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덕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걔는 네 존재도 모르거든?”
학창시절 젝스키스에 빠져있는 동생을 보고 비웃었다. 다이어리에 사진을 오려 붙이고 가수를 따라다니는 꼴이라니.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사랑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건 쓸데없는 낭비다. 동생이 열심히 팬클럽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첫사랑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나는 유명인의 팬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상상연애와 같은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했다. 훗 한심하게 연예인에 빠지다니 주변에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그런데 얼마 전 서른 여섯이나 먹은 내가 덕통사고를 당했다. (덕통사고:교통사고를 당하듯 불가항력적으로 누군가의 덕질에 빠져버린 경우를 뜻함) 주인공은 구씨…. 세상 사람들 모두 ‘구며들었다’할 땐 뭔말인가 싶었는데 뒤늦게 넷플릭스에 올라온 드라마 해방일지를 보고 구씨에게 구며들어버린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원시키자마자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배우의 이름을 검색했다. 지난 작품들부터 각종 편집 영상들까지 쭉 정독하다보니 어머 벌써 애들 올 시간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되었나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