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일의 의미를 찾아서
하루하루가 너무 바쁜 나날들이었다. 할 일은 끝이 없고, 메신저와 메일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회의에 참석하고, 자료를 만들고, 보고서를 쓰고, 다음 할 일의 계획을 짜다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온몸은 텅 빈 것 같았고, 지워지지 않는 피로감에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런 날들의 반복.
어느 날, 늦은 야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텅빈 거울속에 왠 낯익은 여자가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가 나였다. 피곤한 눈빛, 까칠해진 피부, 축 늘어진 어깨. 그러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처음엔 아주 작았다. 그저 지친 하루 끝에 떠오른 짧은 불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하며 넘겼다. 그런데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주말 카페 창가에서 슬그머니,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불쑥불쑥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처음 입사했을 때는 설레임이 있었다. 내가 가진 역량을 펼치고 싶었고,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싶었다.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열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앞에 일이 있으니 그냥 했고, 끝나면 또 다음 일을 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없애는 데만 집중했다. 빠르게, 정확하게,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잘해내면 창친도 받는 면이 게임과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책임감 있게 일을 하고, 그 덕분에 주변 동료들과 신뢰도 쌓았다. 한편,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성과는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주변의 인정도 내 동기를 대신해주지 못했다.
나는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도망치듯 일에 몰입해 온 내 자신을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외면해온 수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지치고, 외롭고, 때로는 무기력한 마음들이.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그렇게 다들 사니까'라며 넘겨 왔던 내 마음들사라지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
일의 이유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좋고, 커리어를 위해서도 맞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 마음을 지키고, 나답게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찾지 못하면 그 모든 이유는 결국 나와 멀어질 뿐이다.
그 질문 이후, 나는 일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의미없이 앞에 닥친 업무에 매몰되기보다는 내가 진짜 관심이 있는 일들에 목소리를 내보았다. 나를 닮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일들을 걷어내려고 애썼다. 무작정 '열심히'하기보다, '왜 이걸 하는가'를 자주 묻고 스스로 답하려 하였다.
그 질문은 내 방향을 바꾸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