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다방의 차림표
절교다 이 지지배야!_김치 국밥과 애호박 전 편
올여름도 어김없이 엄마와 싸웠다.
어릴 때처럼 엄마 미워 아 그래? 나도 너 미워하고 방문을 쾅하고 들어가는 수준이 아닌,
짐가방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버리는 수준의 싸움을 말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4명이 한꺼번에 모여 산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집 은 이제 없고
아버지의 숙소, 엄마의 집, 딸의 자취방, 아들의 신혼집, 이렇게 수식어를 붙은 곳에 살고 있으며
서로의 집이 어딘가 어색해
머문 지 며칠만 지나도 슬슬 눈치를 보다가
나 이제 그만 돌아갈게 하고 떠나버리는,
일상을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 오래되어 서로가 어색한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 와중에 엄마와 나는 성격까지 너무 다른지라
인내성이 떨어지는 여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꼭 한 번씩 크게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사자, 나는 북극곰.
용맹하고 정의로우며 운동회마다 팀을 승리로 이끄는 두야리의 마라톤 주자, 아웃도어 파,
배가 고프면 화가 나 하루 3번은 흉폭해지지만 배가 부르면 천사 같은 - 엄마,
그리고
느긋하고 평화로우며 하늘하늘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웬만하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 인도어 파,
배가 고파도 귀찮으면 먹지 않고 잠이 드는 귀찮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 나.
하지만 성격은 극과 극이어도 딱 하나, 웬만하면 분노가 오래가지 않는 것은 똑같은 모녀는
다툼 후 몇 시간이 지나면 슬금슬금,
흠흠 ..식료품 주문하려고 하는데, 엄마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고양이 밥이랑 모래 좀 주문해줘라. 그리고 요즘 새싹보리가 그렇게 좋다던데..
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둘 다 자존심이 강해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안 하지만)
하지만 올여름은 조금 달랐다.
엄마는 연이은 꽃 축제 판매 부진으로 그날도 시들어가는 꽃들만 바라보다 한숨만 쉬며 돌아왔더니
도시 쭉정이 딸내미의 어설픈 물 주기 솜씨에 그나마 멀쩡하던 하우스 안의 꽃들이 잔뜩 시무룩해져 있자 화가 났고,
나는 외주 일에 밤을 새우면서도 엄마를 위한 현수막이며 그림엽서, 포스터 그리고 온갖 축제 잔심부름까지 하고 지쳐 좀비가 되어 손을 발발 떨면서도
농사를 도와주겠다고 내려온 나를 구박하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그렇게 한참,
방문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으르렁 험한 말이 쏟아내다가 곰이 조용해지자
사자는 짐짓 걱정되었는지, 방문을 똑똑 또도 독 두드렸다.
지지배 나이 먹을수록 한마디를 안 지더니
이제 조용한 거 보니 반성했나 보네
크흠..
그 뭐야...
김치 국밥.. 해줄까?
화해의 키워드도 던졌다.
그러나 말없이 듣고 있던 곰은 반성이 아니라
짐을 싸고 있었다.
그리고 사자가 부엌으로 간 사이,
캐리어를 끌고 그대로 서울로 올라와버렸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끙끙 앓으며 누워있는데
배까지 꼬르륵한다.
새벽부터 밭일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김치국밥 해줄까라던 엄마의 말도.
김치국밥.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새큼한 한 입이 떠올라 침도 뚝뚝 떨어졌다.
김치국밥.
그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바야흐로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던 시절.
그 날따라 식료품이 똑 떨어져 냉장고에는 김치와 콩나물, 찬 밥 한 덩이, 달걀 몇 알이 전부였고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의 한 여름은 정말 더웠다.
장을 보려면 삼십 분은 걸어서 시장에 가야 했던,
편의점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배가 고파 입을 쩍쩍 벌리며 짹짹거리는 우리 남매 앞에서 잠시 고민하시던 엄마는
잠시만 기다려하시더니
10분도 지나지 않아 집에서 제일 큰 뚝배기에 음식을 내오셨다.
저절로 윙크가 나올 만큼 새큼하게 익은 김치에 아삭아삭한 고소한 콩나물,
씨워-언하게 얼큰한 국물을 포옥 머금어 통통해진 밥알을
몽글몽글 보드라운 달걀과 한입 떠서 먹으면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 수 있을까! 감탄이 나왔다.
10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자극적이면서도 보드라운 그 맛!
동생과 나, 엄마. 셋이 둘러앉아한 뚝배기로 배불리, 정신없이 식사를 했다.
맴맴 매미소리가 가득 떠있던 더운 여름 공기와
한참이 지나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커다란 뚝배기,
땀을 똑똑 흘리면서 정말 맛있다! 하고 웃던 동생의 얼굴,
정말 맛있지? 하며 뿌듯하게 웃으시던 엄마의 얼굴,
김치국밥이란 단어로 생생하게 그 여름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날 날씨도 꼭 오늘 같았는데.
엄마도 아마 불현듯 그날이 생각나,
김치 국밥이 어찌나 맛있는지 그림일기에 꼭꼭 연필을 눌러가며
그 감격을 기록하던 그날 저녁의 나를 떠올리며,
우리 딸은 김치 국밥을 참 좋아했지 하고 말을 꺼내셨던 것이겠지.
각자의 둥지가 생긴 건 훨씬 후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인 내가 13살 무렵부터
함께 모여 지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인 우리 네 가족.
아마도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아주 짧은 단편적인 순간 속에서
알게 되는 서로의 모습들을
무의식적으로 꼼꼼히 기억해왔던 것 같다.
일상을 공유한 시간이 너무 드물어
업데이트는 매우 늦지만 그 수가 적은 만큼 그 모습들을 절대 잊지 않고 말이다.
화해해야지. (하지만 사과는 안 할 거야)
이미 생각하면서 눈물이 찔끔 나온 시점에서 엄마와 계속 싸운 채 있는 건 무리겠지.
지금은 아직 많이 분하니까 싫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엄마 집에 내려가 텃밭에서 몰래 애호박을 따다가
어디 잠깐 외출했다 온 것처럼 능청스럽게 부엌에 들어가
2015년 여름에 엄마가 좋아하셨던
테두리를 튀기듯 아삭바삭하게 부친 꼬소하고 달달한 애호박 부침개를 해드리고
거, 그 김치 국밥 좀 해주세요 해야겠다.
그리고 고집스러운 면은 똑 닮아 언제나처럼 서로 사과는 하진 않겠지만
서로에 대해 새로운 면을 또 조금 알게 된 우리 모녀는
말없이 식사를 하고 같이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