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에도 배운 것이 있다면

지옥을 건너고 있다면 계속 가라

by 승연

"If you're going through hell, keep going."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계속 가라)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그 시절, 내가 맡은 팀은 영업 실적이 저조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회사의 정책상 생산하던 제품을 단종하는데, 하필이면 우리팀에서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던 제품이었다. B2B 전자부품 시장의 특성상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잘 팔리는 제품을 갑자기 단종하게 되면, 그 매출을 단기간에 다른 제품을 판매함으로서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출이 낮아지면 여러가지 압박이 팀에게 쏟아진다. 아무리 회사 정책이라고는 하나 매출 하락의 이유를 팀 입장에서 설명해야하고, 질책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추가로 실적 회복에 대한 계획과 진척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등, 실제 고객을 만나서 프로모션을 하는 일과 더불어 내부 보고를 하는 일이 이중 삼중으로 많아졌다. 게다가 예상하지 못한 단종으로 인해 고객들은 불만을 터트렸기에, 우리팀은 회사의 정책과 고객의 감정사이에 끼어 비지니스 관계를 지키기 위한 절충의 역할도 해야 했었다. 어느 한 곳 편한 곳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잘 해 낼거다'라고 하며 애써 팀사람들을 다독거렸다. 나의 힘든 마음은 조금 숨겨두었었다.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터덜터덜 나오는데 우리팀 중 누군가 말했다.

"정책은 회사가 결정한 것이고, 우리는 나름 실적을 개선하려고 주어진 리소스를 활용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위에서는 왜 모든 것이 우리 탓인냥 몰아붙이는 거죠? 진짜 지옥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마음이 쓰렸다. 좀더 나은 환경을 팀원들에게 주지 못지 못해 미안했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애써 숨기려고 했던 지옥을 이미 팀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지옥에서 팀원들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 안에는 내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미 팀원들은 지옥에서 나와 함께 버텨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마운 마음을 나는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서로의 감정에 대해 애기하며, 우리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는 점과 그래도 같이 있어 다행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 시기에 우리팀은 사면초가였다. 사방에서 오는 질책과 압박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성과가 보이지 않았고, 신제품은 너무나 획기적이어서 시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제품들이였다. 나는 처칠의 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지옥에 있다면 그냥 주저앉아 있지 말고, 계속 가야한다'. 내가 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팀사람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팀은 함께 했고, 그 시간을 지나 자리를 잡아갔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버틴거에요?"

나는 말했다. "버틴게 아니라, 계속 움직였어요. 그렇게 계속 움직이면서 길을 찾으려 했어요."

그 시기를 지나며, 내 삶의 방향도 조금 바뀌었다.

예전의 나는 인정이 중요했다. 성과를 내서 인정받아야 내가 이 일에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그 믿음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었다. 한편, 아이러니하게 내가 그런 상황속에서 크게 배운 것은 이것이었다.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증명하려고 발버둥치던 마음을 내려놓는 법,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건 책에서가 아니라, 힘든 시간을 지나가며 얻은 내 삶의 교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누가 진짜 내편인지 보인다. 내 감정을 가볍게 넘기던 사람, 단지 성과로만 나를 평가하던 사람들... 그들과는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반면, 말없이 커피 한잔을 건네던 동료, 힘든 시간에 옆에 그냥 같이 있어주던 사람들. 그들이 같이 갈 사람들이었다. 이후 나는 모두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몇명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 자신을 조금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약한지, 어떤 환경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루틴과 관계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 등을. 예전에는 무조건 참고 견디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는다고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오래 갈 수 있다.

어려운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거친밭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깨달음이라는 작은 꽃들은 내 밭에 남았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버려지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앞으로 또 다른 어려움이 와도 조금은 현명하게 지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누군가 나에게 그 시기를 회고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시기는 분명 힘들었지만,

나를 성장시킨 시간이었다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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