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소화하는 것은 내 몫
회사를 옮기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조직 분위기에도 익숙해졌고, 회사에서 내가 맡아야 할 역할도 어느정도 감이 잡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나보다 네살 많은 남자 직원. 그도 나처럼 대리로 입사했고, 비슷한 속도로 회사에 적응해 나갔다. 가끔 회의 전후로 짧은 대화를 나누며, 동기처럼 느껴지는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 발표가 있었다. 그가 과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대리였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한 시점도 비슷했고, 경력도 엇비슷했기에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지나가자니,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불편했다.
'내가 무엇을 못한 걸까?, 내가 부족한 탓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그 동료는 내가 하지 않은 무언가를 해낸 걸까. 나는 계속 보이지 않는 기준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었던 걸까...
그 누구도 내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내 성과를 뜯어보고, 회의에서의 태도를 반추하고, 내가 보낸 메일과 말투, 심지어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순간까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나혼자 비교를 시작했다. 성별 때문일까? 나이 차이 때문일까? 내가 모르는 어떤 내부 기준이 있는 걸까?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나 자신에 대한 검열과 억울함,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알 수 없는 시기심뿐이었다. 나혼자만의 비교 분석으로는 결국 어떠한 답도 나는 얻을 수 없었다.
'내가 답이 없는 게임을 혼자 하고 있구나.'
며칠을 끙끙 앓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 위치를 정확히 짚어 설명해주지 않는다. 결국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지는 내 몫이었다.
나는 상황을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그가 진급했고, 나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건을 돌이길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바꾸자고 애써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 상한 마음이 아무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답이 없는 게임에서 루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동료의 승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역량을 키우고 있으며,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지였다. 그렇게 승진을 한 그 사람과 나와의 비교를 하는 대신 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왜 그는 되고 나는 안되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바꾸자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회사에 기여하는 부분을 좀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사에게 진행방향을 보고했다. 그 즈음, 우리 회사 공장에 대한 고객사의 공정심사가 있었는데, 나는 공정심사 진행 계획 및 예상 결과를 정리해서 부장님꼐 먼저 보고를 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런 변화는 나 스스로가 '어떤 역량을 키우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겉으로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업무와 관계를 선택하려고 애쓰며, 그 안에서 나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비교의 순간은 여전히 불쑥불쑥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타인의 성과나 칭찬, 또는 회사이 불투명한 결정들 앞에서 여전히 나는 흔들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일이 내 커리어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속도로 가고 있는가?"
비교가 만들어낸 감정의 나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서 시작된 나와의 싸움은 조금씩 나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승진이 커리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쌓고 있는 방향성과 태도가 결국은 나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