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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Mar 26. 2024

우리 며느리 1

도저히 며느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막내딸이 몇 마디 좀 했다고, 감히 우리 아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니… 남편 떠나보낸 후 첫 추석 명절인데… 마음이 너무 허망하다.


아들과 처음으로 우리 집에 인사 왔을 때, 나를 돕겠다며 부엌으로 성큼 들어온 아이였다. “나중에 결혼하면 실컷 부엌을 들락거릴 텐데. 아니야, 가서 앉아서 쉬어.”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데, 먹는 양이 아주 적다. 그래서 퍼준 밥과 국을 다 반으로 덜어줬다. 옷도 잘 입고 목소리도 곱다. 남편은 벌써 옆에서 “우리 아들이랑 결혼할 거야? 허허허” 너스레를 떤다.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 한달음에 며느리에게 달려가, 아이를 보고 아들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우리 손녀는 우리 아들을 쏙 빼닮았다. 첫 친 손주인데, 내가 낳은 아이보다 더 예쁘다. 보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다. 첫 손주를 너무 예뻐한 건지, 그만 아들 며느리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들과 합가를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펄펄 뛰며 다들 말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며느리가 직장에 다녀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기 싫은 건 다 마찬가지 아닌가? 아들 며느리 이사 들어오던 날, 일을 도와주러 온 큰 딸은 “내가 애들 들이지 말라니까. 에휴” 하면서 나를 걱정해 주느라 바쁘다.


나의 육아는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댄스고, 목욕이고, 마실이고 100일간 나는 일절 외출을 하지 않았다. 외출을 좋아하는 나에게 100일간 집에만 있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친손녀가 나를 그렇게 집에 붙어있게 했다. 내 가슴팍에 폭 안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남편은 더없이 퇴근을 서둘렀고, 집에 돌아오는 손에는 항상 검정 봉지가 들려 있었다. 과자, 과일 등등 이쁜 며느리에게 갖다 주고픈 건 다 사 왔다. 


5개월 남짓을 살았을까? 딸 셋이 “쟤네들 둘쨰도 가져야 하잖아!” 라면서 이구동성 내보내라고 난리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옆 동으로 분가를 하게 됐다. 남편은 아이들 이사 나가는 직전 날 밤에 거실에 쓸쓸하게 앉아서, 잠잘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거실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분가하자 바로 둘째가 생겼다! 역시 딸들 말이 틀린 게 없구나! 역시 애들은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둘째를 가진 며느리 출근을 돕기 위해서 일부러 옆동으로 아침에 손녀딸을 데리러 갔다. 퇴근길에는 손녀딸을 걸리고 지하철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손녀딸과 저녁 먹을 만한 반찬도 해다 갖다 주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며느리를 위해서 아침에 카레도 해주고, 밥도 해주곤 했다. 우리 며느리에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냥 잘해주고 싶다. 둘째를 낳은 이후에는, 며느리 집에 들러서 청소도 해주고, 큰 손녀딸을 데리고 나가서 일부러 놀이터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다. 그래야 며느리가 좀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아들 며느리는 둘째를 낳고 조금 있더니, 서울로 다시 이사를 나갔다.


토요일이 되면 손녀딸들을 보러 가자고 남편이 하도 보채는 바람에, 집에서 새벽부터 반찬을 해서 서울에 새로 자리 잡은 아들 며느리 집에 놀러 가곤 했다. 바보 같은 남편은 며느리를 보면 입이 저절로 함박만 해지면서 허허허 웃느라 턱이 빠질 것만 같다. ‘며느리가 저리도 좋을까?’싶다. 우리 손을 떠난 아들 며느리 두 손녀딸은 아옹다옹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것 같다. 낮에는 아이를 돌봐 줄 손도 구했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가 대견하다. 


아들은 집을 사는 바람에 크게 융자를 얻어서 항상 머리를 아파했다. 스트레스받아하면서 직장 생활하고 마누라와 아이들을 건사하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남편이 열심히 벌어온 돈을 저금해 뒀다가 아들이 전세 얻을 때, 융자 갚을 때 간간히 마음을 보탰다.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니. 정말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우리 며느리도 고마워하겠지.


남편이 암투병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떠나자마자, 우리 며느리가 변한 걸까? 그 간 내가 온몸과 마음을 다 해 며느리에게 잘해줬는데.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남편이 떠난 첫 명절날, 이렇게 며늘아이는 거의 제사상을 뒤엎다시피 하고 우리들에게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자릴 떠나버렸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잘못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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