얼마나 정교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항상 늦게까지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덧씌워졌을 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고객의 요청사항을 정리하여 독일 본사와 논의하느라 나는 그날도 야근이었다. 독일과 한국은 8시간 시차가 나기 때문에 한국 시간 오후 5시에 독일은 업무를 시작하였다. 따라서 여러차례 정보를 주고받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고객의 요청을 정리해 독일 본사와 의견을 주고 받고, 본사 입장과 고객의 기대에 균형을 맞추는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팀장님은 알아주실 거라고 기대했었다.
다음날 팀장님은 그 제안서를 보시더니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그거 너무 일반적인 거 아니야, 좀더 고민을 해보지?"
내가 하려고 했던 제안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나 시장 분석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이 철썩하고 내려앉았다.
'아... 내가 밤새 이걸 만든 걸 아무도 모르는구나.'
내 노력이 평가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력의 존재 자체가 보이지 않는 구나라고 생각하니, 서운했다. 팀장님이 나에게 야근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야근을 종용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 알아서 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야근 자체가 내 커리어를 '보여주지' 않았다. 결과로 증명되지 않는 노력은 팀장님의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한 야근은 내 리듬을 깨뜨렸고, 주간 업무의 집중도만 낮췄다. 두 시간만 제대로 집중했어도 끝낼 수 있는 일을, 피곤한 뇌로 세시간, 네시간 늘어지게 만든 것도 나였다.
혹시, 당신도 그런 순간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사무실의 마지막 불을 끄며, '나는 왜 아직도 여기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 시간이 정말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인가?
내가 남아 있는 이유는, 일을 잘 하려는 것일까? 눈치를 보는 것일까?'
나는 눈치보는 야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에 업무 시간 안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일을 마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선배와 팀장님을 두고 퇴근하려고 하니 뻘쭘하기도 하고 나만 먼저 퇴근한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또한, 내가 퇴근한 이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만 모르는 일들을 진행하고 나만 거기서 빠져있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내가 야근을 하지 않아도 일은 굴러간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을 받아들였다.
"야근은 내 커리어를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만든 결과물, 동료와의 협업,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이런 것들이 내 일을 말해주고 내 평판을 쌓아준다.
퇴근 시간을 나만의 리듬으로 실행하니, 좀더 주도적이 된 느낌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좀더 생겼고, 말할 에너지도 남았다.
그리고 내가 회사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게 되었다.
일을 오래 한다고 실력이 자라지 않는다.
야근을 많이 했다고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커리어는 스스로 지켜주는 방식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