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고민하게 한 상사의 한마디

직장내 커뮤니케이션 및 피드백 관련

by 승연

"퇴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건, 지치거나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한 일이, 제대로 된 피드백 없이 누군가의 '뒷말'로 평가받았다고 느꼈을 때였다.

그런 일은 내 등뒤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났다.


나의 직급은 대리였다. 한창 일에 자신감도 붙고, 책임감도 조금씩 커지던 시기였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부품을 고객사에서 신뢰성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나는 연락을 받고 고객사를 찾아가 정황을 파악했고, 문제가 있던 부품을 수거해서 공장으로 보내는 동시에 새로이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추가 샘플을 요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가장 빠른 속도로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긴박한 하루가 지나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며칠 후,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자마자 부장님이 나를 호출했고, 나는 기대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고객사에서 신뢰성테스트에서 문제가 있던 건으로 우리 제품을 사용 안 하기로 했대. 그때 빨리 대응해서 신규샘플을 보내주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야. 중요한 프로젝트인데, 너무 대응이 안이한거 아냐?"

부장님의 질책하시는 말에 나는 당황했다. 신규 샘플 신청은 당일로 했었고, 문제가 발생한 정황 레포트도 이미 정리해서 본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일은 순서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해명하려 하였다.

"고객사의 연락을 받자 마자 움직였었고, 추석 연휴전날에 일어난 일이라 신규 샘플 요청은 진행시키고 퇴근 했었습니다. 물류쪽과 협의해서 빠르게 진행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부장님은 내 잘못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것처럼 단호했다.

"윤과장이 샘플을 신청했다고 하더라. 그 덕분에 샘플 준비 기간을 좀 줄일 수 있게 되었지. 고객사와도 더 해볼 것은 없는지 확인중이야."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뒤바뀌어 있었고, 나는 안이하게 일을 해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실패로 만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분위기가 파악되었다. 프로젝트 실패를 본사에 보고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야했었고, 윤과장이 전체프로젝트를 받고 있었기에 그가 부장님과 연휴동안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을 부장님과 했는지, 부장님은 왜 나의 애기도 들어보지 않고 단정적으로 내가 실수했다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고, 캐물을 수도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하지 않은 '실패'를 나혼자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너의 실수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했어.' 그 말은 그 이후로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깊은 상처였다.

나는 정말 잘못한 걸까? 내 기억이 잘못되어 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고객사를 방문하고 그사람들의 애기를 듣고 제품을 수거하여 실험실로 보내고, 신규 샘플을 신청하고 했던 일련의 내 행동들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까?

억울함보다 더 깊게 남았던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것을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없고, 누군가가 엉뚱한 해석을 덧씌우면 나는 쉽게 무너지게 되는구나. 이 회사에서 내가 해온 노력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퇴사'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한편, 그렇게 회사를 나가기에는 내가 이곳에서 적응하려고 애쓴 것이 억울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 밖으로 나가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내 일을 더 정확히 '보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보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혼자서 해결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과 판단을 공유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걸 존재하지 않았던 일로 만들 수 있었다.

작은 대응 하나도 되도록 이메일등으로 확인하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팀장님과 공유했다. 억울한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날 느꼈던 그 말의 무게를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너의 실수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했어."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내게는 앞으로 어떤 리더가 되지 말아야 할지를 알려준 경고였고, 피드백이 얼마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지를 내 몸에 새겨준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은 '사람'을 통과해야 해야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피드백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신뢰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을 공유하는 데서 만들어진다.


퇴사를 고민했던 그 시기,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고 또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금은 누군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싶지만, 그날의 그 말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쉽게 내뱉지 않는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흔들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나 자신을 지켜내는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렇게, 퇴사를 고민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처가 아닌, 상처를 통해 성장한 나의 모습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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