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동진의 빨간책방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남을 것처럼 일하고
떠날 것처럼 준비하라
두 문장은 내 인생의 모토이다.
첫 번째는 인생 전체에, 두 번째는 회사를 다닐 때에.
첫 번째는 이동진 평론가님의 말이고, 두 번째는 이전 회사의 팀장님이 해주신 말이다. 두 말 모두 마음에 깊게 와닿아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
대학교 시절, 전공 공부에 흥미를 못 느껴 이리저리 방황하였다. 그 시절 흥미가 생기는 것은 뭐든지 해봤는데, 그때 만난 것 중 하나가 영화였다. 일본어에 한창 관심이 생겨서 일본 영화를 즐겨 보았고, 그러다가 이동진 평론가님을 알게 되었다. 매일 이동진 평론가님의 블로그를 드나들며 별점이 좋은 영화를 따라서 보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별점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인생의 멘토로 삼아야지 생각한 건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만나고부터였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2012년 5월에 시작하여 2019년 6월에 종영한 팟캐스트이다. 총 3개의 코너가 있었고, 이동진 평론가님이 자신이 산책을 소개하는 '내가 산 책',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심도 있게 이야기 나누는 '책, 임자를 만나다', 출판사 에디터들이 자신이 편집한 책을 소개하는 '에디터스 통신' 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한 코너는 '책, 임자를 만나다' 코너였다. 이동진 평론가님과 소설가 김중혁 님이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였는데, 주로 이동진 평론가님이 논리적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 주고 김중혁 소설가님이 실 없는 농담으로 웃음을 주는 형태였다. 김중혁 소설가님의 위트가 돋보였고 가끔 던지는 이동진 평론가님의 부장님 개그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총, 균, 쇠> 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책이지만 완독한 사람은 없다는 그 책! 이동진 평론가님은 정리의 신 답게 역시나 정리를 잘 해오셨고 시종일관 논리적으로 책을 정리하여 알려주셨다. 그에 반해 김중혁 작가님은 (내가 느끼기엔 전형적인 P이신 듯하다) 그 자리에 있으신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다. 나중에 본인의 흑역사 방송으로 뽑기도 하셨는데, 난 그 방송이 유독 재미있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약 7년 정도 방송을 했는데, 그동안 난 연애도 하고 결혼, 출산까지 해서 처음 들었을 땐 혼자였는데 마지막에 들었을 때는 셋이 되어 있었다. 매주 방송을 빼먹지 않고 들었고 혹시나 놓치게 되면 놓친 분량은 다음번 방송 전에 꼭 다 들었다. 방송에서 소개된 책을 따라 읽으면서 깊은 재미와 희열을 느꼈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샤이니 종현에 이어서 MBC 라디오 ’푸른밤 이동진입니다‘의 DJ도 하셨는데 시간대가 늦어서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가끔 위로를 받기 위해 듣기도 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과 ‘푸른밤 이동진입니다’를 들으면서 이동진 평론가님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극 J인 나도 따라갈 수 없는 극강의 정리력과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과 통찰력에 매 방송마다 감탄을 했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철학은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행복과 시간 그리고 인생에 대한 철학이 인상 깊었다.
우선 행복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님은 우리가 행을 삶의 기본값으로 가져가기에 불행하다고 했다. 우리의 삶은 원래 불행한 것이라고. 불행을 기본값으로 살아가면 행복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게 감사하게 된다는 철학이었다. 어떤 일을 앞두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면 그만이고 잘 되면 너무 좋은데, 기대를 많이 하게 되면 안 되면 슬프고 불행하고 잘 돼도 행복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다음은 시간에 대해.
난 이 철학이 너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철학을 소개해 주곤 한다.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그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이동진의 독서법> 중에서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도 빠르게 결과를 보기 위해 주변을 보지 않고 달리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인생의 핵심은 뭔가를 달성하는 것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그 시간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안달하지 않기로. 그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시간이 들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이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과정을 즐기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지금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철학을 알고 나니 예전보다 인생이 한층 더 즐거워진 것 같다.
마지막은 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인생의 말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동진 평론가님의 블로그 타이틀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간에 대한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는 우리의 물리적 시간상 우리는 오늘 하루, 현재 그리고 지금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오늘 하루 중 지금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지금을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고, 이는 인생 전체를 성실하게 사는 것으로 연결된다.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고 했지만 이는 인생을 대충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인생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철학인지! 아마 이동진 평론가님이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철학 책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님을 알게 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블로그에 들어가거나 방송을 본다. 여전히 떡볶이와 마이구미를 좋아하시고 고양이를 키우고 계신다. 최근에 또 다른 고양이를 입양하셔서 이제 냥이 2마리를 키우고 계신다. 러시안 블루라 이름을 ’루‘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블’루‘면 온다는 부장님 개그도 빼놓지 않고 깨알같이 블로그에 써주셨다. 역시 난 이런 개그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한참을 또 웃었다.
언제나 인생에 진심이신,
언제나 부장개그에 진심이신
이동진 평론가님!
앞으로도 꾸준히 인생 멘토로 삼고 살아가려 한다.
오래오래 활동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