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나만의 점심시간, 산책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열번은 넘게 읽었다. 읽고 있는데 내용은 내용이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일을 해야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다. 출근은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일이 늘어갔다. 나는 그런 내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몸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 축 처지고, 머리는 멍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이 '억지'였다. 억지로 눈을 뜨고, 억지로 일어나고, 억지로 출근하고, 억지로 웃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것이 '번아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몇년 전 다른 회사에 흡수 합병되었다. 기존 회사에서 몇몇의 직원들이 나와 함께 새로운 회사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고 있던 업무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직 구성, 보고체계, 회사 문화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는 우리 팀이 하고 있던 일을 합병된 회사의 운영진에게 보고하고, 논의에 따라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였다. 기존 나와 함께 옮겨온 직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우며, 신규 채용된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새로운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하여 일이 원만하게 돌아갈 때까지 내 기존 일도 병행해야 했기에 일의 양이 꽤 늘어났다. 더불어, 새로운 회사 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소수였던 우리팀이 적응하는데 좀더 수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벅차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했다. 일도 많고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던 2년이었다. 그리고 나는 부장으로 승진하였고 새로운 팀도 맡게 되었다. 그렇게 한 분야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가득 했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무너졌다.
'여기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오늘중으로 이 일을 끝내야 하는데..'
무슨 큰 위기나 실수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모든 것이 '과도했을' 뿐이었다. 끊임없는 회의, 끊임없는 피드백, 끊임없이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겉으로는 성실하고 밝은 직장인이었겠지만, 내 안은 말라가고 있었다. 마치 타이어 10개를 내 몸에 매단채 땡볕아래 운동장을 뛰는 느낌이었다. 나는 뛰어가고 싶은데, 내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못했다. 아무리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메일을 읽고 있어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나약한가?'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데 왜 나는 못 견디는 거야.'
자책에 자책을 반복하던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까지 온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렇게 무너지기에는 억울했다.
그때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작고 사적인 일들을 시도하였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글쓰기'였다. 마음에 드는 공책을 샀다. 그리고 아침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하루에 한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한페이지를 다 채울때까지는 손을 멈추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문법에 맞는지 생각하지 않고,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자책할 틈도 없이 계속 써 내려간다. 그 시간만큼은 쓰는 행위외의 다른 잡념은 사라진다. 거기엔 오로지 나의 감정과 생각이 날 것으로 남아 있다. 쓰고나면 한 페이지가 채워진 것이 무언가를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나중에 그 글들을 다시 보니, 어떤 날은 나 자신을 자책했고, 어떤 날은 회사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그리고 회사 시스템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적혀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나의 미래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에 대해 쓰고 있었다.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내 마음과 잘 지내보고 싶어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참아왔던 내안의 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나는 '나만의 점심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점심시간도 회사 생활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기에, 늘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이끌고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긴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는 것, 같이 점심을 먹자고 애기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기에 나는 식사 약속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어 어색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 외지고 조용한 까페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점점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메뉴는 내 마음에 드는 걸로 정하고, 창밖의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 그리고 나무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떤 때는 노트를 가지고 가서 끄적여보기도 한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회사로 복귀하면 왠지 '다시 해보자'라며 힘이 났다. 바쁜 하루중 세상과 잠시 단절되는 그 고요한 시간이 내 에너지를 다시 채워주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퇴근하다가 중간에 내렸다.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길이었다. 멀리 네온사인이 있어 길은 완전히 어둡지 않았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조경 덕분에 숲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후로 퇴근 길에 가끔 나는 그 길에서 내려 걸었다. 숲냄새에서 계절이 느껴졌다. 나무의 냄새가 숲의 냄새가 나를 감싸주었고 위로해주었다.
이런 시도들은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있음을 느끼고 살펴보아주니, 바닥이었던 에너지가 조금씩 되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번아웃을 치유하는데 거창한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하루 안에서 '나를 만나는 작은 시도'를 했을 뿐이다.
물론 지금도 일에 치이는 순간은 반복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순간이 '경고신호'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일이 몰아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나를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항상 내 마음이 함께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 번아웃이 내게 준 지혜이다.
일에 지치는 날이면, 나는 내 마음에게 먼저 묻는다.
'괜찮아?'
그리고 내 마음과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